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 론
아시아의 광범위한 지역에 전래 분포된 불교는 문화 예 술적 측면에서도 다양한 흐름과 변화를 드러냈다. 이후 근 대 시기 이전까지 여러 단계의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각 지역의 건축과 예술 전반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1) 인도로 부터 불교가 전해진 기원전 3세기 이후, 인도의 산치 탑과 유사한 형태의 인도 전형 불탑형식이 스리랑카 불탑에 자 연스럽게 영향을 주었다. 스리랑카 불탑은 기원전 3세기부 터 13세기에 중부의 아누라다푸라, 플론나루와, 캔디에 활 발히 건립되었다. 그 이전에도 남부의 팃사마하라마와 중 부의 아누라다푸라 등지에 탑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미루 어보아 조성당시에는 불탑이 아니었더라도 불교의 도입 이후 내부에 사리가 봉안되면서, 탑의 형태와 기능이 변화 한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영향이 컸던 것은 지리적으로나 불교 전래과정상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스리랑카 초기의 불탑은 축조 이후 여러 번의 보수 및 재건과정을 거치면 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다.
기원전 6세기 석가모니의 열반 이후, 인도 아소카 왕의 아들 마힌다 승려(Arhat Mahinda)는 스리랑카 미힌탈레에 서 당시 아누라다푸라의 왕 데바남피야팃사(Devanampiya Tissa, 재위 BCE307~BCE267)에게 불교 교리를 전하게 된다. 데바남피야팃사는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스리랑카 전역에 불교가 전래되도록 힘썼고, 스리랑카의 토착문화와 어우러져 독창적인 불교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 안타깝 게도 이때 세워진 거대한 사원과 불탑 중 건립 당시의 모 습을 온전히 갖추고 있는 것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당 시의 불탑과 사원의 모습은 스리랑카의 고대 역사서2)에 글과 도상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불교교리가 전해진 이후 불교전래 의 흐름은 북쪽으로는 파키스탄, 중앙아시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되고, 남쪽으로는 스리랑카와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으로 전래된다3). 기 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10세기경까지 곳곳으로 퍼져나가 각국의 문화나 풍습과 결합되어 나라별 방식대로 사원과 불상, 불탑이 세워지게 된다. 이 중 특히 불탑은 불상이 세워지기 전인 무불상시대에도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 거나 불경을 넣어 모신 것으로 불교건축물 중 최고의 권 위를 갖게 된다.
인도에서 불교교리가 전해졌을 당시의 스리랑카 불탑은 현존하는 불탑의 모양과 많은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비교 적 초기형태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스리랑카 남부 팃사마 하라마(Tissamaharama, Hambantota, Southern Sri Lanka)의 선행연구4)를 통해 스리랑카의 초기 불탑과 현재 의 불탑의 형식을 비교하고, 이를 기반으로 각각의 구성요 소가 스리랑카의 불탑 재·중건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스리랑카의 불탑을 조사하는 데 있어 구체적이고 정확 한 자료를 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스리 랑카의 현존하는 불탑의 형태를 연구함에 있어서 확인이 가능하고 보수를 거친 후의 완전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불탑을 중심으로 조사하였다. 현지답사를 통한 조사연구5) 는 스리랑카의 불교 유적이 남아있는 지역인 아누라다푸 라(Anuradhapura), 미힌탈레(Mihintale), 플론나루와 (Polonnaruwa), 시기리야(Sigiriya), 담불라(Dambulla), 마 탈레(Matale), 캔디(Kandy), 콜롬보(Colombo), 칼루타라 (Kalutara)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현지 기후 문제로 답사가 불가능했던 남부, 특히 팃사마하라마는 기존의 선 행연구를 참고하였다. 스리랑카 건축의 순서와 스리랑카 불탑 중 아누라다푸라의 세 탑이 스리랑카의 정통적인 불 탑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는 현재 동국대학교 박사과정에 있는 Dhamma Kitti 스님의 인터뷰를 거쳤다. 그러나 기존 스리랑카 불탑에 관한 연구가 극히 적고 확인이 어려운 부분이 있어 오류가 있거나 보충이 필요한 부분은 추후 보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스리랑카 정부는 불 교 유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으며 오히 려 불교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상황이다. 불교 유적에 대한 복원과 유지에 필요한 예산은 지원이 많이 되지 않고 있고, 이 때문에 현재 스리랑카 불탑을 미 약하게나마 보수하고 주기적으로 흰색으로 채색하는 작업 은 모두 자발적인 참여와 봉사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Fig.1
본 논문에서는 스리랑카 불탑의 구성요소를 비교분석한 후, 동시대에 불교문화가 융성했던 간다라지역과 스리랑카 의 불탑 발달과정 가운데 유의점을 찾아 스리랑카 불탑 형식을 규명해보고자 한다.
2.스리랑카 불탑의 구성요소
2.1.Foundation (기단)
스리랑카 탑의 기단은 원형기단과 방형기단이 혼재하는 양상을 띤다. 비교적 이른 시기인 아누라다푸라 전기6) (BCE250~CE500)에 지어졌다고 기록되는 탑 중 다섯 기 에는 원형기단이 유지되고 있다. 산치탑의 원형2층기단과 달리, 간다라 탑에서도 스리랑카 탑과 마찬가지로 원형기 단과 방형기단이 혼재하는 양상을 보인다(<Fig.2>참조7)). 간다라와 스리랑카의 탑은 각각 인도의 북쪽과 남쪽에 위 치하며 유사한 시기에 기단이 원형에서 방형으로 바뀌는 형태를 보였고, 네 방향의 탑문과 별도로 진입부가 남북으 로 나 있던 산치탑과 달리 간다라탑에서는 동서남북 4방 향으로 위치하거나 한쪽에만 두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연구자가 조사한 스리랑카의 20여 기의 탑 중 아누라다 푸라의 ‘투파라마(Thuparama)’를 제외한 모든 탑의 진입계 단이 동서남북으로 나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특히 축조 시기가 이른 아누라다푸라 지역과 미힌탈레에서만 원형기 단이 발견되는데 간다라와 마찬가지로 초기의 원형기단과 함께 후대의 방형기단이 혼재하는 양상을 보인다. 한편 사 원지의 주탑인 ‘시툴파와 라자마하 비하라(Sithulpawwa Raja Maha Vihara)’와 ‘켈라니야 스투파(Kelaniya Stupa)’ 는 정방형이 아닌 장방형(혹은 후자의 경우 다각형 기단 즉 이형기단) 기단형태를 보인다(<Table 1> 참조). 아누라다 푸라의 아바야기리 다고바(Abhayagiri Dagoba)와 플론나 루와의 란콧 베헤라(Rankoth Vehera)는 하부의 넓은 방형 기단 위에 상부방형기단이 하나 더 있는데, 산치탑의 원형 2층기단과 비교하면 스리랑카 탑에서 보이는 하부 방형기 단은 탑의 영역을 지정하는 의미가 강하고 탑과 기단 사 이가 넓은 탓에 비교적 좁은 산치탑의 요도(탑돌이길)에 비해 방형기단 위에 올라간 원형의 돔형 탑이 시각적으로 더욱 돋보이며, 다양한 종교의식을 행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숫자의 순례객이 탑돌이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파라크라마바후 1세의 대대적인 불 탑 확대 작업으로 기단 역시 그 규모에 맞게 낮고 넓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스리랑카 불탑의 기단은 간다라의 가구식 기단과 유사 한 형식을 보이는데, 상부 방형기단의 구역을 구획하는 하 부 테라스의 벽면에는 기둥문양이 부조되어 있다. 간다라 탑에서는 쌍두독수리와 기둥을 볼 수 있고, 스리랑카 탑에 서는 코끼리와 기둥이 함께 조각되어 있다. 전체적인 규모 로 보았을 때 간다라 탑의 기단이 스리랑카 탑의 기단에 비하여 더 높다. 인도 산치 탑의 기단이 목재 울타리를 연 상케 하는 난순(Vedika)으로 둘러싸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간다라와 스리랑카의 탑은 점차 더 건축적인 특징을 갖춰 가는 모습을 보인다.
2.2.Basal Rings(장식기단 혹은 장식 띠)
스리랑카 불탑은 방형기단과는 별개로 복발의 하부에 장식기단 혹은 장식 띠가 돌려져 있다. 흔히 ‘드럼’이라고 불리는 이 장식기단은 팔리어로 ‘페사발라루(Pesa Walalu)’라고 불린다. 산치탑의 복발에 비해 소형화 된 스리랑카 불탑의 복발 하부에는 가느다란 몰딩이 있는 장식기단을 두어 밋밋한 복발을 장엄장식하였고 이는 탑의 복발을 수 직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스리랑카 불탑은 그 복발의 형태에 따라서 소형화와 대 형화, 두 가지로 분류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말 하는 ‘장식기단’은 산치탑보다 복발이 소형화된 Bell type8) 에서 찾아보기 쉬운데 비교적 작은 크기의 돔을 가진 탑 은 탑신이 높아지면서 3개 이상의 띠 형태의 장식기단이 복발을 받친다(<Fig.3>). 반면 Bell type과 전혀 다른 특징 을 갖는 대형화된 복발을 갖는 Bubble type9)은 각 기단 층 사이의 폭이 넓어지고, 상부구조와 복발을 지탱하기 위 해 후대에 기단을 추가로 덧붙여 보강하기도 하였다 (<Fig.4>). 산치탑의 기단 상부와 하부에 있던 난간이 없어 지는 대신, 스리랑카의 불탑은 기단의 상하부에 몰딩이 생 기고 경우에 따라서 기단 면석에 장엄조식이 나타나기도 한다. 스리랑카 불탑의 장식기단은 기단의 역할보다는 상징 적인 역할을 하는 돔의 받침과 같은 부재임을 알 수 있다.
2.3.Frontispiece(제단)
파라크라마바후 1세(재위 1153~1186)에 의해 거대한 메 가 스투파의 흐름이 활발해지면서 장식기단이 높아지고 복발의 크기가 커졌으며, 이때 탑의 동서남북에는 제단과 이미지하우스, 부조로 장식된 내력벽 등이 탑마다 다양하 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 중 장식 벽이자 소형 석조 테이블 이 함께 놓여 제단의 역할을 하는 바할카다(Vahalkada)10) 는 탑의 규모에 따라 높이나 규모가 조금씩 다르나 납작 하고 긴 형태의 벽체 모양으로 되어있다. 이는 동서남북 사면에 각각 다른 동물로 부조되어 있으며 복발에 집중적 으로 가해지는 상부의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한 용도로 보 인다. 북인도 간다라의 탑에서는 탑문과 바할카다가 나타 나지 않는 반면, 바할카다는 스리랑카 탑에서만 발견되는 특징이다. 상대적으로 큰 복발과 수직적으로 발달한 조적 식의 상륜부 때문에 이를 지탱하기 위한 부가적인 구조체 가 필요했을 것이다. 즉 스리랑카의 불탑에서는 탑문은 없 어지고 동서남북의 입구와 함께 제물을 바치기 위한 제단 이 입구의 정면에 위치한다. Fig. 5,6
경우에 따라 바할카다의 양쪽에 이미지하우스가 부가적 으로 세워지기도 한다. 플론나루와의 란콧베헤라(Rankoth Vehera)에서는 현존하는 불탑 중 가장 많은 수의 이미지 하우스 흔적이 발견되는데, 바할카다가 사면에 네 개 위치 하고 각 바할카다의 좌우로는 사람이 3~4명쯤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작은 방과 같은 이미지하우스가 위치한다. 총 8 개의 바할카다 좌우의 이미지하우스와는 별개로 탑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곳에는 바할카다 사이에 비어있는 공간에 메인 이미지하우스(<Fig 7>)가 세 곳에 위치하고, 나머지 한 곳에는 건물지의 흔적이 남아있다. Fig 8
2.4.Dome(복발)
산치탑과 마찬가지로 현재 스리랑카의 불탑은 여러 번 의 증축과정을 거친 상태인데, 산치탑과 유사하면서도 크 기 면에서는 변화를 보인 것이 복발이다. 산치탑은 사리함 이 복발 내부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복발의 크기가 스리랑 카 탑의 Bell type 복발보다는 상대적으로 크고 Bubble type의 복발보다는 작다. 스리랑카와 간다라, 두 지역 모두 불탑에서 복발이 차지하는 비율이 차츰 줄어들게 되는데, 스리랑카 불탑의 바닥에서부터 돔의 상부에 이르는 비율 이 산치탑에 비해 더 커지고 스리랑카 불탑의 돔 하부 지 름이 더 좁아지면서, 산치탑의 반구형 돔에 비해 스리랑카 불탑의 돔은 반구형보다 조금 더 길어진 모습을 보인다. 또한 난간이 나타나지 않고 장식기단 각 층 간의 폭이 좁 아진 탓에 돔이 부각된다. 이와 별개로 스리랑카에서는 복 발을 비롯하여 장식기단, 평두, 산개와 산간 부분이 모두 크게는 열 배 이상 큰 탑이 남부에서부터 건립되기 시작 했다. 즉 복발은 소형화와 대형화, 두 가지 흐름이 동시에 나타나며 특히 대형 탑은, 마지막으로 스리랑카를 통일11) 했던 파라크라마바후 1세에 의해 본격적으로 스리랑카 전 역에 퍼지게 된다. Fig .9,10
2.5.Square Chamber(평두12))
복발의 위로는 ‘하타라스 코투와(Hatharas Kotuwa)’라 는 부재가 올라가는데 속이 비어있던 인도의 산치 탑의 하미카(Harmika)와 달리, 부재 속이 다 채워져 있고 높이 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평두의 네 면 중심부에는 연꽃모 양의 장식이 새겨져 있고, 그 주변으로는 하미카를 연상시 키는 난간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인도 불탑에서는 복발의 내부 중에서도 하부 혹은 중심 에 사리함이 봉안되어 있었던 반면, 불치(佛齒)사리를 가 지고 있던 스리랑카의 몇몇 탑들은 도굴의 위험에서 안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접근이 힘든 위치, 즉 벽돌로 쌓인 복발이 아닌, 복발의 상부에 고체로 속이 막힌 하타 라스 코투와에 봉안을 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불사리를 보호하게 된다. 평두는 내부를 다 채워 넣어 상 부부재를 받쳐주는 역할을 하며, 수직적으로 발달한 스리 랑카 불탑의 중요한 형태 변화 중 하나이다. Fig .11,12
2.6.Cylinder(산간)
평두의 위로는 ‘데바타 코투와(Devatha Kotuwa)’라는 원기둥형의 부재 즉 산간이 올라간다. 이는 평두(square chamber)와 산개(spire)의 사이를 연결하는데 두 부재보다 지름이 작아서 영역이 확실히 구분된다. 산간이 하나 혹은 두개 올라간 후에는 차트라(Chattra)가 적층된 원뿔 형태 의 부재가 위치한다. 산개와 속이 꽉 찬 평두의 사이에 자 리한 원기둥형의 산간 부분이 돔 내부에서부터 찰주처럼 꽂힌 마스트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산치탑의 산간 이 본래 긴 목재 혹은 석재 부재였던 것에 비해 산개의 발달로 인해 이를 지탱하기 위한 굵고 튼튼한 부재로 발 전했음을 짐작케 한다.
2.7.Spire(산개)
산간의 위에는 원뿔형의 ‘코트 케렐라(Koth Kerella)’가 위치한다. 코트 케렐라는 선이 없는 단순한 원뿔형인 경우 도 있지만 그 수가 많지 않고13), 대부분이 차트라, 혹은 여러 장의 디스크14)가 쌓인 형태를 나타내는 듯 수십 개 의 주름이 진 원뿔형이다. 스리랑카의 산개는 마치 고딕건 축 성당의 첨탑처럼 뾰족하고 높게 올라간다. 스리랑카 불 탑에서는 차트라가 많게는 25개 이상 쌓인 코트 케렐라도 나타난다.
흥미로운 것은 인도 탑에서 스리랑카 탑으로 변화할 때 복발의 윗부분에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변화인 산개의 수 가 많아지는 경향이 스리랑카뿐만 아니라 간다라의 탑에 서도 나타났다는 점이다. 물론 간다라 탑의 산개는 상대적 으로 스리랑카 탑의 산개에 비해 크고 화려했는데, 이에 반해 스리랑카 탑은 적층이 많이 되며 심지어 산개의 위 로는 수정과 철제받침인 코타(Kotha)가 있어 수직적으로 발달하면서 화려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Table 2
2.8.Jewel(보주)
코트 케렐라의 위로는 ‘코타(Kotha)15)’라는 작고 뾰족한 첨탑이 하나 더 올라간다. 코타는 주로 보석이나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햇빛을 받으면 밝게 빛난다. 보통 수정과 수정을 받치는 부분에 항아리 혹은 꽃병 모양의 철제 부 재가 같이 구성된다. 스리랑카에는 현재까지도 번개가 매 우 잦은 편인데 탑의 최상부에 있는 철제받침과 수정이 번개에 의한 피해를 줄여준다고 한다16).
2.9.불탑 주변의 구성요소 : 석주(stone pillar)
아누라다푸라의 란카라마와 투파라마, 미힌탈레의 암바 스탈라 다가바(Ambasthala dagaba, Mihintale) 등 대표적 으로 3기의 불탑 주위에는 수많은 석주가 줄지어 놓여있 다. 이 석주는 인도 탑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탑을 보호하거나 탑 주변에서 장식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 정되는데 이 열주의 용도에 대해서 학자들 간에 논쟁이 있어왔다. 퍼거슨(Fergusson)17)은 이 돌기둥의 용도가 깃 발이나 그림을 걸어놓기 위함이라고 하였고, 스미서 (J.G.Smither)18)는 그림을 걸어놓는 용도라고 보기에는 탑 의 신체를 다 가리게 되기 때문에 낭설이라고 주장하며 기둥은 그저 돌기둥의 기둥머리 부분의 장식을 받치는 용 도였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또한 『Stupa in Ceylon』의 저자, 파라나비타나(S.Paranavitana)는 돌기둥 에 장부나 장부구멍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상징물을 받치기 위한 의도였을 것으로 보았다. 석주는 투파라마에 서 그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투파마라는 10세기 촐라족에 의해 무너진 후 파라크라마바후 대왕(the Great King Parakramabahu, 1153~1186)에 의해 재건되었다19). 이후 개조작업은 계속되어왔고 1842년에 그 결과로 투파 라마는 현재의 종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20) 투파라마 탑 주위에는 아직도 온전한 돌기둥을 비롯하여 기둥머리와 기둥이 분리된 유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Fig .13,14
란카라마는 ‘아타마스타나(Atamasthana)’라고 불리는 8 개의 신성한 장소 중 하나로, 투파라마와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돔이 조금 더 각이 진 듯 상부가 크고 탑 전체의 크기는 더 작다. 현 상태로 복원되기 전까지의 자 료는 알려진 바가 없고, 원래 건축적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나 보수 후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란카라마 주변에 도 돌기둥이 나열되어 있다(Fig 10). 이 돌기둥은 3개의 동 심원을 형성하고 있는데, 첫 번째 원에는 20개, 두 번째 원에는 28개, 세 번째 원에는 40개의 기둥이 있다. 가장 안쪽 첫 번째 원을 형성하는 기둥은 높이가 16피트 8인치 로서 스투파의 바닥면보다 높이 세워져 있으며, 두 번째 원의 기둥 높이는 16피트 11인치로서 포장된 부분보다 높 은 곳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두 원의 기둥의 꼭대기는 5 인치 정도 차이가 있으며. 세 번째 원의 기둥은 높이가 12 피트 5인치이다21).
주목할 만한 것은 란카라마와 투파라마 모두 스투파를 둘러싸고 있는 벽돌 벽이 2개의 바깥 원 돌기둥 사이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현재 플론나루와 달라다 말루와 유적군(Dalada Maluwa)22)의 와타다게 (Vatadage, <Fig.15,16>)와 유사한 형태로, 탑 주변을 벽돌 벽으로 감싸고 그 내 외부에 돌기둥이 세워진 형태였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여러 학자에 의해 많은 주장이 제기되 었던 돌기둥은 세 열의 돌기둥 중 가장 바깥 부분의 돌기 둥 동심원과 중간의 돌기둥 동심원 사이에 벽돌 벽이 위 치했던 점, 투파라마와 란카라마의 불탑 크기가 다른 불탑 에 비해 비교적 작은 점, 두 탑이 모두 기원전 1세기에 세 워졌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공통적으로 불탑을 보호 하기 위한 스투파하우스가 있었던 흔적으로 보인다. 12세 기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플론나루와의 와타다게가 불 치를 봉안하였던 불치정사였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투파 라마와 란카라마 또한 그에 버금가는 불사리 봉안용 탑이 었고, 기둥의 형식으로 유추해 보았을 때 탑이 활발히 보 수되는 시기 중 하나인 8-12세기 사이에 투파라마와 란카 라마, 암바스탈라 탑의 기둥 등이 동 시기에 추가적으로 세워졌다고 추정된다. 따라서 돌기둥 위로 목조지붕이 올 라가 탑 주위를 둥그렇게 감싸는 Stupa House가 건축된 것으로 이해된다.
3.스리랑카 탑의 형식
3.1.인도 불탑의 영향
고대 인도와 스리랑카를 비롯한 주변 여러 국가는 해로 와 육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교류하였다. 스리랑카의 현존 불탑은 불탑이 최초로 조성된 시기의 불탑으로 기록되는 형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여러 차례의 증 개축으로 인해 현재로서는 당시의 불탑 형식을 정확히 알 기 어렵다. 비교적 초기의 유구가 잘 남아 있는 팃사마하 라마 지역의 산다기리 스투파(Sandagiri Stupa)와 야탈라 스투파(Yatala Stupa)를 통해 스리랑카 초기 불탑의 형태 를 추정할 수 있고, 이를 근거로 삼아 인도 불탑의 구성요 소와 유사했음을 추정하였다23). Fig .17,18,19
오랜 세월에 걸친 여러 차례의 내전과 외부 침략, 자연 적인 풍화와 도굴 등으로 인해, 발굴 당시에는 스리랑카의 수많은 불교유적과 불탑들이 망가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 을 정도로 황폐한 상태였다. 영국 학자들의 조사에 의해 서서히 돌무더기의 실체가 드러났으며 1800년대 중후반부 터 현재까지 스리랑카 불탑을 복원하기 위한 보수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스리랑카 초기 돔형 불탑은 산치탑과 형태 가 유사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오히려 현존하는 스리랑카 의 돔형 불탑과 비교하였을 때 크기와 구성요소 등에 있 어서 차이가 있다. Fig .20,21,22
산치탑의 기단이 원형인 것에 비해 간다라 지역과 스리 랑카의 탑은 원형기단에서 방형기단으로 바뀌는 과도기적 특징을 보인다. 스리랑카 불탑 중 특히 비교적 초기에 지 어진 탑일수록, 그리고 아누라다푸라의 근교에 있는 탑만 이 현재까지도 원형기단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인도 초기 탑의 영향이 스리랑카와 간다라로 건너가 탑의 형태에 영 향을 주었음을 짐작케 한다.
스리랑카 불탑에서는 기단과 별도로 몰딩이 새겨진 장 식기단이 생겨 복발을 받치는 역할을 하였고, 장식기단 위 의 복발은 소형화되는 경향과 동시에 스리랑카에서만 발 견되는 메가 스투파의 흐름으로 인해 초대형화가 동시에 일어나 두 가지의 큰 양상을 한 나라에서 볼 수 있다. 산 개의 수가 많아지는 경향 또한 간다라와 스리랑카에서 동 시에 나타나는데 간다라의 산개가 복발을 덮을 만큼 큰 반면 스리랑카의 산개는 속이 차있는 평두 때문인지 산개 의 크기가 복발과는 관계없이 작고 수직적으로 발달한 첨 탑이라고 하겠다.
3.2.스리랑카 불탑의 형식 분류
상좌부 불교의 중심지로 볼 수 있는 스리랑카 불탑을 돔의 형태에 따라서 분류한 형식 분류와 이에 따른 시기 별, 지역별 비교 분석은 불교미술사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존 스리랑카의 불탑은 탑신인 복발의 형 태에 따라서 6가지 혹은 7가지 형식으로 분류되어왔다24). Table.3
이 중 현존하는 스리랑카 불탑에서 세 가지에 해당하는 불탑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25) 형태를 분류하는 데 있어 7 분류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overturned goblet shaped와 overturned plate shaped 의 판단 기준자체가 모호하여 두 유형을 구분할 명확한 근거나 당위성을 찾지 못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현존하 는 스리랑카 불탑으로만 한정하여 그 형식을 네 가지로 재분류하고 이를 스리랑카 불탑 연구의 새로운 기반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7유형 중 제외된 3유형 또한 기록상으로 스리랑카에 있었던 불탑으로 알릴 필요가 있지만 현황과 맞지 않게 7유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연구하는 것은 다 소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였다. 현존하는 스리랑카 불탑은 돔의 형태에 따라서 네 가지 type으로 구분되는데(<Fig.23>26)), 이는 ① Bell type (Ghantakara, 종 모양 돔의 비교 적 작은 불탑), ② Pot type (Ghatakara, 항아리를 뒤집은 듯한-overturned goblet- 모양으로 돔의 하부가 중간부분 보다 지름이 작은 형태. 설명이 용이하도록 goblet보다는 많이 쓰이는 단어인 pot으로 대체하고자 함), ③ Mound type (Dhanyakara, 쌀이 쌓인 둔덕의 형태로 Heap of paddy, 혹은 Heap of Rice라고 일컬어졌으나 언덕으로 보 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여 본 연구자는 이를 mound로 대 체하고자 함), ④ Bubble type (Bubbulakara, 스리랑카 불 탑 중 대다수가 이 형태를 하고 있으며 거품 모양 즉 돔 의 상부에서 중부를 거쳐 하부로 내려오면서 점점 지름이 커지는 탑) 이렇게 네 가지 형식이다.
3.2.1.Pot type, Mound type
네 가지 형식 중 항아리를 엎은 모양의 ‘Pot type’과 벼 를 쌓은 더미 같은 형태의 ‘Mound type’은 그에 속하는 탑이 극히 희박하다. Pot type의 ‘미리사바티야’의 경우 또 한 Pot type인지 Bubble type인지 경계가 모호하며, 특히 이 탑을 지은 Dutugemunu(두투게무누) 왕은 동 시기, 같 은 지역에 ‘루완웰리 마하세야’라는 탑을 지었다. 이 두 탑 의 형태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기존의 선행연구에서 언급 된 바로는 ‘미리사바티야’역시 pot type에 속한다고 나와 있는 탓에 추후 형태적 비율이나 건축적 요소 등을 따져 명확한 형식 구분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Fig.24,25
Pot type과 Mound type의 경우는 지역성이 두드러지는 형식으로, 그에 속하는 불탑이 특정 지역, 특정 시기에 극 히 한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Pot type의 ‘시툴파와 라자마 하 비하라’의 경우 스리랑카 남부 함반토타, Mound type 의 ‘켈라니야 스투파’의 경우 콜롬보 근처의 켈라니야 지 역에만 국한되어 각각 하나 정도의 탑만 해당하는 형식이 다. 스리랑카 전역에서 다양한 시기에 지어진 Bubble type 과 Bell type과는 달리 특정 지역, 특정 시기의 불탑 몇 기 에만 해당하기 때문인데, 이 두 가지 형식은 스리랑카 불 탑의 프로토타입(prototype)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3.2.2.Bell type
그와 달리 Bell type은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와 아누 라다푸라 근교의 미힌탈레 지역에 위치하는 불탑인 ‘암바 스탈라 다가바’,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탑 중 하나인 아누 라다푸라의 ‘투파라마’와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란카라마’, 현재 불치정사가 위치한 도시인 캔디에 있는 ‘마히얀가나 다가바’ 등 여러 사례가 발견되었다. 보통 이 형식은 스리 랑카 아누라다푸라 전기(BCE 250~CE500)에 해당하는 불 탑의 형식으로 볼 수 있다. 작은 종 모양 돔 불탑이 가운 데에 위치하고 불탑 총 높이의 절반 정도의 돌기둥이 불 탑 주변에 3열로 배열되어 있어 스투파하우스의 벽체와 지붕, 돔형지붕이 불탑과 불탑 내부의 부처 사리와 유물 등을 보호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Table.4
3.2.3.Bubble type
Bubble type은 스리랑카 전역에서 가장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불탑 유형이다. 대부분의 메가 스투파는 이 Bubble type에 속한다. 불탑의 모든 구성요소가 다른 유형에 비해 크게는 수십 배 이상 차이 나는데, 이에 각 요소가 커짐에 따라 Bell type이나 Mound type, Pot type에 비해 안정적 이고 넓고 상부가 평평한 돔이 필요했기 때문이라 생각된 다. 메가 스투파의 시초 격인 팃사마하라마 차이티야는 기 원전 3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팃사마하라마 차이티야가 지 어졌던 루후나 공국과 마하세나 왕자의 출신지이자 루후 나 공국의 형제국 격인 아누라다푸라, 아누라다푸라 이후 수도 천도와 함께 전임 왕들이 지은 불탑을 확대하는 작 업을 했던 파라크라마 바후 왕이 통치한 플론나루와 등 대부분의 시기에 걸쳐 Bubble type의 불탑이 널리 건설되 었다. 건립 당시 다른 유형의 불탑이었다고 할지라도 불탑 의 확대작업과 함께 19세기 불탑의 형태가 급격하게 바뀌 는 시기를 전후하여 Bubble type의 불탑이 가장 많이 발 견되는 것으로 보인다.
4.결론 : 스리랑카 불탑 형식에 대한 고찰
스리랑카의 불탑은 수없이 많은 내전과 자연재해, 외국 의 침략 등과 함께 계속된 재건 및 수리 작업 탓에 현존 하는 불탑 중 축조 당시의 모습을 온전히 갖춘 사례가 없 다. 인도에서 전래된 초기불탑이 스리랑카의 토착문화와 결합하여 현존하는 불탑에 이르기까지의 변화과정과 상호 관계 등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다 만 현재 현저히 적은 자료와 원형의 망실로 인해 충분히 연구되지 못하였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이에 본 연구에서 는 연구대상을 현존하는 불탑으로 한정하고, 스리랑카 불 탑의 축조시기와 세워진 지역, 크기와 형태 등을 비교하여 스리랑카의 현존 불탑의 형식에 대해 고찰하고자 하였다. 또한 인도 초기 탑의 전래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 는 간다라탑과 비교고찰하였다.
초기 형식의 특징 중 하나로 보이는 원형기단은 아누라 다푸라 초기의 불탑 다섯 기에서 나타나나 그 시기와 지 역이 극히 제한적이다. 방형기단과 원형기단의 혼재를 거 쳐 방형기단 혹은 방형2층기단으로 정형화되었으며, 인도 탑과 달리 기단의 난간과 탑문은 존재하지 않으나 일부 탑의 기단 벽의 네 면에는 코끼리가 나란히 정면을 향해 부조로 새겨져 있고, 간다라 탑과 유사하게 기둥이 조각되 어 있다. 스리랑카의 일부 탑에서 내부에 바큇살구조가 나 타나는 경우도 있으나 발굴 당시의 자료가 많지 않아 ‘모 두 그렇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추후 확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바큇살구조 역시 간다라 탑의 특징 중 하나로 구조적 안정성을 위한 내력벽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탑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개수는 초기 불탑이 2 개인 반면27) 스리랑카 불탑은 그 크기가 매우 커짐에 따 라 4개의 입구를 가지게 된다. 방형기단에서 탑까지 모래 테라스를 걸어가면 복발의 하부에 장식기단이 있으며 위 에 얹어진 복발은 인도 산치 탑에 비해 소형화되고 장식 기단이 아래에서 받치는 구조로 인해 상대적으로 복발이 높게 올라가 있는 형태를 띤다. 이와 별개로 스리랑카의 남부에서 시작된 메가 스투파의 흐름은 스리랑카 전역으 로 퍼져 많은 수의 Bubble type 불탑이 생겨났다. 축조 당 시에는 다른 형태였다고 하더라도 수리 작업 중에 변화했 을 것으로 추정된다. 복발 상부의 평두는 더 이상 난간의 형태가 아닌 속이 차있는 정방형 부재로 변화하였다. 인도 산치탑에서 3개의 차트라로 구성되어 있던 산개는 스리랑 카에서 그 수가 많아지고 더 이상 산간에 끼워지는 형태 가 아닌, 첨탑 형태의 부재로 이루어져 원기둥형 부재 위 에 올라가 수직적이고 앙천적인 변화를 보인다.
현재 스리랑카의 불탑 연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 으로 활발하지 못한 탓에 고대 역사서에 기록된 불탑 형 식 구분법이 그대로 통용되고 있으며, 그마저도 학자들 간 에 차이를 보여 혼란을 주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현 재로서는 추정만 가능한 스리랑카의 초기 불탑은 우선 배 제하고, 현존하는 스리랑카 불탑으로 제한한 후 스리랑카 불탑의 형식을 재구성하여 추후의 연구에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스리랑카의 불탑은 현재까지 통상 6가지 혹은 7가 지로 분류되어 왔으나, 대상을 현존하는 불탑으로 제한한 다면 이 형식은 4가지 이하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는 Bell type, Pot type, Mound type, Bubble type으로, 이 중 Bell type은 비교적 초기에 지어진 탑 형식인데, 아누라다푸라 지역에서 4기 중 3기가 발견된다. Bubble type은 스리랑카 불탑 중 단연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불탑 형식으로 스리 랑카의 중북부 지방에서부터 남부 지방까지 위치해 있고 규모도 네 형식 중 가장 크다.
동시기에 인도의 북쪽에서 발달한 간다라의 탑과 인도 의 남쪽 섬나라 스리랑카에서 발달한 불탑은 서로 확연히 구분되지만 변화의 큰 흐름은 매우 유사하다. 간다라는 대 승 불교의 흐름이 강했던 반면 스리랑카는 소승 불교의 중심이 되는 나라이나, 지속적인 교류로 각각의 구성 요소 변화에 있어서 상호간 영향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간다라-중국의 경우 복발 아래의 드럼 즉 장식기단이 누 적되면서 상륜형(고탑형)으로 탑이 서서히 변화했을 것이 며, 스리랑카-인도네시아의 경우 방형 기단의 강조와 함께 스리랑카 불탑 방형기단의 네 모서리에 위치한 소형 스투 파 역시 강조되어 만다라 형상의 보로부두르로 발전한 것 으로 보인다. 스리랑카-미얀마-태국의 경우 탑의 상부구조 와 복발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지면서 수직적으로 강조되 고 화려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스리랑카의 불탑에 대한 연구는 아직 많이 미비한 수준 이다. 인도의 산치탑과 간다라 지역의 탑, 또한 스리랑카 에서 영향을 받은 미얀마나 태국, 인도네시아의 탑의 흐름 을 살펴 연구를 지속해야 할 것이며. 특히 후속 연구에서 는 자료의 미비함이 좀 더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