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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598-1142(Print)
ISSN : 2383-9066(Online)
Journal of architectural history Vol.24 No.3 pp.31-41
DOI : https://doi.org/10.7738/JAH.2015.24.3.031

Restoration of Iksan Imperial Capital City Structure and Construction Model in Late Baekje from the Point of Ancient Capital City Planning

Kyung-Chan Lee

본 연구는 2013년도 원광대학교 연구년 성과로 작성되었음

Corresponding Author: kclee0@naver.com
September 16, 2014 April 28, 2015 June 27, 2015

Abstract

This study aims to draw out planning principles and structure of Iksan imperial capital city in late Baekje, especially in view of the relationship among imperial capital city planning area, skeletal axis and the location of royal castle. With site survey and analysis of historical records, old maps, topographical maps, archeological excavation data, land registration map of 1915, some significant inferences were drawn out.

Firstly from the point of topological conditions, the contiguous line of a stratum from Mireuk mountain(彌勒山) to Wangkung-ri castle(王宮里遺蹟) and two waterways made a topological axis of Iksan Imperial capital city. Secondly district of Iksan imperial capital city can be deduced to the inner area north to Kummado soil wall(金馬都 土城), south to the confluence of Iksan river(益山川) and Busang river(扶桑川), west to Okum mountain fortress(五 金山城) and Galjeon river(葛田川), east to line near to eastern wall of Jesuksa temple(帝釋寺). Iksan ssang-reung(益 山雙陵) was located outside western boundary line of capital city. Thirdly axis from Wangkung-ri castle to northern Kummado soil wall made a skeletal axis of city structure. It got through northern lowland along Buk river(北川) between Yonghwa(龍華山) and Mireuk mountain. Fourthly the location of royal palace can be deduced to the north part of the city around Kumma town area along the planning principle of northern royal palace.


백제 후기 익산도성 조영계획모델에 대한 도성계획사적 해석

이 경 찬
원광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초록


    1.서 론

    백제시대 익산지방의 성격과 관련하여 고고학이나 역 사학을 중심으로 진행된 기존 연구나 발굴조사 결과에 대한 해석은 백제 무왕시대를 전후로 한 천도론에 초점 을 두고 역사성을 규명하는데 집중되어 왔다. 백제 무왕 시대 익산 천도론의 중심에는 도성 거점시설로서 왕궁리 유적1), 능묘유적으로서 익산 쌍릉2), 사찰유적으로서 미 륵사지3)와 제석사지4) 등을 비롯하여 오금산성, 금마도토 성 등의 관방유적5)이 핵심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익산 왕궁리유적은 백제 말기 익산 천도론 혹은 익산 경 영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유적으로 간주된다(Fig 1 참조).

    지금까지 진행된 많은 논의들에서 왕궁리유적은 백제 무왕시대를 전후로 한 궁궐 유적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궁궐의 조성과정이나 정확한 성격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 재하고 있다. 특히 6-7세기를 전후로 한 중국 도성이나 『周禮』 考工記에 나타난 도성제의 연장선상에서 바라 보는 일부 연구6)를 제외하고는 고대 도시조영요소에 대 한 체계적인 접근을 바탕을 둔 백제시대 익산도성의 구 조적, 형태적 특성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진행되지 않 고 있다.

    천도의 실현 여부에 대한 가부를 떠나 백제 익산지방 의 역사성이나 유적의 분포형태를 고려해볼 때 도성조영 을 위한 계획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배경을 토대로 본 연구는 중국과 웅진 사비시대 백제도성과 연계하여 도성구역, 도성조영축, 도성시설을 중심으로 한 도성공간구조를 중심으로 백제 익산도성 조 영계획모델을 설정해보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고고학적 발굴자료와 (고)지도자료, 사료 를 이용한 금마, 왕궁 일대의 역사성과 백제유적 특성, 古지형구조와 물길, 교통여건 등의 기반여건에 대한 종 합적 분석을 토대로 도성의 입지형태와 방어체계, 도성 구역과 도성조영축, 궁(성)제와 사찰, 능묘 등의 도성시 설 배치를 중심으로 백제 익산도성계획을 접근하였다. 이 과정에서 백제 익산도성 경영시기를 전후로 한 중국 도성과 웅진 사비기 백제도성과 관련된 기존 연구결과와 고고학적 발굴자료에 대한 검토가 함께 진행되었다.

    2.4~7세기 중국 도성과 웅진 사비기 백제 도성 조영 특성

    2-1.4~7세기 중국 도성의 조영특성

    익산 왕궁리유적을 비롯한 제석사지, 미륵사지, 익산 쌍릉 등은 익산 천도론의 핵심을 이루는 유적으로서 고 대 도성제의 관점에서 그 성격이나 계획원리를 파악하고 자 하는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논의의 핵심에는 『周禮』 考工記의 중궁제형 도성제와 曹魏鄴(北)城, 北魏平城, 北魏北齊鄴南城, 北魏洛陽城, 六朝建康 城등 백제 익산도성 경영시기를 전후로 한 5~7세기 중 국의 도성조영원리가 위치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를 계기로 예제질서를 바탕으로 확립된 『 周禮』 考工記를 중심으로 규제가 이루어지던 도시제 도가 붕괴되면서 지리적 여건과 군사적 측면을 고려한 현실적 기능 중심의 도성구조가 대거 출현하였다. 춘추 전국시대 이후 진 한으로 이어지는 통일왕조의 도성에서 는 우주적 관념이나 유교적 이념을 채용하여 도성의 질 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지만, 단일체 로서 도성 전체를 대상으로 한 질서보다는 궁, 예제시설, 릉 등 황권과 직접 관련되는 개별시설을 중심으로 조영 원리가 적용되는 과도기적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7).

    진 한 시대 이후 고대 중국 도성의 새로운 전기가 마 련된 것은 曹魏鄴(北)城이다. 曹魏鄴(北)城에서는 도 성 남문(中陽門)과 외조 남문(止車門), 외조 정전 남문 (端門), 외조 정전(文昌殿)으로 이어지는 남북 중심축도 로와 도성 중앙부를 동서로 관통하는 물길(長明洵)을 따 라 형성된 동서도로축(金明門-建春門)을 중심으로 격자 형 도로체계와 기능적 분구를 도입하여 단일체로서 장방 형 도성구역에 전체적인 질서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궁 성을 도성 북쪽에 위치시키는 북궁제를 채용하여 『周禮』 考工記의 중궁제형 도성제의 기능적 취약점을 보완하 는 한편 ‘南面而治’의 전형적인 질서체계를 부여하였다.

    曹魏鄴(北)城에서 채용된 도성조영원리는 隋唐長 安城에서 완성되어 『周禮』 考工記의 중궁제형 도성제 와 함께 중국 도성조영계획을 이해하는 양대 축을 형성 하게 되었다. Tab.1과 Fig.2는 漢長安城과 曹魏鄴(北) 城이후 隋唐長安城에 이르는 北魏平城, 北魏北齊 鄴南城, 北魏洛陽城, 六朝建康城등 4~7세기 중국 도성구조를 종합하여 분석한 것이다. 고대 중국도성구조 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도출된 주요 특성을 요소별로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1)도성의 입지특성

    漳河를 사이에 두고 조위 업(북)성이 남측으로 확장 된 형태를 지니는 동위 북제 업남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도성은 ‘背山臨水'의 원리에 따라 위치하고 입지하고 있 다. 북위 평성은 서북측의 白登山(현 마포산)과 도성의 외곽 동측 경계부를 따라 흐르는 渾水(현 御河)를 중심 으로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북 위 낙양성의 경우 북측에 邙山을 두고 黃河와 洛河를 연결하는 2개 남북방향 물길 사이에 도성구역이 위치하 였으며, 육조 건강성의 역시 북쪽 鸡笼山과 남쪽 秦淮河 사이에 위치하였다.

    한편 북위 평성의 渾水, 육조 건강성의 秦淮河, 북위 낙양성의 洛河, 東魏北齊鄴南城의 漳河등에서 나타 나듯이 물길은 도성영역을 형성하는 자연적 요소이자 방 어적 기능을 함께 담당하였다. 특히 조위 업(북)성의 長 明洵과 북위 평성의 渾水로부터 도성 북측의 鹿苑으로 유입되는 3개의 물길과 다시 이로부터 분지되어 궁성을 경유하는 溝8), 북위 낙양성의 궁성 내부와 궁성을 감싸 고 도는 溝등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듯이 도성 내부에 물길을 끌어들여 수원을 확보하는 한편 구역을 구분하는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2)도성구역과 도성조영축

    조위 업(북)성에서 동서방향이 긴 장방형 도성이 출현 한 이후에 건설된 북위 평성, 북위 낙양성, 동위 북제 업 남성, 육조 건강성 등은 동서방향 4~6리, 남북방향 6~9 리의 규모로 남북 종축방향으로 긴 장방형의 형태를 취 하고 있다(Tab.1 참조).

    한편 북위 평성의 궁성 남문 宣陽門으로 연결되는 궁 성과 외성의 남북도로축, 북위 낙양성의 내성 중화문(남 문)과 궁성 남문을 경유하여 太極殿으로 연결하는 남북 대로, 동위 북제 업남성의 朱明門과 궁성을 연결하는 남 북 중축도로, 육조 건강성의 秦淮河-朱雀門-宣陽門(외 성 남문)-大司馬門(내성 남문)-궁성-玄武門(외성 북문)- 玄武湖를 연결하는 종축도로 등 조위 업(북)성 이후 모 든 도성에서 도성의 중앙 남문과 궁성의 중앙 남문 또는 외조 정전으로 연결되는 남북방향의 종축도로를 도성골 격축으로 설정하고 이와 직교하는 동서도로축을 이용하 여 도성의 도로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도성골격축으로서 역할을 담당하는 남북 종축도로는 서측으로 편향되어 있 는 북위 낙양성을 제외한 모든 도성에서 궁성의 중심축 과 일치하고 있지만, 내(도)성 또는 외성을 기준으로 한 중심축으로부터 약간씩 벗어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궁(성)제와 도성시설 분포체계

    조위 업(북)성에서 채용된 북궁제 원리는 이후 모든 도성에서 그대로 차용되고 있다. 조위 업(북)성 이후 중 국 도성에서 북궁제를 채용한 데는 궁성이 도성의 중앙 부에 위치함으로써 비롯되는 토지이용의 제약과 ‘背山臨 水’의 지리적 이점을 고려한 결과로 이해된다.

    고대 도성에서 궁성의 위치와 관련하여 흔히 거론되는 것이 시장(市)의 위치이다. 고대 중국도성에서 궁성과 시 장의 관계는 크게 考工記의 ‘前朝後市’ 원리와 唐長 安城의 ‘宮北市南’ 형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화북지역의 북방 도성에서는 ‘宮北市南’ 형제를 적용한 폐쇄형 大市 를 중심으로 시장이 배치된 반면, 육조 건강성에는 朱雀 門서측의 鹽市와 도성 서북쪽의 紗市를 비롯하여 다양 한 형태의 시장이 예제원칙보다는 경제활동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외성 밖 물길과 주요 교통로가 연결되는 교차 부나 외성 안 일반 평민의 거주구역과 연계하여 분산배 치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9). 한편 宗廟와 社稷의 위치 와 관련하여 북위 평성을 비롯한 화북지방의 북방 도성 에서는 考工記의 左祖右社’ 원칙이 대체로 준수된 반 면, 육조 건강성에서는 궁성 동쪽에 종묘와 사직이 같이 설치된 이후 東晉-劉宋시기까지 그대로 존속되었다10).

    백제 익산도성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또 다른 시설은 사찰과 원림의 배치이다. 중국 고대도성사에서 北魏시 대는 불교의 전성시기로 북위 평성의 궁성 안에 위치한 紫宮寺와 도성 안에 위치한 永寧寺, 五缎大寺, 북위 낙 양성의 어도 양방에 위치한 永寧寺와 宗正寺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도성 심지어는 궁성 안에 사찰이 건립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11). 이러한 현상은 육조 건강성에 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12) 당시 사찰은 도성의 남문과 궁 성을 연결하는 종축선을 따라 배치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원림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禁苑, 즉 皇家園林이 다. 조위 업(북)성에서 황가원림 형태로 三台가 조성된 이후 대부분의 도성에서 금원이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그 배치형태는 서로 상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먼저 북위 평성의 鹿苑은 도성과는 약간 떨어진 북쪽에 위치 한 반면 북위 낙양성의 華林苑은 궁성과 내성 사이에 위 치하고 있다. 육조 건강성의 대표적인 황가원림으로 東 晉-南朝시대 화림원은 궁성 북쪽 鷄籠山을 중심으로 형 성되었으며 劉宋文帝시기인 434년에 만들어진 樂遊苑 은 궁성에서 북으로 3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고대 황가원림은 기본적으로 飮宴ㆍ遊樂ㆍ雅集ㆍ議政ㆍ聽訟 의 장소로 활용되었지만, 北朝都城의 禁苑은 궁성의 보호를 위한 군사적 목적을 겸하고 있었다13).

    2-2.웅진 사비기 백제도성의 조영특성

    1)웅진도성과 사비도성의 입지여건

    고구려의 침입을 계기로 475년 漢城이 함락되고 위기 에 처한 백제는 22대 문주왕 대에 熊津으로 도읍을 옮긴 후 63년간(475-538) 정도하였다. 이후 무령왕과 성왕으 로 이어지는 내부적 안정을 바탕으로 대외정책에서도 자 신감을 획득한 백제는 지형적 특성으로부터 비롯되는 웅 진성의 태생적 한계로 인하여 천도의 필요성이 제기되면 서 웅진으로부터 50km 떨어진 금강변의 泗沘지역으로 도읍지를 옮겨 123년간(538-660) 수도로 삼았다.

    漢城과 熊津泗沘시대 백제도성은 북쪽에 강을 두고 산으로 위요된 지형구조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 한 특성을 보인다.

    먼저 웅진도성이 위치한 공주지역은 북측과 서측을 감 고 도는 금강변에 따라 위치한 공산과 좌우의 정지산과 남측 송산 봉황산 일락산 두리봉, 옥녀봉에서 남측 월성 산과 주미산을 연결하는 서측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구조를 취하고 있다.

    사비도성이 위치한 부여지역은 금강이 북쪽과 서쪽, 남쪽을 ‘⊂’자로 휘감아 흐르며 북측 금강변에 위치한 부 소산으로부터 남측 능산리고분군이 위치한 오석산을 거 쳐 필서봉으로 연결되는 구릉지맥이 동쪽을 감싸는 지형 구조를 지니고 있다14).

    2)웅진도성과 사비도성의 도성구조

    웅진도성과 사비도성은 이러한 지형구조를 활용하여 도성구조를 형성하였다. 먼저 웅진도성은 분지를 감싸고 도는 외곽 지맥을 도성의 외곽영역으로 삼고15) 지맥을 따라 공산성을 비롯하여 산성(玉女峰城)과 제사시설(艇 止山遺蹟) 및 능묘시설(宋山里古墳群)을 배치하는 한편 주위에 산성을 배치하여 방위망을 구축하였다. 한편 웅 진도성 안에는 동성왕 대에 축조된 熊津橋16)와 성왕 시 대에 건립된 大通寺17)가 위치하였다.

    지금까지 확인된 문헌기록과 백제 유적을 종합해보면 웅진도성은 분지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중앙부 지 맥과 이와 평행하게 흐르는 濟民川을 골격으로 남북방향 의 도성조영축을 설정하여 북측 단부에 왕궁18)과 포곡식 의 公山城19)을 배치하고 웅진교가 설치된 제민천을 건 너 대통사로 연결되는 도성구조가 상정된다. 한편 도성 의 시가구역과 주요 시설은 문헌에 등장하는 홍수기록과 교량, 사찰 건설 기록 등을 종합해 볼 때 도성조영축의 서측 일대에 집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지형을 활용하여 도성구조를 구축하는 방법은 사비도성에서도 확인된다. 사비도성은 扶蘇山城동쪽에 서 동북쪽으로 靑山城과 陵山里寺址북쪽 봉우리와 서 쪽 구릉지, 필서봉을 거쳐 염창리의 금강 변까지 연결되 는 6.3km의 羅城을 축조하여 지형과 일체화된 도성의 외곽영역을 확보하고20) 주변에 산성들을 배치하여 방어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부여지역에서 확인된 백제유적을 종합해 볼 때 사비도성 에서는 금강과 동측 지맥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扶蘇山과 南山, 花枝山으로 연결되는 지맥을 남북축으 로, 南山과 錦城山으로 연결되는 지맥을 동서축으로 활 용한 도성구조가 상정된다. 특히 남산 서측 단부와 부소 산을 연결하는 남북방향의 도성조영축을 설정하고 축선 의 중앙부에 定林寺址, 북단에 왕궁(官北里遺蹟)과 배후 방어성이자 금원으로서의 역할을 지니는 부소산성을 배 치하고 있다. 특히 부소산 남측의 평지에 위치한 왕궁으 로서 관북리유적은 배후 부소산성과 일체화되어 평지형 궁성과 산성이 결합된 궁성구조를 취하고 있다. 한편 사 비도성의 국가 중심사찰로서 역할을 지니고 있던 정림사 지21)는 나성을 기준으로 한 사비도성의 중심부이자 남북 방향의 도성조영축 변에 위치하여 북위 낙양성의 내성 안 어로의 서측에 위치한 영녕사나 梁시대 육조 건강성 황궁의 북문과 연결되는 동태사와 유사한 배치구조를 취 하고 있다. 한편 사비도성의 대표적인 능묘시설인 능산 리고분군은 동나성의 밖에 위치하여 고대 도성에서 발견 되는 墓制를 따르고 있다22). 한편 부여시가지 일원에서 이루어진 지금까지의 발굴조사를 종합해보면 사비도성의 시가구역은 도성조영축의 서측과 정림사지 남측의 저습 지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동시대 중국 고대도성이나 웅 진도성과 유사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3.고대 도성계획 측면에서의 익산 도성구조 분석

    3-1.익산도성의 입지구조

    동아시아 고대 도성은 입지와 배치를 결정한 이후에 도시를 건설하였다. 고대 도성의 입지를 결정짓는 요소 는 크게 산수가 어우러진 자연환경여건,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물산을 확보할 수 있는 생산여건, 사통발달의 교 통여건, 지세와 어우러진 방어여건, 산수와 어우러진 경 관여건 등 다섯 가지 측면23)으로 요약될 수 있다.

    특히 ‘背山臨水’의 형국이 중시되어 예로부터 산을 등 지고 산과 물로 둘러싸인 남향의 고지 주변지역이 도성 구역으로 선호되었다. 물길을 기준으로 만곡부의 안쪽에 해당하는 汭의 위치와 물길이 합류부의 안쪽에 해당하 는 澳의 위치는 수해를 피하고 편리한 수로교통을 확보 할 수 있는 곳으로24) 고대 중국과 한국 도성 입지에서 흔히 관찰되는 현상이다.

    백제 익산도성이 위치한 금마 왕궁지역의 지형적, 지 리적 여건을 종합해보면 고대 도성의 입지결정요소로서 생산여건이나 교통여건, 방어여건, 경관여건과 부합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먼저 백제 익산도성이 위치한 금마, 왕궁 일대의 지형형국은 남측에 만경강을 두고 배후의 미륵산과 용화산으로부터 뻗어 내린 4개의 환포형 지맥 을 이루고 있다. 한편 외맥과 내맥으로 구성된 환포형의 지맥 중앙부에는 용화산으로부터 건지산(굿대숲)을 거쳐 익산천과 부상천의 합수부 북측으로 이어지는 얕으막한 구릉지가 형성되어 그 단부에 익산 왕궁리유적이 위치하 고 있다(Fig.3 참조).

    익산도성 일대의 물길은 미륵산과 용화산에서 발원하 여 북으로 흘러 금강으로 합류되는 북천과 중앙부 구릉 지맥의 서측을 따라 남으로 흐르다 만경강으로 합류되는 익산천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부 구릉지맥의 동측으로 도평천, 부상천, 왕궁천(궁평천)이 남으로 흘러 익산천으로 합류되고 익산 쌍릉의 동측에는 금마산에서 발원하여 남으로 흐르다 익산천으로 합류되는 갈전천이 위치한다. 이러한 수계는 왕궁리유적과 만경강 사이에 고대 저습지대였던 너른 평야지를 형성하는 요인으로 작 용하고 있다(Fig.7 참조).

    한편 익산지방의 지리적 여건을 살펴보면 금마시가지 를 중심으로 부여, 공주, 무주 남원 방면으로 연결되는 지역간 연결루트의 결절부에 위치하고 있다. 1872년 익 산군지도와 1915년 지적원도를 살펴보면 고대 익산도성 일대의 지리적 특성이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존 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Fig.5,6 참조). 특히 익산도성 일대에는 지형여건을 토대로 사비도성, 웅진도성으로 연 결되는 주요 루트의 중요성을 토대로 낮은 야산이나 큰 산줄기의 요소마다 성곽을 배치하여 방어거점으로서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Fig.4 참조)25).

    3-2.백제 익산도성의 계획구역과 도성조영축

    가. 익산도성의 계획구역

    백제 익산도성이 위치한 금마, 왕궁 일대의 지형구조 와 백제 유적 분포상황, 고대 익산도성의 경영시기를 전 후한 중국과 백제 도성구조를 고려하여 도출되는 고대 익산도성구역은 다음과 같다(Fig.8 참조).

    도성의 북측 경계선으로는 금마도토성이 위치한 금마 산과 금마면소재지 동북측의 시대산을 연결하는 일련의 동서선이 상정된다. 이 경우 금마도토성은 익산도성과 일체화된 방어성으로서 백제 웅진도성이나 사비도성과 유사한 구조를 지니게 되며 금마도토성 일대의 구릉지는 익산도성의 禁苑區域으로 상정된다.

    서측으로는 미륵산으로부터 오금산을 거쳐 익산 쌍릉 일대의 구릉지로 연결되는 지맥을 기준으로 익산 쌍릉을 외곽에 두고 오금산성으로부터 갈전천으로 이어지는 남 북선이 상정된다. 이는 지형흐름과 함께 방어성으로서 오금산성 및 산성과 연결되는 남북축선상에 위치한 물길 과 도성의 관계, 도성과 묘역의 관계를 고려한 것이다.

    동측으로는 용화산으로부터 시대산을 거쳐 제석사지 일대의 구릉지로 연결되는 지맥의 내부로서 제석사지 동 회랑지와 인접한 남북축선이 상정된다. 이는 지형흐름과 왕실사찰로서 제석사의 역사적 성격26)을 고려한 것이다.

    한편 남측으로는 익산도성의 남측경계선은 만경강과 연결되는 지류로서 익산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계를 기 준으로 익산천-부상천의 합수지점과 익산천-왕궁천의 합 수지점을 연결하는 2개의 동서선이 상정된다. 특히 고대 익산도성 일대 수로와 관련된 연구결과와 기록을 고려해 볼 때 익산천과 부상천의 합수지점이 주목된다.

    이렇게 설정된 익산도성의 계획구역을 기준으로 구역 내 지형여건과 유적의 위치를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특성이 나타나게 된다. 먼저 금마산으로부터 금마면소재 지를 경유하여 왕궁성으로 연결되는 지맥과 이를 따라 흐르는 익산천은 도성구역의 중앙부를 북에서 남으로 관 통하게 된다. 왕궁리유적은 도성구역의 중앙부를 남북으 로 관통하는 구릉지맥과 남측 저지대가 교차하는 단부에 위치하며 전체 도성구역을 기준으로 중심구역을 점유하 고 있다. 백제 익산도성이 거점시설로서 익산 쌍릉과 미 륵사지는 도성구역의 밖에 위치하게 된다. 한편 금마면 소재지의 북측과 서측에 위치한 금마도토성과 익산토성 은 익산도성의 일부로서 웅진도성의 공산성, 옥녀봉성과 공산성 남측구역 사이의 관계, 사비도성의 부소산성과 나성 및 관북리유적에서 관찰되는 도성구조와 유사한 특 성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도성구조는 풍수형국이나 생 산여건, 교통여건, 방어여건, 고지대를 활용한 중심시설 배치 등의 측면에서 고대 도성제에서 관찰되는 도성구조 와 부합되는 특성을 지니게 된다.

    나. 도성조영축

    도성조영축은 도성구조에 이념적 질서를 부여하고 도 성시설을 배치하는 기준요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다.27) 백제 익산도성의 경영시기를 고려한 중국의 고대 도성을 살펴보면 세부적인 위치나 주향에서 다소간의 편 차를 보이고 있지만 도성의 남문으로부터 궁성으로 연결 되는 남북방향의 종축선을 기준으로 도성구조가 형성되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南朝建康城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지형적 요인이 때로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앞에서 살펴본 익산도성 일대의 지형구조와 물길, 계 획구역에 대한 논의를 토대로 미지형과 유적 분포상황을 종합해 보면 남측의 익산천과 부상천, 왕궁천의 합수지 점으로부터 왕궁리유적을 경유하여 북측의 금마도토성을 연결하는 일련의 남북축선이 익산도성의 도성조영축으로 설정된다. 이렇게 도출된 남북축선은 왕궁리유적의 서장 을 따라 위치한 구)국도1호선(궁성로) 및 익산천과 거의 유사한 선형을 지니게 된다. 한편 이러한 도성조영축을 북쪽으로 연장해보면 미륵산과 용화산 능선이 교차하는 저지대와 낭산을 거쳐 부여 공주방면으로 연결되는 루트 와 거의 일치하게 되는데, 이러한 선형은 미륵산과 용화 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금마 왕궁 일대의 지형구조, 익산 천과 북천으로 구성된 하천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남북축선을 중심으로 백제유적의 위치를 살펴보면 왕궁리유적과 금마도토성이 중심축선상에 위치 하고 양편의 제석사지 및 익산쌍릉을 기준으로 좌우구역 이 균형을 이루게 된다. 또한 금마도토성을 중심으로 주 변에 분포하고 있는 미륵산성, 용화산성, 낭산산성과 선 인봉산성 등의 백제성곽과 조화되는 선형을 지닌다.

    3-3.궁성제와 도성 거점시설의 배치구조

    가. 궁성제와 도성구조

    궁성은 도성의 핵심시설로서 궁성의 위치나 포국 등은 고대 도성제의 관점에서 익산 도성계획을 이해하는 핵심 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도성 내 궁성의 위치를 중심으로 고대 중국에서 발견 되는 궁성제는 크게 中宮制와 北宮制등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 중궁제는 『周禮』 考工記의 도성제에 기초 한 것으로 소위 天地관념과 中心개념에 기초한 居中 관념, 禮制관념이 그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북궁제는 조위 업(북)성 이후에 채용된 것으로 북위 평성, 북위 낙 양성, 동위ㆍ북제 업남성, 육조 건강성 등이 이를 채용하 고 있다. 북궁제는 궁성이 도성의 중앙에 위치함으로써 나타나는 토지이용 상의 불합리성을 해소하고 ‘南面以治’ 라는 관념을 보다 중시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도성제의 하나로 자리하게 되었다.

    왕궁리유적을 정궁으로 한 중궁제형 도성구조

    백제 익산도성의 궁성제와 관련하여 지금까지의 논의 결과를 종합해보면 왕궁리유적에 대한 발굴성과와 『觀世 音應驗記』의 기록을 토대로 왕궁리유적을 백제 무왕대 궁성으로 보고 이를 『周禮』 考工記의 도성제와 연계 하여 중궁제를 채용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궁제에 기초한 익산도성은 왕궁리유적을 정궁으로 삼 고 도성의 중앙부에 왕궁을 배치하는 형태로 왕궁리유적 의 남문지와 연결되는 남북축을 도성의 조영축으로 삼아 북으로 용화산-미륵산 능선의 저지대, 남으로 익산천과 부상천 왕궁천의 합류부로 이어지는 도성조영축28)을 중 심으로 한 도성구조가 상정된다(Fig.9 참조).

    이러한 배치형태는 기본적으로 考工記의 도성제와 매우 흡사한 것으로 궁성(왕궁리유적) 남측에 시가구역, 북측에 시가구역이 위치하며 방어성이자 유사시 도피성 으로서 금마도토성이 위치한 건지산(굿대숲)과 금마산 일대에 금원구역이 위치하는 구조를 취하게 된다. 한편 동서방향으로는 궁성 남문과 제석사지 남측, 능원구역 남측을 연결하는 동서축29)을 기준으로 궁성 좌우의 제석 사지와 익산 쌍릉 사이에 시가구역이 배치되는 도성구조 가 상정된다.Fig.10

    그러나 중궁제에 기초한 도성구조는 하천변 저지대에 위치한 왕궁리유적의 동 서장의 위치를 포함하여 지금까 지의 발굴조사결과와 지형여건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앞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고대 왕궁리유적의 동측 과 서측, 그리고 남측 일대의 상당부분이 익산천과 도평 천의 하천구역 또는 천변 저습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러한 지형구조 위에서 왕궁리유적 남측에 조정구역이 위 치하기 위해서는 상당량의 대지조성작업이 요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발굴조사 결과에서 이러한 정황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금마면소재지를 정궁으로 한 북궁제형 도성구조

    익산지방의 지형형국이나 백제 익산 도성의 계획구역, 성곽분포, 동시대를 전후한 중국 도성구조 등을 고려해 볼 때 왕궁리유적을 기준으로 한 중궁제형 도성구조는 검토의 여지가 있다. 특히 익산도성의 계획구역과 중심 축, 그리고 금마도토성과 익산토성, 제석사지, 익산쌍릉 등의 백제유적과 궁성 사이의 관계를 고려해 볼 때 현재 의 금마면소재지 일대를 정궁으로 한 북궁제의 도입가능 성을 상정해볼 수 있다.

    북궁제에 기초한 익산도성은 만경강으로부터 익산천과 부상천(또는 왕궁천)의 합수지점과 왕궁리유적, 금마면소 재지, 미륵산과 용화산 사이의 저지대, 북천으로 이어지 는 남북방향의 도성조영축30)을 따라 남측으로부터 시장 과 시가구역, 왕궁리유적, 왕궁리유적과 궁성 사이의 조 정구역, 북단 궁성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취하게 된다.

    또한 금마도토성이 위치한 건지산(굿대숲)과 동측 금 마산을 포함한 왕궁 배후지역은 유사시 도피성이자 궁성 과 배후의 금원구역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한편 동서방향으로는 도성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동서 축을 기준으로 중심축과의 교차부 일대에 왕궁리유적을 두고 좌우에 제석사지와 익산 쌍릉을 배치하는 구조가 된다. 시가구역은 왕궁리유적의 남측 저지대를 중심으 로31) 제석사지와 익산 쌍릉 사이의 구역에 배치되며, 시 장은 궁성 남측에 시가구역과 연계하여 배치되거나 하천 의 합수지점 일대에 배치하는 도성계획이 채용되었을 가 능성이 높다.

    이러한 도성구조는 웅진도성에서의 공산성과 공산성 남측 왕궁지 및 대통사지, 사비도성에서의 부소산성, 관 북리유적과 정림사지로 구성되는 도성구조의 연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즉 배후 산지에 산성을 두고 구릉지대에 왕궁이 위치하며 남측 저지대로 이어지 는 중축선상에 사찰을 배치하는 도성의 배치구조는 웅진 도성으로부터 사비도성, 익산도성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백제식의 도성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도성 구조는 백제 익산도성 경영시대를 전후로 한 중국의 남 조 건강성, 북위 평성, 북위 낙양성, 동위ㆍ북제 업남성 과 유사한 구조가 된다.

    4.결론

    왕궁리유적을 비롯한 백제시대 사찰, 성곽, 능묘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한 금마 왕궁 일대는 백제 무왕 대 천도 를 둘러싼 다양한 견해가 충돌되고 있는 지역이다. 천도 의 실현 여부에 대한 가부를 떠나 백제 익산지방의 역사 성이나 유적의 분포형태를 고려해볼 때 도성조영을 위한 계획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배 경을 토대로 본 연구는 중국과 웅진 사비시대 백제도성 과 연계하여 도성구역, 도성조영축, 도성시설을 중심으로 한 도성공간구조를 중심으로 백제 익산도성 조영계획모 델을 설정해보고자 하는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백제 익산도성의 경영시기를 기준으로 4~7세기 중국 의 고대도성과 웅진 사비시대 백제도성에 대한 분석과 함께 백제 유적 발굴조사 자료와 사료 및 (고)지도 분석 으로부터 도출되는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익산도성은 지형구조와 물길을 고려하여 설정 된 남북방향의 도성조영축과 연계하여 배후 산성과 통합 된 궁성을 도성의 북단에 위치한 소위 북궁제형 도성구 조를 채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왕궁리유적은 재 지세력의 거점 위에 익산도성 조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활용되었던 임시적인 궁으로서 성격을 보유하고 있었으 며 정궁은 금마도토성 남동측, 현재의 금마시가지 일대 로 계획되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정황을 종합해보면 금마면소재지 일대 왕궁 조성계획은 실현되지 못하고 미완의 계획으로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하여 향후 금마면소재지 일대 에 대한 종합적인 발굴조사가 요망된다.

    둘째로 익산도성의 금마도토성과 통합된 형태의 궁성 을 중심으로 배치된 왕궁리유적, 제석사지, 익산 쌍릉, 관방시설 등의 분포는 일련의 구성단위가 자연발생적으 로 생겨나거나 추가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결합된 통일 적 복합체의 하위체계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익산도성은 웅진도성과 사비도성의 전통을 계승한 도성계획모델을 채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특성은 ① 도성을 둘러 싸고 있는 외곽지맥과 물길을 이용한 도성의 외곽영역 설정 ② 도성의 외곽지맥과 연계한 능묘시설과 관방시설 등의 도성시설 배치 ③ 남북 도성조영축과 통합된 궁성 과 배후 산성, 그리고 중심사찰의 배치 등에서 확인된다.

    셋째로 익산 도성계획에서 발견되는 ‘背山臨水’, ‘南面 而治’, ‘宮北市南’, 남북 종축방향의 도성조영축 설정, 도 성조영축과 통합된 궁성과 사찰 배치 등의 원리는 백제 익산경영시대를 전후로 한 중국 고대 도성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넷째로 상기한 익산도성계획 모델과 유적 발굴조사결 과를 종합해 볼 때 익산도성의 역사적 이행단계는 크게 3단계로 상정된다. 제1단계는 왕궁리유적, 오금산성, 신 동리유적 등을 중심으로 익산도성계획이 수립 실행되기 전 재지세력의 거점지역으로서의 성격을 보유한 시기이 다. 제2단계는 익산도성 경영을 위한 총체적 계획이 수 립되고 일부 도성 기반시설이 조성된 시기이다. 이 시기 ① 도성조영축을 중심으로 도로체계, 도성시설 배치 등 과 관련한 도성계획 수립과 함께 ② 주변 관방시설 정 비 축조가 이루어지고 ③ 왕궁리유적 주변지역에 대한 확장 정비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하여 유적 주변 하천(도평천, 부상천) 정비 및 담장 축조, 대 지조성을 통한 영역 확장, 대형건물지22를 비롯한 일부 건축물 추가 건립, 정원 후원 조성 등이 주목된다. ③ 또 한 능원의 일부로서 익산 쌍릉이 조성되고 사찰로서 제 석사가 건립되었으며 ④ 일부 시가도로 및 관청과 생활 공간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3단계는 630년대 후반부-640년대 전반부를 계기로 한 사비도성으로의 회 귀, 정착기로 상정된다. 실제로 미륵사지 서탑 해체과정 에서 사리장엄과 함께 출토된 金製舍利奉安記에 나타난 미륵사지 축조년대(639년 : 무왕 40년), 『觀世音應驗記』 의 639년 11월 제석사지 화재기록 등은 보는 관점에 따 라 한편으로는 익산 도성경영의 쇠퇴를 알리는 시점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익산 도성경영의 정착기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전자의 관점에서 왕궁리유적의 사찰 이행과 정과 더불어 사비도성의 확장, 완비과정이 상정된다.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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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cheological sites of Iksan imperial capital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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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ucture of ancient Chinese capital cities and Baekje Woongjin & Sa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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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pological structure of Ik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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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terways of Ik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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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yout of ancient fortifications in Ik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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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wn plan of Iksan in old map of 1872 and land registration map of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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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ical ancient road of Iksan in land registration map of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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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nning area and skeletal axis of Iksan Imperial capital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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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ksan Imperial city structure based on central royal pa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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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ksan Imperial city structure based on northern royal palace.

    Table

    Operation time and size of ancient Chinese capital cities

    Footnote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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