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주의는 역사 속의 여러 상이한 계기 사이에 인과적 연관을 설정하는 데 만족한다. 그러나 어떠한 사실도 그것 이 원인이라는 그 이유 때문에 역사적 사건이 되는 법은 없 다. 원인으로서 사실은...그 사실과 동떨어져 있을 수도 있는 사건들을 통해 사후적으로(강조 필자) 역사적인 것이 되었 다.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하는 역사가는 사건들이 묵주를 이루는 구슬처럼 한 줄로 꿰어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중단 한다.”
- 발터 벤야민, [역사철학 테제] -
1.들어가는 말
벤야민의 윗글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대신, 그는 이 전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한정된 역사의 별자리(星座)를 가 지고 자신의 시대가 형성한 역사의 별자리를 파악한다. 따 라서 그는 현재에 대한 어떤 사고를 확립하는데, 그것은..... ‘지금이라는 시간’이다.”1) 여기서 우리는 그가 제시한 별자 리라는 은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르면 역사의 서 술은 사실이라는 구슬로 수미일관하게 꿴 목걸이 같은 것이 아니라 흩어진 사건들의 단편을 가지고 (역사가가 능동적으 로) 별자리로 (구성해) 파악하는 일이 된다. 우리는 별자리 가 별들의 물리적 위치나 천문학적 거리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개개 별들의 배치와 짜임을 읽어내는 이의 시 각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벤야민 에 기대자면 역사 서술은 몽타주 작업 같은 것이 된다.2)
중요한 것은 별자리로서 역사적 조망은 지금 이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면서 사후적으로 소급해 볼 때야 가능한 사 건이라는 사실이다. 사후적이라는 조건이 별자리를 읽는 작 업을 가능케 한다. 그러므로 역사를 쓰는 일은 철두철미하 게 ‘현재 여기서’라는 상황적 조건에서 이루어지며, 의식하 든 안 하든 ‘지금’이라는 현재적 시간 의식과 결부되어 진행 되는 것이다. 이를 단순히 시간적 거리가 역사적 조망을 가 능케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할 것이다. 대신 역 사를 기술하는 이의 실존적 조건이자 역사 서술의 역사성 (historicity)에 대한 강조로 받아들이는 게 옳을 것이다.
일찍이(1940년) 벤야민은 이 역사에 관한 짧은, 그러나 상당히 난해하고 복잡한 에세이에서 역사주의 비판을 가한 다. 그의 짧은 생애 말년에 생산한 이 텍스트는 근대건축사 의 정전(canon)들이 본격적으로 쓰였던 시기와 겹친다. 벤 야민의 글을 인용한 이유는 동시대의 근대건축에 대한 역사 서술이 그가 비판하는 역사주의(historicism)에 의한 것임을 지적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3) 오히려 역사 서술이 지금 이곳이라는 상황적 맥락과 역사가 개인이 속한 시대의 믿음 과 가치를 매개로만 가능한 작업이며, 별자리로 비유되는 한 가지의 역사 해석 역시 그것이 쓰인 특정 시공간과 쓰는 이의 위치에서만 포착 가능한 풍경임을 말하기 위함이다.4)
근대건축에 관한 기념비적인 저작인 [공간, 시간, 건 축](19401)의 제 1장에서 기디온은 자신의 역사 기술에 관 한 생각을 피력한다. “역사가는 자신의 시각에 비추어 시대 를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시대를 있는 그대로 기술 해야 하며(강조 필자), 역사가 왜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흐 르게 되었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이는 철두철미 역사주의 적 시각이다.5) 지나간 과거, 즉 실재를 있는 그대로 기술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역사주의의 한 요체인 것은 잘 알려져 있 다. 더불어 기디온은 역사의 흐름, 즉 근대건축의 향방과 전 개를 언급한다. 그가 보기에 근대건축의 출현은, 그리고 근 대운동(Modern Movement)의 과정은 전시대의 모순과 갈 등과 분열의 해소로서 ‘종합’에 해당한다. 새로운 전통으로 서 그것은 동시대, 나아가 미래를 향도할 것이다. 관련하여 그가 역사의 흐름 가운데 지류에 해당하는 ‘잠정적인 사실’ 과 항구적인 ‘구성적 사실’을 구분하고 후자를 건축사의 본 류이자 진정한 전통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6)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써야한다면서 동시에 역사의 판관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 기디온의 모순에서 우리는 동시대 건 축의 진로와 방향에 대한 그의 심려를 읽는다. 오늘의 시각 으로 보자면 그의 근대건축에 대한 설명 방식은 다소 생소 하게, 혹은 낡은 것으로 비치며 납득하기 어렵다. 그의 역사 를 ‘작위적’인 것이며 목적론적인 것으로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근대건축에 지배적인 서사로서 그의 역사가 우리에 게 미친 결정적인 영향은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7) 시간의 경과와 건축사학의 변모는 과거의 지배적 서사를 비판하고 그 한계를 지적할 수 있는 입지를 제공해준다. 하지만 현재 의 시점에서 역사를 써야한다면 우리 또한 (다른 모양이겠 지만) 과거에 대한 개념과 의미를 생산하여야 한다. 이 점 에서 기디온과 동일한 처지이며 결코 우월한 위치에 있지 않은 것이다.
역사, 즉 서술된 역사는 과거에 대한 객관적 재현 (representation)도 아니고 진실한 재현도 아니다. 그러한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결코 과거라는 '실재'(the real)에 그냥 닿을 수 없다. 기억으로서 과거는 그냥 존재하 는 게 아니며, 오직 사가의 역사 서술을 매개 삼아 과거는 살아있는 기억의 지위를 얻게 된다. 즉, 과거에 대한 앎은 역사 서술을 통해서이며, 그것은 역사가가 과거에 대해 관 여하고 발언하는 말(discourse)에 의해서이다8).
역사가는 결코 진공 속에서 역사를 쓰지 않는다. 그는 동 시대의 시공간적 한계 속에서 역사를 쓰며, 그의 역사는 자 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의 선입견과 편향을 담을 수밖에 없 다.9) 모든 역사에는 그것을 쓴 저자의 입장과 관점이 숨어 있다. 역사가의 시각이나 입장에 따라 전적으로 상이한 역 사가 쓰인다는 사실은 역사서술론(historiography)에서는 상식이 되었다.10) 이는 역사가 누구에 의해 쓰였는가라는 서술 주체의 문제를 제기한다. 역사가는 저마다 역사의 서 사를 구축하는 주체이며 자신만의 이야기 혹은 서사( narrative)를 구축해간다. 역사 서술은 “역사가가 빠져나올 수 없는 장소성과 회피할 수 없는 개인적 동기를 가지고 있 음을” 가르쳐주기에11)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역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너무나 당연한 지적이지만 역사적 서사는 순수한 사실이거나 증언이 아니다. 시대의 고유한 인식 틀 혹은 지 (知:episteme)와 화자의 이해(利害), 입장에 의거한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12) “모든 역사적 지식은 지정학적이고 또 정치적”이라는 지적은 의미심장하다.13) 그러므로 모든 역 사 서술은 역사적 구성물(historical construct)이다. 그것은 모종의 시대적 상황 하에서 만들어졌으며 그런 식의 담론이 된 데는 이유와 배경이 있다. 정전처럼 간주되는 지배적인 텍스트들도 원래부터 존재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의 (학문 적/담론적) 권위는 아카데미 속에서 상징 권력을 확보하고 서 과학적 ‘진리’를 주장하면서이다. 그렇다면 시간 속에서 담론의 생성과 변환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14)
역사 서술 혹은 거기에 대한 논의로 번역되는 어휘인 historiography는 어떻게 역사를 쓸 것인가에 관련된 비판 적 검토이다.15) 역사 서술은 시간의 경과 속에서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역사가 된다. 역사 서술의 공부는 누가 왜 그런 역사를 썼는가 하는 서술 의도를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것이 그 시대에 담론이자 권력으로 수행했던 기능 을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즉, 역사 서술에 대한 연구는 과 거라는 (포착할 수 없는) 실재가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서사 를 구성하는 담론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를 탐 색함으로서 과거를 보는 조망의 변화를 확인하는 동시에 그 조망 점의 입지 자체의 변동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기술에 대한 탐구는 담론사로서 지식사 가 되고 사상사가 되며 이념사가 되고 무엇보다 메타 역사 (meta history)가 된다.
그러므로 역사 서술을 역사적으로 검토하는 일은 필히 역사에 대한 이론과 방법을 탐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담론 생산이자 텍스트 생산으로서 모든 역사 서술은 그것을 구성 하는 전제와 가치와 믿음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역사 서술에는 고유한 접근 방식이 있고 역사 철학적 입장 과 이데올로기적 입장이 있다. 그런 것이 없이 역사를 쓰는 일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사료는 스스로 말하지 않으며 사 실이 객관성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다. 역사 기술의 소기 의 목적이라 말해지는 “사실과 자료에 근거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시하는 일”은 이러한 매개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진다. 다른 말로 하자면 역사 서술의 비판적 검토는 역사를 쓰는 일 자체의 역사성을 자각하게 한다.
이상 관점에 입각해서 본 연구는 근대건축의 역사에 대 한 비판적 역사서술론을 시도하고자 한다. 근대건축과 그 역사에 대해 지대한 영향을 발휘한 저자들과 그들의 대표적 저술을 대상으로 삼고 한정하여 그 서술의 입장과 방법에 대해 탐색하려는 것이다. 본 논문은 문헌연구 중심으로 연 구가 수행되며 분석과 기술을 병행하여 글쓰기가 본 논문은 진행된다.
2.근대건축사 서술에 대하여
근대건축사에 대한 역사 서술에 대해 살펴보는 작업이 흥미로운 것은 위의 사실을 잘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선 그것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일어난 근대건축에 대 한 관점의 이동과 서술상의 변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에 유용하다. 사실 근대건축이라는 용어 혹은 그 개념은 모 호한 것이다.16) 우리는 종종 ‘근대건축사’라는 것이 담론적 효과로 존재하는 상상적 재현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경향 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객관적인 실체로서 근대건축 이란 없다. 있다면 근대건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과 해 석들이 있을 뿐이다.
앞서 언급했듯 그동안 쓰인 저마다의 근대건축사 서술에 는 특유의 전제나 가정, 가치와 이념이 스며들어 있다. 그 사실을 망각한 채 객관적인 역사로 읽는다면 그것은 ‘자연 사’로 변신하게 되고, 원래 그렇게 있었던 것으로 우리 마음 속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한때 정전(canon)으로 간주되던 근대건축의 지배적인 서사들을 읽으며 우리가 그것을 선험 적 존재로 수용했던 이유이다.
그러므로 역사 서술에 대한 연구는 건축사가에 대한 비 판적 연구이기도 하다. 그들이 쓴 역사가 근대건축에 관하 여 설명해 주는 것 못지않게, 아니 훨씬 더 역사가 개인에 대해서 말해준다. 즉 그의 접근 방식, 입장, 의도, 관심을 밝 혀주는 것이다. 이는 역사가로서 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17) 그가 동원하는 방법과 논리를 통해서 그가 어 떤 유형의 역사가인지 확인시켜주고 서술의 바탕에 깔린 사 고와 관점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18)
우리는 근대건축의 역사 기획(historical project)과 평행 하게 역사서술적 기획(historiographical project)로서 근대 건축사 서술에 내재한 (집필) 의도 내지 목적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19). 그리고 그것의 시간적 변화를 추적해 근 대건축 사학사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근대건 축의 역사에 대한 역사로서 역사가가 근대건축에 대해 어떤 개념과 의미를 부여했는가를, 그들의 역사 서술의 내용과 해석의 변화를 추적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20)
근대건축사의 선구적 서술이 등장한 1930년 전후에서부 터 보자면 80여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역사 서술상의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돌이켜보면 계속 제시되었던 주요 주제 와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건 축의 근대성을 여하이 규정하느냐 하는 것, 둘째 근대건축 의 출현에 대한 이유와 배경으로서 시대적 맥락, 셋째, 그 기원과 주요 사건, 운동과 계보의 성립과 전개 과정, 넷째, 근대건축을 지탱하는 사고와 가치관의 조명, 다섯째, 다섯 째, 그 후속적 진화와 동시대의 실천에 대한 견해와 판단, 여섯째, 동시대의 문화적 실천으로서 근대건축의 의미 등이 다. 여기에 누가 주체이고 주역인가와 무엇이 가장 의미심 장한 성과(작품)인가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 이에 대한 답변은 계 속 달라졌지만 근대건축사가 이런 질문과 결부되어 쓰였음 은 분명하다. 거기에 대한 달라진 답변, 새로운 이슈와 문제 의 제기, 상이한 해석들이 근대 건축사학사를 구성한다고 보인다. 그럴 때 근대건축사의 서술에서의 변화는 시간적 계기에 따라 거칠게 범주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근대 건축사의 정전화(canonization)의 역사가 있다. 그것은 근대 건축이라는 것을 정의하고 그 존재의 ‘본질’을 규명하는 선 구적 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담론이 역사적 ‘진실’로 받아들여지면서 근대건축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거기에 개입하고 기여한 역사가를 우리는 제1 세대 건축사가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21) 그들 은 근대건축운동의 목격자이자 동반자들이었다.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인식의 제공과 정당화/옹호가 집필의 주요한 동기가 됐다.22)
둘째로 거기에 대한 수정과 확장의 역사, 그리고 회의와 의심의 담론 생산의 역사가 있었다. 이는 기존 텍스트의 비 판, 새로운 사료와 증거들의 발굴, 반증적 관점들의 도입, 간과되었던 사적 부분의 조명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선배 사가들의 담론적 권위에 도전한 역사가들을 제2 세대 건축 사가라고 부른다면, 그들에 의해 근대건축은 좀 더 폭넓고 다변적인 이해의 길이 마련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23). 그 들의 접근과 방법은 이전 서사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라기보 다 계승 보완하는 성격이 더 짙었으며 전후의 바뀐 현실 및 실천과 결부되어 이루어졌다. 근대건축의 개념에 대한 수정 과 보완이 그들의 역사 서술로 이루어졌다.
셋째로 비판적 역사의 등장과 그 이후의 관심의 이동을 들 수 있다. 기존 서사의 해석적 토대와 가정에 의문을 제 기하고 그것들을 전복하고 해체하는 역사 서술이 시도되었 다. 급진적이든 보다 온건하든 그것들은 근대건축에 대한 성찰과 재해석의 기회를 제공하여 주었다. 이들을 제3 세대 의 건축사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근대 건축 사학사, 즉 역사서술의 역사는 근대건축에 대한 입장 의 변모의 역사로서, 계속적인 개정과 재해석의 역사로, 텍 스트 재생산의 역사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근대건축에 대한 역사 서술의 역사를 바라보고자 한다. 앞서 벤야민식 의 역사 개념을 따르면서, 헤겔적인 무의식에 지배되었던 주류적인 역사 서술과 거기서 탈피해 상이한 서사와 시각을 제시하려는 시도로 나누어 보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전자의 역사 서술을 근대건축의 동일성을 가정하고 그 정체 를 제시하려는 관념적 노력으로, 후자의 역사 서술을 그것 에서 탈피하여 상이한 역사 서술을 시도하려는 노력으로 구 분하게 한다. 이때 후자는 근대건축사 서술을 쓰는 이의 시 점(時點)에서의 사후적인 재조립이자 지적 구조물로 간주하 면서, 이전의 역사적 조망 자체가 왜곡되거나 문제적인 것 임을 비판하고 다른 프레임으로 보기를 제안하거나, 아니면 보는 프레임 자체를 바꾸려는 서술적 입장이 된다. 이를 ‘비 판적 역사서술’(critical historiography)이라 부른다면, 그것 은 다른 역사, 혹은 대안적 역사에 대한 시도이기도 하다.
3.근대건축사 서술에서의 ‘헤겔적 무의식’
역사주의와 더불어 근대건축사 서술에 스며있는 헤겔주 의적 사관은 잘 알려져 있고 거기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 다. 그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대표적 역사로는 펩스 너나 기디온의 것이 거론되었다. 그러나 후대 사가들의 역 사 서술에도 그것은 암묵적으로 스며들어 있다. 어쩌면 오 늘까지 모든 역사가는 헤겔의 그림자 아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그에 반하든 그에게서 멀어지든 헤겔 과 모종의 관계를 상정하지 않은 역사 서술을 생각하기 어 렵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헤겔적 무의식이란 말을 쓸 수 있을 것 같고 근대건축사 서술에도 그 영향은 짙게 깔려 있 다고 보인다.24)
최초의 근대건축사가라 할 펩스너의 역사 기술의 의도는 근대건축이 시대적 요구의 산물이며 우리 시대의 보편적 양 식(universal style)임을 주장하는 일이다. 건축이 시대정신 의 발로임을 강조하는 그에게 근대건축의 출현은 유물적 동 인이나 사회적 동인에 앞서 정신(Geist)의 요청에 의한 것 이다. 펩스너의 근대건축사 혹은 근대운동(Modern Movement)의 역사는 19세기의 혼돈 상황을 뚫고 우리 시 대의 진정한 양식이 출현하는 과정, 그리고 그로피우스 같 은 건축가와 그의 작품에서 그것이 합당한 표현 양식을 얻 게 되는 이야기로서 멜로드라마이다25).
모리스에서 그로피우스로 이어지는 선구자이자 영웅들로 이어지는 계보는 진보와 발전으로 이어지는 시종여일한 단 선적인 역사로 구성되며, 그 정통한 역사 바깥에는 근대건 축의 ‘적들’, 곧 이단과 퇴폐의 무리들이 존재한다. 근대건축 의 출현은 ‘되어져야 할 사건’으로서 역사적 필연이기에 정 당하고 올바른 것이며 따라서 거기에 우리는 동참할 의무가 있다26).
펩스너와 달리 기디온은 근대건축을 양식으로 보길 거부 하고 내적 삶의 방식, 혹은 접근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양식 사, 곧 형식의 계기로 건축사를 보는 입장은 건축의 본질과 내적인 정신성을 외면하고 삶과 무관한 피상적이고 지엽적 인 외양에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가 건축의 근 대성의 핵심 개념으로 내세우는 것은 시공간이다.
기디온에게 근대건축의 출현의 역사는 전 시대의 갈등과 모순의 해결이자 종합의 과정이다. 대립되는 가치들과 문제 들이 해소되는, 화해와 일치가 근대 건축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27). 여기서 기디온은 예술사를 넘어선 문명사와 결부 시킨 전체론적 관점에서 근대건축의 출현을 말하고 있다. 그는 보편적 전망(universal look)을 강조하며 역사 속의 항존하는 구조라 할 ‘구성적 사실’을 구하고자 한다. 이는 묘하게 근대 기술문명과 고대 문명의 상동성의 발견으로 이 끈다. 근대성을 영원한 가치와 연결시키는 것이다.28)
독일 미술사라는 학문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는 펩스너와 기디온은 표면적으로는 상당히 다른 서사를 구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 서술의 동기가 근대 건축이라 불리는 역사적 실재의 출현을 인식시키고 그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 려는 데에서는 일치하고 있다. 근대건축과 그 역사에 대해 유사한 접근과 역사 철학적 입장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근대 건축이 19세기 건축 문화의 혼돈과 갈등 의 종결이자 새로운 출발이라는 동일한 관점을 취하고 있 다. ‘보편적 양식의 출현’이든 ‘새로운 전통의 성장’이든 근 대건축은 전 시대의 모순의 해소이며 문제들의 해결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 새로운 건축을 정당화할 근거가 되고 동 참해야할 윤리적 이유가 된다.
다음으로 역사의 진로를 대립 구도 속에서 파악하면서 진정한 것과 사이비, 옳은 것과 그른 것, 영속할 것과 단명 할 것 등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일이 해석에 중요한 비 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역사의 진보와 발전은 정신(이성) 이 합당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인데, 한편으론 우리가 인식 하고 편승해야 할 것이기도 하다, 그들에겐 역사의 진로에 대한 낙관적 전망과 동시대 건축에 대한 심려라는 이율배반 적 태도가 공히 목격된다. 그들은 동시대의 실천에 발언하 고 역사의 진행을 향도하고자 하는 욕망을 공공연히 비친 다.
또한 시대정신의 구현이자 표상으로서 위대한 건축가와 그 집약적 발현물로서 작품이라는 생각에서도 유사하다. 그 로피우스 같은 건축가는 역사의 주체이자 동시에 도구 (agent)가 되며 그의 작품은 그들이 내세우는 근대의 핵심 개념을 담고 있기에 시대의 대표작이 된다.
이러한 역사 서술은 시대와 사회와 정신이 하나로 통합 되는 사건으로 근대건축이라는 사변적 담론을 낳았다. 이것 이 근대건축을 동일성으로 포착하려는 해석이며 하나의 신 화 생산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목적론적 서사이자 구원의 서사로서 그것은 근대건축의 대두와 성립이 필연적인 사건 임을, 즉 일어나야만 했던 역사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서술의 프로젝트가 ‘수사학적’ 것임 에도 마치 ‘인식적’인 것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신념, 가치관에 의한 서술을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로 제시 하고자 했다. 대서양 양안에서 쓰인 그들의 역사는 이후 정 전으로 자리 잡고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후속된 건 축사 역시 그것들과 모종의 영향사적 관계 속에서 쓰여지게 되었다.
건축사 서술에 스며든 헤겔주의적 역사철학은 이 두 역 사가에게 너무나 뚜렷하며 노골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 를 극복하려는 후대 사가들의 서술에도 무의식처럼 스며들 어 있다고 보인다. (극복이나 지양 자체가 헤겔적 관념이기 도 하다.) 정신사적인 것, 미학적인 것, 형식적인 것으로 건 축의 역사를 읽어내고 서술하는 작업이 19세기 미술사에서 연유하고 있으며 거기서 건축사의 학적 전통이 파생되어 나 온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미술사에 대한 헤겔주의적 영향도 잘 알려져 있다.29) 역사 진행에 내재적인 논리가 존 재한다는 믿음, 이성적 발전 안에서 대립하는 가치의 갈등 과 모순의 지양”30)이라는 관념, 동시대를 지배하는 정신이 예술/건축이라는 구체적 사실로 현현된다는 주장은 헤겔주 의 역사관의 핵심이다.
결국 헤겔의 역사철학은 역사의 흐름에서 의미를 찾으려 는 시도이며 진보사관, 역사주의, 관념사를 낳았다. 헤겔주 의적 역사관의 핵심은 역사의 진행에는 실재가 있고 현실 역사는 그 표상 혹은 재현(representation)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 서술은 그 재현의 재현이 된다. 이러한 역사 가 자기 완결적이고 닫힌 역사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결 국 역사 서술에서 헤겔적 무의식은 “역사를 단일한 과정으 로 전체화”하려는 욕망이 될 것이고, 그것은 역사 혹은 근 대건축사를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동일성의 신화로 환 원될 것이다. 거기 동원되는 변증법은 이원적 혹은 대립 구 도의 해소로 결말이 나는데, 편리한 도식이지만 현실의 복 잡성과 다양성을 사상시킨다. 사실 이후에도 근대건축을 설 명하는 데 이런 서술 방식이 무의식적으로 계속 동원되었음 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역사 서술의 편협성과 불가능 성을 인식할 때 우리는 다른 역사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레이너 밴험과 콜린 로우 같은 다음 세대의 대표적인 건 축사가들에게서 우리는 역사 서술상의 커다란 태도 변화를 발견한다. 한편으로 여전히 선배 건축사가들의 영향과 헤겔 적 무의식의 존재를 감지하기도 한다. 우선 그들이 역사를 쓴 시점은 앞서의 선배 사가들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서였음 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시간의 경과는 그들이 동시대 건축 의 실천과 전개를 목격하면서 근대건축에 대한 다른 견해를 피력할 기회를 제공했다.31)
레이너 밴험의 역사는 근대건축의 지평을 확장하고 그 이해에 개정을 고하는 중요한 기여를 했다. 우선 그는 19세 기 아카데미의 고전적 전통이 근대건축에 미친 영향을 조명 함으로써 그의 선배들이 주장했듯이 근대건축이 전시대와의 근본적인 단절이라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기디온 등에 의해 제기된 진보적 건축과 근대건축의 요체로서 기능 주의가 가진 빈곤을 강조하며 역사 서술의 정당성이나 담론 의 논리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근대건축을 논하는 데 밴험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기 술의 역할과 지위이다. 근대 건축의 중심 문제에는 과학과 기술이 도사리고 있다. 그에게 기술은 근대화의 추진력이고 역사적 발전의 동인이며, 동시대의 건축이 회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32) 그런데 선배 사가들이 주장한 바처럼 건축에서 의 기술의 수용, 기술과 예술 양자의 통합은 실제로 구현되 지 않거나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33) 모더니스트들의 기 계 미학이 보여주듯 그것은 상징적, 미학적 차원에 머물렀 다. 그러므로 선배 사가들의 담론은 신화에 불과하다.
그가 제기하는 참신한 해석은 건축이라는 분과 (discipline)와 기술이라는 분과가 양립할 수 없는 상이한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는 근대건축을 딜레마에 처하게 한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기술 변화의 속도에 건축이 발맞추다가 는 문화로서 건축은 그 정체성을 상실할지 모른다. 그런지 않기를 고집할 때 건축은 시대의 흐름에 뒤쳐진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34) 이는 현재까지 전혀 해소되지 않는 문제적 인 주제이다. 밴험은 근대성의 핵심이 간단없는 변화와 새 로움이라는 것, 그것을 기술이 추동한다는 것, 그 추세에 건 축이 편승할 때 건축 자체가 변할 수밖에 없음을 옳게 지적 한다. 근대에 들어서 일어난 기술과 예술의 분열은 봉합되 지 않았다. 밴험은 여기에 선배 사가들이 기피했던 미학을 다시 불러온다. 그들이 믿었던 것과 달리 미학은 건축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벤험의 역사 서술 역시 헤겔적 무의식에서 전혀 자유롭 지 않다. 기계 시대의 도래는 시대정신이다. 제 1기계시대에 건축가는 거기에 진정 합당한 건축을 생산해내지 못했다.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그는 주류 역사와 시대착오적인 것의 구분을 시도한다.35) 그가 벅민스터 퓰러를 찬미하고 아키그 램과 같은 팝 건축에 경도된 것도 이런 입장에서이다36). 그 는 기술적 진보와 건축의 진보를 동일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동시대의 건축 실천에 개입하고자 한다.37) (그의 서술에는 여전히 대립 구도가 구사되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콜린 로우만큼 근대건축의 역사 서술에서 헤겔주 의적 서사에 강한 반감을 피력한 역사가도 드물 것이다. 그 는 근대운동, 그리고 거기에 대한 역사 해석이 지녔던 이데 올로기와 이상향주의(utopia)의 허구성을 폭로하면서 빛바 랜 신화로서 진보와 발전의 서사를 비판하였다. 이 점에서 로우는 근대건축의 보편적 담론에 회의하고 근대건축을 설 명하는 ‘다른’ 담론을 제시한 선구적 역사가로 규정된다.
일찍부터 그는 기능이나 기술, 혹은 시대정신 대신 형식 (form)을 근대건축을 분석하는 원리로 동원하고 있다38). 그 가 형식을 내세우는 한 이유는 근대건축 혹은 동시대 건축 이 관념이나 가치에 휘둘리지 않게 하려함이다. 그는 근대 건축을 지탱시켜왔던 가정들이 별로 유효하지도 타당하지도 않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것은 진보나 해방, 과학, 진화, 시간 구조에 관한 환상 같은 관념들의 집합이다.39) 여기엔 근대 건축의 기술 결정론적이고 역사주의적인 관점에 대한 로우의 혐오, 그리고 건축에서의 도덕, 이념의 과잉을 배격 하려는 그의 입장이 배어있다. 이는 결국 기디온 등 선대 사가들의 해석에 대한 비판이 된다.40)
그는 근대건축을 전통과의 단절이나 새로운 창안으로 보 는 대신 오히려 유럽 르네상스의 인본적 전통의 연장선상에 위치시킨다. 그는 근대건축의 대가들의 작품 속에서 고전 (르네상스), 매너리스트, 신고전주의적 형식 구조를 읽어낸 다. 이러한 독해의 유효성은 차치하고 그것은 근대건축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것의 전통’에 내 재하는 오래된 것들을 귀환시킨다41).
근대건축에 대한 역사가로서 로우의 위상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형식주의자로서의 그의 이론과 비평적 입장이다. 이는 기존의 역사 기술이 반복해온 근대건축이 무엇이냐는 인식 론적 질문 대신 ‘어떻게’ 라는 방법론적 질문을 내세우는 것 이다.42) 양식 혹은 형태의 문제를 배제한다는 모더니즘 건 축의 기존 교의에 반발해 형식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건축의 자율성(autonomy)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이는 사회적 맥락 이나 의미 내용을 소거한 채 순수한 형태의 실험을 통해 건 축을 고상한 심미적 실천으로 정위시키는 일이다.43) 그의 “이데올로기 없는 형식주의‘ 혹은 ’내용 없는 수사학‘은 제 도권 내 진부한 관행으로 전락한 근대건축을 구하려는 시도 였다.44)
그는 르 코르뷔제를 동시대의 팔라디오이자 미켈란젤로 로 간주하며 우리 시대의 위대한 건축가로 자리매김한다. 코르뷔제가 위대한 것은 이전의 사가들이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였다. 로우는 그의 작품 속에서 상이한 두 경 향의 대립과 갈등을 읽으며 그를 훨씬 복잡하고 모호한 대 상으로 독해하였다.
근대건축을 시대정신이나 사회의 산물로 보기를 거부하 는 로우가 겉으로 보기에 반헤겔주의자의 면모를 띠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역시 근대건축의 전개를 르네상스 이 후의 유럽 건축사와 상동적(parallel)인 것으로 읽어내며 여 전히 단계적 계기를 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근대건축의 진화에서 매너리즘이나 신고전주의적 성격을 포착하려는 것 이나 뵐플린적 형식 비평이 그러하다.45) 한편 형식 비평에 동원하는 비례와 기하학에서 어떤 무시간적이고 미학적인 가치를 인정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그의 형식주 의적 처방, 특히 꼴라주 시티는 근대주의의 쇠락과 출구 없 음에 대한 치유책이다.46) 유토피아에 반대하는 그이지만 여 기서는 어떤 대안적 유토피아의 냄새를 피우며 역사가-이 론가로서 현실과 실천에 개입하고 있다. 따라서 근대성의 새로움에 반하는 그의 종말론적 서사에서 또 다른 헤겔적 무의식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물론 그의 형식주의자적 역사 비평이 가지는 이점만큼이 나 그 한계는 명백하다. 건축 장르만큼 형식주의 비평이 난 관을 부딪치는 영역도 없을 것이다. 의미와 가치, 혹은 물적 토대를 배제한 건축의 형식은 추상으로서 아카데미의 정신 적 영역에서는 유효해보이나 현실에선 한계에 부딪칠 수밖 에 없다. 뵐플린식의 시각 중심적이고 내재적인, 형식의 반 복/대립의 비평은 급격히 변화하는 현실 건축을 읽어내는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또한 그의 자유주의자적 입장은 부르 주아 미학으로 간주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47)
콜린 로우가 흥미로운 것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사 가인 밴험과 타푸리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근대건축과 그 역사에 대해 그들은 서로 공유하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대 척적인 입장에 있기도 하다. 근대건축과 전통을 연관시킨다 는 점에서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밴험의 테크놀로지와 연관 된 미래주의자적 태도와 비교해보자면 로우는 진보나 새로 움을 무시하는 경험주의자적 태도를 보인다. 한편, 근대 건 축이 지닌 허구적 신화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로우와 타푸리는 겹친다. 그러나 로우가 형식을 동원해 근대 건축 에 내재적 비판을 가했다면 타푸리는 자본주의 체제와의 관 계에서 근대 건축의 존립 조건에 대한 이데올로기 비판을 가했다는 점에서 서로 반대의 입장에 있다. 아마 타퓨리가 보기에 로우 식의 비평 역시 작위적이고 공허한 것으로 비 칠 것이다.
4.담론사적 이동 : 비판적 건축사 서술
지난 30-40년간의 지식사의 변화는 역사 서술 방식에 심 대한 지각 변동을 가져왔고 그것은 건축사 서술에서도 마찬 가지이다. 역사 서술이 담론적 실천이며 텍스트 생산이라는 것은 상식이 되면서 실증주의의 사학이나 역사주의에 기댄 주류 건축사는 호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건축 이론, 역 사, 비평 분야에서 유럽중심주의, 인종중심주의, 남성중심주 의적 언술에 대한 비판과 반성도 제기되었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좌파이론,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해석학의 담론 은 분과 학문으로서 건축사학에 적지 않게 침투했다. 이런 영향은 ‘비판적 역사서술’(critical historiography)과 수정주 의 역사학의 대두를 가져왔다. 그것은 역사 서술의 입장 자 체를 물으면서, 그 이론적 근거와 전제, 이념적 배경을 들여 다보려 한다. 최근 탈근대 역사학의 동향은 역사서술 방식 에 일대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근대 건축의 역사를 다시 쓰도록 하는가 하면 근대건축을 보는 관점의 이동을 낳고 있기도 하다.48)
건축사, 그리고 근대건축사에서 진정한 비판적 건축사의 등장은 거의 전적으로 타푸리의 역사서술에 힘입고 있다. 벤야민, 알튀세 같은 좌파사상가들과 푸코 등 후기구조주의 자를 참조하면서 그는 근대건축과 그 역사에 대한 근본적으 로 ‘다른’ 해석을 시도한다49). 그것은 기왕의 근대건축의 역 사 서술과 그 역사에 대한 전면적 비판의 성격을 지닌다. 이데올로기 비판에 의거한 그의 역사 해석은 우리를 아방가 르드와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이끌었다50). 타푸리로 인해 종래의 단선적이고 인과적인 역사, 역사의 동인으로 몇 개의 개념(공간, 기술, 형식)을 동원해 끼워 맞 춘 역사, 통합되고 체계화된 규범적 역사 서술은 그 유효성 을 적지 않게 상실했다.
그러나 타푸리의 역사서술적 기획(historiographical project이가 제기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51). 그는 역사의 진행 방향에 선험적인 도식을 가정하고 사실을 왜곡하여 동 시대 건축의 생산과 미래 진로에 영향을 미치려는 사가들의 서술 행위를 ‘작위적’(operative)이라고 비판한다.52) 역사 서 술은 현실 건축, 즉 실천에 개입하거나 관여해선 안 된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작위적 역사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역사가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에 대한 비평/비판을 가하는 것뿐이다. “계급 비평은 가능하지만 계급 건축은 가 능하지 않다”는 그의 유명한 언명은 바로 그것을 뜻하는 것 일 게다. 그런데 과연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현실 개입이 나 관여 없는 역사 서술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혹은 가능 하기나 할까? 긍정적인 의미에서 선입견을 가지고 오늘 여 기에서 과거를 설명함으로써 (의도하든 하지 않든)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게 역사가의 역할이 아닌가? 더불어 그의 역 사는 중립성과 자의성의 위험을 피하면서 ‘올바른’ 역사의 해석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다른 역사들 과 차이 나는 타퓨리의 해석의 입각점의 우월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결국 그것은 믿음/이념의 문제 혹은 설득의 문 제로 귀결되지 않는가?
사실 비판을 통해 타푸리처럼 현실 건축에 대해 급진적 으로 발언하는 역사가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타푸리의 절 대 부정의 프로젝트는 현실 장에서의 모든 건축 생산, 건축 가의 디자인 행위가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이나 신화 생산에 복무하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 바깥은 허용되지 않기에 난 처한 딜레마를 제기한다. 건축가로 현실에서 존재하려면 그 는 체제 내에서 허구적 이데올로기의 생산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에게는 출구가 없다. 비평(역사)와 실천의 분리를 주장하는 그의 비관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역사는 궁극적으로 건축 분과 내의 실천적/비평적 개입의 불가능성을 의미하기 에 일종의 묵시록적 성격을 띤다.
그러나 타푸리가 제기한 역사 서술의 문제와 그가 제시 한 ‘대항 서사’는 종래의 지배적 설명의 유효성을 의문에 붙 인다는 점에서 근대건축사에 중요한 사건으로 작용했다. 그 의 서술 전략은 파편화된 서사들을 특정한 시공간에서 짜 맞추면서 역사의 다층성을 보여주고 특정 국면에서 설명력/ 설득력을 갖춘, 그러나 잠정적인 성격의 해석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타푸리는 역사 서술 작업을 ‘조각그림 맞추기’로 비 유했는데53) 벤야민이 제안한 별자리의 몽타주와 유사한 것 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케네쓰 프램턴은 모자이크에 비유 하고 있다.) 비판적 역사의 등장과 함께 근대 건축사는 대 문자 역사(History)가 아니라 여러 상이한 복수의 역사들 (histories)의 길항과 경쟁으로 보는 것이 훨씬 합당하게 되 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후에 출판된 두 권의 근대건축사를 살 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문제들을 제기한다. 비슷한 시기에 주목할 만한 두 권의 건축사가 나왔다. 1980년에 출판된 케 네쓰 프랜턴의 [Modern Architecture, A Critical History] 와 1982년에 나온 윌리엄 커티스의 [Modern Architecture Since 1900]이 그것이다. 전자가 한나 아렌트와 프랑크푸르 트 학파의 좌파적 관점을 취하고 후자가 과거 선배들의 역 사를 계승하는 온건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상호 유사한 성격도 발견된다.
우선 두 역사가 이제까지의 근대건축에 대한 확장된 사 료들과 여러 수정된 견해들을 수용하면서 일목요연한 인과 적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단편적 서사들의 느슨한 조합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들은 하나의 ‘큰 이야기(거 대 서사)’로서 근대건축사를 회피/포기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는 기존의 통사적인 역사 서술에 대한 반성과 대안으로 근대건축의 역사를 여러 토막 낸 ‘작은 역사’(小史)들의 우 연한 집합처럼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복잡하고 다기한 근대건축의 전경을 펼쳐 보여주려는 학문적 야심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제공하기도 한다. 비유하자면 암묵적으로 ‘최후의’ 전체사를 시도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이다.‘비판적 역사’라는 부제를 담고 있는 프램튼의 두터운 역 사는 그 대부분을 근대 운동(Modern Movement)에 할애하 고 있다.54) 성기 혹은 본격 모던(high Modern)에 해당하는 이 짧은 시기가 그의 근대건축사 서술의 거의 대부분이 된 다.55) 설명적 성격이 강한 이 부분에 비해 “1925년부터 현 재에 이르기까지의 건축적 건축에 대한 비판적 접근”인 제 3부는 현실 비평의 색채가 강하다. 그의 역사는 근대건축의 양면적 측면을 고루 비추며 그것이 처한 곤경과 위기를 분 석한다. 프랜튼은 기디온의 ‘종합’ 같은 것은 전혀 의도하지 않지만 “사고와 정서 간의 분리”처럼 “장소와 생산 사이의 괴리/적대” 같은 대립적 개념을 여전히 취하고 있다. 하이 데거의 ‘거주’(dwelling) 개념에 기댄 그의 장소에 대한 옹 호는 지역주의에 대한 무망해 보이는 지지로 나타난다56). 자본주의 체제의 문화적 동일화와 저속화에 대한 비판이자 저항으로 해석되는 지역주의에 대한 그의 희망의 피력은 이 해되지만, 근대성의 시각에서 보자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57)
흥미로운 사실은 프램튼의 건축사가 판을 거듭하며 꾸준 히 확장 증보되었다는 것인데, 종결된 역사가 아니라 계속 진행되는 역사로서 동시대의 양상을 조명하려는 시도로 이 해된다. 구체적으로 재판(1985)에서는 “비판적 지역주 의”(Critical Regionalism)라는 제목으로, 1992년판에는 “세 계건축과 반성적 실천”(world architecture and reflective practice)이라는 제목으로, 2007년의 네 번째 판에서는 “지 구화시대의 건축”(architecture in the Age of Globalism) 이라는 제목으로 동시대의 동향을 논의하고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동시대 건축이 처한 곤경과 위기를 이슈화하고 의 미 있는 실천을 열거하는 3부의 비평적 시각은 충분히 납득 이 되면서도 동시에 그의 역사 서술이 봉착하는 난점을 드 러내기도 한다. 근대 운동 이후의 범지구적 규모로 전개되 는 방대하고 다양한 흐름과 사건들을 그 짧은 서사로 개념 화하고 압축해 담으려는 시도는 무모해보이고 역부족이라는 것이다.58) 이는 필연적으로 그의 근대건축사가 거의 전적으 로 서구의 역사로 한정되는 문제로 귀결되는 데, 20세기 중 후반의 비서구의 수많은 시도와 노력을 외면하고 무화시키 는 것이기도 하다.59) 결국 프램튼의 역사는 하버마스와 마 찬가지로 서구가 미래의 책임을 떠맡은 ‘미완의 기 획’(incomplete project)이 되는 것이다.60)
커티스는 대서양 양안이 지닌 문화적 편견과 권력 구조 에 기반을 둔 역사 서술은 근대 건축의 전 세계로의 확산을 감안할 때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한다.61) 실제로 그는 비서 구 건축에 대한 상당한 관심을 보이면서 전통, 지역, 정체성 의 문제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그러나 간간이 삽입 된 이들 서사는 그 의도와 달리 오리엔탈리즘의 혐의를 벗 어나기 어렵다. 그는 여전히 보편 대 특수, 근대와 전통, 국 제와 로칼, 본류와 지류 같은 이분법적 대립을 고수하면서 자신의 서사를 전개한다.
1996년 제 3판의 출간까지 개정과 확장을 거듭한 커티스 의 근대건축사는 프램튼 것 보다 내용도 더 풍부하고 취급 범위도 더 넓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그는 근대건축의 기원 보다 진화 전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그의 역사 서술 은 선배 사가들의 문제를 지양하면서 계승하려는 시도로 보 인다. 그러나 근대건축을 규정하는데 편협하며 보수적인 입 장을 보인다. 건축의 형태와 의미, 그리고 그것을 낳은 건축 가의 탁월한 창의력에 주로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조형 예 술사의 미학적 전통을 계승하는 것이지만 건축의 근대성이 지닌 어두운 측면이라든가 사회적 맥락에는 무심하다. 더 큰 문제로 여전히 진보사관과 관념론에 물들어 있으며 본 질, 건강 같은 가치 담지적 용어를 구사하는 윤리적 입장을 견지한다. 역사에서 일시적 유행이나 파행을 영속적인 것에 서 구분하려는 판관의 태도 역시 엿보인다. 그는 자신이 기 디온 식의 역사 서술 방식의 계승자임을 공공연히 언표하고 있다.62)
아마도 두 역사가의 ‘이야기’는 통사로서 근자에 가장 널 리 읽히는 역사일 것이다. 그만큼 나름의 장점과 미덕을 겸 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서술 방식은 포스 트 식민주의나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보면 편견으로 가득 찬 서사로 비칠 수 있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자면 근대 운동은 유럽에서 전개된 국지적인 문화 운동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 며, 계몽에 기원을 둔 보편사로 주장하기엔 점점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모더니즘 건축을 근대화의 일환으로서 추진 된 전 지구적 프로젝트로 보자면 그들의 역사에서 비서구의 거의 전적인 누락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한편, 그들의 증보 확장판에서 보듯 제한된 서술로 무한히 확장, 다변화되는 동시대의 실천을 따라 잡지 못한다는 난점을 노정하고 있 다. 더욱 큰 문제는 ‘유동적이고 살아있는 경험’으로서 동시 대에 진행되는 실천과 변화가 시간을 소급해가며 이전에 써 놓은 서사를 흔들며 교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늘의 국면은 근대운동과 그 이후의 전개를 ‘모 던 이후’(After Modern), ‘후기 모던(late Modern)’ 이니 ‘탈 모던(Post Modern)’과 같이 전후 관계에서 이름 지어 부르던 헤겔주의적인 역사 서술의 관행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상황임을 인식하게 한다.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 내에 서 끊임없는 문화적 재생산 과정으로 파악할 필요를 제기한 다. 물론 영역/분과(discipline) 내의 변화와 차이는 존중 되 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료타르의 거대 서사(meta narrative)에 대한 불신은 잘 알려져 있다. 그 기저에 도사린 목적론, 진보 신학을 비판하 면서 료타르는 보편성을 주장하는 어떠한 진술도 그 적실성 을 보장 받을 수 없고, 언어(역사 서술)가 실재 대상과 상 응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63) 그에 동의한다면 근대건 축사에서 전체적 조망이나 전경 같은 것은 허용되지 않으 며, 역사를 이끌어가는 핵심 동인이나 시대정신 등은 지극 히 의심스러운 것이다. 극복과 발전, 지양의 논리로 점철된 기존 근대건축사 서술도 전면적으로 재고되어야 하는 것이 다.
비슷한 논리에서 바티모는 진리를 주장하는 담론 체계가 설득의 체계이며 논리가 일종의 수사학임을 말한다. 존재는 자신의 위치를 부동의 것으로 보지 않는 ‘약한’(weak) 입장 을 고수함으로써 자신의 자리의 변화에 따라 끝없이 변화하 는 시각을 가질 수 있다고 바티모는 주장한다. 그를 다르면 현대는 보편사를 구성하기가 불가능한 시대이다64). 그가 인 용하는 탈역사(post-history)는 역사의 종언이 아니라 진보 와 새로움이라는 형이상학적인 가치가 더 이상 역사 해석에 적용될 수 없는 상황을 뜻한다65). 역사 서술에서 (선험적) 진리를 주장할 수 없다면 대신 설득의 담론이 중요한 미덕 이 될 것이다. 미술사가인 키스 먹시도 역사 서술의 역설적 측면을 강조하며 설득과 수사학을 강조한다. “의미에 관한 합의가 부재할 때, 진리- 주장은 오직 설득에 의해서만 확 립이 되고 도전받으며 논쟁될 수 있다”66)는 것이다. 그렇 다면 헤겔식 운동이나 화해 대신 ‘끝없는 이야기’로서 수많 은 의미를 산출하는 역사 서술이 남아 있을 뿐이다. 상이하 고 경쟁하는 다양한 서사들은 건축사 서술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다.
5.맺는 말
오늘 이 시점에서 근대건축사의 역사 서술에 대해 논의 하는 것은 무슨 시사를 줄 수 있을까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시간 속에서 근대건축에 대한 역사 서술의 변화 와 논점의 이동에 대한 관찰은 근대건축이라는 것이 고정된 실체나 대상으로 보기보다 계속 변화하는 현상이자 특정 시 점의 해석의 산물임을 인식하게 한다. 더불어 우리의 근대 건축에 대한 이해가 담론적 실천에 의한 것이며 그 자체가 역사적 소산이라는 것, 또 그 개념과 의미가 동시대의 실천 과 맞물려 변해 왔음을 확인시켜 준다. 이러한 근대건축의 ‘역사성’의 이해는 종결된 역사로가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지속되고 있는 역사로서 근대(현대) 건축을 동시대의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할 사건으로 위치 짓는다.
이러한 비판적 인식은 근대건축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폭을 확대시키고 생산적 논의가 이루어질 바탕을 마련해준 다. 또한 근대건축과 그 역사를 재고하며 성찰할 근거를 제 공해 준다.67) 정전으로서 받아들여 온 그 지배적 언술에 대 해 맹목적 청중의 입장에서 벗어나 서술 주체의 위치에 대 해 비판적으로 재고하게 하는 것이다. 아직 말해지지 않은 근대건축사의 틈새를 메워야 할 필요도 제기된다.68) ‘정본’ 근대건축사 대신 다양한 ‘건축사들’이 존재해야할 이유이다. 이는 근대건축의 다른 ‘별자리’를 그리는 일이 될 것이다.
또 하나, 근대건축사 서술의 비판적 검토는 우리 건축사 학계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는 건축사 기술이 어떤 입각점이나 이론적 전제 속에서 이 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깊이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우리 역사 연구는 여전히 연대기적 연구, 실증주의적 연구 의 경향이 강하다. 이른바 역사주의가 역사 연구에 지배적 힘을 발휘하고 있기도 하다. 역사 기술의 전제와 방법에 대 한 고민이 없는 건축사 연구는 기존의 아카데미즘의 답습에 머물 경향이 다분하다. 연구자의 위치와 입장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역사,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현실 연관성을 고민 하는 역사가 되어야 할 터인데, 이 부분에 대해 지나치게 무심한 게 아닌지 반성할 여지가 있다. 이는 한국전통 건축 의 역사나 한국 근대/양식 건축의 역사 서술에서도 회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69) 더 먼 과거의 연구라고 이런 비판을 모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