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머리말
1-1.연구의 배경 및 필요성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소리풍경)의 사고방 법은 지구상의 여러 시대와 지역의 사람들이 자신 들의 소리환경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가 를 문제로 하여 각각의 소리환경을 개별의 소리문 화로 재파악하는 것이다. 이 단어를 계기로 우리는 잊으려 했던 자신들의 소리풍경의 미학, 생활에 있 어서 풍요로운 소리의 문화를 생각해 낼 수 있게 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몸을 통해 생활 속에서 주위 세계를 어떻게 느끼는가, 각각의 공간을 어떻게 이름짓고 그 환경을 어떻게 파악하 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을 청각을 수단으로 우리에 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 사운드스케이프이다.1)
삼림과 해안 등으로 대표되는 자연환경에서 도시 환경에 이르기까지 이제까지의 환경의 보전과 계획 은 시각적인 것, 형태가 있는 사물을 그 주요 대상 으로 해왔다. 그러나 우리들은 자연이나 도시를 눈 의 풍경만으로 그 맛을 체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는 각각 독자적인 울림이 있고 활기나 조용 함이라는 분위기가 있다. 사운드스케이프는 지금까 지 음악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던 사람들의 미적 청취활동을 일상적 소리환경에도 귀를 기울이 게 하여 사람들이 그때까지 의식하지 못했던 소리 의 존재를 깨닫고, 동시에 일상의 생활공간에 감춰 져 있는 매력있는 다양한 소리의 존재를 발견하게 해 준다.2)
전남 담양의 소쇄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원림이 자 민간 정원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라는 점 에서 건축학, 조경학, 인문학 등의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특히 김인후의 48영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주로 소쇄원의 구성요소나 공간구성 혹 은 원림의 조영방법에 표현된 의미나 미학적 관계 를 파악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공간이나 도시 계획에서 시각적 형태 혹 은 사물을 중시하면서 어떻게 기능적이고 효율적으 로 만들 것인가라는 점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생각 하고 있는 현재, 청각을 포함한 전신감각적 사고의 확대를 지향하는 소리풍경의 사고방식으로부터 우 리의 옛 전통 정원의 조영의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 하는 소리풍경(soundscape)의 미학적 관점에서 접 근한 연구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사운드스케 이프의 개념으로부터 우리의 자연과 전통을 간직한 소쇄원 원림의 조영의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1-2.연구의 목적
마을이나 지역에는 그 토지만이 갖는 소리의 자 원이 있다. 사람에 따라 의식의 유무나 차이가 있지 만 소리의 풍경은 기억이나 이미지를 통해서 특정 의 공간이나 지역을 우리들과 연결시키고 있다.3)
소쇄원은 평소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소리의 존재를 깨닫고 그 공간에 감춰진 다양한 소리의 존 재를 발견하게 해 주는 최고의 소리풍경 명소로, 이 곳에서 김인후는 시각과 청각을 포함한 오감의 감 성 체험을 시적 표현의 대상으로 소쇄원의 미적 가 치를 구상하고 그 아름다움을 48영이라는 시로 작 시하였다.
이 연구는 김인후의 48영에 표상된 소쇄원의 다 양한 환경 자원을 분석하고, 당시 그의 소리환경에 대한 배려나 분위기를 자아내는 감성적 사고가 배 어있는 48영의 시에서 사운드스케이프의 개념과 사 상을 기초로 하여 소쇄원 조영의 의미와 가치를 재 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3.연구의 방법 및 내용
우선 김인후가 작시한 소쇄원 48영을 대상으로 제 영에서 묘사되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온각 등의 다양한 감성으로 부터 제영에 표상된 경 관자원을 추출하여 분류하고, 그가 소쇄원의 조영 경관의 아름다움을 어떤 요소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파악한다.
김인후의 48영의 시에서 소리풍경으로써 이미지 되는 것은 개개의 소리가 서로 어우러진 소리환경 전체이고, 소리풍경은 그들 개별의 소리가 어떻게 조합되어 하나의 경관 혹은 풍경을 형성하고 있는 가라는 점이다.4) 따라서 청각적 소리경관 개별의 요소를 48영의 제영과의 관계속에서 파악하고, 소쇄 원의 청각적 경관 요소들을 중심으로 오감으로 확 대하는 사운드스케이프의 개념을 전개하여 그 이념 과 사상의 관계로 부터 소쇄원 조영의 의미와 가치 를 재발견한다.
2.김인후의 48영과 사운드스케이프 의미 고찰
2-1.소쇄원과 김인후
소쇄원은 전남 담양군 지곡리 123번지에 소재하 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림이다. 1981년 국 가 사적 304호로 지정된 한국민간 정원의 원형을 간직한 곳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 가적 삶을 산 조선시대 선비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 으로서 경관의 아름다움이 가장 탁월하게 드러난 문화유산의 보배이다.5)
김인후는 학자이자 문장가로 당대의 대표적인 성 리학자였으며 조경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성산 주변의 속칭 정자골에 있는 식영정을 비롯하여 서 하당, 환벽당, 소쇄원 등에 수시로 출입하며 시를 지었는데, 소쇄원이 활동의 주 무대였고 소쇄원에 관하여 많은 시와 글을 썼다. 김인후는 양산보에 비 하여 7년 수하지만 일찍부터 교우관계가 있었으며 사돈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소쇄원에 자주 들러 기 거하였다. 소쇄원 48영은 김인후(1510~60)가 소쇄원 의 빼어난 경물과 경치를 소재로 읊은 5언 절구의 시이다. 소쇄정에 붙여 시를 읊을 때 그의 시는 단 순히 소쇄원 주변 경승 48개소의 자연경관을 아름 답게 묘사했고 작가의 정신사상을 표출하고 있다. 48개의 경관이 무질서하게 나열된 것이 아니라 소 쇄원 전체의 구도와 형상미를 질서와 조화를 이루 며 안배한 것이다. 48영은 1755년 제작된 소쇄원도 에 새겨져 있다.6) Fig.1, Fig.2
2-2.소쇄원 48영에 대한 연구동향
소쇄원 48영을 대상으로 한 선행 연구는 주로 건 축학, 조경학, 인문학 등의 분야에서 다루어졌다. 우 선, 김현·김용기(1993)는 경관에 대한 심상과 사고 의 특성이 잘 나타난 소쇄원 48영을 분석·고찰하 고 이를 공간상에 투영시켜 당시 소쇄원의 이용자 가 지각하는 경관의 특성을 규명하였다.7) 천득염·한승훈(1994)은 소쇄원도와 소쇄원48영을 통하여 소 쇄원의 구성요소를 분석하고 그 공간구성과 조영에 표현된 내면적 의미를 파악하였다.8) 박욱규(1998)는 소쇄원 48영의 자연관 수용양상이 원정적(園庭的)·관조적(觀照的) 자연시로써, 원정의 배치나 조화로 움을 사실적으로 관찰하여 소쇄원 전체의 구조적 질서의 아름다움을 시로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하였 다.9) 강영조(2001)는 경관 체험과 평가가 무엇을 함 의하고 있는가와 그 체험과 평가의 원천을 고찰하 는 것을 목적으로, 소쇄원 48영을 분석하여 공간과 형, 인간의 세 요소가 경관체험과 평가에 관여하고 공간내의 신체적 이용의 이변성이 그 원천이라 하 였다.10) 김영모(2003)는 시짓기의 방법이 원림 조영 방법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원 림 조영방법의 관련성과 이론적 전제를 토대로 소 쇄원 48영에 나타난 원림의 조영방법의 내용을 고 찰하였다.11) 안봄(2004)은 소쇄원의 건축적·조경적 요소가 문학적·미학적으로 형상화한 양상과 특징 을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소쇄원 48영의 구성과 내 용을 분석하고 소쇄원이 공간적·조경적 요소와 계 절감, 자연의 서경과 서정, 색채 등을 잘 조화시켜 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고 하였다.12) 정경운 (2007)은 소쇄원을 ‘빛과 소리의 정원’으로 규정하여 다양한 방식의 시각예술과 청각예술의 양상들을 도 출하고, 감각 전이를 통한 공감각적 예술 행위로 확 장됨으로써 심미적 체험의 영역이 열린 하나의 예 술 텍스트로 구현 가능성을 갖는 정원으로 보았 다.13) 조태성(2009)은 소쇄원 48영의 작품에 투영된 작가적 감성과 소쇄원 공간구조나 조영방식의 미학 적 관계와 상관관계를 파악하여, 소쇄원의 공간미학 은 조영인과 동일한 감성 표출과 공유에서 비롯되 고 있다는 점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14)
김인후의 48영과 관련된 연구들은 주로 소쇄원의 자연을 관념적 자연으로 인식하고 도학적 관점에서 파악하거나 소쇄원의 건축이나 조경 요소를 문학적 혹은 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문학적 관점도 포함하여 시각예술이나 청각예술로서 승화 하거나 감성적 인식의 문제로 까지 확대해가고 있 다. 또 소쇄원의 공간 실측의 통한 공간 원형 연구 혹은 물리 환경적 특성을 파악하거나 시각적, 청각 적 혹은 행위적 관점에서 소쇄원의 경관 및 조형 특성을 주제로 연구가 이루어졌다.
2-3.사운드스케이프와 소쇄원 48영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는 1960년대 북아메 리카에서 활발하게 전개된 생태학(ecology) 운동을 배경으로 캐나다의 현대음악의 작곡가인 머레이 셰 이퍼(Murray Schafer)가 제창한 용어로서, 자연이 나 도시를 둘러싼 서양 근대의 다양한 계획론이 시 각에 편중해 온 것에 대해 청각을 단면으로 전신감 각적인 사고를 되찾으려고 하는 이념이다. 전문적으 로는 ‘개인 또는 특정의 사회가 어떻게 지각하고 이 해하고 있는가에 강조점을 둔 소리환경’으로 정의되 는 사운드스케이프는 서양의 현대사회에서 만들어 진 개념이면서 지구상의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자신의 소리환경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문제로 한다.15)
사운드스케이프의 사고방식은 자연계의 소리에서 부터 도시의 웅성거림, 도구나 기계의 소리와 같은 인공의 소리에 이르는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소리 를 하나의 풍경으로써 파악한다. 이제까지 개별로 검토하여 온 소리 혹은 음향현상과 그 가치를 개개 의 소리로만 고찰하였던 소리를 둘러싼 요소주의 사고에서 탈피하여 소리환경 전체를 하나의 경관 혹은 풍경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특히 각종 계기에 의한 계측을 기본으로 소리를 파악했던 종래의 기 계론적 환경관에서, ‘환경은 주체에 따라서 의미지 어지고 구성되는 세계’라는 의미론적 환경관으로 전 환하거나 확대해 간다.16)
여러 시대와 지역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리환경 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가를 문제로 각 각의 소리환경을 개별의 소리문화로 재파악하는 사 운드스케이프는 현대의 예술사상과 생태학(ecology) 이라는 영역에 그치지 않고 도시, 사회, 환경과 관 련된 여러 가지 사상과 활동 뿐아니라 사람들의 생 활에 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17)
김인후의 48영은 소쇄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는 작품으로, 그는 정자, 연못, 물레방 아, 홈통, 다리 뿐아니라 각종 동식물까지 다양한 자연물과 인공물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그는 소쇄원의 다양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 거 기에서 들리는 소리를 감상하면서 소리를 풍경의 중요한 요소로써 파악하고 있다. 예를들면, <Tab.1>의 제1영18)은 소리의 풍경과 관련된 내용 이 담겨져 있다. 김인후는 소정에 앉아 대숲에서 불 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쐬고 옆에 흐르는 계곡의 물 소리를 들으며 소쇄원의 아름다운 소리풍경을 노래 한다. 소쇄원의 대표적인 청각적 경관 자원은 물이 다. 지금도 여름 장마 후에 비교적 많은 물이 흐르 는 계곡은 시냇물이나 폭포 등의 물소리로 여름의 시원함을 더해준다. 또 전남 담양은 본래 대나무가 많은 곳으로 남면 지곡리에 위치한 소쇄원은 대나 무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곳에서 들리는 대나무 가 바람에 휘는 소리, 사각사각하는 잎사귀의 울림 은 소쇄원의 풍부한 감성적 사고를 불러 일으키게 한다. Fig.3, Fig.4
3.김인후의 48영에 표상된 오감의 경관 자원
3-1.오감의 경관 분류
<Tab.2>는 김인후의 48영에 표상된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온각 등의 오감의 경관 요소들을 분류하여 정리한 것이다. 이것은 김인후가 48영의 시에서 표상하고 있는 소쇄원에 대한 오감의 경관 자원으로, 그는 소쇄원의 조원과 관련하여 시각, 청 각, 후각, 촉각, 미각/온각 등의 다양한 오감의 경관 요소들을 자신의 작품 소재로 이용하고 있다.
3-2.오감의 경관 요소
<Tab.3>는 청각요소를 대상으로 분류·정리한 것 으로 대별하면 소쇄원의 자연의 경관요소(74.4%)와 생활에서 나타난 경관요소(18.6%), 그리고 소쇄원의 조용한 분위기를 의미하는 고요함/적막함(7.0%)도 포함된다. 자연요소는 물(37.2%), 바람(18.6%), 새 (4.7%), 동물(9.3%), 물체(4.7%)의 소리이며, 생활요 소는 행위(11.6%), 악기(2.3%), 신호(4.7%)로 분류된 다. 청각의 경관요소는 자연계의 소리중 물과 바람 의 요소를 가장 많은 빈도로 표현하고 있다.
<Tab.4>는 시각요소를 대상으로 공통된 의미 요 소들을 분류하여 정리한 것이다. 자연의 경관요소 (74.2%)와 인공의 경관요소(25.8%)로 대별되며, 이 중 자연요소는 물(8.6%), 나무(9.0%), 꽃·잎/열매 (8.2%), 돌(7.7%), 산(7.7%), 숲(4.3%), 길/계곡 (6.9%), 동물(3.9%), 천우(10.7%), 우주/세계(7.3%), 그리고 인공요소는 건축물(1.3%), 구조물(9.4%), 장 소/공간(1.3%), 물건/물체(7.7%), 인간(6.0%)으로 분 류된다. 김인후는 소쇄원의 조원에 관련된 자연과 인공의 다양한 시각의 경관요소를 망라하여 48영의 시에서 묘사하고 있다.
<Tab.5>는 시각과 청각 이외의 촉각, 후각, 미각 /온각의 요소를 분류·정리한 것으로, 소쇄원 48영에 서 분류된 오감의 경관요소의 출현 비율(빈도)은 시 각 74.4%(233), 청각 13.7%(43), 촉각 5.1%(16), 후 각 2.2%(7), 온각 3.2%(10), 미각 1.3%(4)를 차지한 다. 여기서 48영의 시에서 나타난 오감의 출현빈도 는 작가의 감성과 사고로 표상된 상대적 빈도로 시 각이 청각의 우위를 점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 들이 체험하는 공간은 전신감각적인 것이며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의 배려이자 분위기이다.19) 김인후가 48영에서 표현하고 있지 않는 소쇄원의 경관이나 환경의 오감의 감성 요소는 그가 묘사하고 있는 시 의 전체 내용과 소쇄원의 공간 분위기를 통해서도 충분히 음미해 낼 수 있다.
4.김인후의 48영에 표상된 소리풍경
4-1.음향적 소재
공동체의 사운드스케이프는 기본적으로 신호음의 집합인 전경(前景)과 청각적인 배경이 되는 후경 (後景)의 2가지로 해석되고 있다.20) 후경의 내용을 파악하는 하나의 틀로써 음향적 소재(acoustic materials)가 있다. 이 음향적 소재는 사운드스케이 프의 후경에서 그 공간의 기본적인 음압의 윤곽 및 음질과 음색을 결정하는 것으로 그 대표적인 것이 물이다. 또 나무와 돌도 중요한 소재가 된다. 시냇 물의 울림은 사운드스케이프의 기조음(基調音)21)이 되고 그 곳의 독자적인 물의 존재방식이 사운드스 케이프의 후경, 말하자면 공간적인 기복을 규정하고 있다.22)
(1)자연의 소리 ; 물과 바람
<Tab.6>는 소쇄원 48영의 청각요소중 가장 많은 빈도를 보여준 물과 바람의 경관요소에 대한 어구 표현을 정리한 것이다.
원초의 생명요소인 물은 모든 소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상징성을 갖고 있다. 비, 시내, 분수, 강, 폭 포, 바다는 모두 각각의 소리를 내지만 공통의 풍부 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즉 정화(淨化), 순화(純 化), 회복(回復), 재생(再生)을 의미한다.23)
오곡문을 통해서 흘러내려온 물은 바위를 흘러내 리거나 나무홈통을 타고 연못을 거쳐 입구의 시내 로 흘러간다. 귀를 기울이면 물소리는 다양한 구성 음으로 이루어진 화음으로 스테레오처럼 울려퍼지 듯 들려오는데, 마치 다양한 울림을 연주하듯 물의 특이한 심포니를 들을 수 있다. 졸졸 흘러내리는 여 울의 소리, 폭포의 소리가 다양한 악기의 리듬과 템 포로 전달되는 오케스트라이다. 김인후는 소쇄원의 물소리를 담장밑을 뚫고 흘러내리는(14영) 물이 흩 어져 바위를 씻어내리거나(3영) 나무홈통을 타고 굽 이쳐 흐르며(7영) 물보라를 일으키고(8영) 세차게 쏟아지고(7영, 34영) 구슬굴리듯 소리내며 흐르는(1 영) 아름다운 화음으로 묘사하고 있다(<Tab.6> 참 조). 또 제11영에서는 무더운 여름 연못 물이 바위 에 흩어져 내리는 청량감을 고을밖에서 내리쬐는 태양빛과 대조시켜 묘사한다.
한편 바위나 돌은 물과는 달리 그 자체가 자발적 으로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부서지거나 닳거나 혹은 다른 힘을 받아야 소리를 낸다. 어떤 종류의 크기의 돌 혹은 바위가 어떻게 나열되어 있고 그 위를 어떤 신발이나 교통수단으로 사람들이 이동하 는가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24) 김인후는 물이 바위 를 씻어내리거나(3영) 섬돌을 걷거나(23영) 바위를 쓰는 행위(24영)로 묘사하고 있다.
물이 서로 다른 표면이나 소재위에서 각기 다른 소리를 낸다는 것만으로도 풍부한 발명의 주제가 되기도 하는데25), 김인후는 나무로 만든 홈통을 배 치해서 이 나무홈통을 뚫고 굽이쳐 흘러 네모진 방 지에 미끄러지듯 흘러들고 세차게 쏟아지는 물의 힘으로 물방아가 회전하면서 물이 흩어지는 풍경으 로 묘사하고 있다26)(7영, 8영).
한편, 지리나 기후가 그 지역 사운드스케이프에 고유한 기조음을 만들 듯, 물처럼 바람도 그 소리를 무한히 변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곳 에서 바람만으로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바 람의 방향성은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갈 때 마다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는 나무에서 찾을 수 있 다. 자연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 가운데 유독 귀를 강하게 사로잡는 것이 바람이다. 이것은 청각적일 뿐아니라 촉각적이기도 하다.27) 김인후는 바람소리 를 소쇄원의 대나무와 연관지어 청각적·촉각적 현 상을 표현하고 있다. 계곡의 시원한 바람을 피부로 느끼거나(1영, 19영), 자연스레 고요히 불어오는 바 람이 대잎을 스치면서 다양한 음조로 술렁이는 대 나무의 울림(10영, 11영, 29영)으로 전해준다.
(2)생명의 소리 ; 새의 노래
정원을 기분좋은 분위기로 만드는데 작은 새도 한 몫을 한다. 자연의 소리 가운데 새의 울음소리 만큼 인간의 상상력에 애착을 주는 소리는 없다고 한다. 새울음 소리는 일정한 원근감이 있어 어디에 서 나는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또 각 지역에는 새들의 독자적인 교향곡이 있다. 그곳에 사는 인간 의 언어와 비슷하게 그 지역 특유의 기조음을 형성 하고 있다.28)
김인후는 자신이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가는 삶을 새의 행위로 묘사하고 있다(31영, 32영). 물론 새의 울음소리를 직접 묘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새들의 모습 혹은 행위로부터 새들의 울음소리를 소리풍경 으로 이미지화 할 수 있다.29)
4-2.하이파이/로우파이 사운드스케이프
시각에서 차용한 개념중 하나가 도형(figure)과 배경(ground)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도형은 관심의 초점이고 배경은 말 그대로 배경이 나 컨텍스트(context)이다. 무엇이 도형 혹은 배경 으로 받아들여지는가는 주로 장(場) 그리고 관찰자 와 장(場) 사이의 관계로 결정된다. 도형은 신호음 과 표식음30)에 대응하고, 배경은 주위의 주변소음이 고 동시에 기조음이 되기도 한다. 더욱이 장은 모든 소리가 발생하는 곳, 즉 사운드스케이프 전체와 대 응한다. 어떤 소리가 도형 혹은 배경이 되는가는 문 화변용에 의한 부분도 있고, 개인의 심리상태(기분/ 흥미) 혹은 개인과 장과의 관계에도 관련이 있지만, 소리의 물리적 차원과는 어떠한 관계도 없다.31)
하이파이(Hi-Fi)32) 사운드스케이프에서 소리가 겹치는 일은 별로 없다. 여기에는 도형과 배경이라 는 원근법이 있다. 하이파이 사운드스케이프에서는 주위가 조용하기 때문에 매우 먼 곳의 소리까지도 들을 수가 있지만,33) 로우파이(Lo-Fi) 사운드스케이 프에서 개개의 음향 신호는 다른 소리에 파묻혀져 버리며 원근감도 잃어버린다.34)
소쇄원 48영중 제22영의 바둑두는 소리와 멀리서 대나무잎이 사각거리는 소리는 각각 도형과 배경으 로 원근감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또 글을 읊거 나(14영), 시조를 읖거나(23영) 거문고를 타거나(20 영) 사립문을 두드리거나 객이 부르는 음성(39영), 닭울음소리(47영) 등은 소쇄원의 물소리나 바람소리 를 배경으로 도형으로 인식되고 또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 그 방향과 원근감을 쉽게 알 수 있다.
4-3.기조음(基調音)과 신호음(信號音)
기조음(keynote sounds)은 모든 소리 지각의 기 초로 의식적으로 듣지 않는 모든 소리이다. 가장 독 특한 기조음은 대부분 다양한 지리적 조건을 갖는 지역의 소재에서 나온다. 즉, 대나무, 돌, 금속, 나무 라는 소재의 소리, 그리고 물이나 석탄이라는 에너 지원의 소리이다. 기조음은 전경보다는 소리의 배경 을 형성하므로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특별 히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기조음이 변하거나 없어지거나 하면 사람들의 의식에 날아든다.35)
소쇄원 48영에 표상된 청각요소의 대부분은 기조 음에 해당되며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영향력을 지 닌 소리는 물소리이고 다음으로 대잎에 스치는 바 람소리이다(<Tab.3> 참조). 물소리는 기조음이지만 그 리듬은 소쇄원 사운드스케이프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계절에 따른 물소리의 리듬과 템포의 변화 는 지금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신호음(sound signals)은 청각적 도형으로 의식적 으로 들리는 모든 소리이다. 소쇄원 48영에서 신호 음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제39영의 손님맞이에서 사립문 두드리는 소리와 주인을 부르 는 음성처럼 음향적 경고 혹은 통신과 관련된 소리 이다. 물론 기조음과 신호음은 도형과 배경의 지각 에서 처럼 개인의 심리상태 혹은 개인과 장과의 관 계에 따라 변할 수 있다.
4-4.음향적 리듬과 템포
환경에는 많은 리듬이 있다. 그것들은 낮과 밤을 구분하고, 태양과 달, 여름과 겨울을 구분한다. 전세 계 모든 곳에서 마찬가지로 천체의 보편적인 주기 법칙에 따라 땅 고유의 생생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의 주기에 따라 각 악기 연주자는 자신이 언제 연주하고 언제 다른 연주자가 연주를 듣고 있 으면 좋을 지를 알게 된다. 24시간 주기나 계절의 리듬은 우리의 생활영역에서도 관찰된다. 공동체의 소리 신호가 마을 생활에 시간적인 구획을 만드는 것 뿐아니라, 그 소리의 출현이 다른 소리를 차례차 례 자아냄으로써 실로 정연한 리사이틀을 만들어낸 다.36)
<Tab.7>은 소쇄원 48영에 표상된 감성 요소를 오감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시간과 계절을 파악하여 분류·정리한 것이다. 시간이나 계절에 따라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에 따라 저녁의 고요 함, 바람, 대피리 소리(10영), 새소리(32영), 비와 폭 포소리, 오후의 사립문 소리, 음성, 말발굽 소리(39 영), 닭울음(47영) 등의 청각 요소로부터 사운드스 케이프의 시간적 리듬과 템포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또 여름의 바람소리와 물소리(11영, 34영), 멱 감는 소리(25영), 비소리와 폭포소리(38영), 가을의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잎(44영), 겨울의 대잎과 닭울 음(29영, 47영) 등 계절에 따른 음향적 리듬 패턴과 템포의 변화도 읽어낼 수 있다.
소쇄원의 소리의 패턴은 여름철에 특징적으로 나 타난다. 이것은 48영의 내용에서 계절을 직접 파악 할 수 있는 빈도(봄4회, 여름9회, 가을2회, 겨울4회) 뿐아니라 여름의 대표적 청각적 경관 요소로 물과 바람소리가 자주 묘사되는 것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또 소쇄원은 시간과 계절이라는 시간축이 사운드스 케이프의 리듬과 밀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시간축으로 전개하는 사운드스케이프에 는 리듬과는 다른 템포도 있는데, 개개의 사운드스 케이프가 갖고 있는 기본적인 속도와 같다.37) 소쇄 원 48영에 표상된 물소리의 어구표현(<Tab.6> 참 조), 즉 구슬굴리듯, 줄줄, 빙빙, 콸콸 흐르고, 세차 게 쏟아지고, 굽이치는 물소리의 양태로 부터 다양 한 음향적 리듬과 템포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사운드스케이프의 사고방법으로 파악된 환경은 기억으로서 환경이라는 특징이 있다. 사운드스케이 프는 시간의 경과 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사라 지는 소리의 기억의 집적이다. 또, 하루와 일년이라 는 시간적 주기 속에서 사운드스케이프의 변화, 사 운드스케이프의 리듬과 주기가 존재하고, 이것으로 부터 사운드스케이프의 사고방식에서 파악된 환경 은 프로세스로서의 환경이라는 특징을 나타낸다.38) 이런 점에서 보면 소쇄원의 사운드스케이프도 역시 기본적으로는 환경을 생성 변화해 가는 하나의 프 로세스로서 파악된다고 할 수 있다.
소쇄원의 소리풍경은 소쇄원의 지형이나 지질의 종류와 형상, 건축물과 담장, 그리고 이들을 둘러싸 고 있는 나무와 숲의 소리의 반사와 잔향 등이 일 종의 공명상자로써 소쇄원의 소리풍경 특성을 규정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4-5.소리의 차경(借景)
소쇄원은 건축물과 자연계와의 관계로부터 시각 의 차경원리를 조원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고 있 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39) 소쇄원은 인공과 자연과 의 관계, 즉 인위적인 작품(건축물)과 자연계와의 관계를 잘 조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조원자가 정원 과 내외부의 경관이 잘 어울리도록 건축물, 식재의 종류나 크기, 위치 등을 결정하는 방식에서 차경수 법과 닮아있다. 보통 일상의 풍경을 구성하는 한 요 소로서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던 산도 차경 정원이 라는 미적인 장식을 통해서 보면 어느새 그 능선의 기복이나 산의 색조 등이 다양하고 미묘한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이처럼 같은 산인데도 보여지는 방 식이 다른 것은 산을 바라보는 주체의 관점이 다르 기 때문이다.40)
소리의 차경원리는 셰이퍼(R. M. Schafer)가 음 악작품을 콘서트홀 밖의 세계로 넓혀가는 것에 의 해 사람들의 미적 감성을 현실의 소리환경으로 열 어가고자 하는 원리로, 실제의 시간과 공간 및 그 곳을 체험하는 사람들의 신체를 통해 실현되게 한 것이다.41)
소쇄원 48영중 제22영은 평상바위에서 바둑두는 소리를 우박이 흩어져 내리는 미묘한 음색으로 비 유한다. 바둑알 소리가 공중에서 우박이 흩어져 내 리는 듯이 똑똑히 들려오는 청각적 표현은 바둑두 는 소리가 우박이라는 일종의 청각적 비유를 통해 받아들여지고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또 제20영은 편평한 바위에서 폭포소리를 들으며 거문고를 타는 풍류를 표현하는데, 여기서 거문고의 곡조는 자연의 폭포소리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미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소쇄원의 소리환경으로 확 대해 준다. 이것은 바위에서 거문고를 타는 예술 행 위가 소쇄원의 소리환경과 새로운 관계를 맺음과 동시에 실제 환경으로 확대하여 사람들에게 소쇄원 의 소리환경에 대한 감성을 발동시킨다. 이점은 시 의 내용과 표현을 통해 의미를 해석한 것으로, 지금 도 소쇄원의 소리풍경은 인간과 환경사이에 풍부한 미적 감성을 사람들에게 온전히 전해주고 있다.
5.맺음말
이 연구는 김인후의 48영에 표상된 소쇄원의 다 양한 환경 자원을 분석하고, 당시 그의 소리환경에 대한 배려나 분위기를 자아내는 감성적 사고가 배 어있는 48영의 시에서 사운드스케이프의 개념과 사 상을 기초로 하여 소쇄원 조영의 의미와 가치를 재 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인후가 작시한 소쇄원 48영을 대상으로 제 영 에서 묘사되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온각 등의 다양한 감성요소로 부터 제영에 표상된 경관 자원을 추출하여 분류하고, 그가 소쇄원의 조영 경 관의 아름다움을 어떤 요소로 어떻게 표현하고 있 는지를 파악하였다. 특히 소쇄원 48영에서 표상하고 있는 청각의 경관요소를 중심으로 오감으로 확대하 는 소리풍경이라는 사운드스케이프의 개념과 사상 으로부터 소쇄원의 조영의 의미와 가치를 해석하였 다.
김인후의 48영은 소쇄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는 작품으로, 그는 소쇄원의 조원과 관 련하여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온각 등의 다 양한 오감의 경관요소들을 작품의 소재로 이용하고 있다. 또한 소쇄원의 다양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 거 기에서 들리는 소리를 감상하면서 소리를 풍경의 중요한 요소로써 파악하고 있다. 그는 시간 혹은 계 절에 따라 달라지는 소쇄원의 흥미로운 변화를 풍 부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귀로 듣는 소리풍경 뿐아 니라 그곳에서 느끼는 향기나 감촉까지도 담고 있 다. 소쇄원에서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소리의 울림은 소쇄원의 냉기, 나무들의 향기, 산의 신비 등을 모 두 결합한 하나의 전체적 감각으로, 물리적 음향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은 보다 넓은 세계로 확대하고 있다. 소쇄원의 미학적 풍경은 단지 눈이나 귀로 파 악하는 것만이 아닌 공기의 팽창이나 촉감 등도 포 함한 전신감각으로 느끼는 소쇄원만이 갖는 공간의 배려이자 분위기이다.
양산보가 소쇄원에서 토지나 환경 그 자체에 축 적된 자원, 혹은 자연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창조력 을 끌어내어 그것을 이용자들과 향수하고 나누어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면, 김인후는 그가 매 일 매일의 생활속에서 소리를 듣고 맛보는 것의 기 쁨을 느끼면서 자신의 시를 통해 소쇄원의 소리풍 경의 매력을 우리에게 전해주면서 소쇄원이 시적으 로 풍부한 소리의 정원이자 음향적으로 배려된 공 간임을 전해준다.
소쇄원에서 듣는 소리는 자연의 오케스트라의 소 리와 우리들과의 미적 커뮤니케이션을 연계해 주면 서, 당시에 느낄 수 있었던 소쇄원의 소리의 향연이 현재에도 변함없이 우리들에게 음악적 감흥 뿐아니 라 삶의 향기까지도 오롯이 전해 주는 감성적 공간 이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