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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598-1142(Print)
ISSN : 2383-9066(Online)
Journal of architectural history Vol.25 No.4 pp.45-56
DOI : https://doi.org/10.7738/JAH.2016.25.4.045

A Study on the Tradition of the Setting of Seungdang and Gowon in the Zen Buddhist Temples of Song Dynasty

Ji-Man Han*
Corresponding Author : g-mahn@hanmail.net
June 15, 2016 August 5, 2016 August 8, 2016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setting of seungdang(僧堂) and gowon (庫院) in the Zen Buddhist temples of Song dynasty, in terms of as a Buddhist temple universality and as a Zen temple specificity, through the historical reference investigation on its relevance to the Buddhist temples of Tang dynasty. In the Zen Buddhist temples of Song dynasty, the Zen meditation space of seungdang was located on the west side of Buddha hall, and the kitchen and officiating priest’s living space of gowon was located on the east side of Buddha hall. Through the analysis of historical reference it was confirmed that, in the Buddhist temples of Tang dynasty, the Zen meditation section of seonwon(禪院) was on the west side, and the gowon was on the east side too. Therefore, it can be said that, the setting method of seungdang and gowon of the Zen Buddhist temples of Song dynasty was established above tradition of the Tang dynasty Buddhist temples.


송대 선종사원의 승당과 고원 배치 전통

한 지 만*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조교수

초록


    1.서론: 연구의 배경과 방법

    중국 불교사에서 선종이 가장 흥성했던 송대(宋代, 960~1279)1)의 선종사원은, 대내적으로는 뒤이은 원대 (元代, 1271~1368)로 계승되고, 대외적으로는 이웃한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져 13~14세기에 걸쳐 동아시아 불교사원 건축의 큰 흐름을 이루었다.

    송대 선종사원에 관한 선행연구2)에 의하면, 가람배치 의 특징으로 공통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이 가람의 중 심축선상에 삼문(三門), 불전(佛殿), 법당(法堂), 방장(方 丈)이 일렬로 서고, 그 동서에 고원(庫院)과 승당(僧堂), 토지당(土地堂)과 조사당(祖師堂)3)이 각각 대칭으로 배 치되고 있다는 점이다.<그림 1> 이 중에서 삼문과 불 전, 법당으로 이루어지는 중심축선상의 구성은 이전 고 대 사원의 중문, 불전, 강당에 대응하는 것으로4) 불교 사원으로서의 보편적 성격을 갖는 전각구성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전각들이 기능 과 가람배치의 측면에서 선종사원으로서의 특성을 보다 선명하게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선행 연구 에서는 이들 전각이 어떠한 경위를 통해 송대 선종사원 가람배치의 특징적인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에 대 한 설명을 찾기 어렵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송대 선종사원의 가람배치를 특 징짓는 인자들 중에서 특히 승당과 고원 배치에 주목 하여, 그러한 배치가 나타나게 된 배경에 대하여, 불교 사원으로서의 보편성과 선종사원으로서의 특수성의 측 면에서, 초기 선종사원이 출현할 무렵의 당대 불교사원 과의 관련성을 통해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의 방법으로는 중국에서 독립된 선종사원이 출 현하기 시작하는 당 후기 9세기 무렵의 불교사원에서 선정수행(禪定修行) 공간과 고원의 위치를 문헌 사료 분석을 통해 파악하고, 이것과 송대 선종사원의 승당 및 고원과의 관련성을 규명하였다.

    문헌 사료로 먼저 단성식(段成式, ?~863)의 사탑기 (寺塔記)5)(853년 재편집), 장언원(張彦遠, 815~879)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6)(854년 증보), 자각대사(慈覺 大師) 엔닌(圓仁, 794~864)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 求法巡禮行記)7) 등의 분석을 통해 9세기 무렵 불교사 원의 선정수행 공간과 고원의 위치와 기능을 파악했다. 더불어 당대 불교사원 건립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인 정되고 있는8) 도선(道宣, 596~667)의 관중창립계단도 경(關中創立戒壇圖經)중천축사위국기원사도경(中天 竺舍衛國祇洹寺圖經)에 기술된 가람 구성 관련 내용에 대해 분석하였다.

    2.송대 선종사원의 승당과 고원 위치

    송대 선종사원의 가람배치 정황은 13세기 중엽 남송 에 유학한 일본 선승들이 기록한 것으로 전하는 오산 십찰도(五山十刹圖)9)에 수록된 일련의 가람배치도10)를 통해서 확인이 가능하다.

    이들 가람배치도에서 일관되게 확인되는 선종사원의 대표적인 가람배치 특징을 들자면, 중심축선상의 삼문, 불전, 법당 후면에 전방장(前方丈)과 방장으로 구성되는 주지 영역이 위치하고 있다는 점,11) 그리고 불전의 서 쪽과 동쪽에 각각 승당(僧堂)과 고원(庫院)이 서로 마주 보며 동·서향으로 배치되어 있는 점이다.<그림 1>

    송대 선종사원에서 승당12)은 사원 소속의 모든 수행 승들이 좌선수행을 비롯해 식사, 취침을 함께 하는 곳 으로, 오로지 좌선수행을 통해 일상 속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종사원의 가장 대표적인 전각이라 할 수 있다. 승당 건물은 크게 전면(불전 쪽)의 외당(外堂)과 후면의 내당(內堂)으로 구성된다. 외당은 주지(住持)를 도와 사원의 운영과 관련된 제반 업무를 나누어 맡은 지사(知事)와, 역시 주지를 보좌해 중승들의 수행을 지 도하는 두수(頭首)와 같은 역직(役職)13)들이 좌선과 식 사를 하는 공간이다. 내당 공간은 일반 중승들이 좌선, 식사, 취침을 하는 곳이다. 외당의 역직들은 각자의 집 무처인 요사(寮舍)에서 취침한다. 내당 중앙에는 성승 상(聖僧像)이 안치되고 그 주변으로 길게 이어진 상 (牀)이 설치되며, 이 상 위에 중승의 자리가 법랍(法 臘)14)에 따라 정해진다. 주지 역시 좌선과 식사를 내당 에서 중승들과 함께 했고, 잠은 방장에서 잤다.

    송대 선종사원의 고원15)은 사원 승려들의 일상 식사 와 각종 의례를 위한 음식을 조리하는 주방을 핵심 기 능으로 하는 곳이다. 고원 안에는 대규모 주방이 마련되 며, 이에 더해 사원의 운영을 담당하는 지사들의 요사, 그리고 중국의 사원에서 가람과 승려, 음식의 수호신으 로 신앙되었던 위타천(韋陀天)16)을 봉안하는 공간도 구 성되어 있었다. 또 고원 주변에는 각종 식재료 등을 보 관하는 창고가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처럼 고 원은 주방을 중심으로 지사들의 요사, 의례, 창고의 기 능이 복합된 기능의 건물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위와 같이 송대 선종사원에서 확인되는 승당과 고원 의 기능과 배치방식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성립한 주변 의 일본과 한국의 선종사원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일본의 경우 카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85~ 1333) 말 1331년(元弘1)의 켄쵸지(建長寺, 1249년 창건) 가람을 그린 것으로 알려진 켄쵸지사시즈(建長寺指圖) 에서 불전 앞마당의 서쪽과 동쪽에 대규모의 승당과 고 원이 서로 마주보고 배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 다.<그림 2> 그리고 한국의 경우에도 고려시대 말에 입 원(入元) 유학승 나옹혜근(懶翁惠勤, 1320~1376)이 중건 (1374~1376)한 회암사(檜巖寺)에도 불전 서쪽에 승당이, 불전 남동쪽 일대에 고원 영역이 배치되어 있었다는 것 이 근래의 연구17)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이처럼 송대 선종사원의 승당과 고원은 그것의 기능 적 측면과 더불어 배치방식에 있어서도, 선종사원의 가 람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 한 승당과 고원의 배치는, 중국의 불교건축사의 측면에 서 봤을 때, 어떠한 배경에서 출현하게 되었을까? 다음 에 이어지는 장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초기 선종사원이 출현했던 당대 불교사원과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3.당대 불교사원의 선원과 위치

    3-1.당대 불교사원의 선원

    중국 불교사에서 선종이 본격적으로 사회 저변에 보 급되기 시작한 것은 당 후기 9세기 이후의 일이며,18) 이 무렵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라는 유명한 선장 (禪匠)이 출현해 선종사원을 따로 짓고 선종을 하나의 종파로서 독립시킨 일은 익히 잘 알려진 바와 같다.

    다양한 종파가 성립해 있던 당대의 불교사원은, 천태 종의 중심지인 천태산(天台山)이나 문수신앙 및 화엄종 의 성지였던 오대산(五臺山) 등과 같은 일부 지역의 몇 몇 특정 종파 사원을 제외하고 대체로 다양한 종파와 기능의 원(院)들이 한 사원 내에 공존하는 형태였다.19)

    이러한 다원식 가람 형태의 사원은 9세기 중엽의 전적 인 사탑기, 역대명화기, 입당구법순례행기 등에 묘 사된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예를 들면 오대산 죽림 사(竹林寺)20)의 율원(律院), 고원(庫院), 화엄원(華嚴院), 법화원(法華院), 각원(閣院), 불전원(佛殿院) 등을 비롯해, 장안(長安) 천복사(薦福寺)21)의 정토원(淨土院), 보제원(普 濟院), 율원, 서남원(西南院) 등, 대흥선사(大興善寺)22)의 행향원(行香院), 소화상원(素和尙院), 삼장원(三藏院), 서선 원(西禪院) 등, 그리고 안국사(安國寺)23)의 동선원(東禪院 혹은 목탑원), 성용원(聖容院), 산정원(山亭院), 상좌린공원 (上座璘公院), 경원(經院), 대법사원(大法師院) 등이 보인 다. 이 밖에 오대산 대화엄사(大華嚴寺)의 15원(院),24) 장 안 장경사(章敬寺)의 48원,25) 자은사(慈恩寺)의 10여 원,26) 서명사(西明寺)의 10원27) 등도 확인된다. 물론 이들 사원 중에는 선정수행(禪定修行)에 전념하는 선사(禪師)들이 기 거하며 수행하는 선원(禪院)을 갖춘 곳도 있었다.

    중국 불교에서 선정수행은 불교 수행자들이 겸수(兼 修)해야 할 삼학(三學), 즉 계(戒)·정(定)·혜(慧) 중의 정 에 해당하는 것으로, 불교 도입 초기부터 선정수행과 관 련된 경전들이 번역되고 실천되었다28). 그리고 사원 내 에서 선사들이 선정수행을 하는 공간 역시 이른 시기부터 나타났는데,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220~589)부터 선각 (禪閣), 선방(禪房), 선실(禪室), 선당(禪堂) 등과 같은 건 물이 확인되며, 수·당대에는 위에서 보인 바와 같이 선원, 즉 다원식 가람의 한 원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29)

    당대 불교 사원에서 선정수행 공간이 별원(別院) 형 태로 운영되고 있던 정황은, 아래와 같이 경덕전등록 (景德傳燈錄)(1008) 등에 기록된 회해가 선종사원을 따로 건립하게 된 경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 以禪宗肇自少室, 至曹谿以來, 多居律寺, 雖別院, 然於說 法住持, 未合規度. … 於是創意, 別立禪居30).(선종은 작 은 건물(小室)에서 시작하여 조계(曹谿: 육조 혜능)에 이 른 이래, 율사(律寺)에 기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비록 별원(別院)이라 할지라도, 주지가 설법하는 것은 규범의 틀에 맞지 않았다. … 그러므로 새롭게 의견을 내어 선 원을 따로 건립했다.)

    즉, 선종이 중국에 전해진 이래 초기 선사들은 사원 내 한 건물에서 수행하다가, 당대의 육조 혜능(六祖慧 能, 638~713) 이래로 율종사원의 별원으로 발전하였으 나, 더 이상 별원 단위에서는 선종이 추구하는 수행과 의례의 규범을 실천하기에 적합하지 않게 되자, 드디어 회해가 뜻을 세워 선종사원을 따로 세우게 되었다31)는 것이다.

    회해 이후 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하는 초기 선종사원의 가람은 승당과 고원을 비롯해 불전, 주지가 설법하는 법당, 역대 조사와 주지의 진영을 봉 안하는 조사당, 가람 수호신을 봉안하는 토지당, 그리고 각종 요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32) 초기 선종사원에 서 이 전각들의 위치관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료나 유구는 없지만, 기존 사원에서 선원이 담당했던 선정수행의 기능은 독립된 선종사원의 승당으로 옮겨갔 고, 이후로 승당이 선종사원의 핵심적인 수행 공간으로 유지되어 간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초기 선종사원의 가람 구성과 특히 선정수행 공간으로서의 승당의 기능은 송대 선종사원 가람 구성의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3-2.선원의 위치

    그러면 다원식 가람 형태의 당대 사원에서 선원은 어 디에 주로 위치하고 있었을까? 이것과 관련하여 앞서 소개한 사탑기, 역대명화기, 입당구법순례행기 등 독립된 선종사원이 출현하기 시작했던 9세기 무렵 문헌 들에서 다음과 같이 흥미로운 사실이 확인된다.

    이들 사료에 나오는 선원을 전부 열거해 보면, 장안 대흥선사 서선원, 정역사(靜域寺) 서선원33), 안국사 동 선원(동탑원), 기국사(紀國寺) 서선원34), 포의사(褒義寺) 서선원35), 진국사(鎭國寺) 서선원36), 낙양 경애사(敬愛 寺)의 서선원과 동선원37), 용흥사(龍興寺) 서선원38), 성 자사(聖慈寺) 서선원39), 그리고 양주(揚州)의 혜조사(惠 照寺) 선림원(禪林院)40) 등이 확인된다. 물론 이들 문 헌에 나오는 사원들은 주로 장안과 낙양에 소재한 일 부 사원에 지나지 않지만, 거의 대부분의 선원이 ‘서선 원’으로 기록되고 있다는 점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 가 있다. 먼저 이들 문헌을 통해서는 당시 다원식 가람 형태의 사원 내에서 선원은 가람 서쪽에 배치되는 것 이 일반적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현재까지 당대 사원에서 선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유구나 사료는 없으나, 당 초엽의 667년 (乾封2)에 남산율종(南山律宗)의 개조(開祖) 도선(道宣, 596~667)이 지은 관중창립계단도경(關中創立戒壇圖經) (이하 계단도경으로 표기)의 내용이 참고가 된다.

    익히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계단도경은 석가 생존 시에 건립되었다고 하는 인도 기원정사(祇園精舍)41)의 가람과 계단(戒壇)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것으로, 당 시 도성 장안 교외의 정업사(淨業寺)에 계단을 새로 만 들면서, 이전까지 일정한 기준이 없이 난립해 오던 계 단에 대하여 그 형제(形制)를 재정립하려는 목적에서 저술된 것이라고 한다.42)

    한편 도선은 계단도경을 저술한 그해에, 그것보다 조금 앞서 중천축사위국기원사도경(中天竺舍衛國祇洹 寺圖經)(이하 기원사도경으로 표기)를 저술했다. 이 것 역시 제목과 같이 기원정사의 가람을 기록한 것인 데, 계단도경의 내용이 계단의 제도와 규격이 대부분 이고 가람의 구성에 대해서는 가람을 구성하는 원(院) 과 주요 전각의 명칭 및 그것들의 개략적인 위치관계 만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는 반면, 기원사도경은 각 원의 위치와 내부 구성 및 기능에서 주요 전각의 내부 진설에 이르기까지 가람 구성에 관한 내용이 상 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경전의 명칭으로 볼 때 원래는 두 경전에 모두 도판이 수록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 되나, 현전 본에는 계단도경에만 남아 있다.

    두 경전에 묘사되어 있는 기원정사의 모습은 결코 그것의 실제상일 수는 없으나, 당시 중국의 불교도들에 게는 그것이 하나의 이상적인 사원의 상으로 인식되고 있었고, 실제 사원 건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43)

    다시 계단도경으로 돌아와서 경전에 수록된 가람 도44)(그림 3)를 보면, 대원 중앙의 중문 안에 탑, 종대 (鐘臺), 경대(經臺), 불전, 설법대전(說法大殿) 등이 있 는 불원(佛院)이 있고, 이 불원의 동·북·서 세 면을 승 방(僧房)이 두르고 있으며, 다시 그 둘레에 각종 원들 이 배치되어 있다. 이 원들 중에서 선정수행의 기능을 갖는 선원이 확인되는데, 불원 전방의 서쪽에 위치한 ‘범부선사십일체입원(凡夫禪師十一切入院)’으로 표기된 원이 그것이다. 경전 본문에는 ‘대원 서문 오른쪽(서쪽) 여섯 원(大院西門之右六院)’45)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 다. 기원사도경(卷上)에는 이 원을 ‘서문의 서쪽(西門 之西)’에 위치한 ‘범부선사지원(凡夫禪思之院)46)’으로 적 혀 있고, 선정수행의 하나인 ‘십일체입(十一切入)47)을 수 행하는 자들이 머물며 거처하는 곳(修十一切入者之所止 住)’이라고 했다. 또 범부(凡夫)가 선사(禪思), 즉 선정에 드는 곳이라 했으니, 불교 입문자들이 선정수행을 전문 으로 행하는 원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계단도경기원 사도경에서 글과 도판으로 표현된 당대 불교사원의 이상적 모형으로서 기원정사에도, 선원이 가람의 서쪽 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48) 이것은 또한 위에서 살 핀 사탑기 등의 문헌에서 확인되는 실제 사원에서 선원의 위치가 서쪽에 집중되는 사실과 연관 지어 생 각하면, 선종사원이 독립하기 이전의 사원에서 선정수 행을 전문으로 하는 선원을 가람의 서쪽에 배치하는 것이 하나의 규범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송대 선종사원에서 수행승들이 선정수행을 하는 전각인 승당이 가람의 서쪽에 배치되 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으며, 회해가 건립한 초기 선 종사원에서도 승당이 가람 서쪽에 위치하였을 가능성 이 매우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송대 선종사 원의 가람배치를 특징짓는 ‘서승당’은, 당대 불교사원의 ‘서선원’의 전통 위에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4.당대 불교사원의 고원과 위치

    4-1.고원의 기능

    앞서 2장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송대 선종사원에서 고원은 음식의 조리 이외에도, 창고, 역직의 요사, 의례 등 여러 기능을 가진 건물들로 이루어진 복합 건축군이 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능들은 특정한 종파에 국한되기 보다는, 하나의 사원을 운영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 본적이고 보편적인 기능들이며, 당연히 당대의 불교사원 에서도 일반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묘사된 당의 9세기 중 엽 사원에서도 이것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전각의 존재 가 확인된다. 엔닌의 일기에 그것은 고두(庫頭) 혹은 고 원(庫院) 등으로 표기되고 있어, 역시 송대 선종사원의 고원과의 연속성이 인정된다. 우선 엔닌이 직접 보고 경험했던 고원의 대표적인 기능과 관련된 내용을 뽑아 보면 다음과 같다.

    • (a) (登州開元寺에서) 사군(使君)이 시주한 쌀과 밀가루로 고두(庫頭)에서 공양을 마련했다(使君所施米麺, 於庫頭設 供). 開成5年(840) 3月5日

    • (b) (登州開元寺에서) 국기일에 사군, 판관(判官), 녹사(録 事), 현사(県司) 등이 모두 개원사에 와서 행향(行香)했다. 사군과 판관 등이 고두에서 차를 마셨는데, 구법승(즉, 엔닌) 등을 불러서 차를 주면서 본국(일본)의 풍습을 물 었다(国忌. 使君判官録事県司等惣入開元寺行香. 使君判官 等庫頭喫茶. 喚求法僧等賜茶, 問本国風俗). 開成5年(840) 3月4日

    • (c) (揚州開元寺의) 재문을 읽은 스님(読齋文僧)49)과 감 사(監寺), 강유(綱維) 그리고 시주승(施主僧) 등 10여 명은 식당을 나와 고두에 이르러 식사를 했다. 그 밖의 스님 들과 사미들은 모두 식당(食堂)에서 식사를 했다. … 고 두에서 별도로 남악(南岳)과 천태(天台) 등 화상(和尚)을 위해 공양을 준비하였다(読斎文僧幷監寺綱維及施主僧等 十餘人, 出食堂至庫頭斎. 自外僧沙彌咸食堂斎. … 於庫頭, 別為南岳天台等和尚, 備儲供養). 開成3年(838) 11月24日

    • (d) (五臺山의) 대화엄사(大花厳寺)에 이르러 고원(庫院)에 들어가 묵었다(到大花厳寺, 入庫院住). 開成5年(840) 5月 16日

    먼저 (a)와 (b)는 등주(登州) 개원사(開元寺)50)의 고두 (庫頭)에 관한 내용으로, 고두에서 음식 조리(a)와 법요 에 참석한 관원의 접대(b)가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음식을 조리하는 주방과 빈객을 접대하는 접객공간이 마 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c)는 양주(揚州) 개원사의 고두인데, 재회(齋會)를 마치고 감사(監寺)와 강유(綱維) 등 역직들이 고두에서 식사를 하고, 또 중국 천태종(天 台宗) 제2조 남악혜사(南岳慧思, 515~577)와 제3조 천태 지의(天台智顗, 538~597) 등을 위한 공양을 준비했다고 하여, 고두 안에 의례를 행하는 공간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범승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에 반해 역직들은 고두에서 식사를 했다는 것으로 보아, 고 두 안에 이를 위한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을 것으 로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d)를 보면 엔닌이 오대산 대화 엄사(大花嚴寺) 고원(庫院)에 머물렀다고 했으니, 고원 내에 기거할 수 있는 요사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9세기 전반 엔닌이 경험한 당대 사원의 고원은, 불교의례와 승려들의 일상적인 식사를 위한 음 식을 조리하는 주방 외에도, 빈객을 접대하는 공간, 역 직승들이 식사를 하는 공간, 의례를 행하는 공간, 그리 고 잠을 자는 요사의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엔닌의 일기에서는 확인되지 않지만, 이러 한 기능을 담당하는 역직들이 기거하며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요사도 부속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고원의 건축 형태도, 한 동의 건물이 아니라 주 방과 부속 창고, 접객공간, 의례공간, 요사 등으로 구성 된 복합 건축군으로서 한 일곽을 이루고 있었을 것으 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러한 당대 불교사원의 고원의 기능과 형태는 송대 선종사원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 양상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추가하여 엔닌의 일기에 기록된 당대 불교 사원에서 사원 행정과 운영 및 교화와 의례 등을 담당하는 역직 들과 관련하여 몇 가지 언급해 두고자 한다.

    먼저 사원의 행정을 담당하는 승관(僧官)으로는 승 록(僧錄), 승정(僧正), 감사(監寺)의 세 가지가 있는데, 승록은 천하의 사원 전체, 승정은 한 도독(都督)이 관 할하는 각 주(州)의 사원, 그리고 감사는 하나의 사원 을 감독한다고 했다.51) 그리고 사원의 운영을 맡은 역 직으로는 삼강(三綱)과 고사(庫司), 전좌(典座), 직세(直 歲), 그리고 지사(知事) 등의 명칭이 보인다.52) 삼강은 사원 내에서 대중을 이끌어 규율을 유지하고 사무(寺 務)를 처리하는 상좌(上座), 사주(寺主), 유나(維那)의 세 역직을 말한다.53) 고사는 사원의 운영과 관련된 제 반 일을 총괄, 전좌는 음식 조리를 총괄, 직세는 건물 과 각종 물건의 수리 및 인부와 공사 감독을 맡고, 지 사는 고사, 전좌, 직세 등 사원 운영을 담당하는 역직 들을 아우르는 명칭으로 생각된다.54)

    위의 역직들 중에서 특히 사원의 운영을 담당하는 지 사의 구성은, 이어지는 북송대 선종사원에서 주지를 도 와 사원의 운영과 관련한 일체를 담당하는 감원(監院), 유나, 전좌, 직세로 구성되는 지사55)와 상당히 유사하 다. 즉, 송대 선종사원의 지사의 역직 구성이 당대 사원 의 그것을 계승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리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송대 선종사원에서는 지사 들 중에서 유나를 제외한 나머지 역직들의 요사가 고원 안에 마련되어 있었는데, 당대 사원의 지사들 중에서 적어도 고사와 전좌 등 일부 역직의 거처 역시 고원 내 에 구성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된다.

    다음으로 교화와 의례를 담당하는 역직으로 화속법사 (化俗法師), 좌주(座主), 화상(和尙), 대덕(大德) 등이 보 인다.56) 엔닌에 의하면 화속법사는 세속에 나가 남녀 단 월을 교화하는 승이고, 좌주·화상·대덕은 경(經)·론(論)· 율(律)·기(記)·소(疏)를 강의한다고 했는데, 이중에서 특 히 계율을 두루 지키는 승려를 율대덕(律大德), 계율을 강의하는 승려를 율좌주(律座主)라 부른다고 했다. 그리 고 납의(衲衣)57)를 입고 마음을 다스리는(收心) 승려를 선사(禪師) 혹은 도자(道者)라 부른다고 했다.

    관련하여 송대 선종사원에서 주지를 보좌하여 수행승 들의 수행을 지도하는 역승으로 수좌(首座), 서기(書記), 장주(藏主), 지객(知客), 욕주(浴主), 지전(知殿)의 여섯 두수(頭首)를 두었는데,58) 이들 역직의 명칭과 담당하는 업무의 내용은 엔닌의 일기에 기록된 위의 내용과 전혀 다르다. 따라서 송대 선종사원의 두수는 지사와는 달리 선종사원의 독자적인 역직으로 운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4-2.고원의 위치

    당대 불교사원에서 고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문헌 사료나 유구는 현재까지는 확인된 바 없다. 여기 서는 실제 사원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앞서 소 개했던 기원사도경에 기록된 가람 형태부터 검토해 보고자 한다.

    기원사도경에 묘사된 가람은, 크게 보면 대불전과 탑이 있는 중원(中院), 승방이 있는 승원(僧院)과 여타 수행 및 부속 원들로 구성된 대원(大院)과 그 동쪽의 공승원(供僧院)으로 이루어져 있고, 대원과 공승원 사 이는 대로(大路)로 구획되어 있다.59) 경전에 묘사된 각 원의 구성 내용으로 보아 동쪽의 공승원 영역이 당대 사원의 고원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대원 영역의 원 구성 형태에 대해서는 이미 중국의 건축사학자 푸 시넨(傅熹年)이 경전 내용 분석을 토대로 가람배치 모 식도를 제시한 바가 있기 때문에,60) 여기에서는 공승원 영역의 원 구성 내용에 대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공승원의 핵심 부분은 남북으로 배치된 남항주원(南 巷廚院), 정주중원(淨廚中院), 공식원(供食院)의 세 원으 로 이루어진 승정주원(僧淨廚院) 영역이다.61) 이 중에서 남쪽에 위치한 남항주원은, 그 안에 남북방향의 길(巷) 을 내고 이 길의 남·북단에 문을 냈는데, 남쪽의 문을 사대원문(寺大園門)이라 했다. 이 길의 서쪽에는 범하출 가처(凡下出家處)와 제성인제왕천중출가처(諸聖人諸王天 衆出家處)가 동·서로 나란히 있고, 그 북쪽에 과원(菓園) 이 있으며, 사대원문 동쪽에는 죽채원(竹菜院)이 있다고 했다. 이상이 남항주원의 구성이다.

    그리고 북쪽의 공식원 안에는 중앙에 식주원(食廚院) 이 있고, 그 서쪽에 정인주원(淨人住院), 동쪽에 창연확 애원(倉碾確磑院)이 각각 연접해 있었다.62)

    식주원은 남북에 출입문이 있고, 동서에도 문이 있어 정인주원과 창연확애원으로 통행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 다. 식주원은 공식원의 중앙에 위치한 대원(大院)으로, 천 공(天供), 즉 공양물을 받는 곳이라고 했다. 원 안의 북쪽 에는 대당(大堂)이 있는데, 이것이 음식을 조리하는 주방 인 식주(食廚)이며, 그 북쪽 동·서에 각각 우물이 하나씩 있다고 했다.63) 북문 안 서쪽에는 음식을 조리하는 정인 (淨人)64)들이 식사를 하는 정인식당(淨人食堂)이 있다.65) 그리고 원의 서남·동남쪽 모퉁이에는 각각 이곳의 업무를 감독하는 유나가 기거하는 유나자감호주원(維那者監護廚 院)과 우마방(牛馬坊)이 각각 마련되어 있다.66)

    식주원의 서쪽에는 정인들이 기거하는 정인주원이 연접해 있다. 정인주원의 서·북·동 세 면에 정인들이 기거하는 방(房)을 두르고, 원의 남쪽과 동쪽에 문을 냈다. 원 안의 북쪽에 불당(佛堂)과 종대(鍾臺)를 두어 정인들이 일상적인 예불을 올리도록 했다.67)

    식주원 동쪽에 연접한 창연확애원은, 남쪽과 북쪽에 원으로 출입하는 문, 서쪽에는 식주원과 통하는 문을 내 었고, 원 안의 북쪽에 조식주(造食廚)라는 큰 건물이 있 는데, 안에 36개의 솥을 거는 부뚜막이 있다고 했으니,68) 서쪽의 식주원과 더불어 주방을 핵심 기능으로 하는 원 으로 판단된다. 이상이 공식원, 그리고 승정주원의 구성 내용이다.

    다시 창연확애원의 동쪽에는 미면고원(米麵庫院)이 있는데, 명칭으로 보아 식량을 보관하는 창고의 기능을 하는 원으로 생각된다. 원 남쪽에 출입문이 있고, 동북 모퉁이에 다시 작은 원을 구획하고 그 안에 일상의 음 식을 만드는 일을 총괄하는 전좌(典座)가 거처하는 건 물이 있다고 했다.69) 그리고 식주원의 북쪽에는 승려들 이 식사를 하는 승식소(僧食所)라는 원이 있는데, 원의 남쪽에 세 문을 내었고, 가운데 문의 북쪽에 대식당(大 食堂)이 있다고 했다.70)

    그 밖에 승식소의 동쪽에 승정인상행식자소변지원(僧 淨人常行食者小便之院)71)이, 또 이 원의 북쪽에는 약고 원(藥庫院)72)이, 그리고 약고원 북쪽에 병자대소변처(病 者大小便處)와 범승병인소거원(凡僧病人所居院)이 동·서 에 각각 배치되어 있다73)고 했다. 승식소 서쪽에는 탈착 의원(脫著衣院)74)이, 다시 그 북쪽에는 욕실방(浴室坊)이 있는데, 욕실방 안 동쪽에 의당衣堂), 서쪽에 욕실(浴室) 이 있다고 했다.75) 그리고 남항주원의 죽채원 동북쪽에 는 해의차마처(解衣車馬處)가 있고,76) 이 원의 서쪽에는 제왕부인해의복원(諸王夫人解衣服院)이 있다77)고 했다.

    이상이 기원사도경에 묘사된 공승원의 개략적인 가 람 구성 내용이며, 이를 도식화하면 위의 <그림 4>와 같다.78) 불전과 탑이 있는 중원과 승원 및 부속 원들로 이루어진 대원의 동쪽에 배치된 공승원에는 음식을 조 리하는 주방이 있는 식주원과 창연확애원, 그리고 조리 를 담당하는 정인들의 거처인 정인주원이 있고, 이곳의 업무를 관리하는 유나와 전좌의 거처가 있었다. 이러한 구성은 앞서 엔닌의 일기에서 확인되는 당대 불교사원 의 고원의 기능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실제 당대 사원에서 고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유구와 사료는 확인된 것이 없지만, 일본의 경우 당의 영향이 인정되는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84) 창건 코 후쿠지(興福寺)나 토다이지(東大寺) 등에는 가람 동쪽에 식당과 음식을 조리하는 주방과 부속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나라시대 코후쿠지에는 가람 동쪽에 담장으로 둘러싸인 식당원(食堂院)이 배치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식당을 비롯해 주방시설인 대취전(大炊殿)과 주전(廚殿), 음식을 담는 성전(盛殿), 우물이 있는 정전 (井殿), 그리고 미전(米殿), 창대(倉代, 가설 창고), 기전 (器殿) 등의 창고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었다.79)<그림 5>

    이상에서 고찰한 내용에 비추어 보면, 당대 불교사원 의 고원은 승려들을 위한 일상의 식사와 의례를 위한 음식을 조리하는 주방을 중심으로, 그리고 이것들과 관 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역직의 요사, 창고 등으로 구성 되어 있었다. 고원의 이러한 기능은 특정한 종파적 특 수성보다는, 사원의 운영에 필수불가결한 지극히 보편 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당대 불교사원에서 고 원은 기본적으로 가람의 동쪽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러한 고원의 배치 방식은, 9세기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하는 초기 선종사원 의 가람배치의 토대가 되었고, 나아가 송대 선종사원에 까지 이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말해 송대 선종 사원의 가람배치를 특징짓는 ‘동고원’의 배치 규범은, 당대 이래 불교사원의 가람배치 전통 위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당대의 불교사원에서는 고원의 인근에 식당이 배치되고, 중승들은 이 식당에서 식사를 했던 반면, 송 대 선종사원에서는 식당의 기능이 가람 서쪽의 승당으 로 흡수되고, 식당을 별도로 건립하는 않았다는 점에서, 선종사원 가람으로서의 특성을 갖는다. 즉, 선종사원에 서의 승당은 선종의 핵심적인 수행인 좌선과 더불어 식 사와 수면과 같은 일상의 생활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공 간이었고, 바로 이런 점에서 승당은 선종의 사원을 가장 대표하는 전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 후기에 선종이 중국사회에 널리 보급되는데 결정적 인 기여를 한 백장회해의 스승 마조도일(馬祖道一, 709 ~790)이 주창했던 ‘平常心是道’ 즉, 현실의 일상생활 속 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의 입장80)이, 회해 이래 선종 사원의 가람 구성에 반영된 결과라 생각된다.

    5.결 론

    이 논문은 송대 선종사원의 가람배치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서승당과 동고원의 배치 방식이 출현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불교사원으로서의 보편성과 선 종사원으로서의 종파적 특수성의 관점에서, 초기 선종 사원이 성립했던 당대 불교사원과의 관련성을 검토한 것이다.

    송대 선종사원의 승당은 사원 소속 승려들이 모두 모여 좌선을 행하는 곳으로, 좌선수행을 통해 궁극의 깨달음 추구하는 선종의 사원을 특징짓는 대표적인 전 각이다. 9세기에 들어와 독립된 선종사원이 성립하기 이전의 당대 불교사원에서 선사들은 당시의 일반적인 가람 형태인 다원식 가람 내의 한 원인 선원에 모여서 좌선수행을 했다. 이러한 선원의 기능은 독립된 선송 사원의 승당으로 계승되었는데, 당대 불교사원에서 선 원은 가람의 서쪽에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사 실이 문헌 사료 분석을 통해 확인되었다. 따라서 송대 선종사원에서 좌선수행 공간인 승당을 가람의 서쪽에 두는 배치 방식은, 당대 불교사원의 서선원의 전통에 서 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송대 선종사원의 고원은 중승들의 식사와 의례에 사 용되는 음식을 조리하는 주방을 핵심으로, 사원의 경영 을 담당하는 지사들의 요사, 의례 및 창고 등의 기능이 복합된 건축군이었다. 이러한 고원의 기능은 승당과는 달리 종파를 초월하여 불교사원 운영에 불가결한 보편 적인 것이었다. 당대 불교사원에서도 이것과 유사한 기 능의 고원이 운용되고 있었다는 것이 문헌 사료에서 확 인되었으며, 그 위치는 도선의 기원사도경에 묘사된 가람의 형태나 일본의 나라시대 사원 사례로 보아 가람 의 동쪽에 마련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송대 선종사원에서 고원을 가람의 동쪽에 두는 방식은, 당대 불교사원의 동고원 전통을 계승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송대 선종사원 가람배치의 대표적인 특 징 중의 하나로서 중심축을 중심으로 불전의 서쪽에 승 당, 동쪽에 고원을 배치하는 방식은, 당대 불교사원의 선원과 고원의 배치 전통 위에 성립된 것이다. 이러한 송대 선종사원의 가람배치는 이웃한 한국과 일본에도 전해져, 중국을 넘어 동아시아 선종사원 배치의 특징으 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선종사원 가 람으로서의 특수성과 불교사원으로서의 보편성, 전통이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이 논문은 송대 선종사원의 승당과 고원 배치 에 관한 현상적 고찰에 국한되고, 그러한 배치가 나타 나게 된 사상적 배경에 대해서는 다루지 못했다는 점에 서 한계를 갖는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의 연구 과제로 삼고자 한다.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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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산십찰도(五山十刹圖)┛ 영은사(靈隱寺) 가람배치도의 승당(좌)과 고원(우)(출처: 関口欣也, ╚五山と禪院╝ 수록 모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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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쵸지사시즈(建長寺指圖)┛ 의 승당(좌)과 고원(우) (출처: <그림 1>과 같음)

    JAH-25-45_F3.gif

    ╚관중창립계단도경(關中創立戒壇圖經)╝ 수록 가람도의 선원

    JAH-25-45_F4.gif

    ╚중천축사위국기원사도경(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에 기록된 기원정사 가람의 배치 모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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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시대 코후쿠지(興福寺)의 식당원

    (출처: 日本建築學會編, ╚日本建築史圖集╝)

    Table

    Footnote

    • 鎌田茂雄, ╚中國佛敎史╝, 岩波書店, 東京, 2006(1978), 293~298쪽
    • 横山秀哉, ╚禪の建築╝, 彰國社, 東京, 1967; 関口欣也, ╚五山と禪院╝, 小學館, 東京, 1991; 張十慶, ╚中國江南禪宗寺院建築╝, 湖北敎育出版社, 武漢, 1991
    • 토지당은 가람의 수호신, 조사당은 선종의 초조(初祖) 달마(達磨) 이하 역대 조사(祖師), 그리고 개산조(開山祖)와 역대 주지(住持)의 영정을 각각 봉안하는 전각이며, 고원과 승당은 각각 주방과 선정수 행(禪定修行)을 핵심 기능으로 하는 전각인데, 고원과 승당에 대한 보다 상세한 내용은 본 논문의 2장을 참조할 것.
    • 藤井恵介, ┎鎌倉の寺院建築┛(澤村仁, 新建築學大系2: 日本建築史), 彰國社, 東京, 1999, 196쪽
    • 명(明) 1630년(崇禎3)에 간행된 ╚津逮祕書╝ 수록본을 저본으로 하는 활자본[╚中國美術論著叢刊: 寺塔記·益州名畫錄·元代畵塑記╝, 人 民美術出版社, 北京, 1983(1964)]을 참고했다.
    • 小野勝年譯註, ╚歷代名畫記╝[岩波書店, 東京, 1996(1938)]를 참고 했다.
    • 小野勝年, ╚入唐求法巡禮行記の硏究╝(全4冊, 鈴木學術財團, 東京, 1964 ~1969)와 김문경 역주,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중심, 2001)를 참 고했다.
    • 傅熹年主編, ╚中國古代建築史第2卷: 兩晉·南北朝·隋唐·五代建築╝, 中國建築工業出版社, 2001, 477~478쪽
    • 横山秀哉, ┎支那禪刹圖式の內容┛, 앞의 책, 46~66쪽
    • 항주(杭州) 영은사(靈隱寺), 영파(寧波) 천동사(天童寺), 천태(天台) 만년사(萬年寺) 세 사원의 가람배치도가 수록되어 있다.
    • 전방장은 침당(寢堂)이라고도 하며, 주지(住持)가 정기적으로 법 당에서 아침에 행하는 정규의 설법[이를 대참(大參) 혹은 조참(朝參) 이라고 한다] 이외에 야간에 하는 설법[이를 소참(小參) 혹은 만참(晩 參)이라고 한다]과 필요에 따라 수시로 행하는 설법[이를 보설(普說) 이라고 한다], 주지가 주재하는 빈객의 접대, 주지의 장례식 등이 행 해지는 건물이다. 이와 더불어 주지의 거처인 방장을 불전이 놓이는 중심축선상에 배치하는 것은, 선종에서는 주지를, 오랜 수행을 통해 현실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존재로, 부처를 대신하여 대중을 교화하 는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한지만·이상해, ┎회암사의 연혁과 정청·방장 지에 관한 복원적 연구┛ , 건축역사연구, 17권, 6호, 2008.12., 54~58쪽; 한지만, ┎중국 당대 선종사원 성립에 관한 문헌 연구┛, 대한건축학회 논문집(계획계), 31권, 11호, 2015.11., 149쪽)
    • 横山秀哉, ┎僧堂と禪堂┛, 앞의 책, 174~190쪽
    • 남송대 선종사원에는 도사(都寺, 지사 업무 총괄), 감사(監寺, 도사 업무 보조), 부사(副寺, 회계와 출납 담당), 유나(維那, 의례 때 중승의 진퇴와 작법 지도), 전좌(典座, 음식 준비 총괄), 직세(直歲, 건물과 각 종 물건의 수리 담당)의 여섯 지사(六知事)와, 두수(首座, 중승의 좌선 수행 지도), 서기(書記, 각종 문서 작성 담당), 장주(藏主, 경장과 경전 관리 담당), 지객(知客, 접객 업무 담당), 지욕(知浴, 욕실 관리 담당), 지전(知殿, 불전 관리 담당)의 여섯 두수(六頭首)를 각각 운영했다.
    • 법랍은 출가(出家)하여 수계(受戒)한 이후의 수행한 햇수이다.
    • 永井規男, ┎中世五山における庫院とその變容┛, 建築史学, 38, 建築 史學會, 2002.3., 2~31쪽
    • 駒澤大學內禪學大辭典編纂所, ╚新版禪學大辭典╝, 大修館書店, 東京, 2003(1978), “韋馱天”
    • 韓志晩, ┎韓國における檜巖寺跡の僧堂遺構について: 東アジア禪宗 史から見て┛, 日本建築學會計劃系論文集, 602號, 2006.4., 219~224쪽; 한지만, ┎회암사지 고원 영역의 전각 배치에 대하여┛ , 대한건축학회논 문집(계획계), 30권, 7호, 2014.7., 145~155쪽
    • 伊吹敦, ╚禪の歷史╝, 法藏館, 2004(2001), 65~78쪽
    • 傅熹年主編, 앞의 책, 473쪽
    • ╚入唐求法巡禮行記╝, 開成5年(840) 5月2日: 竹林寺有六院. 律院· 庫院·花嚴院·法花院·閣院·佛殿院. 一寺都有四十來僧.
    • ╚歷代名畫記╝, 卷第3, ┎記兩京外州寺觀畵壁┛: 薦福寺<天后飛白書 額>. 淨土院門外兩邊, 呉畵神鬼, 南邊神頭上龍爲妙. 西廊菩提院, 呉畵 維摩詰本行變. 律院北廊, 張璪畢宏畵. 西南院佛殿内東壁及廊下行僧, 幷 呉畵, 未了. (<>: 할주. 이하 동일)
    • ╚寺塔記╝, 卷上: 靖善坊大興善寺. 不空三藏塔前多老松. 行香院堂後 壁上, 元和中(806-820), 畵人梁洽畵雙松. … 東廊之南, 素和尚院, 庭有 靑桐四株.; ╚歷代名畵記╝, 卷第3, ┎記兩京外州寺觀畵壁┛: 興善寺. … 東廊從南第三院小殿柱間, 呉畵神, 工人裝損. 三蔵院閣畵至妙.; ╚入唐求 法巡禮行記╝, 開成5年8月22日: 齋後出鎭國寺, 入春明門, 到大興善寺 西禪院宿.
    • ╚寺塔記╝, 巻上: 長樂坊安國寺. 紅樓, 睿宗在藩時舞榭. 東禪院, 亦 曰木塔院, 院門北西廓五壁, 呉道玄弟子釋思道畵釋梵八部. … 元和中 (806-829), 取其處爲聖容院… 山亭院, 古木崇阜, 幽若山谷, 當時輦土 營之. 上座璘公院, 有穗栢一株.; ╚歷代名畵記╝, 巻第3, ┎記兩京外州寺 觀畵壁┛: 安國寺. 東車門直北東壁, 北院門外畵神兩壁, 及梁武帝郗后 等, 並呉畵, 幷題. 経院小堂内外, 幷呉畵. 西廊南頭院, 西面堂内南北壁, 幷中三門外東西壁, 梵王帝釋, 幷楊廷光畵. 三門東西兩壁釋天等呉畵, 工人成色損. 東廊大法師院塔内, 尉遲畵及呉畵.
    • ╚入唐求法巡禮行記╝, 開成5年5月16日: 大花嚴寺十五院, 僧至多, 皆持遠座主, 爲其首座.
    • ╚長安志╝, 卷10: 章敬寺. 大暦元年(766), 作章敬寺于長安之東門, 總 四千一百三十餘間, 四十八院.[이상 小野勝年, ╚隋唐長安·寺院史料集成: 史料編╝(法藏館, 1989), 327쪽에서 재인용]
    • ╚寺塔記╝, 卷下: 慈恩寺. 寺本淨覺故伽藍, 因而營建焉. 凡十餘院, 總一千八百九十七間. 勅度三百僧.
    • ╚慈恩大師在唐送進錄╝, 卷10: 顯慶三年(658)正月, 駕自東都還西京. 法師亦隨還. 秋七月, 再有勅, 法師徒居西明寺. 寺以元年秋八月戊子十九 日造. … 凡有十院, 屋四千余間. 荘厳之盛, 雖梁之同泰·魏之永寧, 所不 能及也.[이상 小野勝年, 앞의 책(1989), 230쪽에서 재인용]
    • 水野弘元, ┎禪宗成立以前のシナの禪定思想史序說┛, ╚駒澤大學硏究 紀要╝, 第15號, 駒澤大學, 1957.3., 15~54쪽; 伊吹敦, 앞의 책, 5~29쪽
    • 한지만, ┎중국 당대 선종사원 성립에 관한 문헌 연구┛ , 대한건축 학회논문집(계획계), 31권, 11호, 2015.11., 145~146쪽
    • ╚景德傳燈錄╝, 卷第6, ┎洪州百丈山懷海禪師┛· ┎禪門規式┛. 이것과 동일한 원천자료로 작성된 것으로 인정되는 대동소이한 내용이 ╚宋 高僧傳╝(988), 卷第10, ┎習禪篇┛第3-3· ┎唐新吳百丈山懷海傳에도┛ 나 온다. 현재 이 두 사료가 회해의 선종 독립에 관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 회해가 백장산(百丈山)에 선종사원을 지은 것은 818년(元和13) 진익(陳翊)이 지은 ┎당홍주백장산고회해선사탑명(唐洪州百丈山故懷海 禪師塔銘)┛ (╚흠정전당문(欽定全唐文)╝, 卷446 수록)에서도 확인되는 사 실이며, 그 시기는 796년 무렵으로 추정되고 있다.(石井修道, ┎百丈淸 規の硏究: ┎禪門規式┛と╚百丈古淸規╝┛ , 駒澤大學禪硏究所年報, 第6號, 駒澤大學禪硏究所, 1995.3., 41쪽)
    • 한지만, 앞의 논문(2015.11.), 151~152쪽
    • ╚寺塔記╝, 卷下: 宣陽坊靜域寺. 禪院門內外, 游目記云, 王昭隱畵. 북송 때 곽약허(郭若虛, 11세기)가 지은 ╚圖畫見聞志╝(卷5)에는 ‘西禪 院門外, 有游目記碑, 云王昭隱畵’로 되어 있어, ╚사탑기╝의 선원이 서 선원임을 알 수 있다.
    • ╚歷代名畫記╝, 卷第3, ┎記兩京外州寺觀畫壁┛: 紀國寺. 西禪院小堂, 鄭法輪畵, 甚碎.
    • ╚歷代名畫記╝, 卷第3, ┎記兩京外州寺觀畫壁┎: 褒義寺. … 西禪院 殿内, 杜景祥·王允之畵.
    • ╚入唐求法巡禮行記╝, 開成5年8月20日: 到春明門外, 鎭國寺西 禪院宿.
    • ╚歷代名畫記╝, 卷第3, ┎記兩京外州寺觀畫壁┎: 敬愛寺<할주 생략>. 西禪院殿内佛寺并山<並竇弘果塑>. 東禪院般若台内佛事, 中門兩神, 大 門內外四金剛, 并獅子·崑崙各二, 并迎送金剛·神王, 及四大獅子, 兩食 堂·講堂兩聖僧<已上並是竇弘果塑>.
    • ╚歷代名畫記╝, 卷第3, ┎記兩京外州寺觀畫壁┎: 龍興寺. 西禪院殿東 頭, 展畵八國分舍利.
    • ╚歷代名畫記╝, 卷第3, ┎記兩京外州寺觀畫壁┎: 聖慈寺. 西北禪院, 程 遜畵本行經變.
    • ╚入唐求法巡禮行記╝, 開成4年(839) 閏1月19日: 天台山禪林寺僧 敬文來, 相見. … 今在住當州惠照寺禪林院.
    • 祇洹精舍, 祇桓精舍, 祇陀林寺라고도 한다. 중인도 사왓티국(Sāvatthī, 舍衛城)의 수닷타(Sudatta, 須達) 장자(長者)가 석가와 그의 교단을 위해 건립한 승원(僧園)이다. 제타(Jeta, 祇陀) 태자(太子)의 원림(Jetavana, 祇樹給孤獨園)에 지었기 때문에 기원(祇園)이라고 한다. 석가의 많은 설법이 이곳에서 행해졌다고 전한다. 원래 7층의 장대한 건물이 있었 다고 하나, 당 초기에 현장(玄奘, 602~664)이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이미 황폐해 있었다고 한다. 이상 中村元, ╚佛敎語大辭典╝[東京書籍, 東京, 2006(1981)], “祇園精舍”.
    • 박언곤·이재인·최효식, ┎한국 불교사원의 계단과 계단도경의 비교 연구┛ , 건축역사연구, 16권, 2호, 2007.4., 105쪽
    • 傅熹年主編, 앞의 책, 477~478쪽
    • 현전하는 ╚계단도경╝은 남송 1152년(紹興22)의 각본(刻本)으로, 경전에 수록된 가람도에는 경전 본문과 일치하는 않는 부분이 여러 곳 있다. 예를 들면 가람도에 묘사되어 있는 중앙 불원(佛院)의 동· 북·서 세 면을 두르는 승방(僧房), 그리고 가람 동측의 길 너머에 따 로 구획된 일곽과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과자고(果子庫), 반식고(飯 食庫), 정주(淨廚, 2개소), 유면고(油麵庫), 창고(倉庫), 과원(果園, 2개 소), 정정(井亭, 2개소), 연지(蓮池, 2개소) 등이 있는 원들은 경전 본 문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 ╚關中創立戒壇圖經╝( ┎戒壇高下廣狹第四┛)에 기록된 여섯 원은 ‘初, 三果學人四諦院. 二, 學人十二因緣院. 三, 他方三乘八聖道院. 四, 四天下 我見俗人院, 五, 外道俗出家院, 六, 凡夫禪師十一切入院’이다. 이 중에서 네 번째의 ‘四天下我見俗人院’은 가람도에 ‘諸天下我見俗人院’으로 표기 되어 있다.
    • ╚關中創立戒壇圖經╝에는 ‘禪師’, ╚기원사도경╝에는 ‘禪思’로 각각 표기되어 있는데, 본 논문에서는 의미로 보아 선정수행을 뜻하는 禪 思가 적절한 표현이며, 禪師는 禪思의 오기로 판단하였다.
    • 십일체입(十一切入)이란 십일체처(十一切處), 십편처(十遍處)라고 도 하며, 삼계(三界: 欲界, 色界, 無色界)의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 정(禪定)의 하나로, 지(地)·수(水)·화(火)·풍(風)·청(靑)·황(黃)·적(赤)·백 (白)·공(空)·식(識)의 열 가지가 모든 곳에 두루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관(觀)하는 것이다.(中村元, ╚佛敎語大辭典╝“十遍處”; 駒澤大學內禪學 大辭典編纂所, ╚新版禪學大辭典╝, “十一切入”)
    • 사실 선원 외에도 ╚계단도경╝과 ╚기원사도경╝에 도판과 문자로 기 록되어 있는 사원의 구성 내용을 전반적으로 치밀하게 분석하여 가람 배치 전반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며, 이것이 당대 불교사원의 가람배치 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차원 에서의 방대한 분석이 필요하므로, 추후의 연구 과제로 두고, 여기에서 는 선원과 다음 장에서 고찰할 고원에 국한하여 분석을 진행했다.
    • 이 날은 양주(揚州) 개원사(開元寺) 식당(食堂)에서 단월(檀越)이 마련한 재회(齋會)가 열렸고, 이 스님은 재를 마련한 목적과 재주(齋 主) 일가권속의 평안과 망자의 명복을 빌며 그 공덕을 찬탄하는 재 문(齋文)을 읽었다.
    • 개원사(開元寺)는 738년(開元26)에 현종(玄宗)의 칙명으로 전국의 각 주(州)마다 하나씩 설치한 불교사원과 도관(道觀) 중에서 불교사원, 즉 관사(官寺)였다. 지방의 주마다 관사를 설치하는 것은 수대(隋代)부 터 시작되었는데, 583년(開皇3) 문제(文帝)의 칙명으로 전국의 주와 현에 승사(僧寺)와 니사(尼寺)를 하나씩 설치한 것이 그 효시이다. 당 대에 들어와서는 666년(麟德3) 고종(高宗)의 칙명으로 각 주마다 도관 과 사원이 하나씩 설치되었고(一觀一寺), 690년(載初1)에는 측천무후 (則天武后)가 칙명을 내려 장안과 낙양 양경(兩京)과 지방의 각 주에 대운사(大雲寺)를 설치토록 했다. 705년(神龍1)에는 중종(中宗)이 천하 의 각 주마다 ‘대당중흥(大唐中興)’이라는 이름의 사원과 도관을 하나 씩 두도록 명했고, 707년에는 그 명칭이 용흥사(龍興寺), 용흥관(龍興 觀)으로 바뀌었다. 이에 더해 현종은 개원사, 개원관을 하나씩 더 두도 록 했고(738), 그 결과 각 주마다 용흥과 개원이라는 명칭의 사원과 도 관이 각각 설치되었으며, 천자의 탄신일 등과 같은 축수(祝壽)의 의식 은 개원사에서, 국기(國忌)의 법요는 용흥사에서 행해졌다. 이상, 鎌田 茂雄, 앞의 책, 208~210쪽. 그러나 본문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入唐 求法巡禮行記╝, 開成5年(840) 3月4日일기를 보면 국기일에 개원사에 서도 관원들의 행향(行香)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 ╚入唐求法巡禮行記╝, 開成4年(839) 1月18日: 凡此唐国有僧録·僧 正·監寺三種色. 僧録統領天下諸寺, 整理佛法. 僧正唯在一都督管轄內. 監寺限在一寺. 自外方有三綱幷庫司等. 이 중에서 승록(僧錄)에는 좌가 (左街)승록과 우가(右街)승록의 두 직이 있었다.(鎌田茂雄, 앞의 책, 208쪽)
    • ╚入唐求法巡禮行記╝, 開成3年(838) 8月24日: (揚州開元寺)三綱 幷寺和上及監僧赴集. 上座僧志強·寺主令徽·都師修達·監寺方起·庫司令端 慰問.; 開成5年(840) 2月27日: 到牟平縣. 城東去半里, 有廬山寺. 未時, 入寺宿. 只有三綱·典座·直歳五人, 更無僧人.; 開成4年(839) 7月28日: 赤山寺院綱維·知事僧等, 有外国人在, 都不申報.
    • 中村元, ╚佛敎語大辭典╝, “三綱”. 상좌(上座)는 승려들을 통솔하 고, 사주(寺主)는 사원의 사무를 관장하며, 유나(維那)는 규율에 따라 생활과 의례 전반의 일을 지도하는 역할을 각각 담당한다.
    • 駒澤大學內禪學大辭典編纂所, ╚新版禪學大辭典╝, “庫司”, “典座”, “直歲”, “知事”.
    • 남송대가 되면 감원(監院)이 도사(都寺), 감사(監寺), 부사(副寺) 로 세분되어 여섯 지사(六知事)로 구성된다. 도사는 지사 업무를 총 괄하고, 감사는 도사를 보좌하며, 부사는 회계와 출납을 담당한다. (駒澤大學內禪學大辭典編纂所, ╚新版禪學大辭典╝, “六知事”)
    • ╚入唐求法巡礼行記╝, 開成3年(838) 11月24日: (揚州開元寺) 又 有化俗法師, 與本國噵飛教法師同也. 說世間無常苦空之理, 化導男弟子· 女弟子, 呼噵化俗法師也. 講經·論·律·記·疏等, 名爲座主·和尚·大德。若 衲衣收心, 呼爲禪師, 亦爲道者. 持律偏多, 名律大德. 講爲律座主.
    • 납의(納衣)라고도 하며, 천 조각들을 바느질해 이어 붙여 만든 가 사(袈裟)이다. 가사는 세인들이 버린 천을 주워 모아 만들기 때문에 납가사(納袈裟) 또는 분소의(糞掃衣)라고도 부른다. 원래 승려들의 옷 을 납의라고 하지만, 선승(禪僧)들이 항상 납의를 입고 있었기 때문 에 선승의 대명사로 납승(衲僧)이라고 한다.(駒澤大學內禪學大辭典編 纂所, ╚新版禪學大辭典╝, “衲衣”)
    • 수좌는 승당에서의 좌선 지도, 서기는 각종 문서 작성, 장주는 장전(藏殿)에 보관된 경전 관리, 지객은 접객, 욕주는 욕실의 관리, 지전은 불전의 관리를 각각 담당했다.
    • ╚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卷下: 大院東大路之左, 名供僧院
    • 傅熹年, 앞의 책, 476~477쪽. 단, 푸시넨은 대원 동쪽의 공승원 영역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않았다.
    • ╚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卷下: 僧淨廚院, 自有三所, 南北而列.
    • 원문에는 ‘名供食院, 自分兩所, 各横分三大門’으로 되어 있으나, 뒤 이어 식주원(食廚院), 정인주원(淨人住院), 창연확애원(倉碾確磑院)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이들 세 원들 사이는 담당으로 구획하고 문을 내 었다고 했으니, 본 논문에서는 해당 원문이 ‘名供食院, 自分三所, 各横 分兩大門’의 오기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 ╚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卷下: 南北門入食厨院. 隔以大牆, 中開 二門通於三所. 中央大院, 惟受天供. 中立□大堂. … 堂北大井東西各一. 여기서 대당(大堂)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정인(浄人)들이 중 원(中院), 즉 식주원(食厨院)에 들어와 북쪽에 위치한 식주(食厨)에서 날것을 익혀 음식을 만든다(浄人… 入於中院, 北入食厨, 造生成熟)고 한 것으로 보아 식주로 보았다.
    • 中村元, ╚佛敎語大辭典╝, “淨人”
    • ╚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卷下: 南院北門之右, 食厨之地, 置一食 堂, 凡造訖浄人, 持之來置此堂, 不入北院. 여기서 남쪽의 원(南院)이란, 승려들이 식사를 하는 대식당(大食堂)이 있는 승식소(僧食所)라는 원 의 남쪽에 위치한 식주원(食廚院)을 말한다. 이 내용에 따르면, 정인들 은 주방인 식주(食厨)에서 만든 음식을 이곳으로 가져와서 먹었으며, 북쪽의 승식소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 ╚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卷下: 院西南角, 有一小院, 中有小堂, 是維那者監護住此院. 東南角, 有一小院, 名牛馬坊.
    • ╚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卷下: 中院西坊, 是淨人住. 周遍三面 列房開戸, 院門南東開. 諸造食者, 常止此中. … 次北有一佛堂鍾臺周 廓, 是上浄人常禮事房.
    • ╚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卷下: 中院東坊, 有倉碾確磑院, 南西 北方各開門. … 其北大堂名造食厨, 橫置一舍, 廣極眺矚, 有三十六竈.
    • ╚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卷下: 廚東一院, 門向南開, 是米麵庫, 衆具蔵此院. 東北角有一小院, 中有房宇, 典座所居, 凡日造食. 주방의 동쪽에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주방은 창연확애원 안에 있는 조식주 (造食廚)로 보았다.
    • ╚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卷下: 最巷北大院, 名僧食所. 自開三門, 中門之北, 有大食堂. 堂前列樹, … 凡僧食者, 多止此林. 승식소의 위치 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이 원의 남쪽에 위치한 원의 북문에 정인식당(淨人食堂)이 있다고 한 내용(南院北門之右, 食厨之地, 置一食 堂, 凡造訖浄人, 持之來置此堂)에 비추어, 정인식당이 있는 식주원의 북쪽으로 비정했다.
    • ╚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卷下: 食林之東有一小院, 門向南開, 是僧淨人常行食者小便之院. 東北角有小便處. 若大便者, 出大院外, 別 有處所.
    • ╚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卷下: 院北藥庫, 是供凡夫病比丘者.
    • ╚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卷下: 庫北二院, 西是凡僧病人所居, 東 是病者大小便處. 故寺僧院有凡僧病, 皆詣此中.
    • ╚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卷下: 食院西方又分二院, 各不相通, 南 邊一院, 南東北門, 名脫著衣院.
    • ╚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卷下: 北有一院, 名浴室坊. 中有兩堂, 東是衣堂, 西爲浴室. 浴具豊足, 南開一門.
    • ╚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卷下: 竹菜園之東北, 別有一院, 名解衣 車馬處, 門向北開, 通於大巷. 是諸國王解衣車馬所. … 至此院, 解散王 服釼履諸儀, 車馬侍從並居此, 然後西出入於寺院.
    • ╚中天竺舍衛國祇洹寺圖經╝, 卷下: 次西一院, 名諸王夫人解衣服院. 門向南開, 末利等諸王夫人, 來欲禮佛, 先於此中, 解衣嚴服, 然後入大 院中見佛.
    • 이 모식도에서 가람 서측의 대원 부분은 푸시넨이 제시한 안을 따르되, 경전의 내용에 비추어 중원의 대불전(大佛殿) 동·서에 연접한 비랑(飛廊)과 일부 원의 문 위치를 수정하였고, 가람 동측의 공승원 부분은 필자가 분석한 경전의 내용을 토대로 그린 것이다.
    • 大岡実, ╚南都七大寺の研究╝, 中央公論美術出版, 1966, 59쪽
    • 伊吹敦, 앞의 책, 40~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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