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 론
1970년대 이후 현대건축의 담론이 기능주의적 국제 양식을 벗어나 복합적으로 전개되며, 테크놀로지를 바 탕으로 하는 건축언어, 해체주의 건축, 새로운 자연과 학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담론과 그 건축언어 등이 대두될 때에도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유형론적 합리주 의 건축1)은 항상 단단한 한 축을 이뤄왔다. 특히 유럽 적 전통에 뿌리를 둔 유형론적 건축은 이태리, 독일 등 의 지역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대변되어 왔다. 이태리에 서는 1966년 간행된 『도시의 건축(L’archittectura della Cittá)』을 통해 도시의 유형적 연속성을 강조한 알도 로시(Aldo Rossi)를 필두로 조지오 그라시(Giorgio Grassi), 비토리오 그레고티(Vittorio Gregotti) 등이 그 대표적 건축가이고 이들의 건축이론과 건축언어는 베 니스대학교, 밀라노 공대를 중심으로 전파되어 프란체 스코 베네치아(Francesco Venezia), 마씨모 까르마시 (Massimo Carmassi) 등이 그 뒤를 잇는다. 독일 지역 에서는 오스발트 마티아스 웅어스(Oswald Mathias Ungers, 이하 O. M. 웅어스)2), 요셉 파울 클라이후에 스(Josef Paul Kleihues)가 그 대표적 건축가이며 베를 린 공대, 도르트문트대학교에서 그들의 영향을 받은 건축가들이 80년대, 9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벌인다. 방에르트 얀센 숄츠 슐테스(Bangert Jansen Scholz Schultes), 콜호프 & 오바스카(Kollhoff & Ovaska) 등 의 건축가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의 건축은 하인리히 클로츠(Heinlich Klotz), 비토리오 M. 람푸냐니(Vittorio Magnago Lampugnani) 등의 탄탄한 이론적 지원을 받 는다. 이러한 건축의 한 계보는 알도 로시의 타계로 그 구심점이 뒤흔들린 후 2000년대 들어서는 조지오 그라 시, 안토니오 모네스티롤리(Antonio Monestiroli) 등도 활동의 폭이 줄어들고, 2007년 O. M. 웅어스의 타계를 거의 상징적이라 할 만큼 유럽 유형론적 합리주의 건 축은 세계 건축계에서 그 영향력이 쇠퇴하여 갔다. 지 난 10년을 되짚어보면 담론의 평형이 무너지기 시작해, 건축의 고전적 기본률보다는 자연과학적 지식 혹은 인 문학적 담론을 바탕으로 하는 실험적 건축이 국제 건 축계에 큰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현 국제건축계의 지 명도 있는 건축가들 중 고전의 어휘를 구사하는 건축 가로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 외에는 이 렇다 할 건축가가 없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치퍼필드가 구사하는 고전적 요소도 외형의 표피적 차 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유형적으로는 전혀 역사 적 연속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베를린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유형론적 합리주의 건축이 계속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 지만,3) O. M. 웅어스에 이어 요셉 파울 클라이후에스가 타계한 이후 한 차례 그 지명도가 떨어져 있었다. 그러 나 주목해야 할 현상은 2000년 이후 지난 15년간 몇몇 웅어스 제자들의 괄목할 업적들이 이러한 건축의 전통에 새로운 탄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이다. 본 연구는 이러 한 O. M. 웅어스 스쿨의 현상이 실제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향후 독일 건축의 지형도에 어떤 영향력을 가질 수 있으며 국제 건축담론의 평형회복에 어느 정도 기여 될 수 있는가를 평가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1-1.연구의 목적과 의의
본 연구를 통하여 독일 건축계에서 새롭게 비중을 가 져가고 있는 O. M. 웅어스의 건축적 유산이 변화해서 재창출되어가는 현상을 좀 더 명확히 파악하고, 국제건 축담론의 편향성 교정에 기여를 하는 데 그 일차적 목적 이 있다. 이차적으로는, 영미권 중심의 담론과 문헌의 유 입에 치중된 한국의 건축 및 건축이론의 텃밭을 좀 더 넓히는 효과를 기대한다. O. M. 웅어스의 건축에 관한 연구는 다수 있으나, 한스 콜호프(Hans Kollhoff)나 막 스 두들러(Max Dudler) 등 O. M. 웅어스의 제자들은 이미 90년대부터 독일 건축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 고 있음에도 그들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상태이다.
본 연구는 어느 한 건축가의 작품세계를 깊이 분석하 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고, 전술한 현상의 윤곽을 정리 하고, 그 현상을 가능케 한 대표적 건축가들의 건축을 비교분석함을 통하여 O. M. 웅어스 건축으로부터 O. M. 웅어스 스쿨로의 변화는 어느 정도로 평가될 수 있으며, 그들 개개의 건축으로서의 독자적 위치는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
1-2.연구 방법
본 연구는 역사, 이론 영역보다는 비평 영역에 비중을 두는 논문이므로, 국제 건축담론의 평형 회복에 기여하 고자 하는 연구목적을 위하여 자료의 기록이나 이론적 정리보다는 관련사항들을 종합하여 새로운 쟁점을 도출 해내는 데 초점을 둔다.
전술한 대로 한국에는 그들에 관한 자료와 연구가 극 히 부족한 관계로, 독일의 문헌과 자료로 본 연구의 뼈 대를 형성했고, 일부 영미권 및 스위스 이태리의 자료로 보강하였다.
도면 및 사진자료는 전반적으로 건축가들의 작품집에 게재된 사진들을 사용하였고, 문헌자료로는 각각의 건축 가 자신의 글과 그들의 건축에 관한 평론이나 논문을 분 석하였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사유를 파악하기 위하여 문헌분석의 방법을 중심으로 하였고, 건축 작품을 분석 하는 방법으로는 일차적으로는 기존의 평론에 기술된 내 용에 충실히 기반을 두되, 연구자가 독자적으로 건축의 공간적, 구축적 콘셉트와 디테일을 분석하는 데 많은 비 중을 두었다.
2.O. M. 웅어스의 건축 및 그 스쿨의 형성
2-1.O. M. 웅어스의 건축 이론 및 국제 건축담론 에서의 위치
프로그램과 기능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건축의 사유방식 의 한계와 위험성에 경종을 울리며, 알도 로시, 조지오 그 라시 등에 의해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유형론적 합리주의 의 움직임이 태동하던 1960년대에 독일을 무대로 활동하 던 오스발트 마티아스 웅어스(Oswald Mathias Ungers, 1926∼2007)는 유형학적 실험을 바탕으로 하는 형태론적 접근방법을 통해 기존의 도시에 적합한 건축을 만들어 내고자 하였다. “상상과 은유, 유추로서의 설계와 사고 (Entwerfen und Denken in Vorstellung, Metaphern und Analogien)”, “건축의 야누스의 얼굴(Das Janusgesicht der Architektur)”, “쉰켈의 작품에서의 다섯 개의 교훈 (Fünf Lehren aus Schinkels Werk)” 등을 통해 건축 및 그 방법론에 관한 그의 사유를 설파했으며,4) 독일 건축 박물관,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장, 함부르크 미술관, 쾰른 발라프 리햐르트 미술관 등의 건축을 통해 자신의 건축 관을 전파해 나갔다. Fig.1, 2
케네스 프램톤(Kenneth Frampton)이 『현대의 건축 - 비판적 역사서(Modern Architecture - a critical history』 에서 O. M. 웅어스의 건축을 지역주의(regionalism)로 분류해 서술하는 것은 웅어스 건축의 부분적인 특성을 전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5) 그의 건축에서 ‘genius loci’라는 개념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장소성’은 매우 중요하나, 이는 ‘변형(Transformation)’, ‘은유와 유 추(Methapher und Analogien)’, ‘상상으로서의 세계(Welt als Vorstellung)’, ‘도시의 군도(Stadtarchipel)’와 같이 그 의 건축적 사유와 이론을 형성하고 있는 여러 축 중의 하나이다.
6·70년대 그의 출현이 중요했고, 90년대로 이어지는 국제건축담론의 전개에서 그의 존재가 중요했던 것은, 근대와 전후의 건축가들이 몰두하였던 기능과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도그마의 건축을 비판하고, 건축 본연 의 본질로의 회귀를 주장하며 독창적인 명제와 설계방 식을 구사해 나간 데 있다.6) “건축의 주제와 내용은 오직 건축 자신만이 될 수 있다”라는 극단적 표현이 이를 대변하고 있으며,7) 그 고유의 주제를 이성적 사 유와 기하학 그리고 역사 속에서 찾아 나간다. 그의 합리적 사유체제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에 게서 영향 받은 바 크고, 건축 유형학적 접근방식은 J. N. L. 듀랑(Jean-Nicolas-Louis Durand)의 백과사전적 체계성에 기반하고 있다.
비토리오 M. 람푸냐니(Vittorio Magnago Lampugnani)가 “건축에 있어 합리주의라는 개념은 건축이론이 존재하는 역사만큼 긴 전통을 가지고 있다. 비트루브(Vitruv)도 이미 그의 저서 De architectura에서 건축은 이성적으 로 파악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르네상스 시대의 논술들에서도 다시 다뤄지고 심화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듯이8) 인간의 건축역사에 오랜 동안 함께 하여온 합리주의적 사유방식은 계몽시 대에는 바로크적인 미학에 대응하는 새로운 건축의 모 색에 발판이 되었고,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사회조 직, 생산기술, 경제성을 합리적으로 담아내는 근대 도 시 및 건축언어의 사유적 기반이 된다.
특히 쥐세페 테라니(Guiseppe Terragni)를 주축으로 하는 ‘그루뽀 7(Gruppo 7)’은 직전 등장했던 미래파 건 축에 반하여, “새로운 건축, 진정한 건축은 논리와 합리 성의 긴밀한 결합의 결과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이 태리 고전건축과 기계시대의 구축논리의 합명제’인 건축 을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건축은 후에 1970년대에 나타 난 이태리의 텐덴자(Tendenza)[조지오 그라시, 안토니오 모네스티롤리의 키에티(Chieti) 기숙사 참조]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9)
동 시대의 알도 로시(Aldo Rossi)는 도시의 연속성 에 주목하며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건축론을 펼친다. 1966년 『도시의 건축(L’archittectura della Cittá)』을 통해 꾸트레메르 퀸시(Quatremère de Quincey)의 “유 형(Type)이란 복사하거나 완전히 흉내 낼 수 있는 모 형(Model)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서로 전혀 닮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것이 다”10)라는 유형에 관한 정의를 인용하며, 지속되는 건 축예술 속에 내재된 법칙성과 형태의 당위성 속에서 불변의 원형을 찾아낼 수 있다는 유형론적인 생각을 대변한다. 알도 로시는 “건축유형과 도시의 질서를 바 탕으로 하며, 이성을 통해 정해지는 설계”를 ‘합리적 건축(architettura rationale)’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며, 유형론적 합리주의의 건축을 구사하였다.11) O. M. 웅 어스 역시 “건축이란 무엇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발 견하는 것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진 개념을 끊임 없이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고 새롭게 경험하고 재발견하여 새로운 내용으로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12)라는 생각으로 기본원리와 기본형을 기반으로 하는 전형적인 유형론적인 작업태도를 보인 다. O. M. 웅어스는 이러한 유형론적인 작업의 뿌리를 J. N. L. 듀랑(Jean-Nicolas-Louis Durand)에서 뿌리 를 찾고 있으며, 듀랑의 작업은 계몽시대로부터 이어 져 오는 합리주의적 사유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J. N. L. 듀랑의 작업의 큰 의미는 휴먼스케일을 벗어 난 모뉴멘탈한 고전주의적 에티에네 루이 불레(Etienne -Louis-Boullée)의 건축을 합리적인 교육의 과정으로 조화롭게 연결시킨 데 있다.13) “J. N. L. 듀랑이 큰 성 공을 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절대로 실용적인 면 을 외면하지 않았던 데 있다”는 클라우스 얀 필립 (Klaus Jan Philipp)의 설명도 그의 합리적인 사유방식 과 무관하지 않다. “건물은 항상 전체로서 파악이 가 능해야 하며, 그래야 비로소 건축이라 부를 수 있다” 고 하는 J. N. L. 듀랑의 유형적 표준설계는 형태적, 구축적, 경제적으로 시스템화 되어 있었고, 항상 복잡 하지 않고 간결했다.14) J. N. L. 듀랑의 작업의 직접적 인 영향을 받은 건물은 프랑스에서보다는 독일, 덴마 크 등지에서 많이 나타날 정도로 주변국에 영향이 많 았으며, 그 중 특히 칼 프리드리히 쉰켈에의 영향은 건축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15) 그런 의미에 서 O. M. 웅어스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J. N. L. 듀랑과 칼 프리드리히 쉰켈(Karl Friedrich Schinkel) 로 이어지는 계보는 반드시 짚어보아야 한다.
O. M. 웅어스의 건축에의 태도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 는 저술은 『쉰켈로부터의 다섯 가지 교훈(Fünf Lehren aus Schinkels Werk)』으로서, 건축에 있어 가장 본질 적인 것은 외형적 양식이 아닌 테마와 아이디어이며, 장소와 시간의 조건에 따른 테마와 아이디어의 변형이 개개의 건축 특성을 결정짓는다고 주장한다.16) O. M. 웅어스는 알도 로시(Aldo Rossi), 콜린 로우(Colin Rowe) 등과 이론적으로 많은 부분들을 공유하며, 유 형론적 합리주의의 건축을 극단적인 기하학적 건축언 어로 구사하며 70년대 이후 국제건축계에 가장 잘 알 려진 독일 건축가였다.
2-2.O. M. 웅어스의 독일 건축계에서의 활동 및 그 영향력
O. M. 웅어스의 활동 시기는 쾰른에서 건축 활동을 시 작하던 50년대의 1기와 1963년부터 1970년대 말기까지의 베를린 공대(Technische Universität Berlin), 코넬대학교 (Cornell University)를 중심으로 교육 및 이론 활동에 전 념하던 2기, 1970년대 말기 이후 건축 현업에 다시 종사 하던 3기로 구분할 수 있다. 1963년 베를린 공대에 부임 하며, ‘건축이란 무엇인가?(Was ist die Architektur?)’ 라는 제목의 첫 강의를 시작으로 ‘2강: 무방향성의 단일공 간의 건축물(Einräumige richtungslose Bauten)’, ‘3강: 감 싸는 공간과 결합된 단일공간의 형상(Einräumige Gebilde mit einem bestimmten Umraum)’, ‘4·5강: 등위배열의 다수 공간의 형상(Mehrräumige Gebilde in gleicher Anordnung)’, ‘6강: 명료하게 통합된 다수 공간의 형상 (Mehrräumige Gebilde in eindeutiger Zusammensetzung)’, ‘7강: 하나의 점에서 시작해 원점으로 돌아오는 연결 (Verbindungen, die von einem bestimmten Punkt ausgehen und zu diesem wieder zurückkehren)’ 등으 로 이어지는 강의 및 ‘형태의 연결’, ‘주제의 연결’, ‘재 료의 연결’, ‘장소의 연결’ 등을 테마로 하는 워크숍을 통해 공간에 접근하는 새로운 시각을 펼쳐 보여주었 다.17) 기능이나 프로그램에서 유형을 찾지 않고 공간의 유형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봐 이 시기에도 이미 건축 자체에 내재된 테마만이 건축의 본질이 될 수 있다는 신 념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교육은 곧 상당수의 학생들의 호응을 받게 되고, 6·8 운 동 이후 정치적으로 보수 문화의 선도로 치부되며 반발 세력에 부딪힌 후에도 많은 추종 학생들이 있었고, 그 교육 내용이 미국으로까지 알려져 코넬대학교에서 교육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18) 이전의 독일에서의 시기와는 달리 거의 교육 활동에만 전념하던 미국 체류 시기는 상 기한 건축의 사유 방식과 설계방법론을 영미권에 전파하 기 시작하던 시기일 뿐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일련 의 설계적 실험을 교육과정을 통해 시도하던 시기이다. 즉 그의 이론적, 설계 개념적 기반을 단단하게 다지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향후 건축 실무에 다시 복귀하는 70년대 말기 이후 그의 건축은 더 이상 원론 적 실험은 없이 확고하고 지속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루즈벨트 아일랜드 도시개 발 프로젝트 공모출품작’(1975)이나 쿠퍼 헤윗 뮤지움 에서의 전시회: City Metaphors, on the Occation of MANtransFORMS(1976/77)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 작업들이다. 1970년대 초반에는 독일에서 유학간 한스 콜호프(Hans Kollhoff)나 네덜란드의 렘 콜하스(Rem Koolhaas) 등이 O. M. 웅어스의 작업에 여러 차례 동참 하였다.19) 렘 콜하스는 이후 O. M. 웅어스와는 상당히 다른 건축언어를 구사하게 되지만, 이론적으로는 공유대 를 가지고 있다. 렘 콜하스의 ‘The City of the Captive Glove’와 O. M. 웅어스의 ‘도시의 군도(Stadtarchipel)’ 이론에는 공유대가 존재한다.20)
코넬 시기를 마치고 귀국해 국제 건축계에서의 독특한 지위를 배경으로 다시 활동하기 시작한 80년대 이후 O. M. 웅어스의 독일 국내에서의 영향력은 급격히 커져, 고트프리드 뵘(Gottfried Böhm), 프라이 오토(Frei Otto) 의 세대를 넘어 서서히 귄터 베니쉬(Günther Behnisch) 와 함께 양웅의 시대를 이루었다. 이론과 도면으로 보여 준 건축세계를 80년대 초반 독일건축박물관, 프랑크푸르 트 박람회장, 트리어광장, 베를린 IBA 주거프로젝트의 실 현으로 확인시키며 얻은 국제적 존재감은 독일 건축가로 서 거의 독보적이라 할 수 있었다.
2-3.O. M. 웅어스 스쿨의 출현
O. M. 웅어스는 베를린 공과대학에서 교편을 잡았 던 시절부터 위르겐 자바데(Jürgen Sawade), 볼프 마 이어 크리스티안(Wolf Meyer-Christian), 미하엘 베게 너(Michael Wegener) 등 탄탄한 제자층을 형성하였 고,21) 그들이 80년대 90년대 독일의 건축계에서 왕성 한 활동을 하였다. 초기 젊은 O. M. 웅어스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중요 건축가로 위르겐 자바데 등을 들 수 있으며, 직간접으로 베를린스쿨의 영향을 받은 건축가 로는 폰 게르칸(von Gerkan), 마아그 앤 파트너(Marg & Partner), 방에르트, 얀센, 숄츠, 슐테스(Bangert, Jansen, Scholz, Schultes) 등을 들 수 있다.
이어 미국의 코넬대학교로 옮겨 교육 활동을 하며 그 영향력을 영미권으로 확장했을 때의 제자로 롭 크리어 (Rob Krier), 렘 콜하스(Rem Koolhaas), 한스 콜호프 (Hans Kollhoff) 등을 들 수 있다. 미국에서의 활동을 접고 독일 쾰른의 사무실에서 작업에만 열중하던 시기 의 주요 제자로는 70년대 하반기의 한스 콜호프, 아르투 르 오바스카(Arthur Ovaska), 80년대의 막스 두들러 (Max Dudler), 크리스토프 맥클러(Christph Mäckler), 지몬 웅어스(Simon Ungers), 90년대 발터 뇌벨(Walther Noebel), 이은영(Eun-Young Yi), 슈테판 피트(Stephan Vieth), 우베 슈뢰더(Uwe Schröder) 등을 들 수 있다.
이중 한스 콜호프는 취리히 공대에서, 막스 두들러 는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우베 슈뢰더는 아 헨 공과대학교에서, 슈테판 피트는 밀라노 공과대학교 에서, 아르투르 오바스카는 코넬대학교에서 교육을 하 고 있으며, 발터 뇌벨은 도르트문트대학교에서 교육하 다가 타계하였다.
3.2000년대 O. M. 웅어스 제자들의 건축적 성취
본 연구에서는 2000년대 이후 특히 O. M. 웅어스의 타계를 전후하여 괄목할 활동을 보이며 O. M. 웅어스 스쿨의 계승 내지는 새로운 전개의 구심점이 될 만한 업 적을 보인 건축가의 작품에 그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것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쟁점이 다뤄지는 것보다 산 만함을 피할 뿐 아니라, 명료한 사실에 기인한 인지내용 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판단에서이다.
위에 거론한 제자들 중 실제로 건축계에서 주목할 만 한 지명도가 있고, 건축언어상 O. M. 웅어스의 계보를 이어가며 자신의 독창적인 길을 개척해 나간 건축가를 선별해 보면, 우선 위르겐 자바데, 아르투르 오바스카, 슈 테판 피트, 지몬 웅어스, 발터 뇌벨 등은 그 업적으로 볼 때 2000년대에 주목받는 건축가가 되지 못하므로 대상 건축가에서 제외하였다. 폰 게르칸, 마아그 앤 파트너는 건축 활동은 왕성하나 작품성을 논의하기에는 상업성이 강하고 이론이나 건축언어가 명료하지 못하다. 방에르트, 얀센, 숄츠, 슐테스는 그룹이 분열되며 웅어스적 건축언 어의 계보를 논하기에는 작품의 내용들이 산만하다. 렘 콜하스와 크리스토프 맥클러는 웅어스 스쿨로는 논할 수 없을 만큼 이론적으로나 건축언어적으로 전혀 다른 독자 적 노선을 개척하여 본 논문의 대상으로 적합하지 않다.
한스 콜호프, 막스 두들러와 이은영은 O. M. 웅어스의 건축적 교훈을 바탕으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 나간 대 표적인 예로 거론할 수 있다. 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루 겠지만, 그들은 O. M. 웅어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사 유과정을 보이고 있으며, 형태와 공간을 다루는 모습에 O. M. 웅어스와 많은 공유대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이 들은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지난 15년 사이에 O. M. 웅어스 건축의 계보를 이어가는 독특한 건축으로서 독일 건축계의 주목을 받는 괄목한 업적을 이루어냈다. 여기에 한 건축가를 간과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상기 3 인에 비해 규모나 공공성에서 괄목할 성취를 이루지는 않았으나, 탄탄한 문헌적 활동과 정제된 건축적 순수함 과 완결성으로 독자적 위치를 개척해낸 우베 슈뢰더 역 시 본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참고로 독일판 위키페디아에서 ‘오스발트 마티아스 웅 어스(Oswald Mathias Ungers)’를 검색해 보면, ‘웅어스 의 영향(Wirken)’이라는 소챕터 상에 “… O. M. 웅어스 의 대표적 제자로는 위르겐 자바데, 한스 콜호프, 렘 콜 하스, 막스 두들러, 크리스토프 맥클러, 이은영을 들 수 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22)
3-1.한스 콜호프(Hans Kollhoff)
한스 콜호프(Hans Kollhoff, 1946∼)는 베를린을 중심 으로 활동하며 독일통일의 역동성에 힘입어 90년대부터 가장 주목받는 건축가 중 하나로 성장해 2000년대에 이 르기까지 괄목할 성취를 이루었다. O. M. 웅어스 사무실 생활 이후 아르투르 오바스카와 함께 베를린에서 독립한 초기에는 독창의 건축언어를 찾고자 모색하는 것이 역력 히 드러나는 작품 활동을 하였다. “발터 그로피우스 (Walter Gropius)로부터 커튼월 파사드, 에리히 멘델스 존(Erich Mendelsohn)으로부터 곡면의 타일 외벽, 르 꼬르뷔제(Le Corbusier)로부터 차양 지붕을 차용해왔다” 는 평을 받는23) 루이젠플라츠의 주거건축이나 항공모함 이나 우주선이 연상되는 프랑크푸르트의 민속박물관 계 획안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시기에는 사유나 건축언 어에서 독창성은 보이나 메시지가 분명치 않고 산만한 모습을 보였다. 90년대 접어들며 통일 시기의 도시의 재 구성이라는 테마를 접하며, 베를린의 역사성을 현대의 건축으로 재창출하는 과정에서 고전적 건축의 공간유형 과 구성요소를 그대로 드러내는 복고적 건축의 장르를 만들어냈다. 1992년 발표한 「도시는 죽었다. 도시여 다시 살아나라!」 24)라는 에세이에서 지금까지 현대건축이 보여 주었던 ‘도시에 저항하는 건축’을 더 이상 하지 말고, ‘건 축에 저항하는 도시’를 구축할 것을 주장하였다. 바이센 호프 단지, 한자지역 단지 등을 통해 추구되던 근현대 건축의 일련의 과정에 전적으로 저항하고, 인습적 건축 으로의 회귀를 대대적으로 시사하며 이 시기의 각종 공 모안을 통하여 행동으로 옮겼다. 이러한 주장과 활동들 을 통해 그는 항상 통일 후 베를린의 재건에 관한 토론 의 중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프리츠 노이마이어(Fritz Neumeyer)처럼 그의 이론적 동지도 많았던25) 반면, 도 시정책 책임자 한스 슈팀만(Hans Stimman)을 중심으로 펼쳐진 보수적 도시정책에 급속히 대응하는 타협적 행보 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었다.26) 이후 그의 건축은 고전 적 건축을 기반으로 하는 것으로 일관하였고, 일부 대형 의 건축프로젝트에서 미국적 메트로폴리스의 도시건축과 독일 표현주의적 벽돌건축의 장인성이 절묘하게 종합된 독창적인 건축을 성취하였다. ‘다임러 크라이슬러 빌딩 (Daimler Chrysler Building)’이 그 대표적인 예다. Fig.3
3-2.막스 두들러(Max Dudler)
스위스 출신의 막스 두들러(Max Dudler, 1949∼)는 80년대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장 건물을 건립하던 O. M. 웅어스의 전성기 사무실의 중추 역할을 하였으며, 독립 후 베를린,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동생 칼 두 들러(Karl Dudler)와 함께 활동하였다. 80년대, 90년대 의 그의 작품은 웅어스적인 기본률은 있으나 외형적 요소설정이나 비례 등에 있어 지나치게 O. M. 웅어스 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과 현실적 요구조건에 승복하 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경우가 많았다. 베를린의 208 블 럭 사무소 건물이나 만하임의 쌍둥이 건물 입면의 가 로형 창문은 기능에는 적절하고 O. M. 웅어스의 정방 형 격자로부터 해방되기는 하나, 프로포션에 예술성이 결여되어 건축적 특별함에 다다르기에는 다소 미흡한 작업이었다. 이 시기의 공모 출품작에는 원시문명 건 축에의 그의 남다른 주목이 읽혀지는 대담한 작품도 간혹 선보여 훗날의 걸작들을 예고하고 있었다.27) 2000년대에 설계하고 완공한 일련의 도서관 건축에서 마이스터적인 완전성을 입증하는 성취를 이루게 된다. 뮌스터의 카톨릭 도서관, 베를린의 훔볼트대학교 도서 관인 그림첸트룸(Grimm Zentrum)이 그 대표적 작품 이다. 뮌스터의 도서관을 통해 여러 개의 모놀리스적 매스의 조합으로 절묘한 도시공간을 만들어 냈으며, 비례나, 물성, 구축적으로 거의 완전한 디테일에 다다 른다. 그림첸크룸에서는 원시적 건축유형에서 발전시 킨 이제껏 본 바 없는 계단형의 독창적인 공간유형을 구현시켰다. 간결하게 정돈된 형상이나 대담한 내부공 간은 베를린이라는 도시와의 오랜 시간에 걸친 관계로 부터 나오는 것이고, 섬세하고 완벽한 디테일에서 오 는 아우라는 스위스 태생으로서의 배경과 관련이 있다 는 분석이 나오고 있고,28) 명쾌한 형태, 완벽한 공간질 서의 가시화, 세심한 디테일로 건축의 테마를 기능이 나, 사회적 문제에서 건축자체로 끌고 오는 힘을 가졌 다고 평가된다.29) Fig.4
3-3.이은영(Eun-Young Yi)
한국 출신의 이은영(Eun-Young Yi, 1956∼)은 90년 대 초 O. M. 웅어스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건축에 대한 기본 태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관념적인 것 과 본질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포스트모던이 성하던 80년대의 피상적 건축에서 얻은 회의를 치유하 고 근저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실마리를 O. M. 웅 어스의 건축에 대한 태도 및 입장에서 찾아내게 된다. 70·80년대에 웅어스에 의해 발표된 글과 도면들은 그 에게 숙지할 대상이 되었다. 비교적 일찍 그 영향권을 벗어나 독립을 시도하였던 그는 아헨공대에서 교육활 동을 하면서 전적으로 공모의 무대에 도전하며 자신의 건축언어를 다듬어 나갔다. Fig.5
1999년 유럽 공개로 진행된 슈투트가르트 시립도서관 공모에서의 1등 당선을 통해 독일 건축계에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30) 당선작은 공모결과 발표 직후 “건축사에 관 한 총괄적 이해를 바탕으로 나온 비상한 작품이다. 로마 의 판테온에서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팔라디오, 프랑스 혁 명 시기의 불레 등을 거쳐 현대 독일건축의 거장 O. M. 웅어스로까지 이어져오는 건축의 맥락을 이어받아 독창 적인 아이디어로 완벽화 시킨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 다.31) 주변의 도시 프로젝트가 정치적 토론에 휘말리며 설계와 공사를 위해 총 12년의 긴 시간을 필요로 했지만, 그 극단적 순수함과 공간적 아이디어의 독특함으로 인해 독일 건축계의 지속적 관심을 받아왔다. 2011년 완공 후 에는 2000년대의 독일에서 나타난 중요한 주목해야 할 건물로 평가되며, 국제적 지명도를 얻고 있다. 팔크 얘거 (Falk Jäger)는 그의 작품에 대해 “80년대에 상징적, 의 미론적 관점에서 역사 속의 건축에서 원형을 찾던 합리 주의 건축가들로 O. M. 웅어스, 요셉 파울 클라이후에스 등이 있지만, 이은영이 그들을 앞서는 것은 공간과 분위 기에의 감각이다”라고 하며 “단호한 메시지를 담으며, 공 간예술적 체험을 이 정도의 농도로 가능케 하는 건축은 제인스 스털링(James Stirling)의 국립미술관 이후 처음 이다”라고 평하였다.32) 그의 건축은 웅어스적인 명료함을 지니고 있되, 재료나 색상의 선택에서 극단적인 단순함을 보여주며 공간의 원형과 빛의 만남에 주목해 현상과 형 이상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건축을 보여준다.
3-4.우베 슈뢰더(Uwe Schröder)
본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우베 슈뢰더(Uwe Schröder, 1964∼)는 90년대 초반 인턴으로 O. M. 웅어스의 사무실 에서 그리고 이어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의 O. M. 웅어스 마이스터클래스의 학생으로서 사사를 받았다. 이론 적으로 잘 무장된 그는 2000년대 들어서며 외피의 현란함 에서 해방되어 공간이 건축의 중심테마로 되돌아와야 한 다는 논지의 많은 논문과 에세이를 발표하였다.33) 시간으 로부터 해방된 법칙과 규칙을 바탕으로 건축이 이뤄진다 는 전제 위에서만 건축적 합리주의가 가능하고, 장소와 역사의 연결을 통하여서 도시공간과 건축적 공간의 연 계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설파하는34) 그는 현장에서 그 러한 생각을 정확히 소화시켜내는 일련의 주택건축과 소형 공공건축을 실현시켜 발표하였다. 쾰렌호프 주택 (Haus am Cöllenhof, 1999∼2002), 호스테르트 주택 (Haus auf der Hostert, 2003∼2007), 훈데르트아흐트 주 택(Haus Hundertacht, 2004∼2007)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론과 건축개념, 디테일의 완성도가 명쾌하게 일치하는 건축으로 인해 건축계의 지속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Fig.6
4.O. M. 웅어스 제자들의 2000년대 대표작 분석 및 건축언어 비교
전 장에서 거론한 건축가들을 다각도로 분석하기 위해 서는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을 두루 분석하며 짚어봐야겠 지만, 연구가 지나치게 방대해지는 것을 막고, 본 연구의 목적에 맞는 개괄적 결론을 얻어내기 위한 가장 효율적 인 방법으로 그 건축가들의 가장 대표성이 있는 작품을 살펴보고 논점별로 비교분석해 보고자 한다.
4-1.O. M. 웅어스의 대표적 제자들의 대표작 분석
(1)한스 콜호프의 다임러 크라이슬러 빌딩(Hochhaus für Daimler Chrysler, 1997∼2000)
한스 콜호프가 설계한 다임러 크라이슬러 빌딩은 구동독의 베를린장벽 지역 에 위치한 라이프치히 광 장에 위치하며, 이 지역의 도시적 재생은 장벽철거 후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 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의 도시계획은 지명 현상공모 를 통하여 선정된 힐머 앤 자틀러(Hilmer & Sattler) 의 안대로 블록의 형태와 높이를 구 베를린의 도시 구조를 따르되 라이프치히 광장을 형성하는 가로의 정점에는 고층건물을 앉히는 개념으로 정하여졌다. 이곳 은 건너편의 소니 타워(Sony Tower)와 함께 포츠다머 슈트라쎄의 관문과 같은 모습을 형성하게 된다. 바로 이 설계에 콜호프는 뉴욕의 록펠러센터의 조형원리와 프리 츠 회거(Fritz Höger)의 칠레하우스의 독일 벽돌표현주 의 건축의 전통을 접목시켜, 독특한 고층건물의 설계를 완성시키는 데 성공한다. Fig.7
전 건물을 일괄적으로 조립식의 벽돌조로 다뤄 하나의 모노리스(Monolith)로서의 강렬함을 견지하되, 입면을 3 개의 영역으로 구분하며 조금씩 변화를 줘 상부로 향하 는 상승감을 강조하였다. 최하층의 2개 층은 화강석으로 재료를 달리하며 포츠다머 슈트라쎄의 흐름을 담는 아케 이드형상의 기단부를 형성하여 모놀리스의 무게를 들어 올리는 시각적 효과를 노렸다.35)
(2)막스 두들러의 그림첸트룸(Max Dudler, Grimm Zentrum, 2004∼2009)
막스 두들러는 뮌스터의 가톨릭도서관으로 합리주의의 원리에 극도로 충실한 설계로 아름다운 건축을 구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후 이 경험이 자신에게도 강 렬한 확신을 다지게 하였다. 이어서 훔볼트대학교 도서 관인 그림첸트룸의 설계공모에서 당선이 되는데, 몇 개 의 낮고 긴 장방형의 무결한 매스가 역사적 건물에 개입 구성되어 새로운 도시적 영상과 공간을 만들어낸 뮌스터 의 경우와는 달리, 크고 작은 장방형의 매스가 기존건물 을 배경으로 성장해 나오며 불규칙적 형상의 모놀리스가 도시구조보다 높게 자리 잡는 모습으로 도서관 건물을 설정하였다. 이러한 외부의 모습은 뮌스터의 경우와 매 우 다르나, 서가의 시스템과 책상의 규칙적인 배열을 기 본 모듈로 정연하게 전개되는 내부공간의 시스템은 뮌스 터에서 실행한 방식을 그대로 적용시킨 것이다. 중앙열 람실을 하나의 큰 공간으로 할 것인지, 여러 개의 작은 그룹의 공간으로 할 것인지의 논의를 합리적인 발상으로 풀어내며, 독특한 공간을 설계해 냈다. 즉, 작게 나뉜 열 람 공간을 마주보는 계단식으로 배열하여 그 전체를 4개 층 높이의 선형의 대공간으로 통합하였다.36) Fig. 8
이러한 공간의 유형은 전술한 고대문명의 계단식 매스 에의 동경이 다시 설계에 투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러한 공간유형이 엄격한 격자로 일괄되게 엮여져 있어, 그의 건축은 건축 자체를 중심테마로 인지케 한다는 평 가를 다시 증명하고 있다.37) 다른 한 편으로는 건축적 질서의 지나친 강조로 내부공간의 일상이 건축에 지배되 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피해가기 어렵다.
(3)이은영의 슈투트가르트 시립중앙도서관(Stuttgart City Library, 1999∼2011)
슈투트가르트 시는 새로운 TGV 동서축 연결을 유 치하기 위해 기존의 중앙역에 대한 대대적 마스터플랜 을 계획하였다.38) 중앙역의 철로선을 모두 지하로 옮 기고 기존의 철로가 있던 지역을 모두 도심의 숲과 신 도심으로 변환시키는 계획이다. 이은영은 이 신도심의 중앙광장인 마이랜더 플라츠(Mailänder Platz)에 들어 서는 시립도서관이 이 신도심의 도시 공간적 구심이 되는 것을 넘어서 이 도시의 시민들을 정신적으로 하 나로 묶어주는 표상적 건축물이 되기를 바랐다.39) 문 명사에 있어 어느 문화집단에서나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하여왔던 구심적 모놀리스가 현대에도 변함없이 중요 한 역할을 한다는 입장의 그는 시대와 문명을 초월할 보편적 원형으로서 입방체를 취하였다. 단순하고 질서 정연한 외부의 모양과는 달리 내부에서는 다양한 공간 의 체험이 가능하다. 그 주요공간들은 모두 역사 속에 서 누적되며 전달되어 온 기본형을 바탕으로 하고 있 다. 이것이 바로 이은영의 건축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이다. 공간적으로 겉껍질, 속껍질, 틈새, 몸체, 틈새, 핵 으로 이어져 가는 중첩의 테마로 풀어가 그 중앙에 역 상의 모놀리스로서 심장(Herz)이라 불리는 빈 공간이 있게 하였다. 그 중심공간의 원형으로서 로마의 판테 온을 취해 현 시대로 다시 풀어내고, 에티에네 루이 불레의 프랑스 왕립도서관 계획안을 정방형으로의 변 용해 중앙열람실을 설계하였다. 이를 일컬어 이 도서 관을 ‘참조인용 도서관(Reference Library)’이란 별칭을 준 오리엘 프라이즈만(Oriel Prizeman)은 1940년대 조 바니 게리니(Giovanni Guerrini)의 사각 콜로세움 (Colosseo Quadrato - Palazzo della Civiltà Italiana) 과도 그 계보가 연결됨을 시사하였다.40) 건축가 자신 은 뉴톤 세노타프(Cenotaph for Newton)와의 연계도 언급하였다.41) 완공 후 여러 저널들로부터 “이태리와 르네상스를 동경하며 바라보는 낭만적인 탑”(Mark, 2012.04.),42) “오스발트 1138”(Archithese, 2012.06.)43) 등 인용을 담는 별칭들을 많이 얻는 것은 역사의 맥락 속에서의 기본형들을 동시대로 끌어와 보편화 하려는 의지가 읽혀지기 때문이다. 이은영의 건축적 입장에서 특기할 점은 J. N. L. 듀랑이나 O. M. 웅어스에서 기 인하는 유형론적 접근을 유럽문화권에 한정하지 않고 동양의 문화권까지 확장하여 그 보편성의 신뢰도를 더 욱 높이고자 한다는 점이다.44) 자신의 설명에는 판테 온, 프랑스 왕립도서관 등 유럽문화권의 선례들만이 거론되고 있으나, 여러 평론에서는 동양철학적 배경이 읽힌다고 논평되는 이유는 그의 그런 태도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45) 스스로도 설명을 통해 자주 거론 하듯이, 이은영의 건축에는 O. M. 웅어스의 경우와 같 이 은유와 유추가 상당히 농도 있게 개입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의 중심공간이 심장, 혹은 자궁과 같은 용어로 설명되거나, 모놀리스를 설명하며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오딧세이 2001』이 언급되는 것도 모두 그런 맥락에서이다.46) Fig.9
(4)우베 슈뢰더의 훈데르트아흐트 주택(Haus Hundertacht, 2004∼2007)
우베 슈뢰더의 주택 시리즈는 매우 서로 유사하면서도 각기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쾰렌호프를 설계할 당 시에 보여주었던 근대 큐비즘 건축의 흔적이 모두 사라 지고, 원시 건축에서 전달되어 오는 건물의 기본형을 열 주 공간 등 고전의 기본요소로서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다.47) 훈데르트아흐트 주택(Haus Hundertacht)에서 유 형론적 설계 방식을 견고한 매스에 구사하는 그의 건축 적 태도가 정점을 찍는다고 볼 수 있다. 이 건물에서는 3 단형의 테라스하우스 유형을 보여주는 단순한 백색의 매 스, 입구의 전면성을 보여주는 정면의 구멍, 그리고 라인 강 쪽을 향한 개방을 보여주는 층당 3개의 수직 유리문 이 건물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 구사되고 있다. 계단형 을 이루는 세 개의 길이가 다른 매스가 명확히 읽혀지도 록 창의 하부선을 따라 매스 전체에 걸쳐 타일로 수평 띠를 강조했고, 1층의 하부매스는 어깨 높이정도의 타일 면을 형성하여 건물 전체의 기단과 같은 모습을 갖게 하 였다. 이 타일면으로 입구의 공간과 정원과 만나는 테라 스를 형성하여 두 개의 외부로의 전이공간을 명료하게 설정하였다.48) 이 요소는 1층 전체에서 내부까지 균일하 게 적용되어, 기단으로서의 안정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Fig.10
4-2.건축언어 비교
상기의 네 건축가는 공히 사상적으로 O. M. 웅어스의 사유 체제 혹은 그 기본 착상을 기반으로 하는 건축적 사유를 하고 있다. 또한 구체적으로 구사하는 건축적 요 소들도 많은 부분 O. M. 웅어스의 그것과 공유된다. 이 것이 이들을 함께하여 O. M. 웅어스 스쿨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하나의 큰 단서가 된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제 각기 다른 사유를 발전시켜 자신만의 고유한 사고와 건 축적 아이디어를 정립하고, 구사하는 디테일에서 제 각 기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다. 본 항에서는 그 면을 비교 분석해 보고자 한다.
한스 콜호프의 다임러 크라이슬러 빌딩의 매스가 도시 의 컨텍스트와 관계 짓는 모습을 보면, O. M. 웅어스가 도시구조에 반응하는 방식과 유사함을 읽을 수 있으나, 그 형태언어는 O. M. 웅어스와 많은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벽돌의 수공 작업적 섬세함과 파사드 구성 원 리를 살펴보면 독일 벽돌 표현주의적 뿌리가 단단함을 읽을 수 있다. 특히 두 개의 각이 다른 매스가 상부로 올라가며 서서히 얇고 가벼워지는 구성은 고딕의 건축을 연상할 정도로 웅어스적 조형언어와는 전혀 다른 독자적 인 길을 보여주고 있다. 입면의 구성도 동일 요소의 반 복을 주로 구사하는 O. M. 웅어스의 경우와는 달리 하 나의 요소가 규칙적으로 변형되는 모습을 보인다. 기단 부 위로 3개 층의 외벽은 하나의 면을 이루고, 그 위 3 개 층에서는 수직적 돌출 라인이 나타나고, 그 위의 7개 층에서는 추가적인 수직 돌출라인이 나타나며 최상부에 는 바닥 높이의 창의 반복으로 가벼움을 주는 섬세한 변 화가 보인다. 그러나 명확한 기하학적 형태를 보이는 내 부의 공간형성에서는 O. M. 웅어스와의 유사함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Fig.11
“우리는 현재 어디에 서 있는가? … 분명히 우리는 진 보된 기술 혹은 예술적 비전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결별 한 시점으로 다시 온 것으로 보인다”49)며, 20·30년대의 모던을 실패로 단정 짓고 모던 이전에서 연결점을 찾는 그의 태도는 역사에서 뿌리를 찾되 모던 연장선상에서 작업하던 O. M. 웅어스와는 차이를 보인다. Table. 1
막스 두들러는 O. M. 웅어스의 무거운 질감의 건축을 그대로 계승해 발전시켰으나, O. M. 웅어스의 건축에서 보이는 타협 없는 정방형 그리드의 연속에서 탈피해 수 직적 유려함을 추구하고 있다. 대부분의 건물에서는 비 례만이 다를 뿐 요소를 균질 되게 반복하는 방식을 주로 구사하는 것은 O. M. 웅어스의 방식과 동일하다. 그러 나, 그림 첸트룸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입면요소의 변 용이 불규칙하여, 선택된 원리의 반복된 적용을 통해 보 편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O. M. 웅어스의 방식과는 거리 가 멀어져 갔음을 볼 수 있다. 외부의 불규칙성과는 달 리, 내부 중심공간의 유리지붕 격자, 벽면 격자 등 구성 요소의 비례감이나 재질감은 그대로 O. M. 웅어스의 디 테일을 연상케 하고 있다. 외부에서 보인 세장한 수직적 요소는 내부의 개구부 비례나 난간에서 다시 읽혀진다.
“대부분의 문화적 기능의 건축은 - 유럽도시의 연속성 을 견지하기 위한 - ‘계속되는 도시건설’로 볼 수 있다. 우리가 미래를 얻고자 하면, 우리의 과거를 이해하며 배 워야 한다”50)라는 그의 말이 시사하듯 건축에 대한 기본 입장은 O. M. 웅어스와 공유됨을 알 수 있다. Fig.12
이은영은 사유적, 건축원리적 유산을 O. M. 웅어스 로부터 취하고 있으며, 역사 속의 건축유형을 현대로 보편화시키고 직교의 공간구성질서를 철저히 구사하는 모습 등이 웅어스 스쿨의 한 전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건축적 상상을 구현시키는 과정에서 질 감과 비례감 등 세부적 요소에서는 O. M. 웅어스의 그것으로부터 변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철 저하게 직교의 기하학적 질서를 견지하고, 직각의 아 름다움을 구사하지만, 콘크리트, 유리블록 등 재료의 고유한 물성에서 오는 매력을 매우 중시하여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고 각기 다른 속성의 재 료들이 통일된 하나의 효과에 다다르게 하여 총체적 단순함을 꾀한다.51) 그러한 일련의 작업들이 모여 그 의 건축공간들이 순수함과 초현실성을 동시에 견지하 게 된다. 그리고 외부에서 격자의 질서를 명확히 읽게 해주는 반면, 내부공간에서는 격자가 거의 읽히지 않 고 공간의 형상을 드러내고, 빛을 통한 현상학적 체험 을 하는 데 더욱 초점을 둔다. 개구부의 비례, 난간 등 의 디테일에서 세장한 비례를 구사해 정방형의 격자만 으로는 다다르기 어려운 유려함을 보인다. Fig.13
자신의 작업을 “동서를 막론하고 고전 속에서 발견되 는 건축의 유형을 우리 시대의 보편적 정서로서 추상화 하는 일련의 시도”라고 표현하는 것에서 O. M. 웅어스 의 이성적인 유형론적 작업을 더욱 보편화하려는 의지 가 읽히는 반면, “나는 건축으로 드러난 영혼이 또 다른 영혼과 교통함을 체험으로 신봉한다. … ‘어떤 것에 대 하여’ 아는 데에는 머리만 필요하나, ‘어떤 것을’ 아는 데에는 온몸이 필요하다. 건축은 온몸으로 전하고 온몸 으로 받아야 비로소 전달된 것이다”라는 표현에서는 직 관적이고 신비주의적 태도가 읽힌다.52) 그의 건축에서 전해지는 초현실성이 우연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우베 슈뢰더의 디테일은 O. M. 웅어스의 디테일과 거의 1:1로 동일한 경우를 자주 본다. 호스테르트 주택 등 일련의 주택의 내부를 보면 O. M. 웅어스의 아이 펠의 주택의 내부 고정가구 디테일과 극히 유사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타일부를 통한 1층부 기단 형성의 기법도 O. M. 웅어스의 건축이 보여주는 방식에서 크 게 벗어나지 않는다. 단지 우베 슈뢰더의 건축에서는 O. M. 웅어스가 극명하게 드러내는 정방형의 격자가 외부에서 거의 읽히지 않고 숨겨져 있어, 건축 질서에 의 메시지보다 건축 유형적 메시지가 1차적으로 더욱 순수하게 전달된다. 하우스 훈데르트아흐트 내부의 조 형은 호스테르트 주택 등과는 달리 단순한 표면처리를 통해 매스의 구성에 집중하였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 세장하고 가벼운 요소는 피하고 벽체의 순수함을 꾀하 고 있다. Fig.14
우베 슈뢰더의 건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외 부 공간과 내부 공간이 하나의 개념으로서 단단하게 엮여 있다는 점이다. 도시의 광장이나 거리의 공간과 공공의 내부 공간이 등위의 개념으로 표현된 조바니 바티스타 놀리(Giovanni Battista Nolli)의 「로마의 새 로운 계획(Nuova Pianta di Roma)」 (1748)에 주목하며, 나아가서 “도시 속의 건축에서는 건축물 내부의 가장 안쪽의 방까지도 도시공간에 속한다. 또한 건축물이 도시적으로 존재하듯 도시 역시 건축 공간적으로 전개 되고, 연속되고, 농밀해지며, 도시는 곧 집과 같이 상 상된다”53)라는 그의 사유에는 자신의 건축을 자주 하 나의 작은 도시공간에 비유하며 설명하던 O. M. 웅어 스의 영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장에서 기술한 “장소와 역사의 연결을 통하여서 도시공간과 건축적 공간의 연계가 가능하다”는 생각 역시 O. M. 웅어스 의 사유와 맥을 함께 한다.
5.맺음말
이상의 논고를 통해 O. M. 웅어스의 사후에도 그 제 자들의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무엇보다도 몇몇 제 자들의 농도 있는 작업들에 그의 건축적 교훈과 건축언 어적 유산이 전수되어 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상으로 본 네 건축가의 작업을 살펴보면, 모두 O. M. 웅어스의 사유 방식을 기반으로 건축 작업을 하고 있으며, 그 구체적 건축의 언어와 공간은 각기 독창적인 방식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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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시 컨텍스트에 대한 이해, 건축유형론적인 접근 등에 관한 O. M. 웅어스의 이론들은 대상으로 살펴 본 네 건축가에게 공히 이론적 밑바탕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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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형태론적으로나 의장적으로 볼 때 한스 콜호프는 매우 독자적인 길을 취하고 있다. 막스 두들러, 이은영, 우베 슈뢰더의 건축은 기본적으로 O. M. 웅어스의 유형 론적 합리주의의 입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각기 다른 모습을 보 이고 있으며, 격자를 그대로 가시화하며 설명적인 O. M. 웅어스의 방법과는 모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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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은영의 경우는 외부에서 격자의 질서를 명확히 읽게 해주는 반면, 내부에서는 격자가 거의 읽히지 않고 공간의 형상을 드러내고, 빛을 통한 현상학적 체험을 하 는 데 더욱 초점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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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막스 두들러는 외부의 조형에서 기본적 질서를 변 화시키는 실험을 자주 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공간 유형을 명확히 드러내고자 하는 경우, 타협 없이 기하학 적 질서를 가시화시키는 경우가 자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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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베 슈뢰더는 초기에 내외부에서 공간의 격자로서 의 질서를 명확히 드러내고자 하는 설계를 많이 하였으나, 후기로 올수록 공간의 유형에 중점을 두며, 격자를 드러내 지 않는 추상화되고 단순한 건축을 많이 하고 있다.
모던의 전개 이후 국제 건축의 흐름을 보면, 합리주의 의 건축은 항상 하나의 축을 형성하여 왔고, 특히 유럽 의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유형론적 합리주의의 건축은 전후 건축담론에 다양함을 부여하며 빼어놓을 수 없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현재 국제 건축계의 상황은 그 중심 을 이루던 세대의 쇠퇴로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 에 있으며, 특히 우리시대 건축의 진로가 역사의 깊이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할 때 건축문화가 절름발이로 형성될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클래식과 모던의 대립, 상호절충 의 과정을 반복하여 온 건축사의 과정으로 볼 때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합리주의의 소생은 필연의 과정으로 판단 되며, 구체적 현상과 시기만이 불투명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본 연구를 통해 독일 건축계에서는 차차 유형 론적 합리주의 건축의 명맥이 O. M. 웅어스 스쿨의 현상 으로 이어져가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으며, 몇몇 O. M. 웅어스의 제자들의 작업은 국제 건축계에 새로운 담론의 불을 지필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같은 이론적 배경과 공유되는 건축언어를 구 사하는 건축가군이 형성되는 것은 담론의 한 축을 감당 할 잠재력을 갖췄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이 그저 O. M. 웅어스 스쿨을 이어가는 차원을 넘어, O. M. 웅어 스의 건축적 교훈을 한 단계 더욱 발전시켜 완성도와 독 창성이 더욱 돋보이는 작업들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국제건축 담론계의 편향성을 교정하고 평형을 되찾아 가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