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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598-1142(Print)
ISSN : 2383-9066(Online)
Journal of architectural history Vol.24 No.3 pp.17-29
DOI : https://doi.org/10.7738/JAH.2015.24.3.017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Evolution of Multi-storied Buildings in Hanyang, the Capital of Josun Dynasty

Seong-Lyong Ryoo
April 15, 2014 June 27, 2015 June 30, 2015

Abstract

This study is about the change of multi-storied buildings in Hanyang, the capital city of Joseon Dynasty. The changes are divided into 3 phases in the viewpoint of architectural types and building types. The first phase is from the early Joseon Dynasty to the time of Japanese invasion to Korea and Sungryemun remains until now. The second phase is from 1592 to the the first half of the 18th century. Many multi-storied Buddhist halls were rebuilt at that time. In the final phase, many multi-storied gate buildings and multi-storied main buildings of palaces were rebuilt. And there are differences between the Buddhist buildings and the main buildings of palaces. By the way the change that architectural style of the Buddhist buildings and the main buildings of pal were switched and mixed occurred. For example, Anguksa Daeungjeon adopted the style of multi-storied gates and Injeongjeon adopted the style of multi-storied Buddhist halls. These phenomenon was result from periodical situation the monk carpenter and his disciple took part in governmental construction like Janganmun.


조선시대 都城중층건물의 건축형식 展開에 관한 연구

류 성 룡
계명대학교 전통건축학과 조교수

초록


    1.서 론

    조선시대 중층목조건축1)은 건물의 용도에 따라 사찰 건축과 관영 건축으로 나눌 수 있으며, 관영 건축은 다 시 문루건축과 궁궐의 정전건축으로 나눌 수 있다. 또 가구 형식에 따라 분류한다면 온간물림과 반간물림으로 나눌 수 있고, 반간물림 형식은 상층 기둥 설치 방식에 따라 다시 귓보 형식, 귀잡이 형식, 귓고주 형식 그리고 기타 형식2)으로 나눌 수 있다.

    이상의 조선시대 중층건축에 대한 연구들을 통해서 시 대, 형식, 유형에 따른 특징적 사실들이 확인된 바 있다. 예를 들면 17세기 사찰의 중층불전은 온간물림 형식과 함께 반간물림 형식에서는 귓보 방식이 많이 사용되었고, 다포 중층문루에서는 반간물림 형식 중 귀잡이보 방식인 경우가 많으며, 반간물림 형식 중 귓고주를 사용한 사례 는 조선시대 한양의 다포 문루건축과 궁궐의 정전건축에 서만 볼 수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시대 중층건축의 흐름을 살펴보면 임진왜란 이전, 임진왜란 이후부터 18세기 상반기까지, 18세기 하반기 이후 등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임진왜란 이전의 중층 건물로는 숭례문을 비롯하여 평양 보통문과 대동문 이 남아있고, 임진왜란 이후부터 18세기 중반까지는 사 찰의 대규모 중층불전이 많이 중건되었으며, 18세기 후 반 이후로는 관영 문루 건축과 궁궐 정전 건축이 다수 건축되는 등 시대에 따라 다른 양상이 확인된다.

    이처럼 사찰건축의 중층불전과 관영건축의 중층건축은 시기상으로 그리고 건축형식상으로도 구분된다는 점에서 본 연구가 출발되었다.3) 18세기 후반 이후 집중되는 관 영 중층건축의 건축적 특성에 대한 연구는 앞선 시기(17 ∼18세기 상반기까지)에 집중되었던 사찰 중층건축 건축 과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되고 나아가 이런 차 이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는 것을 기대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있는 관영건축의 중층건물은 문루와 正殿건 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중층문루가 다른 유형 의 건축과 차별되는 특징에 주안점을 두고 평면계획, 공 포계획, 내부 계단계획, 기둥계획 등의 순서로 분석하였 다. 다음으로 궁궐 정전은 인정전, 근정전 그리고 1902년 건축의 중층 중화전을 대상으로 평면계획, 공포계획, 가 구계획, 기둥 설치형식 등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현재 의 중화전은 단층이지만 화재로 소실되기 이전에 있었던 중층 정전에 대한 『中和殿營建都監儀軌』가 남아있기 때문에 의궤의 치수와 내용을 이용하였다. 인정전의 경 우에는『仁政殿營建都監儀軌』의 내용을 기준으로 실측 조사보고서의 치수를 참고하였고, 근정전은 실측조사보고 서의 치수를 기준으로 사용하였다.

    2.중층 건축의 분류

    최근까지 중층 건축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남한에 남 아있는 건축물을 중심으로 정리하면〈Tab.1〉과 같다.

    조선시대 중층의 불전건축과 관영건축은 입면체감 방 식에 따라 온간물림 방식과 반간물림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온간물림 방식의 중층건물로는 무량사 극락전 (1633년)과 마곡사 대웅보전(1651년)를 들 수 있고, 법주 사 팔상전(1602〜1626년)에서는 3층과 5층, 금산사 미륵 전(1635년)에서는 3층이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4) 이상 은 모두 17세기 전반기 건축물들이다. 18세기 전반기 사 례로는 금강산의 장안사 대웅전 및 사성전(1731년)이 있 다. 관영건축에서도 온간물림 방식을 채택한 경우가 있 는데, 18세기 후반의 읍성 문루 전주 풍남문(1768년)5)과 20세기 초 덕수궁 석어당(1904년)이 있다.

    이상의 온간물림의 중층건축을 보면 사찰의 중층불전 이 모두 다포 건축이었던 것과 달리 관영 건축에서는 18 세기 후반의 전주 풍남문은 出目翼工이고 20세기 초 덕 수궁 석어당은 無出目翼工이라는 점에서 대비된다.

    반간물림의 중층건축에도 사찰건축과 관영건축으로 나 눌 수 있는데, 구조 형식에 따라 귓보형식, 귀잡이보형식, 귓고주형식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반간물림의 귓보형식은 사찰 중층불전에서만 볼 수 있 다. 먼저 화엄사 각황전(1699〜1702년)이 여기에 해당된 다. 또 5층인 법주사 팔상전(1602〜1626년)에서는 2층 기둥과 4층 기둥을 세우는 위치에 귓보와 귀잡이보와 함 께 사용하고 있고, 3층인 금산사 미륵전에서는 2층 기둥 을 세우는 위치에 귓보를 사용하고 있다.6)

    반간물림의 귀잡이보형식은 주로 관영건축의 중층문루 에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서, 17세기 법주사 대웅전에서 처음 발견된다. 그러나 법주사 대웅전의 귀잡이보는 부 재 전체가 다포의 공포대에 걸쳐지는 모습이 아니기 때 문에 부재의 중간을 기둥으로 보강하고 있다. 같은 경내 의 5층 팔상전에서는 2층과 4층에서 귀잡이보가 귓보와 함께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앞서 살펴본 바 있다. 결국 관영건축의 중층문루처럼 부재 전체가 공포대 위에 설치 되는 본격적인 모습은 안국사 대웅전(북한 평남 평성시 소재)이 건축되는 18세기 후반(1785년)에 가서야 확인된 다. 법주사 대웅보전은 내2출목 공포이고 법주사 팔상전 의 공포는 2층 이상의 경우에 내출목이 없는 건물이다. 사찰 중층불전과 달리 관영건축의 문루 건축에서는 귀잡 이보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데, 이 사실로 보면 귀잡이보가 다포이면서 비교적 소규모인 중층 건물 구조에 적합한 부재였음을 예상할 수 있다.

    반간물림의 귓고주 형식은 한양 도성의 중층건축에서 만 발견되는데 반간물의 다른 형식에 비해 공포대가 발 달하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건물에 이용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특히 조선초 숭례문(14세기〜15세기7))에서 사용 된 이후 약 350여년 이상 지나서 창덕궁 인정전(1804년) 중건에서 다시 사용되었고, 이후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과 함께 광화문(1866년), 근정전(1867년) 그리고 흥인지 문(1867년)까지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다.

    결론적으로 온간물림과 반간물림의 귓보형식이 많이 사용된 사찰건축은 17세기에 집중적으로 건축되고 있고 반간물림의 귀잡이보형식과 귓고주 형식의 관영건축은 18세기말 팔달문 이후에 집중적으로 건축되는 것을 알 수 있다.

    3.중층 문루 건축

    현재 남한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중층 문루건축은 모두 8곳으로 출목익공의 전주 풍남문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다포 건축이다. 풍남문은 하층이 정면 3간, 측면 3 간이고 상층이 정면 3간, 측면 1간이어서 정면은 반간물 림이 되고 측면은 온간물림이 된다는 점에서도 도성의 중층문루와 구별된다.

    3.1.평면 계획

    중층문루는 측면 3간의 풍남문을 제외하면 모두 측면 이 2간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문루 하층의 측면 폭에 서 홍화문을 제외하면 모두 24∼25척 범위에 있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특히 숭례문과 돈화문만 25척이고 나머 지 풍남문, 팔달문, 광화문, 근정문, 흥인지문은 모두 24 척이다. 따라서 중층 문루의 측면폭은 24척 내외의 계획 적 치수로 고려되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17)

    한편 정면 간수에 따라 중층 문루를 분류하면 5간인 경우(숭례문, 돈화문, 팔달문, 흥인지문)와 3간인 경우(홍 화문, 근정문, 광화문)로 나눌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5간 중층 문루에서 정면 夾間의 주 간거리와 축면간의 주간거리가 상층과 하층에서 서로 같 다는 것이다. 숭례문의 경우를 예로 들면, 전각부에서 하 층 夾間의 12.5척과 하층 측면간 12.5척이 서로 같고 상 층 夾間의 10.1척과 상층 측면간 10.1척이 서로 같다.18) 정면 5간의 중층 문루에서는 건물 전각부의 정면 치수와 측면 치수를 같게 계획한 것이다. 결국 5간 중층 문루에 서는 夾間의 전각부 주간거리가 평면 계획의 중요한 출 발점이었다고 예상할 수 있다.19)

    이와 달리, 정면이 3간인 중층 문루에서는 전각부의 정면 주간거리와 측면 주간거리가 서로 다르게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근정문을 보면 하층의 側間 은 15.5척으로 측면간 12척과 다르고 상층 側間은 12.5 척으로 측면간 9척과 다르다. 3간의 중층 문루에서는 전 각부의 평면 모양이 정방형이 아니라 장방형으로 계획했 다는 것을 의미한다. 홍화문은 정면 14척, 측면 10.5척, 풍남문은 정면 14척, 측면 5척, 광화문은 정면 25척, 측 면 14척, 근정문은 정면 15.5척, 측면 12척으로 모두 장 방형 전각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 같은 모습은 내부 공간의 크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 로 추정된다. 정면이 5간인 경우에는 내부 공간의 크기 에 문제가 없다고 여겼고 전각부가 정방형이 되는 常例 的인 계획을 이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20) 그러나 정 면 3간인 경우에는 내부 공간에 확장이 필요하였고 따라 서 측간의 주간 길이를 늘이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 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측면간 2간이 24척이 되는 것 은 평면계획상 정해진 것이라면 내부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정면의 주간길이를 늘리는 방법이 유일하기 때 문이다. 실제로 광화문의 경우, 정면 3간인 건물이지만 측간의 주간거리를 숭례문의 2배 정도로 확대함으로써 정면 5간 건물의 평면 크기와 같은 규모로 만든 것을 확 인할 수 있다.

    3.2.공포 계획

    도성의 중층문루 공포는 모두 다포가 이용되었지만 읍 성의 중층문루인 풍남문는 다포가 아닌 出目翼工이 이용 되었다.

    먼저 중층문루의 다포 공포에서 출목을 보면 일정한 원칙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조선 후기 중층문루의 하층 공포는 외2출목 내3 출목으로 구성한 것이 기본으로 나타난다. 특히 내출목 과 관련하여 내3출목 선상에 2층 평주를 설치함으로써 내목도리는 하층 지붕의 서까래를 거는 역할과 함께 2층 평주 사이를 연결하는 멍에창방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은 방식은 숭례문도 같은 것으 로 도성의 중층문루에 공통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숭례문에서는 2층 평주가 2출목선상에 설치한 점이 다른 데, 이는 15세기 다포 공포의 출목 간격은 1.2척이었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간격이 좁아지는 변화와 관련짓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21) 조선 전기에는 2출목 위치에 2 층 평주를 설치하는 모습이었다가 조선 후기에는 3출목 위치에 2층 평주를 설치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고 정착되 었다.

    둘째, 상층 공포에서 출목수는 도성문루와 궁성문루에 서 차이가 있다. 도성문루(숭례문, 팔달문, 흥인지문)는 외3출목이고 궁성문루는 외2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는 문루 사이에도 도성과 궁성에 따라 출목에 따른 위계 도 감안되어지는 부분이다.

    한편 단위 공포의 설치 개수는 평면 계획과 밀접한 관 련이 있다. 주간포 설치 개수를 보면 5간 중층 문루와 3 간 중층 문루 사이에 차이가 있다.

    5간 중층 문루는 하층에서 어간에 4구, 側間에 2구, 夾間에 2구를 설치한 다음, 상층에서는 어간과 측간은 동일하게 하고 夾間에서만 1구를 설치하였다. 측면의 주 간포는 정면 夾間과 일치하도록 하층은 2구, 상층은 1구 를 설치하여 계획의 완결성을 높이면서 정면과 측면의 상하층 체감이 같도록 하였다. 숭례문, 팔달문, 흥인지문 과 돈화문이 모두 같은 모습이다.

    3간 중층 문루는 정면에서 어간과 側間만 있기 때문 에 부족한 공간을 해결하기 위해 전각부를 정방형으로 하지 않고 장방형으로 계획하였다. 따라서 정면 側間의 주간포 수와 측면간의 주간포 수가 다르게 되었다. 홍화 문과 근정문에서 주간포는 어간에 3구, 양쪽 측간에 3구 설치되었고, 측면간은 2구가 설치되고 있다. 그리고 상층 전각부에서는 주간포가 각각 1구씩 줄어들어 양쪽 側間 에 2구, 측면간에 1구 설치되고 있다. 광화문은 3간 문루 임에도 불구하고 주간거리를 확대시켜 전체 평면 크기가 5간 문루만큼 크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주간포 개수 역시 어간 6구, 側間5구로서 이례적인 모습이 되었다. 그렇지만 측면간은 주간거리가 12척으로 다른 문루와 같 아서 주간포를 2구 설치하고 있다. 상층의 경우, 측간의 주간포는 5개에서 4개로 하층보다 하나 줄였고 측면간 역시 2개에서 하나 줄여 1구만 설치하였다. 문루 계획에 서 측면간의 주간거리와 포간거리는 일정한 상수가 되기 때문에 규모를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정면의 주간거리를 조절하는 방법이 사용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즉, 측면의 주간포 설치와 포간거리가 문루 계획의 시작이라 고 할 수 있다.

    3.3.내부 계단

    중층 문루의 특징 중 하나는 상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설치된다는 점이다. 중층불전이나 중층정전의 지붕은 2 개이지만 내부공간은 하나인 모습과 달리, 중층문루는 건물 중간에 마루를 설치하여 하층과 상층을 따로 구분 하기 때문이다.Fig 1

    중층 문루에서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의 현황을 살펴보 면 8곳 중 6곳은 계단이 하나만 설치되어 있다. 정면 5 간 문루인 돈화문과 팔 달문만 계단이 두 곳 설치되어 있고, 같은 정 면 5간이지만 숭례문과 흥인지문에는 계단이 하나만 설치되고 있다. 내부 공간이 작은 3간 문루에는 모두 계단이 하나만 설치되어 있다.『화성성역의궤』에 서 장안문과 팔달문의 계단에 관한 짧은 기록 을 참고할 수 있다.22) “西來第一間及東來 第二間各設曲蘭層梯以 通上層而西則自北而上東則自南而上西梯下設箭門關鎖 臨御時開”

    장안문에 대한 위 기록을 통해서 장안문과 팔달문에 각각 설치된 두 개의 계단 중 하나는 왕의 전용이었음을 알 수 있다. (Fig 2. 참조. 서쪽의 큰 화살표 위치 계단 이 왕 전용)

    『조선왕조실록』에서 정조 19년(1795년)의 ‘上周覽甕 城, 上長安門樓’과 정조 21년(1797년)의 ‘至八達門, 御門 樓暫憩’에는 서쪽 계단이 이용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장 안문과 팔달문에서 정조가 사용했던 계단을 주간거리가 상대적으로 넓은 측간에 설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 되는데 절대 방위인 서쪽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북쪽의 장안문과 남쪽의 팔달문 모두 문루를 오르는 방향이 도성으로 진입하는 방향과 같다는 점에서 동일하다.Fig 3

    이 밖에 중층문루 중 계단이 양쪽에 모두 설치된 경우 로는 정면 5간의 돈화문이 있다. 돈화문의 경우는 양쪽 夾間에 설치되고 있는데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꺾이는 ㄱ 자 형태를 대칭으로 설치하였다.

    한편 계단이 하나 설치되면서 가로로 긴 일자형 모양 인 경우는 숭례문, 흥인지문, 광화문 등으로 정면의 폭이 길어서 공간에 여유가 있는 문루라는 공통점이 있다. 숭 례문과 흥인지문의 계단은 측간에 시작되어 어간의 심고 주 위치에서 2층 바닥에 도달하는 모습이다. 광화문 계 단 역시 측간에 설치된 일자형이지만 진행방향이 어간에 서 측간쪽으로 반대라는 점이 두 건물과 다르다.23)

    홍화문과 근정문은 계단참이 있는 ㄱ자 모양으로 설치 되어있는데 두 건물은 정면 3간 규모로 계단을 설치하기 에 내부공간의 크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진입부분을 1층 기둥 바깥쪽 즉 건물 외부가 되는 처마 밑에 설치한 것 이 특징이다. 특히 홍화문 계단은 상중하 3단으로 구성 되어 가장 복잡한 모습인데, 상단만 내부 공간에 해당되 고 하단과 중단은 건물 바깥쪽에 설치하였다.

    계단의 위치는 동쪽에 설치하는 사례가 우세한 것으로 보이는데24) 옹성이 있는 팔달문과 흥인지문, 그리고 장 안문의 경우는 반대인 서쪽에 설치된다는 점에서 주목된 다.

    3.4.기둥 설치

    도성 중층문루의 구조와 관련하여 기둥 설치에 있어서 대표적인 특징은 心高柱형식이라는 점이다.25)

    도성의 중층문루는 측면이 모두 2간이기 때문에 중앙 열의 고주가 구조의 중심이 되는 모습이다.(Tab.6 참조) 따라서 읍성 중층 문루인 풍남문과 비교하면 그 차이점 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러한 차이점은 지붕 모양에 영향 을 주게 되는데 도성 중층문루는 상층지붕이 모두 우진 각지붕이 되고 전주 풍남문은 팔작지붕이 된다.

    전주 풍남문은 도성 중층 문루와 비교할 때, 측면 간 수의 조절에서 보면 온간물림에 속하는데 도성의 중층문 루가 모두 반간물림에 속하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온간물림 형식은 사찰 중층불전에 많이 사용되는 형식이 라고 할 수 있다.26)

    도성의 중층문루는 반간물림 형식만 사용되는데 그 중 에서 귀잡이보 형식과 귓고주 형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귀잡이보 형식인 문루 중에는 정면 5간의 창덕궁 돈화문 과 화성 팔달문이 있고 정면 3간의 홍화문과 근정문이 있다. 귓고주 형식인 문루는 정면 5간의 숭례문과 흥인 지문 그리고 정면 3간에서는 광화문이 유일하게 사용되 었다.27)

    귀잡이보의 장점은 전각부의 정면과 측면 주간거리가 같지 않아도 설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28) 그럼에도 불 구하고 정면 5간의 돈화문과 팔달문은 전각부의 정면과 측면 주간거리를 동일하게 하였고, 정면 3간의 홍화문과 근정문에서 전각부를 다르게 하였다. 건물의 규모가 상 대적으로 작은 경우에는 내부 공간을 확장할 필요가 있 는데 앞서 살펴본 바대로 측면간의 길이는 24척 내외로 일정하기 때문에 정면 측간의 길이를 늘려야 하는 것이 다. 따라서 전각부 정면과 측면 주간거리가 달라도 되는 귀잡이보를 사용하여 2층 평주를 설치하는 것이다.

    한편 2층 평주가 설치되는 위치를 보면, 도성 중층문 루와 사찰 중층불전 사이에 차이점이 발견된다. 도성 중 층문루에서는 2층 평주가 공포의 최내단 출목선상에 설 치되지만 사찰 중층불전에서는 하층의 툇보 중앙에 2층 평주가 설치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이 같은 차이는 상층 평주를 연결하는 멍에창방이 내 목도리를 겸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설명할 수 있다. 도 성 중층문루는 2층 평주 사이를 내목도리로 연결하여 기 둥의 결속력을 높이는 한편 서까래 상단을 걸치는 멍에 창방으로도 사용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사찰 중층불전은 내목도리와 멍에창방이 별도인 방식이다. 법주사 대웅전 과 법주사 팔상전29),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은 내 출목 위에 내목도리가 없기 때문에 멍에창방만 있는 모 습이고, 무량사 극락전과 마곡사 대웅보전은 내목도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2층 평주는 안쪽으로 물러나 있기 때 문에 별도의 멍에창방을 설치하고 있다.30) 결국 중층 건 물에서는 2층 평주 위치와 내목도리 또는 멍에창방의 기 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사찰 양식과 도성 양식이 따로 존재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31)

    4.중층 정전 건축

    4.1.평면 계획

    1804년 중건 창덕궁 인정전과 1902년 영건 경운궁 중 층 중화전은 상층과 하층을 모두 정면 5간, 측면 4간으 로 하였다.32) 하층 평면을 보면, 인정전에서는 정면 어간 만 20척으로 크게 하고 나머지 모든 간들은 모두 15척으 로 통일하였으며33) 중층 중화전 역시 정면 어간만 18척 으로 크게 하고 나머지 간들을 모두 14척으로 통일하고 있다.34) 2층 평면은 반간물림 형식이기 때문에 맨끝간의 주간거리만 줄이고 있는데, 인정전과 근정전 모두 상층 보다 주간거리를 5尺줄였기 때문에 인정전은 10척, 근 정전은 12척이 되었다.

    1867년 중건된 경복궁 근정전의 평면은 상하층 모두 정면 5간, 측면 5간이다.『宮闕志』에 의하면 정면 어간 은 22척, 측간(挾間)은 21척, 협간(退)은 17척으로 하였 고 측면의 어간과 전후간의 3간은 11척으로, 전후퇴는 17척으로 계획하였다.35)

    4.2.공포 계획

    공포 배치의 경우, 인정전 하층에서는 정면 어간에만 주간포를 3구 설치하고, 나머지 정면의 협간(挾間)과 퇴 (退) 그리고 측면의 4간 모두 2구씩 설치하였다. 따라서 포간거리를 모두 5척으로 동일하게 계획했음을 알 수 있 다. 인정전 상층의 경우에는 하층과 같게 유지하면서 모 서리간만 10척으로 하면서 주간포를 1구만 설치하였다. 포 간격 5척을 기본으로 하고 그 배수를 주간거리에 이 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층 중화전의 경우에 인정전의 주간거리 계획과 유사 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와 공포 설치 역시 유사한 모습 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포간격과 주간거리가 정수배가 되지 않는 관계로 어간의 포간격(4.5尺)과 나머 지 간의 포간격(≒4.7尺)에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 다.

    근정전의 경우, 하층에서는 어간 주간포 4구, 挾間4 구, 退에 3구를 설치하였고 측면에서는 중앙 3간에 주간 포 2구, 양퇴에 3구씩 설치하였다. 상층에서는 하층을 기 본으로 하면서 모서리간만 주간포 갯수를 2구로 줄여 설 치하였다. 근정전은 주간거리가 위치마다 다르기 때문에 포간격 역시 차이가 발생하는데, 하층의 포간거리는 어 간 4.5尺, 挾間5.25尺, 退4.25尺이 된다. 이를 통해 근 정전의 상층 전각부에서 退의 주간거리는 12.75尺임을 계산할 수 있다.

    궁궐 중층 정전의 공포 출목은 하층과 상층을 같게 만 들고 있는데, 외3출목 내4출목으로 구성하였다. 정면 5간 문루가 상층에서 외3출목 내3출목이었던 점과 비교할 때. 중층 정전에서는 내출목이 한 단 증가하고 있는 것 이다.

    그런데 공포의 출목 간격과 관련하여 건물마다 특징적 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인정전의 공포를 보면 외출목 간격은 상층과 하층 모두 1尺으로 같다. 그런데 내출목 간격은 하층에서 1尺보다 좁은 0.9尺으로 만들었 고 상층에서는 1尺보다 넓은 1.25尺으로 만들었다.36)

    근정전 공포 중 상층은 내출목과 외출목 간격이 1.2尺 으로 같다. 이와 달리 하층 공포는 외출목을 1.1尺으로 하고, 내출목을 1.25尺으로 만들어 내출목 간격이 더 넓 게 되었다.37) 이 때 근정전 상하층 공포의 내출목과 외출 목의 간격을 모두 더한 값은 하층이 8.3尺이 되고 상층 이 8.4尺이 되어 두 길이가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공 포의 제공을 제작하면서 하층과 상층에 사용하는 부재를 같은 길이로 제작하고 출목 간격만 달리 한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중층 중화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中和殿營建都監儀軌』기록을 보면 하층과 상층에 사용하는 같은 위치의 초제공, 이제공, 삼제공, 사익공의 길이를 서로 같게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38)

    중층 정전에 사용된 공포를 위치와 관련하여 비교해 보면, 가장 먼저 건축된 인정전에서는 상층과 하층 공포 의 외출목 간격을 같게 하고 내출목 간격이나 제공의 전 체 길이는 다르게 계획하였음을 확인하였다. 근정전에서 는 인정전처럼 같은 층에 설치된 공포의 외출목간격을 통일하거나 내출목간격을 통일하지 않았고, 상층에 설치 된 공포의 외출목간격과 내출목간격을 서로 같게 만들었 다. 이와 비교할 때 하층 공포의 외출목간격은 조금 줄 이고 내출목간격은 조금 크게 했기 때문에 전체 출목간 격으로 보면 크게 다르지 않게 되었다.39) 실제로 중층 중화전에서는 상층과 하층에 설치되는 공포의 제공 길이 가 위치별로 서로 같게 만든 것을 앞서 확인한 바 있다. <Tab.8>을 통해서 궁궐 중층 정전에 설치하는 공포는 외출목 간격은 1척∼1.1척, 내출목 간격은 1.2∼1.25척으 로 외3출목 내4출목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 층 정전 건축의 경험의 축적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계 획의 완성도와 시공의 용이함을 위해 상하 공포의 크기 를 다르지 않도록 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상층 공포에 비해 하층 공포의 출목 간격이 상대적으로 통일성이 떨어지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4.3.내부 가구

    궁궐의 중층 정전에 사용된 기둥은 높이가 대체적으로 일정한 것을 알 수 있는데, 평주는 14∼16尺범위의 부 재가 사용되고 있으며 상하층 평주 길이의 합이 30尺또 는 31尺이다. 내진고주는 인정전과 중층 중화전에서 46 尺그리고 근정전에서 48尺이 사용되고 있다. 평주와 내 진고주의 길이가 2尺의 길이차 범위 안에서 선택되는 것 과 달리 귓고주의 경우는 인정전의 것이 근정전에 비하 면 6尺이 짧고 중층 중화전에 비하면 4.7尺이 짧아서 상 대적으로 차이가 큰 것을 알 수 있다.40)

    또한 상하층 지붕에 사용되는 서까래 길이를 조사해 보면, 하층 서까래는 16∼17.5尺의 유사 범위에 있고, 상 층 서까래는 인정전과 중층 중화전이 각각 22척과 22.7 척으로 거의 같다. 근정전의 상층 서까래만 4尺정도 길 게 사용되었다. 근정전의 하층 서까래는 다른 건물보다 짧게 만들고 상층 서까래는 길게 만듦으로써 두 위치의 서까래 길이차는 10尺에 달하게 되었는데, 인정전의 5尺 그리고 중층 중화전의 4.5尺과 비교하면 지붕의 체감율 이 다른 건물에 비해 작아지는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서까래와 긴밀한 연관이 있는 추녀를 살펴보면, 인정 전과 근정전의 부재에 비해서 중층 중화전에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1층 추녀와 2층 추녀의 길이차가 4尺에 불과하여 인정전과 근정전의 13∼16尺과 비교하 면 길이차가 매우 작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는 2층 추녀가 다른 건물에 비해 짧은 부재가 사용되었기 때문 이다. 추녀가 짧은 대신에 사래 길이가 다른 건물에 비 해 5尺정도가 길다. 이는 2층 추녀가 짧아서 체감이 커 지는 문제를 사래를 길게 사용함으로써 해결하려는 것으 로 추정된다. 이는 다시 말하면 궁궐의 중층 정전에는 하층 지붕과 상층 지붕 사이에 일정한 기준이 되는 체감 율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만약 충분하게 긴 추녀를 구할 수 없는 경우에는 사래를 길게 사용하여 처 마 길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4.4.기둥 설치

    인정전에서 주목되는 모습은 내목도리와 멍에창방 사 이 간격이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별도로 설치되고 있 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앞서 살펴보았던 중층 문루 건축에서 내목도리 위치에 멍에창방이 설치되어 서까래를 받치는 기능과 2 층 평주를 서로 연결하는 기능을 동시에 해결했던 점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해진다.

    실제로 인정전 하층 공포의 내출목 간격(0.9尺)은 외 출목 간격(1.0尺)보다 좁게 되어있는데, 만약 상층의 내 출목 간격(1.25尺)으로 늘린다면 내4출목 위치가 2층 평 주의 주심선상이 되기 때문에 내목도리와 멍에창방을 하 나가 만들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추정을 근정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2층 평주가 하층 공포의 내4출목 선상에 설치되고 있는 것이 다. 또한 인정전의 경우에 내목도리는 서까래와 닿는 모 습이 아닌 것을 <Fig.4>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멍에창 방과 내목도리가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을 의 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멍에창방이 내목도리가 하나가 되어 기능을 동시에 한 다는 도성의 중층 문루 방식과 같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인정전과 같은 귓고주 형식이면서 조선초 건축인 숭례문에서도 2층 평주가 가장 안쪽의 내출목선상에 위 치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문루 건축에서는 이미 오래전 부터 사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804년 건축의 인정전에서 내출목선상보다 안쪽으로 2층 평주와 귓고주를 설치함으로써 내목도리와 멍에창방을 별도로 설치하는 형식을 사용한 하는 것에 대한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다만 건물의 규모면에서 중층 문루보다 크다는 점을 염려했을 가능성은 있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고, 여기에 부가하여 사찰 건축의 중층 불전과의 시대적 연속성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찰 중층 불전 중 온간물림 형식인 무량 사 극락전이나 마곡사 대웅보전에서 1층 공포의 내3출목 위치에 내목도리가 있고 고주에는 멍에창방이 별도로 설 치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창덕궁 인정전 건축이 중층 건물의 전개 과정상 사찰 형식과 도성형식의 전개 과정에서 중간에 위치할 수 있 다는 가능성에 대해 검토 가능한 한 가지가 될 수 있다 고 본다.41)

    또한 반간물림의 중층불전을 2층 평주 위치와 관련하 여 분석할 수 있다. <Tab.10>은 2층 평주의 위치를 중 심으로 1층 평주와 내진 고주와 거리를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법주사 대웅보전의 경우에 2층 평주는 1층 평주 와 내진 고주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데, 후대로 갈수록 2 층 평주는 내진 고주보다는 1층 평주에 가까워지면서 공 포의 내출목에 가깝게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2층 평주가 내출목 선상에 설치되는 모습이 조선초 중 층문루에서 볼 수 있지만 문루의 경우는 건물의 규모가 작고 측면이 2간으로 중심에 심주가 설치된다는 점에서 중층 정전과는 엄연히 다른 건축이었다고 할 수 있다.

    5.맺음말

    조선시대 중충 건축은 조선초부터 임진왜란 전, 임진 왜란 이후부터 18세기 전반기까지, 18세기 중후반 이후 등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시기와 셋째 시기는 관영건축이 주가 되고 중간의 둘째 시기는 사찰 건축이 주를 이루고 있다.

    조선의 관영 중층건축은 임진왜란으로 대부분 소실되 었고 17세기 중반이후 18세기 하반기까지 100여년 이상 공백기간이 있었다. 관영건축의 공백 기간 동안 사찰 중 층불전이 이를 대체하고 있었는데, 18세기 말 正祖의 華 城조영을 계기로 사찰의 중층건축 경험이 도입되었으며 19세기 이후 도성과 궁성의 대규모 중층건축의 수요에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중층건축의 흐름 속에서 사찰 중층불전과 도성 중층건 축은 서로 구분되는 모습이 발견된다. 대표적인 것으로 중층불전은 온간물림형식 또는 반간물림에서 귓보형식이 사용되거나 보강책이 마련된 귀잡이보형식인 반면에 도 성 중층건물은 반간물림의 귀잡이보형식 또는 귓고주형 식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중요한 차이점을 하 나 더 들 수 있는데 사찰 중층불전에서는 2층 평주가 툇 보 중앙쪽에 설치되는 반면에 도성 중층건축에서는 최내 단 출목선상에 설치된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참고로 도성 중층문루와 궁성 중층 정전을 구분하여 평면, 공포, 내부공간, 가구, 기둥설치형 식 등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중층 문루를 분석한 결과 첫째, 평면 계획에 있어서 측면은 2간 24척 내외로 일정하게 유지하고 정면을 필요 에 따라 5간 또는 3간으로 조절하고 있다. 결국 측면 24 척 길이는 우진각지붕 문루의 정형이 되었다고 할 수 있 다. 둘째, 측면간의 공포는 주간포를 2구 설치하고 포간 격을 4척으로 하면 평면계획상 주간거리 12척과 일치하 게 된다. 셋째, 다음으로 내부 공간을 확장하고 싶다면 어간의 주간길이를 늘리고 주간포도 개수만큼 더 설치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문루의 내부공간에서 길이 방향으 로 여유가 있다면 계단참이 없는 직선형 계단을 설치한 다. 넷째, 중층문루의 특징은 심고주형식이라는 점으로 측면 길이가 24척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대들보는 합보 형식이 되고 12척만 넘으면 가능한 구조이다. 2층 기둥 은 내부 공간을 넓게 활용하려면 가급적 바깥쪽으로 설 치해야 한다. 대들보가 합보 형식이라서 길지 않은 관계 로 기둥 위치를 어디로 하느냐에 관계없이 상부하중을 받치는데 큰 부담이 없다. 따라서 2층 기둥을 보 중앙에 설치하지 않고 1층 공포의 최내단 내출목선상에 설치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내출목도리 위에 서까래 상단 이 놓이면서 멍에창방 기능도 수행하게 되었다.

    한편 궁성의 중층정전은 문루에 비교하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측면 간수가 4간 또는 5간으로 확장 되었다. 그러나 전각부의 직각방향으로 양쪽 주간거리를 같게 하는 것은 동일한 원칙이다. 둘째, 전각부의 직각방 향으로 양쪽에 주간포를 똑같이 2구 설치하는 것도 같 다. 셋째, 공포의 내출목과 외출목 간격은 건물에 따라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1802년의 인정전 1층 공포는 외 출목 간격이 1척이고 내출목 간격이 0.9척으로 내출목간 격이 더 넓은 통상적인 모습과 반대가 되었다. 이는 공 포의 최내단 내출목을 2층 평주 또는 귓고주보다 안쪽에 위치하도록 만들기 위한 의도로 추정된다. 넷째, 결과적 으로 내목도리와 멍에창방이 별도로 설치되었고 이는 중 층문루 건축에서 내목도리가 멍에창방 역할까지 했던 모 습과 다른 것이다.

    그러나 1867년 근정전에서는 중층문루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외출목보다 내출목의 간격을 넓히고 최내단 4출 목선상 위로 2층 평주를 설치하고 있다. 중층문루 건축 에서 내목도리가 멍에창방 역할까지 했던 모습과 다시 같아진 것이다. 이 때 귓고주는 공포 위가 아니라 공포 를 지나서 1층까지 연장되기 때문에 내출목 제공들이 기 둥에 홈을 파고 결구되는 모습이 된다. 기둥 부재의 내 구성이라는 점보다 1층과 2층 가구의 일체화 측면이라는 점이 강조된 모습이다.

    이상의 분석 결과와 사찰 중층불전 건축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대략적인 전개과정을 도출할 수 있다. 도성 의 중층불전은 측면이 좁은 모습인데다 심고주형식이기 때문에 2층 기둥을 공포의 최내단 출목선상에 위치시켜 도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문루보다 측면이 길어 져서 우진각지붕이 아닌 팔작지붕이 되어야 하는 사찰의 중층 불전에서는 2층 기둥을 툇보 중앙에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2층 평주는 고주보다 1층 평주에 가까운 방향으로 점차 이동하였다. 1802년 인정전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나는데 중층 정 전건축에서 중층문루의 방식과 중층불전의 방식을 동시 에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귓고주라는 점에서는 도성 문루인 숭례문 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2층 평주를 최내단 내출목보다 안쪽으로 설치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중층 불 전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1867년 근정 전에서는 귓고주라 중층문루 방식과 함께 2층 평주 위치 까지도 중층 문루형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상은 연구 결 과를 바탕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중층건축의 변화 과 정을 정리한 것이다.

    18세기 이후 인정전 형식이 등장하는 배경 그리고 궁 궐 정전에서 인정전 방식이 근정전 방식으로 변화하는 원인 등에 대한 사실은 후속 연구를 통해 밝혀지기를 기 대한다.

    Figure

    JAH-24-17_F1.gif

    Floor Plan & Bracket-sets Disposition

    JAH-24-17_F2.gif

    Stairs of Jananmun(top) & Paldalmun(down)

    JAH-24-17_F3.gif

    Floor Plan & Bracket-sets Disposition (○ : 1st floor column, ● : 2nd floor column, ◎ : High length column)

    JAH-24-17_F4.gif

    Comparing Meongechangbang of Geunjungjun with Meongechangbang of Injungjun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A Preservation Treatment and Survey Report of Geunjungjun』, 2003, p.217)

    Table

    Multi-storied Buildings (Shadow in □ ; Buddhist Halls)

    Muti storied Castle Gates

    Multi-Storied Gates Floor Plan

    Number of Inner Chulmok & Outer Chulmok

    Present Situation of Stairs

    Column Arrangement

    Bay & Intercolumn length of 2-storied Palace Main Building (unit : chuck, 尺)

    Distance of Chulmok at 2-storied Palace Main Building Bracket-sets (upper unit : mm, lower unit : chuck)

    Height of Column at 2 storied Palace Main Building (unit : chuck)

    Intercolumnar Distances (Distance A : 1st floor column~2nd floor outside column / Distance B : 2nd floor outside column~highest column / unit : mm)

    Footnote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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