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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598-1142(Print)
ISSN : 2383-9066(Online)
Journal of architectural history Vol.24 No.1 pp.51-60
DOI : https://doi.org/10.7738/JAH.2015.24.1.051

Michel Foucault and historiography of architecture

Gunsoo Shin*
Corresponding Author : ttanc@naver.com
October 15, 2014 February 15, 2015 February 28, 2015

Abstract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brief statement about the historiography of architecture by the French philosopher Michel Foucault and the possibility of a historical description according to his method. His historiographic proposition, “the history of architecture back in (the) general history of techne,” is a novel idea not only for his contemporaries but also for us. To grasp the meaning of Foucault’s proposition, we begin by considering his position with regard to architecture or architectural space in certain discussions till then. We then compare his standpoint on historical recognition with other viewpoints about historical narratives that can be found in books written since 1930. Finally, we interpret the concept of “techne” in the sense of “relation,” whose objectivation is for him his concern on architecture and examine possible aspects and their limits.


미셸 푸코와 건축 역사서술
-테크네의 일반사에 자리잡은 건축의 역사-

신 건수*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강사)

초록


    1.서 론

    1982년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 Foucault)는 미 국 인류학자인 폴 레비나우(P. Rabinow)와 가진 인터 뷰1)에서 특정 건축가(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를 언 급하고 건축사서술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사실 이 철 학자는 건축과 관련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건축계의 입 장과는 매우 다른 궤도에 있었다. 특히 이 인터뷰에서 당시 ‘해방의 건축’을 추구하며 르 꼬르뷔지에를 ‘은밀한 스탈린주의자’로 보는 일련의 건축가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으며 그가 제시한 건축 서술방식(‘테크네Techne의 일반사에 자리 잡게 하는 것’)은 현재에도 매우 낯선 것 이다. 본 연구는 현재 건축에 대한 일관적인 전체사 서 술이 어려워진 상태에서 푸코의 건축 이해를 살펴보고 그가 제시한 서술 방법을 분석함으로써 그 가능성을 검 토해보고자 한다.

    1930년대 처음으로 몇몇 역사가들이 근대건축운동을 하나의 실체로 다루면서 본격적인 현대 건축사 서술의 시대를 열었다. 곧이어 그 서술방식에 대한 비판이 등장 하면서 수정된 방식이 나타나지만 초기 서술의 그늘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런데 1970-80년대 역사학 전반에 등장한 거대서사에 대한 비판이나 만프레도 타푸리(M. Tafuri)의 ‘이데올로기 비평’은 건축사 서술 방식에 대 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주었다. 이후 나타난 서술이 이 런 문제의식을 담고 있으나 여전히 건축영역의 내적 담 론으로 역사를 구성하고 있다. 반면 푸코가 건축을 보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외부적이다. 즉 건축이 자체의 독자 적인 생명력의 자율적인 발전과정으로 여기는 것과 거리 가 있으며 외부적인 것과의 관련성으로 파악한다. 그에 게 건축은 내재적인 목적이나 독자적인 진화과정을 지닌 것이 아니며 인간관계의 기술(테크네)의 객체화 (objectivation)로 바라보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의 푸 코는, 그를 잘 이해한 친구였던 한 역사학자가 말한 것 처럼 ‘담론(Discourse/Discours)’이나 ‘권력(Power /Pouvoir )’2)의 철학자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관계’의 철 학자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3)

    푸코의 이런 입장은 구체적인 건축 서술과 관련해서는 모호하게 남는다. 게다가 푸코의 인터뷰가 주는 정보가 매우 한정되고 추가 언급이 없어 그 내용을 자세히 알아 내기가 힘들다. 따라서 본 연구는 푸코의 건축 역사에 대한 관점이, 인터뷰에서 건축·도시 공간에 대한 몇몇의 과거 연구들을 언급한 것처럼 그의 전반적인 연구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전제로 분석이 이루어졌다. 관련된 여 러 글들을 검토했고 이를 토대로 푸코의 입장을 분명하 게 드러내고자 했다. 푸코가 건축과 직접적으로 조우하 는 연구들, 건축가를 저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글, 푸코의 역사관을 잘 이해한 동료 폴 벤느(P. Veyne)의 글4), 그리고 인터뷰가 실렸던 시기인 1982년 전후로 매진했던 연구들5)은 여러 단서를 제공했다. 그러 나 푸코의 역사에 대한 일반 입장(고고학 혹은 계보학) 을 직접 다루는 대신 건축과 공간에 관한 것으로 한정했 다. 사실 바슐라르(G. Bachelard), 깡낄렘(G. Canguilhem), 쿠아레(A. Koyré) 등의 단절적인 역사 인 식과 푸코의 고고학이 매우 밀접하고 그의 동료가 푸코 의 저작 모두를 니체(F. Nietzsche)의 도덕의 계보학의 연장이라 볼 정도로6) 그 관계 역시 중요하다. 이런 내용 이 푸코가 역사 보는 관점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본 연구 의 주제인 ‘서술 방식’과 관련된 내용은 아니다.7)

    본 논고는 푸코의 건축사 서술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연 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쟁점을 부각하기보다는 그 내용 이 지닌 의미와 실제 저술 가능여부, 그리고 나타날 수 있는 어려움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두었다.8) 연구는 다 음의 3가지로 이루어졌다. 우선 건축과 도시에 관한 푸 코의 여러 연구를 나중의 인터뷰에서의 서술 언급과 비 교하여 건축사 대상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기존 의 건축사 서술을 검토하여 푸코의 ‘외부적’관점의 의미 를 드러내고자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토대로 푸코의 인 터뷰를 검토하여 그의 역사서술의 제안 내용을 드러내고 자한다. 즉, 파편화된 여러 글들을 모아서 그가 말한 “테 크네의 일반사”의 의미와 그에 따른 건축사 서술의 모습 을 가늠해 볼 것이다.

    2.푸코와 건축의 조우

    푸코가 인터뷰를 하던 시기는 『말과 사물(1966)』로 대표되는 담론을 주 분석대상으로 삼았던 초기와 자신의 첫 저서라고 지칭한 『감시와 처벌(1975)』에서 한 ‘지 식-권력’을 분석한 후, 유일하게 단행권 출간이 없던 통 치성(governmentality/gouvernementalité) 연구를 마무 리하고 성과 주체의 문제를 다루던『성의 역사 2·3』를 저술하고 있던 상태였다. 전 생애 걸쳐 푸코는 여러 번 건축 혹은 건축 공간의 주제와 만났다. 그가 건축물을 분석한 경우도 있고 건축연구자들과 공동 연구도 했으며 건축가들의 초청으로 강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접촉 에서 건축과 공간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보여주었으나 이들 사이에 다루어지는 대상이 동일하지는 않다. 그럼 에도 이들 사이에는 관련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터뷰 상의 건축에 대한 입장을 파악 할 수 있는 근거를 준다. 실제로 인터뷰에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héterotopie) 강연을 회상하며 거론했고 파놉티콘과 통치성과 관 련한 건축과 도시에 대해 언급했다. 일찍이 공간에 관한 초기 주제인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제시하면서 이미 세 가지 공간 대상(헤테로토피아, 유토피아, 일반 공간)이 설정되며 이들 각각은 차례로 다루어지게 된다.9) 다시말 해 이 장에서는 푸코의 건축사 서술과 관련한 공간의 건 축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2-1.헤테로토피아10)와 바깥 공간

    『말과 사물』이 출간되고 많은 명성을 얻기 시작하던 무렵 푸코는 건축가 이오넬 샤인(I. Schein)의 초대로 건 축연구회 (Cercle d'etudes architecturales, 회장 장 뒤 뷔송J. Dubuisson)에서 “다른 공간들(Des autres espaces)”을 강연했다. 이 내용은 몇 달 전에 두 번에 걸쳐 한 라디오 방송(Culture francaise)의 강연(“헤테로 토피아Les héterotopies”와 “유토피아적인 몸Le corps utopique ”)의 내용을 수정한 것이다. 당시는 68운동이 발생하기 직전으로 많은 건축가들이 좌파의 입장을 취하 고 있었고 이상적인 건축으로 언급되던 고댕(Jean Baptiste Godin)의 파밀리스테르(Familistère )에 관심을 가지며 노동자 공동주택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심하던 시기였다. 이들은 푸코에게 당시 도시와 건축이 야기한 문제들을 해결할 (아마도 마르크스적인) 대안을 바랐겠 지만 강연은 이들의 기대와는 매우 다른 접근이었다. 푸 코의 논의는 많은 오해를 낳거나 거부됐고 푸코도 그 후 약 20년 동안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11)

    이 강연에서 다루어진 주제는 일반 공간 바깥에 있는 두 공간인 ‘유토피아’와 ‘헤테로토피아’이다. 유토피아가 실제 현실화를 거치지 않은 공간으로 “완벽하거나 사회 에 반”하는 것이라면 헤테로토피아는 실질적인 위치를 가지지만 일반적 공간 배치의 쓰임과 다른 경험이 이루 어지는 바깥의 공간(Espace du dehors)이다. 헤테로토 피아는 바슐라르가 보여준 풍부함을 지닌 내부의 공간 (Espace du dedans)를 다루는 것이 아니며 우리를 둘 러싼 많은 배치 중에 “관계들의 총체를 중단시키거나 중 화 혹은 전도시키는 양태를 보이는 것들”이며 “어떤 면 에서는 다른 모든 배치들과 관계를 맺지만, 동시에 그것 들에 어긋”나는 것들이다.12) 결국 정상(일반) 사회의 공 간 배치 바깥에 위치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성의 외부에 서 이질적(hetero)으로 있던 광기(folie)를 연상시킨다.13)

    한편, 두 가지의 형태, 즉 위기crise(변화/달라짐)와 일탈 déviation(회복가능/일시적)적인 속성으로 나누져 더 다 루어졌을 법한 헤테로토피아의 역사는 곧 다른 주제, 지 식-권력의 장을 다루면서 근대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도 를 담은, 다른 바깥의 공간인 유토피아 건축(파놉티콘) 분석으로 대체된다.

    2-2.유토피아 공간-파놉티콘

    푸코의 건축분석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파놉티콘 분석일 것이다. 지식-권력의 결합 양태를 드러냈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의 배치와 작동방식을 드러내 는 건축으로 소개된 제러미 벤담(J. Bentham)의 파놉티 콘은 실제 감옥 건축의 형태와는 거리가 먼, 지어지지 않은 유토피아적인 계획안이다.『감시와 처벌』이 출간 되고 3년 후에 이루어진 역사학자들과의 논쟁에서 파놉 티콘이 실행되지 않은 실패한 공간인데 어떻게 실제의 권력 관계를 드러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됐다. 이 질문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역사가들은 푸코의 작업을 역 사서술 작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푸코도 이를 인정하며 다른 역사학과는 방법론이라 언급했기 때문이 다.14) 한편, 푸코의 대답은 벤담의 계획이 지어지는 과정 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현실화 과정을 겪지 않은 상태여 서 실제 감옥 보다 더 분명하게 권력-지식의 관계를 드 러낸 것으로 봤다. 그런 의미에서 푸코가 근대를 감시로 규율화된(discipliné) 사람들의 사회로 규정하는 것이라 기보다는 규율(disciplinaire ) 사회, 즉 규율 시스템이 작 동하는 사회임을 말한다. 규율로 순종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건축의 문제라기보다는 결국 사람의 실천에 따른 것이며, 이런 건축적 이상과 사람의 실천과의 괴리는 1982년의 인터뷰에서도 다시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푸 코는 파놉티콘 그리고 감옥 건축을 분석하면서 그 각각 에 숨겨진 내용을 추적하여 분석한 것이 아니라 그런 공 간을 생산하게 만드는 가능성의 조건(지식-권력의 공간) 이라고 할 수 있다.

    2-3.건축연구자들과의 공동 작업

    푸코와 건축과의 직접적 조우는 건축학자들과의 두 번 의 공동 작업이었다. 모두 『감시와 처벌』이 쓰이던 시 기인 1970년대에 이루어 진 것으로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연구 방법을 취했다. 첫 작업은 철학자 들뢰즈(G. Deleuze)와 저서『앙티 외디푸스』를 막 끝낸 정신분석 학자 가타리(F. Guattari)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세미나에 푸코가 참여한 것이며 나중에 건축연구센터의 포르티에 (B. Fortier)가 참석했다. 이 연구는 18세기 말 등장한 집합 시설 중 특히 의료 시설을 분석했으며 푸코의 글15) 을 포함하는 책『치료기계(Machines à guérir )』로 나 왔다. 19세기의 한 의사(J. Tenon)의 표현인 치료 기계 는 병원을 지칭하며 이 시설을 관통하는 과학적 지식들 인 기후론, 인구학, 통계학, 위생학, 의학, 훈육논리 등의 성과들과 그 안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권력 장치인 감시 기술, 지식생산기술, 권력생산기술 등이 만드는 배치 방 식을, 그리고 이 둘의 결합양태를 드러냈다. 두 번째 연 구 역시 마찬가지 방법론을 취했는데 대상은 19세기 전 반기의 주거 정책에 관한 연구이다.16) 두 경우 모두 실 제의 공간을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이런 공간 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권력의 특정한 결합을 드러내고 자 한 것이었다. 한편, 벤담이 구상한 파놉티콘이 담을 수 있는 프로그램 중에 감옥 외에 공동 주택과 병원이 포함된다는 점은 이 두 연구가 푸코에게는 『감시와 처 벌』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공동 연구 이후 1982년의 대담까지 건축에 대한 언급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데 이는 공간에 대한 관심이 통치성 차원의 도시와 지리의 공간으로 이동했기 때문이 다. 그런데 뒤에서 보겠지만 테크네의 역사로서의 건축 사 서술은 헤테로토피아의 공간도 유토피아의 공간도 아 닌 ‘실제의 일반 공간 배치’를 다루고자 주문한 것이다. 즉 헤테로토피아와 유토피아는 건축 역사서술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실제 건축을 분석하는 것과 관 계가 없기 때문이다. 푸코의 관심은 그의 역사관의 스승 인 니체가 그랬던 것처럼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진리라 믿는 것을 해체하거나 진리 의지가 만들어 내는 권력-지식의 결합양태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역사 서술과 관련될 수 있는 실제의 복잡한 사실 관계에 대한 언급은 푸코가 인간 그 자체에 대해 연구하는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말년에서야 나타난다.

    3.푸코의 역사인식과 근대건축 서술의 문제

    그런데 이렇듯 건축계의 관심과 거리를 둔 푸코의 입 장으로 볼 경우 현재까지 쓰인 건축사 서술은 어떻게 이 해될 수 있을까? 건축 역사서술은 푸코의 역사 연구나 이론과 비교할 경우 크게 두 가지 차이를 발견할 수 있 다. 우선 건축계에서 시간적인 흐름에 따른 역사 전개를 했다면 푸코는 공간적인 서술, 즉 시기별 구별을 통해 이들 사이의 단절을 드러내고 각 층을 시간적 전개에서 분리하는 방식으로 역사를 바라봤다. 다음은 푸코의 저 자(author/auteur ) 개념 연구에 비추어볼 때 건축가의 동일성에 근거해 이루어진 건축 서술에 비판적이라 볼 수 있다. 이 두 개의 사안은 건축 역사서술에 여러 상관 관계를 지녀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볼 필요가 있기만 여 기서는 레비나우와 푸코의 인터뷰에서 나온 내용을 중심 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3-1.공간적인 역사 vs 시간의 역사

    푸코의 회고에 의하면 헤테로토피아 강연 때 한 사르 트르주의 심리학자가 “역사와 변전becoming은 혁명적인 반면, 공간은 반동적이며 자본주의적”이라며 역사에서 진 보를 배제한 공간적 이해를 공격했다고 한다.17) 이는 당대 널리 퍼져있던 마르크스주의적이며 동시에 사르트 르적인 시간적 역사인식을 푸코가 거부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시간적 인식은 역사가 특정의 목적성을 띄고 진행 되거나 사르트르의 경우처럼 결정론을 거부할지라도 자 유 혹은 해방이라는 진행 방향이 있는 선형적인 흐름을 의미한다.18) 반면 푸코는 인식틀(Epistemé)을 통해『말 과 사물』에서 서양의 역사를 여러 시기로 끊어낸 것처 럼 연구 전반에서 역사를 단절로 파악해 특정의 한 시기 를 다른 시기와 분리했다. 그리고 이런 이질적인 개별 층 내부에 특정하게 자리 잡은 담론, 지식-권력 혹은 관 계로 분석했거나 할 수 있었다. 이들 여러 층들을 가로 지르며 사물들(les choses)이 다르게 인식되고 인간을 특정하게 생산하는 장치가 달라지며 그에 따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고 보는 푸코는 이들 각 층이 쌓이 며 생긴 것, 즉 지층처럼 이루어진 역사를 생각했다. 그 래서 그의 관심은 역사전개를 가능하게 하는 메타적 역 사 법칙이나 시대정신(Zeitgeist)이 아니며, 특정시기의 사람들이 다른 방식이 아닌 일정한 범위 내에서 생각과 행동을 하게 하는 역사적인 선험(a priori historique )이 다.19) 즉, 추상화된 철학을 분석하는 것이 아닌 널리 사 용된 실제적인 것(Practice/Pratique)을 분석하여 각 개 인이 자유롭게 말한다고 생각하게 하는 담론 체계 그리 고 그와 결합된 권력을 드러냈고 마지막에는 이런 외적 인 것들과 관련된 인간들의 내적 태도와 관련된 사항이 었다.

    이런 방식의 역사 분석을 통해 푸코는 역사를 있는 그 대로 보려고 애를 쓴 것이다. 반면 역사를 시간적 흐름 의 필연적인 무언가로 본다는 것은 “실제적인 것을 묘사 한다는 구실로 그것을 이상화하는 데 활용되는 막연하고 도 고상한 스타일”이며 “현실적으로 연속되는 실제적인 것들의 서로 다르고 울퉁불퉁한 윤곽을 감추는 엉성하게 덮게 씌운 것”인 이데올로기이다.20) “그(푸코)는 마르크 스도 프로이트도 닮지 않았다. 실제적인 것은 (프로이트 의 이드와 달리) 하나의 심급도 아니고 (마르크스의 생 산관계와 달리) 하나의 원동력도 아니다. 덧붙이자면 푸 코에게는 심급도 원동력도 없다.”21) 결과적으로 그가 한 것은 실제적인 것에 대해 “막연하고 고상하게 이야기하 는 대신에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예리하게 그 윤곽들을 그리려고 시도했다.”22)

    한편, 근대건축 역사서술이 등장하게 된 배경인 독일 의 예술사 전통은 이런 푸코의 관점과 배치(背馳)된다. 이 전통에 내재된, “예술은 그 자체의 생명과 역사가 있 다”라는 부르크하르트(J. Burckhardt)의 관점23)은 결국 근대건축운동을 건축의 독자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필 연적인 시대정신을 담은 사건으로 해석하도록 이끌었으 며 오랫동안 건축사서술에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이 운 동을 건축역사 흐름에서 큰 발전으로 취급한 초기의 3인 의 근대건축역사가들(펩스너N. Pevsner, 카우프만E. Kaufmann, 기디온S. Giedion)의 서술은 이후에도 지속 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즉 전후세대 역사가들이 접근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근대건축운동을 새로운 시대 를 추동한 실체로서 규정하는 것에는 다르지 않았다. 이 런 메타서사의 역사가 고유한 흐름과 당위성의 가치를 제시하려했다면 푸코의 입장에서 이런 내용은 이데올로 기가 된다. 근대건축 서술이 상당부분 기대고 있는 20세 기 초의 근대 건축가들의 선언들은 아직 담론의 질서로 충분히 형성되기 이전으로, 다른 담론의 장(예를 들면 보 자르Beaux-arts의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덜 일관적 이며 이들 사이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왜냐하면 정교화 되거나 체계화되기 전인 이런 “이데올로기는 합리화이며 이상화이기 때문이다.”24) 역사가들은 이런 내용들을 정 당화하는 과녁에 맞추어서 역사를 서술하려 했던 것이며 그러면서 고도화된 담론을 형성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는데 타푸리의 이 데올로기(푸코와는 다른 의미) 비판25)과 80년대 전후로 소위 포스트모던의 역사 인식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면 서 건축 역사서술은 위기를 맞았고 새로운 방향전환이 필요했다. 그 이후의 건축 서술에 있어서 단선적인 역사 서술 대신 복수적인 서술이나 서구중심의 건축역사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으로 모더니즘건축에서 소외되었던 지역 주의나 타자의 복권이 부각됐다. 즉, 제 3세계의 건축 소 개에 비중을 두거나 페미니스트 관점의 근대건축 이해가 등장했다. 푸코의 인터뷰가 이루어진 때는 리오타르 (J.-F. Lyotard)의 총체성 거부 선언26)등으로 대표되는, 이런 포스트모던의 관점이 막 등장하던 시기에 이루어졌 으나 그가 제안한 방식은 이 흐름의 일부로 환원하기 힘 들다.

    이 시기에 일어난 포스트모더니즘을 둘러싼 논쟁은 역 사 인식에 대한 여러 차이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하 다. 이 논쟁에 대한 푸코의 언급이 직접적인 역사서술과 관계는 없지만 결국 역사서술의 쟁점과 연결된다는 점에 서 그 이후 나타난 건축 서술과 비교된 푸코의 입장을 추적할 수 있다. 리오타르와 보드리야르(J. Baudrillard) 등이 포스트모던 논리를 제시하며 서구 사회의 이성주의 를 비판하고 탈중심적 다원적 사고, 탈이성적 사고로 대 체하려 했다면 반면 이를 비판한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 로 대표되는 이론가들은 근대 이성에 대해 거의 같은 문 제의식을 지니지만 이성의 비판적 가능성을 중요하게 취 급하여 근대를 미완성된 것으로 보면서 입장을 달리했 다.27) 푸코는 1982년 인터뷰에서 이 두 진영과 자신의 차이를 언급했다. 우선 포스트모던의 입장에 대해 “막 주적으로 떠오른 대상(모더니즘)을 마치 그것이 늘 우리 가 해방을 갈구하던 억압의 주된 형태로 지목하는 경 향”28)으로 비판했다. 이런 생각은 역사학자 이거스(G. Iggers)의 지적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이거스 에 따르면 포스트모던 관점이 이전 역사서술 방식이 지 닌 문제를 잘 지적했으나 역사서술 자체를 의문시하면서 실질적으로 역사서술에 미친 영향은 매우 한정됐다. 다 시말해 포스트모던 역사학은 “합리적인 역사 담론의 가 능성을 부정하고 역사적 사실과 허위의 개념을 의문시함 으로써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이까지 던져버리는 과오”를 범한 셈이다.29) 푸코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한 만큼 이성의 역할을 신뢰하는 입장과도 거리를 둔다. “이성을 제거해야만 할 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극히 위험한 만큼, 합리성에 대한 어떠한 비판적인 문제제기도 우리를 비합 리성에 빠트릴 위험이 있다고 말하는 것 또한 지극히 위 험합니다.” 푸코는 칸트(E. Kant)나 베버(M. Webber)의 작업이 가져다 준 가치에 대해서 하버마스와 동의하지만 그것은 그 시대의 의미로 한정한다. 즉 18세기 이래 철 학과 비판적 사유의 이슈는 ‘당대’ 사용하는 이성의 정체, 효과, 한계, 위험에 관한 것으로 초월적인 이성에 대해서 는 회의적이다.30) 만일 하버마스의 말처럼 이성의 비판 적 사유에 어떤 기능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인종주의가 사회진화론이라는 합리성을 기반으로 정식화된 것처럼 “합리성의 나선, 합리성의 회전문을 인정하는 일”인 셈이 다.31) 결국 리오타르, 하버마스 그리고 푸코 사이에 공통 적으로 계몽적 모더니티를 비판하는 것을 공통된 입장이 지만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푸코는 포스트모던 건축 의 역사회귀주의에 대해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 했고 하버마스의 방식을 “어떠한 역사주의도 넘어서는 초월적인 사유양식을 구축하는 것”으로 여기며 이를 거 부한 자신을 “니체주의자 혹은 (단절의) 역사주의자”로 본다.32)

    건축 역사서술에서는 역사학 영역에서처럼 각각의 입 장이 그대로 수용되지 않았으며 공통의 비판지점(거대서 사비판)에서처럼 조작적(operative)이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특히 프램톤(K. Frampton)이 자신의 책 (『Modern architecture, a critical history』) 4판의 서 문에서 언급했듯이 타푸리가 언급한 이데올로기적으로 도구화되지 않은 방식의 역사서술이란 매우 어렵다33). 그럼에도 1980년대 이후 쓰인 책으로 널리 읽히는 그의 작업은 특별한 성과를 가져왔다. 그의 입장은 하버마스 의 ‘미완의 근대 프로젝트(Unfinished modern project)’ 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으며 비합리적인 합리성을 비판 하는 태도를 취하며 비평적 과정을 통해 근대 건축을 다 층적으로 보고자 했다. 이런 접근은 푸코가 하버마스와 가졌단 차이만큼 푸코의 공간적인 역사서술과는 거리가 있다. 실제 프램톤은 거대 서사를 지양하지만 대신 잘게 쪼개진 복잡한 시간 흐름으로 나눈 것이다. 그가 한 역 사 서술의 세 부분은 각각 다른 시간 분할 기준을 통한 비판적 역사 전개를 기술하고 있다. 나아가 세부항목 역 시 내적으로 각각 독자적인 시간적 흐름을 지니고 있어 동일한 시간을 다수의 이질적인 시간 파편들을 모아둔 것으로 그가 참여한 다른 역사서의 부제처럼 모자이크인 셈이다.34) 게다가 그가 추가한 마지막 장에서 보여준 독 창적인 접근 방식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쪼개진 역사 들의 서술에 있어 건축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가 건축물의 저자로서의 건축가와 그 의도를 파악하는 방식 역시 푸코의 입장과 차이를 가지는 것으로 그가 “저자란 무엇인가(Qu'est-ce qu'un auteur ? )”35)에서 문학에서 의 저자를 언급한 내용과 비교하여 검토 될 수 있는 부 분이다.

    3-2.건축사서술에서 건축가

    1980년대 이후 메타 역사의 선형적으로 건축사를 서술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축가의 동일성과 건축 작품 기원으로의 저자의 역할은 중요하게 취급된다. 즉 건축가는 내적으로 일관된 원리 를 지니고 있고 이에 따라 건축이 이루어진다고 전제하 면서, 그 건축가의 건축 평가 심지어 건축이 만들어 낸 효과까지도 같은 방식을 취한다. 반면 건축가(저자) 평가 에 대한 푸코의 관점은 르 꼬르뷔지에에 대한 당대 평가 를 비판하는 내용에서 이런 방식과의 차이를 잘 드러난 다. 1982년의 대담에서 푸코가 르 꼬르뷔지에에 대한 언 급을 하게 된 이유는, 레비나우가 ‘해방(자유) 혹은 저항’ 을 표상하는 건축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의 답에서 나 왔다.

    오늘날 우리는 그(르 꼬르뷔지에)를-내가 보기에는 완전 히 불필요할 정도로 잔인하게-일종의 은밀한 스탈린주 의자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선량한 의도를 자진 사람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가 했던 일은 사실 해 방적인 효과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제안 했던 수단들이 결국에는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별 로 해방적이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풀이하 건데, 나는 자유의 행사를 보장하는 것이 결코 사물의 구조에 내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의 보장책 은 자유입니다.36)

    푸코는 여기서 르 꼬르뷔지에를 과거의 방식을 벗어나려 는 해방의 건축 추구했으나 한계를 지닌 건축가로 여기 며, 당시 르 꼬르뷔지에를 ‘은밀한 스탈린주의자’로 평가 하는 것을 비판했다. 당대의 비판은 지어진 건축안의 실 제의 삶에 관한 문제까지도 건축가의 의도에 귀속시키면 서 발생한 것이다. 당시의 해방의 건축을 추구하던 사람 들은, 문제가 되던 대규모 공동주택단지(Cité)를 억압의 건축 장치로 규정하면서, 대규모 고층 주거를 제안했고,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건설했던 르 꼬르뷔 지에를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푸코에게 해방이 나 억압은 건축으로 표현될 수 없는 실천의 문제이며, 아무리 건축으로 실현하려해도 결과는 실천에 따라 달라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37) 이러한 건축과 실천의 간극에 대한 주제는 파놉티콘에서도 나타났던 것이기도 하다. 레비나우가 이를 간략하게 요약하듯이 “도면 그 자체로 는 권력 관계를 기술하지 않는다.” 르 꼬르뷔지에가 아 무리 순수한 의도로 유토피아 같은 해방기계Liberating machine를 기획했을지라도, 그것을 실천한다는 보장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푸코는 건축이 자유의 행사 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그 실현은 이 둘이 수렴되어 일 치할 때 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다. 한편, 건축 평가를 사 후적으로 발생하는 실천과 결부 짓는 것은 당대에만 그 치는 것이 아니어서 2015년 현재 파리에서 공연 중인 한 연극의 제목이 “그것은 르 꼬르뷔지에 탓이다(C’est la faute à Le Corbusier )”이기도 하다.38) 이런 현상이 발 생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건축을 건축가의 내적 동일성에 기반을 두어 결국 모든 공과(功過)를 건축가 한 사람에 게 환원하여 책임 지우기 때문이다.

    초기 근대건축 서술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건축가를 바 라보는 반면 근대운동을 긍정하는 시기여서 평가는 정반 대였다. 몇몇의 건축가를 근대건축의 길을 제시한 것으 로 간주하여 영웅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논리의 기준에 따라 선정된 인물이 차이가 나지만 (펩스너에게 르 꼬르 뷔지에는 중요하지 않지만 카우프만에게는 중요하며 기 디온에게는 앞의 두 사람이 공동으로 중요하게 취급한 아돌프 로스A. Loos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 근 대건축운동을 긍정하는 데 동원된다. 다음 세대에서도 이런 흐름은 지속되어 르 꼬르뷔지에가 르네상스의 부르 넬레스키와 비교되거나(베네볼로) 다른 인물(프랭크 로이 드 라이트F. L. Wright나 알바 알토A. Aalto 등)을 부 각하는 방식(히치콕, 제비)이어서 여전히 연속선상에 있 다고 볼 수 있다. 다원적인 역사관점으로 다른 해석을 하고자 한 경우도 결과적으로는 건축물에 표현된 건축가 의 이상(ideals)을 분석(피터 콜린스P. Collins)하거나 다 른 기준을 제시하여 건축가에 대한 평가를 재검토(레이 너 밴함R. Banham)했다.39) 최근의 역사서술에서는 소위 영웅은 사라졌지만, 건축사의 시간적인 흐름을 제시하기 위해서 건축가는 평가방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오거나 건축계를 이끌어 가는 동일성을 지 닌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한편, 푸코가 문학에서의 저자 개념과 역할에 대한 글, “저자란 무엇인가?”에서 푸코는 건축 평가에서 건축가의 역할에 대한 그의 입장을 알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저 자 개념은 19세기 근대 문학과 함께 등장하며 특히 서구 에서 본격화된 개념이다. 푸코에 따르면 한 개인의 고유 명사(이름)가 지명된 개인과 관계하는 것과 다르게 저자 의 이름은 매우 기능적으로 작동한다. 즉, 한 저자의 여 러 텍스트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순을 극복하고 저자의 지속적인 가치를 담보하고 개념적·이론적·양식적 일관성 을 부여하도록 기능하는 것이다. 이런 저자 개념을 통해 다른 저자와 구별되는 고유한 특성을 가진 존재로 부각 되고 그의 작품들은 다른 작품들과 경계를 형성하며 특 유의 내적질서로 해석되고 가치를 부여받는다.40)

    건축에서도 이런 저자의 기능이 동일하게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건축 평가는 기본적으로 건축가의 내적 동 일성에 기반을 둔다. 저자-건축가의 각 작품은 내적 발 전과정의 질서에서 자리 잡고 있다고 여겨져서 가장 완 성도 높은 작품을 중심에 두고 이와 비교를 통해서 다른 작품들의 위계가 정해지며 그와 상이한 작업들은 충분한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거나 부분적인 의미만 부여받는다. 그런데 이런 저자의 이름은 항상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 되지 않는데 “그것은 어떤 사회와 문화 내부에서 담론이 갖는 위상과 관계”한다. 관계된 담론의 장에 따라 텍스 트들(작품들)의 위계는 상당히 변동되고 달라진다. 한동 안 근대건축을 추앙하던 담론에서 공적을 부여받아 영웅 시되던 르 꼬르뷔지에가 68세대 건축가들의 담론에서 그 리고 근대 공동 주택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하는 사람들 에게 이 저자-건축가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성격일 지니 고 있음에도, 은밀한 스탈린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4.테크네로서의 건축사서술

    앞서 본 것처럼 푸코는 시간적 질서를 전제한 서술과 저자-건축가의 동일성을 바탕으로 한 서술과 거리를 두 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건축은 인간관계의 반영이거나 반영되는 상호 연계(interconnection)적이라는 점에 기반 을 둔다.41) 따라서 각 역사의 층에서 이 관계의 특정한 모습은 건축적 모습을 가능하게 하며 건축의 특성을 가 져오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조건에서 출발하는 건축사 서술은 건축가를 통한 내적 접근이나 건축 내부 의 역사 시간과는 다른 외부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다. 푸코의 이런 접근은 테크네의 개념으로 제시됐으며 그의 후기 연구와 연속된다.

    4-1.테크네의 의미와 인간 관계

    푸코가 제시한 테크네로서 건축 이해와 역사서술의 대 상은 ‘헤테로토피아’의 이질적인 바깥공간을 의미하는 것 도 아니고 규율 장치로 상징되는 ‘유토피아’적인 권력기 계의 건축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말년에 그가 천착하던 주제인 주체(sujet) 혹은 자기(soi ) 그리고 이 를 둘러싼 관계를 생성하는 일반적인 공간에 관한 것으 로 볼 수 있다. 그의 글 “권력을 왜 연구 하는가 : 주체 의 문제”에서 자신의 지속적인 핵심주제는 권력이 아니 라 주체였음을 밝혔다.42) 그에게 주체는 타인에 복종하 는 주체(즉, 주체화assujettissement로 형성된 주체)와 스스로 의식한 정체성과 결합된 주체로 나뉘는데, 이 둘 은 분리될 수 없으며 동시에 다루어져야한다.(많은 경우 후자에만 초점을 두었고 푸코는 이를 거부했다) 이 둘 모두를 포함한 주체로서 인간을 파악하는 주제가 그에게 는 테크네 혹은 관리/통치(government/gouvernement) 의 문제이다.

    레비나우는 대담의 마지막에서 푸코에게 건축의 의미 (건축이 과학science인지)를 묻는 질문을 했다. 푸코는 건축이라는 지식이 과학의 문턱을 넘은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미성숙과학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유보하며 건축 을 테크네로 보자고 주문했다.

    그렇지만 통치 또한 테크놀로지의 함수입니다. 개인의 통치, 영혼의 통치, 자기에 의한 자기의 통치, 가족의 통치, 어린이의 통치 등등. 나는 누군가가 건축의 역사 를, 넓은 의미에서 이러한 테크네의 일반사 안에 자리 매긴다면, 엄밀 과학과 엄밀하지 않은 과학간의 대립보 다 훨씬 더 흥미로운 길잡이 개념을 가지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43)

    이때 테크네는 그리스에서 지식(Knowledge/connaissance)을 의미하는 에피스테메ἐπιστήμη(『말과 사물』에 서의 정의와 다른 원래 그리스시대의 의미)와는 구분되 어 실행하는 ‘술(術)’을 의미하는데 푸코는 통치술(관리 술) 역시 테크네의 일종으로 본다. 푸코에게서 통치의 개 념이 본격화 된 것은 “안전, 영토, 인구(Sécurité, Territoire, Population)”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진 콜레주 드 프랑스의 1977/1978년의 강연이다.44) 도시와 국가 차 원의 통치에 관한 주제로 공간 배치가 어떻게 자유주의 와 결합되었는지를 다루면서 근대 통치 공간의 형성과정 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통치 개념은 이후, 제목과는 달 리 성과 관련된 내용이라기보다는 관계의 테크네를 다룬 『성의 역사 2·3』을 거치면서 확대되어 그리스의 3가지 윤리인, 자기관리(양생술diététique ), 가정관리(가정관리 술économique)45), 연인관리(연애술Erotique-선택적 파 트너인 소년들과의 동성애 관계)를 통해 자기, 아내/가정 그리고 연인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문제로 옮겨간다.46) 그런데 이런 관리술(혹은 통치술)은 자기의식이나 주체 적 자아의 입장에서 다뤄지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장 (場)으로 하는 관계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테크네이며 에 피스테메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푸코는 의도적으로 주 체대신에 자기(soi)를 사용하여 『성의 역사 3』의 부제 (자기 배려, Le souci de soi )를 정했다.47) 그런데 이런 관계 관리술의 일반사 속에 어떻게 건축의 역사가 자리 잡을 수 있을까?

    4-2.테크네의 건축과 건축사 서술의 가능성

    역사적으로 담론들이 지층지어 다르게 형성되어 왔고 권력의 배치도 다르게 이루어져왔듯이 사람들의 관계 맺 는 방식도 차이를 지니며 각 시기별로 다를 것이다. 푸 코가 보는 테크네로서의 건축은 “사람들을 공간 안에 일 정하게 할당하고 그들의 이동에 특정한 경로를 부여하며 사람들 간 상호 관계를 코드화하도록 보장”하는 실질적 인 공간 배치로 “사회관계의 장에 개입해 일군의 특수한 효과를 낳는” 것이다. 즉, 건축에 있어서 특정한 요소의 도입은 “새로운 인간관계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 은 분명하고도 중요한 사실”이며 반대로 이런 기술이 등 장하도록 “인간관계의 작용과 전략(the play and strategy of human relations)”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 다.48)

    그런데 지금까지 푸코가 말한 테크네의 역사를 표방하 며 쓰인 건축서는 없다. 그러나 신체에 대한 입장의 변 화를 도시의 공간과 관련하여 쓴 리차드 세넷의 『살과 돌』49)은 건축에 관한 글은 아니지만 서문에 언급되었듯 이 푸코에게 영감을 받아 쓴 글이며, 사람이 자기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신체를 대하는 방식과 그를 에워싼 공간의 변화를 통해 설명했 다. 근대 도시에서 익명의 공간인 광장의 등장, 개인적 편안함(comfort)을 위해 등장한 소파(sofa), 가까이에 있 는 사람과의 정신적 거리감이 드러난 열차의 배치 등은 주목할 만하다. 보다 직접적으로 건축을 다룬 저서는 모 니끄 엘렙의 『사생활의 건축-집과 심성』이다.50) 정신 분석학 기반의 심성(망탈리테)의 관점에서 쓰인 이 책은 상당히 푸코의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프랑스인의 심성 의 변화와 주거 건축의 변화를 연관지어 서술하는데 심 성의 내용은 자기 관계(le rapport à soi )와 같이 거주하 는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근 대에 들어서면서 등장하는 부르주아 가족주의와 개인주 의의 등장과 함께 나타나는 주거 공간배치의 변화는 인 상적이다. 이 책과 푸코와의 관계는 푸코와 친분이 있었 던 역사학자 미셸 페로(M. Perrot)가 쓴 서문에 주거 배 치를 주인/하인, 남편/아내, 부모/자녀 사이의 관계로 설 명하는 대목에서 분명해진다.

    그런데 푸코의 입장을 따라갈 경우 건축사서술에서 테 크네의 개념은 단지 길잡이 역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 다. 또한 역사서술을 구체화하기에는 여러 난점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시간의 역사 대신 공간의 역사, 즉 인간관계와 건축의 특정 결합을 지닌 지층을 나누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런 구분을 하 려면 건축적 변화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건축 내부만이 아니라 도시 차원의 건축배치에도 대응된 인간관계의 특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른 문 제는 같은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들 사이의 평가는 어떻 게 할 것인가이다. 즉 특정 인간관계의 조건이 객체화되 는 방식은 무한하게 건축화 될 수 있기에 이들에 대한 세부적인 판별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과제로 남는다. 이 에 결부되는 또 다른 문제는 비록 건축가를 내적 동일성 으로 파악하지 않더라도 건축가의 개입이 가져올 수 있 는 특수성의 의미와 건축 형성에 기여한 부분(예를 들면 르 꼬르뷔지에에게 근대건축의 모든 공과를 부과하지 않 더라도 그가 기여한 부분을 간과할 수 없다)을 검토해야 한다는 점이다.

    5.결론

    건축을 일종의 테크네로 본다는 것은 메타서사나 건축 가의 동일성을 전제한 역사서술방식과 다르다. 그리고 타자의 역사를 부각하거나 지역적 복수성을 강조하는 서 술 혹은 비판적인 서술 방식과도 다르다. 테크네의 일반 사에 자리 잡은 건축의 역사는 시간적인 단절의 각층에 서 인간관계의 양태를 통해 건축을 바라보는 외부적인 것이다. 그러나 건축이 사람의 모든 관계 형성과 직접 관련된다는 점에서 외접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여전히 푸코가 제시한 개념을 구체화하기에는 여러 난 제가 있지만 건축사가들이 현재까지 걸어온 길과 다른 가능한 방향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자기와 자 기를 둘러싼 관계의 객체화로서의 건축은 실제적인 것이 어서 추상화된 가치를 전제하지 않는다. 또한 건축사를 각각 시기별 등장하는 소위 거장 건축가들을 연결하면서 이들 사이의 찬동·계승 혹은 거부·반발의 선형적인 서술 을 피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일반사와 괴리된 방식으로 진행되어온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건축 역사를 넓은 범 위의 역사 전개와 결부하여 볼 수 있다. 게다가 무한히 분할 할 수밖에 없는 병렬적인 소문자역사들의 집합대신, 통일적인 역사서술은 아닐지라도 다양한 현상을 묶을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건축과 건축가들은 그 시대별 등장하는 역사적 지층에 서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건축 요소들은 한 시대의 배치질서에서 새로운 위계로 자리 잡기에, 이전 과 같은 요소일지라도 그 시대에는 고유한 의미를 지닌 다. 그럼으로써 건축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생성하거 나 비현실적인 서사를 가진다기보다는, 숨겨진 부분과 드러난 부분이 연결된 빙산의 일각처럼, 그것이 자리한 지층에서 이루어낸 성과로 평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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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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