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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598-1142(Print)
ISSN : 2383-9066(Online)
Journal of architectural history Vol.24 No.6 pp.7-19
DOI : https://doi.org/10.7738/JAH.2015.24.6.007

A Study on Photographs of Modern Incheon and Hansung in Griffis Collection

Kyeong-Min Lee, Sang-Hyeon Yang*, Byeong-Kuk Moon
Corresponding Author : sonamu@sch.ac.kr
January 22, 2015 October 28, 2015 December 1, 2015

Abstract

‘Griffis Collection’ is a collection of photographs of Japan and Korea in modern era, collected by William Elliot Griffis. Originally Mr. Griffis was studying about Japan when he developed an interest on Korea, and started to collect helpful materials he could find to study. Later days of Griffis’ life, he donated his research to Rutgers University Library, and those materials were named and preserved as Griffis Collection. This paper is about photographs that illustrate modern Incheon and Hansung, and study them in order to discover how Korea’s modern cities and architecture were formed and built. In total, there is four categorized chapters of photographs, and those are cities, public buildings, educational facilities and private buildings. In Griffis Collection, there are 23 photos those are relate to this paper’s subject, but only 19 of them that has historic value has been covered in this paper. In results, all 19 photos were proved that they have significant information in terms of historic research of modern Korea and Korea’s modern architectural stages.


그리피스 컬렉션에 포함된 근대 인천과 한성 사진 연구

이 경 민, 양 상 현*, 문 병 국
(순천향대학교 건축학과 석사과정)
(순천향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순천향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초록


    Soonchunhyang University

    1.서 론

    1-1.연구 목적

    19세기 말 이후 한국 근대 도시와 건축의 모습을 이해 하는데 있어 사진자료는 현재 존재하지 않거나 변형된 과 거의 정황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한국의 도시는 지난 백 여 년 간 엄청난 변화를 겪어와 건축과 도시의 과거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쉽지 않은 바, 알려지지 않 았던 옛 사진의 발견은 학술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 본 연구는 미국 뉴저지 럿거스 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그리피 스 컬렉션의 한국 관련 사진 중 근대 인천과 한성의 도 시, 건축의 모습을 담은 자료를 소개하고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정보를 해석함으로써 개항기 한국의 근대 초기 모 습을 시각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유용한 사료를 제공하고 자 한다.

    1-2.연구 대상 및 방법

    본 사진자료를 수집한 윌리엄 그리피스 (William Elliot Griffis 1843-1928)는 1882년,「은자의 나라 한국 (Corea: the Hermit Nation)」을 발표하여 우리나라를 서구에 소개한 미국의 대표적 동양학자이자 저술가로서, 한국과 관련된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광범위하게 모아 연 구했다. 그리피스가 죽고 난 뒤 가족들은 자료를 그의 모 교인 럿거스 대학교의 도서관에 기증하였으며, 이는 ‘그리 피스 컬렉션(Griffis Collection)’으로 명명되어 보관되어 있다.2) 여기에는 그가 생전에 모은 잡지, 책자, 인쇄물, 사진, 편지, 스크랩북, 서신과 쪽지들이 있는데 일본에 관 한 자료가 다수를 차지하며, 대략 1/4 정도가 한국과 중 국에 관한 자료들이다.

    그가 수집한 자료 중 일부는 사진들로서, 이 중 일부는 이미 알려진 사진과 동일하나 300여장이 넘는 사진들은 그동안 국내에 공개된 적이 없는 사료들로서 상당한 학술 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최근 그리피스 컬렉션의 한국관 련 사진자료에 대한 연구3)가 진행되어 그 역사적, 학술적 의의가 드러난 바 있다.

    선행 연구에서 소개된 그리피스 컬렉션의 사진들은 풍 경, 풍속, 유적 및 인물 등 다양한 생활상에 걸쳐 있지만, 본 연구는 이중 인천과 한성의 도시와 근대 건축의 모습 을 보여주는 사진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연구의 진행을 위하여 먼저 그리피스 컬렉션 중 근대 인천과 한성의 도시 모습 및 근대 건축물들을 찍은 미공 개 사진들을 골라 분류하고, 해당 건축물에 관한 도면 및 문서 자료 등을 함께 비교, 분석하였다. 또한 사진 속에 포함되어 있는 다양한 시각적 정보들을 해석함으로써 이 를 통해 근대 한국의 도시와 건축의 모습을 근사하게 유 추하고자 하였다.

    2.그리피스 컬렉션의 근대 도시·건축자료 현황

    그리피스 컬렉션의 한국 관련 사진들 중 근대 인천 및 한성의 도시, 건축에 관련된 미공개 사진은 총 23장이다. 이들은 인천 제물포 개항장, 경성이사청 등의 공공시설, 한성전기회사 등의 민간시설, 그 외 교육시설의 모습들로 서, 그 분류는 아래 표와 같다. 본 논문에서는 흐릿한 채 색 사진이나 기존에 존재하는 사진과 거의 동일한 사진 등 4장을 제외한 19장의 사진을 소개, 고찰하였다. 본고 에서 사진의 이름에 부가되어 있는 괄호 속의 표기는 럿 거스대학 그리피스 컬렉션의 소장 위치를 지칭하는 기호 다.

    3.사진자료 분석

    3장에서는 위의 <Tab.1>에서 정리된 네 가지의 분류 에 따라 대상 사진들을 분석할 것이다. 촬영 대상의 유사 성에 따라 분류된 사진들을 각 절로 묶어 고찰하는 것이 근대 초기 한국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유추하는데 있어 보 다 유용한 틀이 될 것이다.

    3-1.근대 인천과 한성의 도시 사진

    근대 도시의 풍광을 다룬 사진들은 인천 제물포를 찍 은 것들과 한성 시내에 위치한 명동성당의 모습을 담은 사진 등 총 7장이 있으며 여기에서는 내용이 흐릿하거나 단순한 풍광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낮다고 판단한 두 장을 제외한 다섯 장의 사진을 고찰하였다.

    <Fig.1>은 인천항 전경으로 사진의 화각으로 보아 월 미도 정상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1875년의 한일수호 조약과 뒤이어 체결된 제물포 조약으로 1883년 1월에 인 천항이 개항되었다. 이 사진 하단에는 ‘인천항전경(仁川港 全景)’이라는 설명이 달려 있으며, 대형 선박들이 항구를 드나들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다. 사진의 해상도 또한 선 명하여 확대하면 당시의 근대 건축물을 확인할 수 있다.

    <Tab.2>의 ①은 1888년에 설립된 대불호텔의 모습이 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호텔로, 인천을 통해 한국으 로 들어오는 외국인들을 맞이했던 대불호텔이 항구 가까 이 위치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②부분을 확대하면 일본 깃발이 꽂혀 있는 모습까지 식별되는데, 이곳이 1833년 개항과 함께 2층의 목조 건축물로 건립된 일본 영사관이다. 오늘의 인천 중구청 자리에 해당한다. 사진 오른쪽, ③의 위치에 보이는 건물은 1884년에 설립된 세 창양행 사옥이다. 세창양행은 독일의 무역회사인 마이어 상사의 제물포 지점이다. 이 건물들의 존재로 보아 사진 은 1888년 이후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연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근대 문물이 밀려들어오던 개항장 인천 의 현장을 근대식 건축물의 모습과 함께 보여주는 생생한 자료다.

    아래의 <Fig.2>는 인천항의 파노라마 사진으로, 왼쪽 의 섬들은 월미도와 소월미도이며, 오른쪽으로는 개항의 중심이 되었던 제물포의 모습이 보인다. 개항과 함께 빠 르게 근대식 건축물이 건립되어 개항장을 채워나갔던 정 황을 보여주는 사진자료다.

    다른 사진 자료들과 달리 파노라마식 촬영 방식이 당 시 항구의 모습을 좀 더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근대 인천의 모습을 부감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고 있다.

    <Fig.3>은 제물포항에서 월미도 방향으로 찍은 사진으 로, 조선의 재래식 나룻배와 서구의 근대식 기선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개항기의 과도적 상황에 놓여있던 인천항 의 단면이 인상 깊게 드러난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Fig.4>는 우리나라 천주교를 대표하는 명동성당의 모 습을 원경으로 담아낸 사진으로 근대 한성의 도시 가옥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명동성당 본당은 당시 국내 유일의 순수한 고딕양식의 연와조 건물로, 1892년(고종 29)에 착공하여 1898년에 준공하였다.

    사진의 화각으로 보아 남산 줄기가 충무로 쪽으로 뻗 어 내려온 ‘진고개’ 언덕에서 명동성당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그리피스는 사진의 뒷면에 ‘1898년 서울의 모습’이라고 메모해 두었는데,5) 그렇다면 이 사진 은 준공된 바로 그 해 겨울의 명동성당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성당의 앞쪽으로 현재 충무로 2가에 해당하는 지 역의 모습이 보이는데, 조선에 외래 문물이 밀려옴에 따 라 재래의 도시 한옥들과 근대식 건축물이 혼재되어 있는 당시 한성 시가지의 변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명동 성당 본당의 왼편으로는 주교관의 모습도 보이는데, 이 건물은 아래 사진 <Fig.5>에도 나타난다.

    <Fig.5>의 위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명동성당의 주교관 으로 1888년 7월 착공하여 1890년 준공된 건물이며, 우리 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이다. 1979년 새 주교관이 건립되면서 개수를 거쳐 현재 사도회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원형은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3-2.공공기관

    구 러시아 공사관, 경성이사청, 평리원 등 총 8장의 공 공 시설물 사진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중 기존에 알려진 사진과 거의 동일한 것들을 제외한 6장의 사진을 살펴보 겠다.

    <Fig.6>은 구 러시아 공사관의 남서측 모습으로 언덕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고 찍은 사진이다. 러시아공사관은 한·러 수호조약이 체결된 1885년에 착공해 1890년(고종 27)에 완공한 르네상스식 건물로 러시아인 사바찐 (Afanasy Seredin-Sabatin 1860-1921)이 설계했다. 사진 앞쪽으로 위병들로 보이는 러시아 인들이 입구에 서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Tab.3>은 사진에서 보이는 건물들과 배치도 자료에 나타난 건물들을 비교한 것이다. ①의 건물은 공사관 본 관으로 정동 언덕의 꼭대기에서 매우 이국적이면서도 위 압적인 외관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 으로 주요부분이 파괴되었으며 현재 탑 부분만 복원되어 현존한다. 본관의 남동쪽에 있는 ②번 건물은, 일자형 한 옥으로 공사관비서가 사용했었으며, ③의 위치에 있는 담 장 또한 배치도 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Fig.7>은 현재의 충무로 1가 자리에 세워졌던 경성 이사청의 모습이다. 1896년 일본 공사관으로 건립된 후 1906년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경성이사청(1906-1910)이 되었으며 부제가 실시되면서 그대로 경성부청(1910-1926) 으로 쓰였다. 위 사진에 보이는 경성이사청은 벽돌로 건 립된 2층의 르네상스식 건물로, 중앙 현관을 아치로 구성 하고 있다.

    <Tab.4>는 경성이사청의 담장 공사도와 배치도(1915 년)로서, 배치도에 표기된 관리실 역할의 ‘문위(門衛)’를 사진 오른쪽 담장 상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존에 알려 져 있는 경성부청의 사진들과는 달리 입구 기둥 위의 조 명장치나, 오른쪽 담장 앞의 게시판이 놓여있지 않은 것 으로 보아 이들보다 앞선 시기의 외관을 보여주는 자료이 다.

    <Fig.8>은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던 시기, 최고의 사법 기관이었던 평리원(공소원. 경성재판소의 전신)의 사진이 다. 원본의 사진틀 테두리에서 ‘평리원(平理院)’이라는 한 자가 확인된다.

    평리원은 1906년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조선시대 의금 부 터였던 공평동 부지에 이전, 신축할 것을 결정하여 1908년 8월 1일에 공소원으로 개편, 개청된다. 아직 부지 정리가 덜 끝나 있는 사진 속의 상황으로 보아 1907년에 서 1908년에 이르는, 개청 직전의 시기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은 중앙의 돔을 축으로 엄격한 좌우 대칭 형의 입면을 가지고 있어 사법기관으로서 권위적인 외관 을 추구하였음을 드러낸다.

    <Tab.5>는 1906-07년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평리원의 정면도 및 정면상세도이다. 사진은 위 도면에 의해 건축 공사가 거의 완료된 상태의 현장의 모습을 그 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일부 석재의 장식 정도를 제외하 고는 도면과 차이 없이 시공된 모습을 두 자료의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Fig.9>는 앞의 사진과 동일한 건물로서, 사진 속의 정황이나 ‘경성재판소(京城裁判所)’라고 기록된 사진 하단 부의 표기 및 문주에 걸려 있는 ‘고등법원(高等法院)’ 표 기로 보아 통감부령으로 명칭이 변경된 1909년에서 1912 년 사이의 모습으로 추정된다. 앞 사진으로부터 수 년 정 도 지난 뒤의 상황으로, 건물 외벽 곳곳에 난방을 위한 연통이 부가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Tab.6>은 재판소의 담장과 입구 및 법원의 공고를 내어 붙이는 게시장의 신설 도면으로, <Fig.9>의 사진 속에서 담장의 모습과 그 밖의 게시장의 모습으로 확인된 다.

    <Fig.10>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미상의 건물을 보여주고 있다. 유사한 사진이나, 건물의 명칭은 물론 건 물의 존재를 알려주는 사료조차 알려져 있지 않아 본 사 진과 그리피스의 메모에 기대어 당시 건립되었던 이 건물 의 위치, 용도 및 성격을 유추하고자 한다. 이 사진의 뒷 면에는 ‘임페리얼 하이웨이 상에 있는, 황제가 머무는 건 물13)’이라고 쓴 그리피스의 기록이 남아있다. ‘임페리얼 하이웨이’는 명성황후의 묘를 청량리에서 금곡(현재의 홍 유릉)으로 옮기기 위해 고종이 한성전기회사에 위탁하여 1900년 9월에 착공, 1901년 초에 건설한 폭 15.24m, 거리 약 20.9km에 이르는 신도로14)이다. 이로써 유추하면 이 건물은 황제가 홍(유)릉을 행차하는 경우 머물 수 있도록 당 도로 상의 금곡 인근의 위치에 건립된 ‘행궁(行宮)’에 해당하는 건물로 추정할 수 있다.좀 더 나아가 당 건물의 건축가를 찾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Tab.7>은 덕수궁의 정관헌과 당 사진 속 홍릉 행궁 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사진들을 비교한 것이다. 두 건물 모두 서구적인 양식과 전통적인 기법이 혼합되어 사용되 었으며 건물의 규모나 장식의 품격으로 보아 황제와 관련 된 건축물이라는 것도 드러나고 있다. 정관헌이 정면 7칸, 측면 5칸의 규모임에 비하여 행궁으로 추정하는 건물은 정면 9칸, 측면 3칸으로 크기가 다르지만 지붕의 스타일 과 입면에서 나타나는 얇은 열주 및 난간의 처리 등에서 매우 흡사한 양식을 보여주어, 덕수궁의 정관헌과 구 러 시아 공사관을 설계한 사바찐의 작품이라고 추정할 수 있 다. 정관헌의 설립이 1900년이며, 사바찐이 1904년까지 한국에서 활동하였으므로 이 건물의 건립과 시기적으로도 일치한다. 기능에 있어서도 정관헌이 황제의 연회나 유식 에 사용된 것으로 행궁의 역할과 유사하며, 당시 고종의 그에 대한 신임이 두터웠던 것을 고려하면 사바찐이 이 건물을 설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추가로 발굴되는 사료를 통해 이 건물의 존재와 정확한 위치 및 연혁 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Fig.11>은 탁지부 청사로 알려진 정부 내각 건물로, 1907년 4월 기공하여 12월에 완공되었다. 해방 이후까지 법원으로 사용하다가 1970년에 철거되었다.

    평리원이나 이사청 등 다른 공공기관과 유사한 좌우 대칭의 평면과 권위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입면을 가지고 있으며, 아치로 강조된 입구와 그 위에 얹어진 돔이 눈에 띈다. 건물 앞의 허술한 조경이나 정리되지 않은 진입로 의 상황으로 보아 건물의 완공 직후인 1907년 말에서 1908년 초에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3-3.교육기관

    이 절에서는 한성사범부속보통학교, 한성외국어학교 그 리고 수원농림학교로 추정되는 사진 등 총 3장의 자료를 고찰하겠다.

    <Fig.12>는 한성사범학교부속보통학교의 모습으로, 1895년 서울에 설립되었던 관립 교원양성학교에 딸려있 던 초등 교육 시설이었다. 규칙적으로 창호가 배열되어 있는 모듈의 배치로 보아 층당 3개의 교실이 있었던 것 으로 보이며, 건물 왼쪽 날개 부분의 1층에 두 쪽짜리 입 구가 눈에 띈다. 외벽은 목조 판벽으로 마감되었고 각 교 실마다 연통구멍이 있으며, 1층 창호 상단에 눈썹지붕을 설치하고 있는 것도 우천 시를 고려한 배려로 보인다. 보 통학교의 우측 뒤로 보이는 다른 2층 건물이 한성사범학 교 교사인 것으로 추정된다.

    <Fig.13>은 한성외국어학교의 사진이다. 1906년 학제 개혁에 따라 기존의 외국어 학교들을 전부 통합하여 한성 외국어학교가 설립되었다. 운현궁 건너편에 위치해 있었 으며, 1911년 폐지되어 그 자리에 경성여고보가 들어서게 된다.

    단층의 근대식 건물에 박공지붕을 씌운 현관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며 외벽은 목재판벽으로 마감되었다. 사진 을 찍고 있는 인물들의 다양한 복색으로 보아 외국어학교 라는 특징이 드러나고 있어 흥미롭다.

    <Fig.14>의 외곽 상단에는 ‘농장에 딸린 농업학교(The Agricultural School attached to the farm)’라고 기록되 어 있는데, 시기적 정황으로 보아 1907년 이전 건립된 수 원농림학교(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의 전신)에 일치한다.

    <Tab.8>의 수원농림학교 본관평면도와 비교해 보면 건물의 규모, 평면 형태 및 돌출 현관의 배치 등이 모두 동일하여 이 건물이 그 본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층 의 목조 건물로, 수직의 창호가 규칙적응로 배열되어 있 는 교육시설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동안 형태를 알 수 없었던 수원 농림학교의 초기 모습을 시각적으로 알려주어 의미 있는 사진자료로 평가된다.

    3-4.민간 건축물

    여기에서는 한성전기회사, 인천제일은행, 서울병원, 서 울 Y.M.C.A 등 민간 건축물들의 사진 5장을 다루겠다.

    <Fig.15>는 1898년 전차·전등·전화 사업을 위해 설립 된 한성전기회사의 사옥으로 현재의 종로2가 8-4에 위치 해 있었으며 미국인 H.콜브란과 H.R.보스윅이 운영하였 다. 1902년 1월 5일에 건물이 불타 그 해 7월에 다시 개 건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17) 사진 속의 건물에서는 돌 출된 아치형의 현관과 그 상부로 중앙의 시계탑을 볼 수 있는데, 당시 시계가 희귀하였음을 감안하면 매우 주목 받는 건물이로서 회사의 상업적 지향을 표방한 외관이었 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의 시계탑에 시계가 설치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1902년 화재 이후 재건된 직후 촬영한 사진으로 추정된다.

    <Fig.16>은 이 건물 내 보스트윅의 사무실 사진으로 창문의 모양과 위치로 보아 건물 2층의 모서리에 놓인 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속에 보이는 책상이나 의자, 램프 및 도기 등으로 당시의 집무환경을 짐작해 볼 수도 있는데, 방 중앙에 걸려있는 액자 모서리에 걸쳐있 는 성조기에서 보스트윅의 성향이 엿보이기도 한다.

    <Fig.17>은 현재 인천광역시 중구 중앙동 1가에 남아 있는 인천일본제일은행 건물로서 탁지부 소속 일본인 건 축가 니이노미(新家孝正)가 설계하였다. 1897년(광무 1) 8월에 착공하여, 2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1899년 7월에 준공되었다.

    이 건물은 현관부의 아치나 건물 중앙부에 돔에서 르 네상스 풍이 느껴지며, 견고한 석재의 사용으로 은행 건 물다운 중후함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인 존(Jones, G. H.) 박사는 1900년 당시의 제물포를 소개한 기고문에서, “한 국에서도 가장 훌륭하고 견고한 석조(화강석) 사옥을 가 졌으며, 또 막대한 거래(은행업무)를 하고 있는 제일은행 (일본 동경에 본점이 있음)이 제물포에 있다”고 소개하기 도 하였다.18)

    <Fig.18>은 당시의 대한의원으로, 현재 서울대학교병 원 부설 병원연구소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1907년 3 월에 착공, 이듬해 5월에 준공되었으며, 축조 당시에는 규 모가 더 컸으나 현재는 본관 건물만이 남아 있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상태로 보아 사진은 1908년 초의 모습 일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 전면부에 설치되어 있는 가설 구조물과 건물 앞에 널린 각종 자재들에서 당시 공사 현 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며 한 인부가 카메 라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 역시 인상적이다.

    <Fig.19>는 기독교청년회(Y.M.C.A)의 건립 당시 모습 이다. 당 건물은 1908년에 준공되었으므로 사진의 촬영시 기는 준공 이전의 시기로 추정된다. 사진에서 보이는 건 물은 6·25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사진 속에서 공사 현장의 주변으로 가림막을 치고 있 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분주히 걸어 다니는 행인들과 인 력거, 마차들에서 당시 종로의 생기를 읽을 수 있다.

    4.건축물 현황 분석

    4장에서는 앞에서 다룬 19장의 사진들의 추정 촬영일 자, 당시와 현재의 건물 사용용도의 변화 및 존재 여부 등을 조사하고 과거 도시의 모습을 현재에 투영, 비교해 볼 것이다. 현재 완전히 철거되지 않고 일부 이상 남아 있는 건물들로는 총 5개가 있으며 사진들은 대부분 1890 년 후반에서 1910년 초반까지 다양한 기간에 걸쳐 촬영 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은 철거하고 다른 건물을 신 축하였거나 한국 전쟁 때 파괴되었으며 또한 건물을 사용 하던 기관이 해체됨에 따라 철거된 경우도 있다.

    먼저, 인천항 전경을 촬영한 <Fig.1>은 1888년도에 지 어진 대불호텔을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1888년 이후에 촬영된 사진임을 추측할 수 있다. 같 은 방식으로 명동 성당일대와 주교관을 촬영한 <Fig.4>, <Fig.5> 또한 1898년에 준공된 주교관을 사진에서 확인 함으로서 촬영 일자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명동성당과 주 교관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건축물 중 하나로 서 주교관은 현재 천주교 서울 대교구청으로 사용하고 있 다. 구러시아 공사관의 모습을 담고 있는 <Fig.6>은 사 진 뒤편에 적혀있는 메모19)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905 년 6월 3일 촬영하였으며, 공사관 본관과 부속 건물들은 한국전쟁 당시에 파괴되고 지금은 탑 부분만 남아있다. 현재는 그 주위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맞은편에 뉴질 랜드 공사관이 위치해 있다. 경성이사청을 촬영한 <Fig.7>은 설립 이후 경성부청이라고 이름을 바꾸기 전 까지의 시기인 1906-1910년 사이에 촬영했을 것으로 추 정된다. 1930년에 건물을 허물고 미쯔코시 백화점을 건설 하였고, 현재는 신세계 백화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재판소 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Fig.8>과 <Fig.9>는 사진에 서 보이는 건물의 상태나 주변의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각 각 1907-1908년, 1909-1912년에 촬영하였을 것으로 보인 다. 건물은 1957년에 신신백화점을 건설하며 사라졌고, 지금은 그곳에 제일은행 본점이 자리하고 있다. 임페리얼 하이웨이 상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행궁의 모습을 담은 <Fig.10>은 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시작한 1900년 이후에 촬영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현재에 확인 가능한 건물의 잔재나 문서자료의 부족으로 지금은 존재하지 않 는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한성전기회사의 모습을 담고 있는 <Fig.15>는 1902년 화재 이후에 촬영했을 것 으로 추정되며 당시 위치가 현재 종로 2가 8-4번지임과 회사가 1909년까지 존재하였음을 고려해 보았을 때 1907 년에서 1909년까지 경성재판소와 약 200m의 거리를 두 고 나란히 종로에 위치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인천일본 제일은행을 촬영한 <Fig.17>은 1899년 이후 촬영된 것으 로 추정되며 건물은 현재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Fig.18>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한의원은 현재 대 한의원본관으로 계속 사용하고 있다.

    밑의 <Tab.9>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적 보전 가치가 뛰어나거나 지금까지 같은 기관에 서 사용하는 건축물들은 외장이나 구조물의 보수를 통해 여전히 이용하거나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박물관 등으 로 사용하고 있다. <Tab.10>

    명동성당은 완공 이후 구조보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1974년과 1984년의 대규모 보수공사와 2002년의 부식된 벽돌을 대대적으로 교체하는 공사 및 2010년의 그 일대 를 개편하는 ‘명동성당 종합계획’ 등을 거치며 현재의 모 습으로 바뀌었다.

    주교관 또한 각종 구조보수공사와 2010년 ‘명동성당 종 합계획’의 일부로 대수선을 거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Tab.11><Tab.12>

    구 러시아공사관은 한국전쟁 당시에 건물의 대부분이 멸실되었고, 탑 부분만 남아있으며 현재 그 주위에 정동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Tab.13>

    인천일본제일은행은 2000년 지붕마감, 창호, 외부벽체, 금고 내부 벽, 2층 사무실 바닥과 천장 등의 대대적 보수 를 거쳐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Tab.14><Tab.15>

    대한의원 본관은 1979년의 탑시계 보수와 1981년과 2001년의 두 번의 보수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 게 되었다.

    위와 같은 내용을 <Tab.10>에서 현재 남아있는 건물 들이 당시와 현재에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 어떠한 변 화를 거쳐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지를 나타내었다.

    사진 속 건물들의 성격이 대부분 정부기관이나 공공기 관, 또는 중요한 문화공간이었기에 인천에 위치한 은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종로나 명동 등 서울 시내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현재의 도시에서도 중요한 노드23)(Node, 혹은 결절점) 에 자리했기 때문에 그 위치에 백화점이나 은행 등의 건물이 세워지거나 성당이나 박물관 등 중요한 도시 의 역사적 요소 혹은 랜드마크로 역할하고 있는 것을 확 인해 볼 수 있다.

    5.결론

    이상 본고에서 살펴본 그리피스 컬렉션에 포함된 19장 의 근대 인천 및 한성의 도시·건축 사진들로 통하여 개항 당시 인천 제물포항의 상황과, 각종 공공건물, 근대 교육 기관 및 민간시설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본 사진 들은 대부분 기존에 알려진 사진들보다 시기적으로 앞서 1890년대에서 1910년대 초에 촬영된 자료들로서 구한말 에서 일제 강점기의 시작 시기에 이르는 근대 초기의 도 시 모습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 사료적 가치가 주목된다.

    각 유형별로 보아 인천항의 사진들은 개항 초기 제물 포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공공시설의 사진 들에서는 1900년대 초 일제 강점 초기에 식민지배시설이 이 땅에 뿌리내리기 시작하던 정황이 확인되었다. 특히 홍릉 행궁으로 추정되는 건물은 지금까지 문헌으로도 알 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그 존재와 용도 및 사바찐의 설계 임을 추론한 것에 뒤이어 추후 상세한 연구로 뒷받침되기 를 기대한다.

    교육기관의 사진들은 공통적으로 왕대공 형식의 박공 지붕과 목재 판벽으로 마감된 입면을 보여주었으며, 건립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신설 건물의 외관이 그대로 드 러났다. 또한 수원농림학교의 1907년 이전 건립 당시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확인한 것도 지적할만하다. 마지막 유 형인 민간건축물들에서는 대한의원과 Y.M.C.A 건물의 건립 현장을 사진자료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를 통해서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그 리피스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는 근대 인천, 한성의 도시 건축 사진자료들을 상세히 고찰할 수 있었다. 사라져버렸 거나 변형된 근대 도시 건축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재현하 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구한말 에서 근대 초기에 걸친 한국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본 사진 자료들이 지닌 학술적 가치를 평 가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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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of Incheon Harbor (c09_kp1-3)

    JAH-24-7_F2.gif

    Panoramic View of Incheon Harbor (c10_k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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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Chemulpo Harbor (c10_kp2-3)

    JAH-24-7_F4.gif

    The Myeongdong Cathedral (c10_kp2-4)

    JAH-24-7_F5.gif

    Picture of surroundings of Myeongdong Cathedral (c09_k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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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Russian Legation (c10_k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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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eoul City Hall (c09_kp1-2)

    JAH-24-7_F8.gif

    The Court House(Supreme Court & Seoul Appeal Court) (box12_대형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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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eoul Court House (c02_k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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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perial Resting House (c09_kp1-3)

    JAH-24-7_F11.gif

    The Cabinet Building (box12_대형박스)

    JAH-24-7_F12.gif

    A Seoul Public School (box12_대형박스)

    JAH-24-7_F13.gif

    The Foreign Language School (box12_대형박스)

    JAH-24-7_F14.gif

    The Agricultural School attached to the farm (box12_대형박스)

    JAH-24-7_F15.gif

    The Seoul Electric Company (c09_kp1-3)

    JAH-24-7_F16.gif

    Bstowick, H.R.’s Office (c09_kp1-3)

    JAH-24-7_F17.gif

    The First Bank of Japan in Incheon (c09_kp1-2)

    JAH-24-7_F18.gif

    The Seoul Hospital (box12_대형박스)

    JAH-24-7_F19.gif

    The Y.M.C.A. (box12_대형박스)

    Table

    Categorized Photographs of Griffis Collection

    Modern buildings of Incheon Harbor4)

    Comparison of picture of legation and site plan

    Detail drawings of City Hall

    Elevation of Court House

    Detail drawings of the Seoul Court House

    Similarity between the Geong Gwan Hun and the Imperial Resting House

    Plan of Suwon Agricultural School

    Analysis of Present Conditions

    Comparison of Myeongdong Cathedral’s State -1

    Comparison of Myeongdong Cathedral’s State -2

    Comparison of Russian Legation’s State

    Comparison of The First Bank of Japan’s State

    Comparison of The Seoul Hospital’s State

    Analysis of Remaining Buildings

    Footnote

    Reference

    1. Park So Yeon (2015) 「A Study on Korean Photos of Cities and Architectures in Griffis Collection」 ,
    2. Yang Sang Hyun (2014) 「The Significance of Korean Photos in the William Elliot Griffis Collection at Rutgers University」 , Journal of Korean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Vol.71
    3. Joo Sang Hun (2010) 「Characteristics of Building the Modern Facilities administrated by the Japanese General in Korea」 ,
    4. 「일제시기 건축도면 콘텐츠」National Archives of Korea (http://theme.archives.go.kr/next/place/viewMain.do),
    5. 「조선총독부 기록물」 , National Archives of Korea (http://theme.archives.go.kr/next/government/viewMain .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