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 론
1.1.연구 배경 및 목적
『洛阳伽蓝记』는 楊衒之1)가 낙양의 불교사원에 대 하여 기록한 책이다. 여기에서의 낙양은 北魏때의 낙양, 즉 효문제가 평성에서 낙양으로 천도를 단행한 494년부 터 북위가 西魏와 東魏로 분열된 534년까지의 낙양을 가리킨다.
북위시기 이전의 낙양은 後漢과 삼국 魏, 그리고 西晉 의 수도이자 북방 불교의 중심지였다. 후한 때에는 최초 의 한역불전을 편찬한 安息國安世高와 大月氏國支婁 迦讖의 역경활동 중심지였고,2) 삼국시기에는 남방 불교 의 중심지였던 吳의 建業과 더불어 북방 불교의 중심지 였으며, 이는 서진 때까지 이어졌다.
북위시기 낙양은 북위 황실의 수도이자 북조 불교의 중심지로서 크게 융성하였는데, 서진 영가년간(307-313 년)에 42개소3)에 불과하던 불교사원의 수가 북위 때에 무려 1,367개소4)에 달하였다는 기록을 통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 寺址의 발굴성과가 크게 부족한 중국에서 隋唐 및 수당이전 사원배치에 관한 연구는 주로 『魏書·釋老 志』,『洛阳伽蓝记』,『酉陽雜俎·寺塔記』,『歷代名畫 記』등의 문헌위주로 진행되어 왔는데, 이 가운데 낙양 가람기는 남북조후기 불교사원 연구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저작이다.
고대 寺址의 발굴성과가 크게 부족한 중국에서 隋唐 및 수당이전 사원배치에 관한 연구는 주로 『魏書·釋老 志』,『洛阳伽蓝记』,『酉陽雜俎·寺塔記』,『歷代名畫 記』등의 문헌위주로 진행되어 왔는데, 이 가운데 낙양 가람기는 남북조후기 불교사원 연구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저작이다.
건축역사 방면에서는 중국건축사 등의 개설서에서 남 북조 불교건축을 서술하는 일부 章節에 낙양가람기의 분 석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 傅熹年은『中國 古代建築史』의「兩晉南北朝·佛敎建築」절에서 낙양가 람기를 바탕으로 하여 북위 낙양 불교사원 53개소의 건 립현황과 분포를 표와 그림으로 간략하게 정리하였고6), 王贵祥은 「北朝時期北方地區佛寺建筑概说」을 통하여 문헌에 기록된 북조시기 불교사원의 규모 및 배치 등을 표로 정리하였는데, 여기에 낙양가람기에 기록된 사원이 포함되어 있다.7) 그 밖에도 『由洛阳伽蓝记談北魏寺廟 布局特點』8), 『北魏時期洛阳寺院的幾個問題』9) 등의 학술논문이 있으나 모두 2∼3페이지 분량으로 그 내용이 매우 간략하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낙양가람기를 바탕으로 하여 이 에 기록된 북위 낙양 불교사원의 배치에 관하여 살펴보 고자 한다.
1.2.연구 방법 및 대상
본 연구는 낙양가람기를 바탕으로 하여 문헌위주로 진 행되었다. 낙양가람기 역주본은 중국에서 널리 인용되는 『洛阳伽蓝记校譯(2版)』(周祖謨校譯, 中華書局, 2010) 와 『洛陽伽藍記校注』(範祥雍校注, 上海古籍出版社, 1978)를 참고하였으며, 국문 번역본인 『낙양가람기』(임 동석 역, 동서문화사, 2009)도 참고하였다. 그리고 문헌 위주 연구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발굴자료 및 도상자료도 일부 참고하였다.
낙양가람기에서는 城內, 城東, 城南, 城西, 城北의 5구 역에 위치한 불교사원 약 40여개소10)에 대하여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였고, 전문을 통해서는 모두 83개소(낙양 성 내곽 69개소, 외곽 14개소)의 사원을 언급하였다. 이 들 가운데 상당수는 사원명과 위치만이 기록되어 있어 배치특성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불교사원 건립배 경 또는 사원 내 건축요소 등이 묘사되어 있는 대상에 한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에 따라 본문에서는 47개 소 불교사원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하였으며 이는 다음과 같다.11) <Tab.1, Fig.1>
2.건립배경
북위 낙양 불교사원은 건립배경에 따라 創建型과 捨 宅爲寺型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Tab.2>
첫째, 창건형 사원은 皇家, 王官, 閹官등의 황실 귀족 계층의 주도하에 낙양 천도와 함께 대규모로 조영된 불 교사원이다. 일부 사원의 경우는 西域胡人이나 比丘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漢代및 晉代에 창건된 사원도 이에 포함하였다. 연구대상 47개소 가운데 절반이 넘는 26개 소가 이에 해당하는데, 이는 낙양 천도에 따른 전체 도 성계획의 결과로 생각된다.
둘째, 사택위사형 사원은 冥福의 의미로 기존의 저택 을 내어 불교사원으로 개조한 경우이다. 사택위사는 東 晉士夫階層에 의해 시작된 일종의 불교신앙 방식으로 남북조시기, 특히 북위 때에 크게 성행하였는데,12) 이는 낙양가람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 왕관계 층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으며, 歸覺寺(E11)와 같이 평민 이 집을 내어 불교사원으로 삼은 경우도 있다. 연구대상 사원 47개소 가운데 17개소가 이에 해당한다.
그 밖에 修梵寺(C10), 嵩明寺(C11), 景林寺(C12), 宗 聖寺(E3)등 4개소는 사원 내 건축요소에 관하여 기록 하고 있으나 건립배경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없 다.
3.사원 내 건축요소
북위 낙양 불교사원의 배치를 파악하기 위하여, 우선 사원 내 건립된 건축물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낙양가람기에서 사원 내 건축요소에 관하여 언급 하고 있는 사원은 대략 33개소에 그칠 뿐만 아니라, 일 부 대형사원을 제외하고는 그 내용이 매우 소략하다. (Tab.5 참조)
① 영녕사는 희평원년(516년) 영태후 호씨가 세웠다. …… 절 안에는 9층 탑[浮圖] 하나가 있는데, 목구조이 며, 높이는 90장이다. 위에 높이 10장의 금찰(金刹)이 있 어, 전체 탑의 높이는 1000척이다. …… 탑[浮圖] 은 4면 으로 되어있고, 한 면에는 3개 문과 6개 창이 있는데, 문은 모두 붉게 칠하였다. …… 탑[浮圖]의 북쪽에는 불 전 하나가 있는데, 형태가 태극전(太極殿)과 같다. …… 승방(僧房)과 누관(樓觀)이 1천여 칸이다. …… 사원 담 장은 모두 짧은 서까래를 깔고 기와로 덮었는데 오늘날 궁전 담장과 같다. (사원 담장의) 4면에는 각각 문을 하 나씩 내었다. 남문루는 삼층이고, 세 갈래의 각도(閣道) 가 통하고 있다. 높이는 20장이고 형태는 오늘날 단문 (端門)과 같다. …… 동서 양문은 모두 이와 같은데 2층 이라는 것만이 다르다. 북문에는 하나의 길이 있으며, 위에는 건물을 세우지 않아, 마치 오두문(烏頭門)과 같 다. …… 영희3년(534년) 2월, 탑[浮圖]이 불탔다.13)
② 경명사는 선무황제가 세웠다. …… 산에 매달아 놓 은 듯한 당관(堂觀)은 빛나고 성대하였으며 1천여 칸이 나 된다. 복전[複殿]과 중방[重房]의 창이 교차하고 처마 가 마주하며, 푸른누대[靑臺]와 자주색누각[紫閣]이 부도 [浮道]로 연결되어 있다. …… 정광년간에 이르러 태후 가 비로소 7층 탑[浮圖]을 지었는데 지면으로부터 높이 가 1백길이나 된다.14)
③ 고양왕사는 고양왕 원옹의 저택이다. …… 저택을 내어 절로 삼았다. …… 거주하는 저택은 황제 궁궐에 필적하였다. 흰 벽과 붉은 기둥이 깊게 이어져 뻗어 있 고, 날아갈 듯한 처마는 서로 교차하여 주위로 통하였 다.15)
①과 ②는 북위황실에 의하여 창건된 永寧寺(C1)와 景明 寺(S1) 기록의 일부인데, 이를 통하여 이들 두 사원은 고층 목탑, 불전, 승방, 법당, 누관 등 1천여 칸 이상의 건물을 두루 갖춘 대규모의 사원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 다.
한편, ③은 高陽王寺(S10)에 대한 기록의 일부로, 비록 구체적인 건축요소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이 사원이 ‘황 제 궁궐에 필적하는[匹於帝宮]’ 거대한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하여 고양왕사 역시 상술한 두 사원과 마 찬가지로 수많은 건물을 갖춘 대형사원이었을 것으로 추 정된다.
그러나 이들을 포함한 일부 불교사원을 제외하고는 사 원 내 건축요소에 관한 기록은 극히 빈약하여 연구에 어 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사원 내 건축요소의 문헌 내 출현빈도를 조사하여 불교사원 건축요소를 개략 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으며, 이는 아래와 같다. <Tab.3>
이와 같이, 북위 낙양 불교사원 가운데 浮图, 塔등의 불탑이 기록된 사원은 16개소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불전(佛殿, 佛堂등), 승방(僧房, 僧舍, 尼房등), 강당 (講殿, 講堂, 誦室등), 선방(禪房, 禪堂등)의 순으로 나 타났다.
그리고 이들 유형 이외에도 원림(園林, 林池, 園등)에 관한 묘사도 많이 보이는데, 이것을 사택위사형 사원에 서 기존 저택에 조성되어있던 원림을 그대로 수용하여 불교사원과 원림이 결합된 형태로 발전하였다고 보는 시 각도 있다.16)
한편, 불사 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불탑은 재료, 층수, 높이 등에 따라 구분이 가능하며, 이에 대한 분석 및 정리는 다음과 같다.<Tab.4>
첫째, 불탑건립은 주로 창건형 사원에서 이루어졌으며, 황가, 왕관, 엄관 등의 황실귀족계층이 주도하였다. 특히 9층, 7층, 5층 등의 고층 탑은 대부분 황실 주도하에 건 립되었는데, 이를 통해 당시 불탑건립에는 재정적, 기술 적인 지원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 다.
둘째, 기존 저택을 불교사원으로 개조한 사택위사형 사원의 경우 불탑건립시 공간적인 제약이 따르게 마련이 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택위사형 사원에는 불탑이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다.(Tab.5 참조) 다만 일부 사택위사형 사원에서 불탑을 건립한 기록이 확인되는데, 이러한 탑 들은 그 재료와 층수로 미루어 보아 협소한 공간에 세울 수 있는 전탑위주의 소형 탑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4.배치유형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위 낙양 불교사원은 불탑, 불전, 승방, 강당 등의 여러 건축요소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을 바탕으로 실제 다양한 불교사원 배치유형이 존재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문헌기록의 한계로 인하여 명확한 배치유형의 추정은 쉽지 않다. 따라서, 사원 내 건축요소에 대한 기 록이 비교적 상세하여 그 배치형태의 추정이 가능한 일 부 대형사원을 중심으로 북위 낙양 불교사원의 배치유형 을 살펴보고자 한다.17)
우선, 前塔後殿배치를 들 수 있다. 이 유형은 사원 내 전면에 불탑을, 후면에 불전을 건립한 형태이다. 대부 분 황실 귀족계층이 주도한 창건형 사원에서 많이 나타 나며, 영녕사가 대표적인 예이다. <Fig.2>
이러한 전탑후전 배치형식은 북위 낙양 영녕사 이전의 方山思遠佛寺및 龍城思燕佛圖寺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배치경향이다.18) 따라서 전탑후전 배치형식은 북위시기 대표적인 사원배치 수법의 하나였을 것으로 생 각된다.
다음으로는 前殿後堂배치를 들 수 있다. 이 배치유형 은 전면에 불전을, 후면에 강당을 건립한 형식이다. 이는 탑을 건립하지 않은 창건형 사원과 사택위사형 사원에서 주로 볼 수 있다. 특히 사택위사형 사원은 기존의 전통 원락식 주택의 배치를 그대로 사용하고 개별 건물만을 사원 용도에 맞게 개조한 것이 특징인데, 이는 『洛陽伽 藍記』권1 建中寺條에 잘 나타나 있다.
④ 건의원년, 상서령 낙평왕 이주세륭이 이주영의 명복 을 빌기 위해 절로 삼았다. …… 전청(前廳)은 불전(佛 殿)으로 삼고, 후당(後堂)은 강실(講室)로 삼았으며, 금화 보개(金花寶蓋)가 그 가운데를 두루 덮었다.19)
그렇다면 이 시기의 원락식 주택건축의 배치는 어떠하 였을까. 현재 남북조시기 주택배치에 대하여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으나, 돈황 막고굴 수대 벽화에 그려진 수대 원락식 주택을 통하여 남북조시기 주택배치를 간접 적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Fig.3>
이 밖에도 쌍탑배치를 보이는 불사도 있어 주목되는 데, 이는 『洛陽伽藍記』권3 秦太上公寺條에서 나타나 며 다음과 같다.
⑤ 동편에 진태상공 이사(二寺)가 있는데 경명사 남쪽 1 리에 위치한다. 서사는 태후가 세웠고, 동사는 황이가 세웠다. 모두 부친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으므로 부 친의 이름을 절이름으로 삼았으며, 당시 사람들은 쌍녀 사라고 불렀다. …… 각각 5층 탑[浮圖]이 1기씩 있었는 데 높이는 50장이다.20)
이와 같이 두 원락에 각각 탑을 세워 전체적으로 쌍탑 배치를 구성하는 수법 및 불사 조영동기 등은 북위 평성 시기 暉福寺와 매우 유사한데,21) 이는 북위황실 특유의 쌍탑배치 수법이 평성시기에 이어 낙양시기에도 이어지 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5.결론
낙양가람기를 통하여 살펴본 북위 낙양 불교사원의 배 치특성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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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 불교사원은 건립배경에 따라 創建型과 捨宅 爲寺型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황실 귀족계층의 주 도 하에 낙양 천도와 함께 대규모로 조영되었으며, 후자 는 기존의 원락식 주택을 불교사원으로 개조한 형식으로 왕관계층이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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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 불교사원 내 건축요소는 불탑, 불전, 승방, 강 당, 선방 등의 순으로 다양하였다. 이 가운데 불탑은 문 헌 내 출현빈도가 다른 건축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게 나 타났는데, 이는 후한 삼국이래로 지속되어 온 불탑중심 의 사원배치가 6세기초 북위 낙양 불교사원에도 여전히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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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塔後殿과 前殿後堂의 배치수법은 북위 낙양 불 교사원의 대표적인 배치유형이다. 전자는 탑을 건립한 창건형 대형사원에서 주로 나타나며, 북위시기 대표적인 사원배치 가운데 하나이다. 후자는 탑을 건립하지 않은 창건형 사원 및 사택위사형 사원을 중심으로 나타는데, 특히 사택위사형 사원의 배치는 기존의 전통 원락식 주 택의 배치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