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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598-1142(Print)
ISSN : 2383-9066(Online)
Journal of architectural history Vol.23 No.2 pp.65-80
DOI : https://doi.org/10.7738/JAH.2014.23.2.065

The Location and Characteristics of Urban Hanok Area in the Downtown of Seoul

In-Ho Song*, mee-Joung Kim
Corresponding Author : inos@uos.ac.kr
February 15, 2014 April 29, 2014 April 30, 2014

Abstract

This study was aimed at analyzing the location and the characteristics of the Urban hanok tissues that were formed in the downtown since 1920s. Focusing on the relationship between roads and lots, the developing process and the typological characteristics are examined. Through dividing the large and medium lots of the aristocratic families and on the hilly area near the Seoul City Wall, various shapes of urban hanok tissue were evolved. The urban hanok tissues developed before 1936 locate on the downtown sites, while those developed after 1936 locate on the hilly sites. The location of the tissues were identified in the upper area of Jong-no street. The former is composed of small size lots divided into average area 104.4m2 with the narrow alleys of about 2.0m width, while the latter is composed of medium size lots divided into average area 131.54m2 with the alleys of about 4.0m width. Moreover the structures of the tissues were evolved based on the developing period and the site condition. Moreover the structures of the tissues were evolved based on the developing period and the site condition. The typological characteristics were defined as the four patterns categorized with the bilateral concepts of alley’s form and of alley’s spacial feature.


서울도심부 도시한옥주거지의 입지와 특성

송 인호*, 김 미정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초록


    University of Seoul

    1.서 론

    1.1.연구의 배경 및 목적

    192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서울의 도시한 옥은 조선인 건설업자에 의해 주도되어 분양을 통한 근 대적 공급방식으로 양산되었다. 당시 인구의 도시집중으 로 주택부족문제가 심각해지자 1930년대 중반까지 도심 에 있는 대형필지를 중심으로 도시한옥주거지가 조성되 는 것이 주택공급의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이후 1930년 대 후반부터는 1936년의 서울의 경계확장과 토지구획정 리사업으로 새롭게 조성된 택지를 중심으로 도성 주변부 에 대량으로 주택이 공급되었다.

    서울 도심부에 조성된 주거지는 전술했듯이 하나의 대 형필지가 소규모 필지로 분할되는 방식을 통해 중∙소규 모 건설업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속칭 집장사집이라 부르 는 방식으로 조성되었다. 이때 대상이 되는 대형필지는 기존 전통한옥주거지 내부에 미개발상태로 남아있던 구 릉지, 몰락한 세도가의 집터, 국유지 등이었다. 따라서 이곳에 조성된 주거지들은 주변의 도시맥락과 동질적이 며, 가로도 기존의 가로체계와 연계되면서 비교적 자연 스러운 형상을 지니게 되었다. 이는 1930년대 후반 도성 밖에 형성된 주거지가 주변의 도시적 맥락과는 무관하게 단기간에 대규모로 형성된 주거지인 것과 확연히 다르다. 돈암지구, 용두지구 등으로 대표되는 도성 밖 한옥주거 지는 이전과는 다른 근대적 수법에 의해 격자형 가로체 계가 형성된 필지를 조성하고 그 위의 주택은 주택건설 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 의해 건설되어지는, 주변에 있 는 기존의 주거지와는 상당히 이질적인 환경을 형성하였 다.

    본 연구의 목적은 서울도심부에 분포하고 있는 도시한 옥주거지를 대상으로 20세기 도시조직의 변동 속에서 도 시한옥주거지가 어떻게 성립되었고 적응되었는가를 밝히 는데 있다. 서울도심부는 조선시대 한성부의 도성 안 지 역으로, 숭례문(국보1호)과 흥인지문(보물1호)과 서울한 양도성(사적10호) 및 유적으로 둘러싸여있는 지역을 말 한다. 연구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1912년 부터 2000년까지 대형필지를 중심으로 필지의 분화과정 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한옥주거지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다른 하나는 찾아낸 한옥주거지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한옥 주거지를 대상으로 필지와 가로의 물리적 특성을 조사하고 길과 필지의 관계에 따른 한옥주거지의 구조를 분석하는 작업이다.

    1.2.연구의 대상 및 방법

    도성 안 도시한옥주거지의 형성과정을 밝히는 것을 목 표로 본 연구는 20세기 전반의 도성 내 필지변화과정을 추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한옥 주거지 조직의 특성 을 살펴보았다.

    도시조직의 기본단위는 연구방법에 따라 다양하게 해 석되는데, 대표적으로 길과 필지를 도시조직의 구성요소 로 보고 건축물을 이에 적응하는 요소로 인식하는 도시 적 관점과, 건물과 필지, 가로를 유기체로 설명하면서 이 들 간의 상호 관계에 주목하는 건축적 관점으로 구분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한옥주거지의 단위 구조를 길과 필지의 관계에 주목하여 1912년 대형필지의 경계 속에서 필지와 길의 상호관계를 분석하였다.

    연구의 대상은 1912년 지적도를 기준으로 도성 안에 남아있던 대형필지 중 한옥 주거지로 분할된 필지들이다. 특히 이중 길과 필지가 동시에 분화된 경우만을 대상으 로 하였으며, 필지 내에 한옥주거지 구조가 일부 남아 있다 하더라도 급격한 도시화의 결과 본래의 모습을 파 악하기 어려운 사례는 제외하였다.

    본 연구에서 변화의 분석 시기는 1912년부터 1960년 대 후반까지이다.1) 이 시기의 한옥주거지 구조의 중요한 변화 시점을 1936년으로 설정하여 초기 서울의 필지 상 황을 알 수 있는 1912년~1936년, 1936년~1960년대 말 전 후로 형성된 필지들을 구분하였다. 시대구분의 기준을 1936년으로 설정한 것은 서울의 경계가 확장되고 새로운 시가지 조성사업이 시행되는 1936년의 토지구획정리사업 을 20세기 서울 도시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기점으로 설 정하였기 때문이다.

    연구의 방법은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지적자료의 비 교를 통해 도시조직의 변화를 살펴보고 현재(2008년) 한 옥이 남아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1912년 이후 형성된 한 옥주거지를 선별하였다.2) 다음으로 이들 도시한옥주거지 에 나타나는 가로와 필지의 물리적 특성과 한옥주거지의 구조를 분석하였다. 연구의 수행에 있어 사용된 지적자 료는 1912년 [경성부 지적원도]와 1921년 [조선지형 집 성], 1936년 [대경성정도], 1972년 항공사진3), 그리고 2008년 지적도이다.

    2.20세기 도성 안 도시한옥 주거지의 성립

    2.1.서울 경계의 확장과 도심부 도시조직의 변화

    (1)인구증가와 서울 경계의 확장

    태조 이성계가 1394년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이후 도 성과 성저십리를 포함하는 서울의 행정구역 경계는 한양 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진 이후 1914년 조선총독부에 의 해 축소되기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다. 이에 따 라 19세기까지 한양의 주거지는 사대문 안 지역과 의주 로 등 도성 인접 지역, 왕십리와 같이 길이 모이는 거점 마을, 그리고 마포나루와 같은 한강 변의 경강 상업지역 으로 한정되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서울에 인구가 몰 리면서 서울의 경계도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서울의 인구변화 추이를 보면, 1900년 20만, 1910년 24만에 이르던 것이 한일병합 이후인 1925년 30만, 그리 고 1935년 40만으로 급격하게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4) 이는 곧 심각한 주택부족 문제로 이어졌는데, 당시 주택 부족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었는가에 대해서는 손정목 (1996)의 연구5)에 잘 나타나 있다. 연구에 의하면, 경성 부의 주택 부족율은 1925년 4.45% 수준이었던 것이 1931년 10.62%, 1935년 22.46%에 이르렀었다고 한다.

    1920년대 이후 벌어진 경성부 시대 서울의 인구증가는 식민지 시대의 정치적 상황으로 유발된 농촌인구의 도시 유입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마침내 총독부는 1936년 토 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서울의 경계를 동북방향으로는 청량리까지, 서남방향으로는 영등포까지 확장하기에 이르 렀다. 1936년 2월 14일자 조선총독부령 제8호로 고시된 서울의 경계는 종전면적 36.18km2(1914년 축소된 경계 기 준)의 약 3.7배인 136km2에6) 이르는 넓이였다. 도성 밖으 로의 경계 확장으로 서울의 인구는 기존의 두 배에 달하 는 70만 정도로 늘어났고, 1942년 100만에 육박하게 되 었다. 소위 도성과 성저십리로 대표되던 서울의 경계가 한강 이남지역까지 확대된 경계가 확장된 것은 서울의 인구증가와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거지 확보 방안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2)도심부 도시조직의 변화

    서울의 경계확장으로 도성 밖에 새로운 주거지가 형성 됨에 따라 도성 내의 기존 주거지에 있어서도 경성도시 계획안 등의 가로체계정비계획이나 대형필지의 분화 등 에 의해서 도시조직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도성 안 에 남아있던 공유지나 이왕가 소유로 남아있던 궁지(宮 址), 세도가들의 주택지, 그리고 성곽 주변의 구릉지 등 이 당시 변화가 가장 활발했던 대상지들이었다. 당시 경 성부의 1866개 동(洞), 정(町), 통(通), 정목(丁目)에서 1927~1938년 사이에 조선인 가구가 100세대 이상 증가 한 지역<Tab.1> 7)을 보면, 당시 한옥주거지의 개발규모 를 유추할 수 있다. 즉, 도심부에 가까운 주거지일수록 개발 규모가 작으며, 도성 부근과 성 밖 지역에서 대규 모 개발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결과는 성내 지역의 경우 미개발 공지를 확보하는데 있어 성 밖에 새로 조성되기 시작한 주택지에 비해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 문이다.

    도성 안에 새롭게 조성된 주거지는 크게 일본인 주거 지와 조선인 주거지로 나뉜다. 개항 이후 들어서기 시작 한 일본인 주거지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확대되어 성내 기존 시가지를 점유하는 한편으로 새로운 주거지를 확보해 나갔1

    이들은 대개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격자형의 배치패턴 을 보여 불규칙하게 형성되어 있는 기존 조선인 주거지 와 차이를 보였으며, 이러한 격자형의 토지구획방식은 같은 시기 조성된 한옥주거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경성도시계획조사서(1928)의 구획정리 예정구역별 ‘구획 정리전후 그림(區劃整理前後ノ圖)’은 격자형 가로망에 기본을 두고 있는 당시의 도시계획 방식을 명확히 보여 준다.

    2.2.도시한옥의 형성 및 특징

    (1)근대적 주거유형의 등장

    1920년대와 1930년대 일제치하의 서울, 경성부에서 일 어난 가장 큰 변화는 새로운 주거지의 공급으로부터 비 롯되었다. 당시는 일제의 대자본에 의해 각종 건설업이 지배를 받던 시기로, 소자본과 전근대적 생산방식에 머 물던 토착자본이 전통한옥을 개량하여 새로운 도시주거 유형을 만들고, 대량생산과 분양을 목적으로 하는 근대 적 경영방식으로 전환해가던 시기였다. 따라서 새롭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도시한옥주거지는 전통적인 마을이나 고을처럼 점진적이며 자율적으로 형성된 주거지가 아니 라 대규모로 단기간에 지어진 주거지라는 점에서 ‘근대 적’ 성격을 가진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계층 및 직업에 따라 구분되던 도 성 안 한옥주거지는 근대화 및 도시화와 더불어 새롭게 재편되었다. 청계천 이남의 남촌이 일인들의 상가 및 거 주지로 바뀐데 반해 북촌을 중심으로 하는 청계천 이북 지역은 조선인거주지로서 지속되었다. 이에 따라 1936년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촉발된 도성 밖 주택지 개발과 더 불어 도성 안에서는 기존의 대형 필지들 또는 구릉지를 중심으로 한 주거지 안쪽의 미개발지가 새로운 주거지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1930년을 전후로 한 시기로부터 1960년경에 이르기까지 지어진, 서울의 도심부 및 도심 주변부에 집단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일련의 중소규모 한 옥을 ‘도시한옥’이라 부른다.8) 도시한옥 주거지는 그 형 성과정이나 공급방식, 도시조직의 모습이 이전에 지어진 전통한옥주거지와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도시한옥은 근대적 주거생산양식, 즉 주택경영회사의 출현으로 인한 주택의 생산 및 공급방식의 변화와 공장 생산된 건축자재의 사용에 의해 집단적으로 개발된 한옥 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또한 도시한옥은 주택의 상품 가 치적 측면이 강조되면서 형태의 장식화 및 상업성 등의 과시적 경향이 표현되었다.9)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도시한옥의 특성상 한옥의 평면은 균일한 필지에 표준화된 기본형 평면을 바탕으로 약간의 변화를 수용하면서 길을 따라 배열되는 형식을 취한다.10)

    또한 대형필지를 대상으로 개발된 도시한옥주거지는 필지와 가로체계가 동시에 계획된 주거지구조를 가지고 있어, 가로의 형태가 직선적이라는 점과 필지의 규모가 균등하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전 연구11)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남쪽으로 열린 ㄷ자형 평면을 기본으로 하는 도시한옥 평면구성의 특성으로 인해 골목의 방향은 대체 로 남북방향이 선호되는 경향이 주를 이루지만, 불리한 조건의 필지에 놓이는 경우 주거지구조를 부분적으로 변 형하거나 거주유형 자체를 변형함으로써 이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2

    (2)방매가 광고를 통한 주택의 분양

    1930년대 도시한 옥주거지는 전문적인 건설업체에 의해 주 거지와 주택이 동시 에 계획되고 시공되 었으며, 신문광고들 을 통해 분양되었 다12).3

    불특정 다수를 위한 주택공급방식 이 활기를 띠면서 당시의 신문에는 이 러한 이들 주택경영 회사들이 지은 도시 한옥을 분양하고자 했던 광고가 종종 발견된다. 매가(賣 家), 혹은 방매가(放賣家)라 불리던 이들 광고는 대지의 면적이나 도면 없이 지붕의 형식과 주택의 칸(間)수만 열거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는 한옥의 칸이 가지는 공 간적, 수치적 크기개념의 혼용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칸수를 통해 집의 크기와 형태의 연상할 수 있었던 것이 다. 칸을 중심으로 하는 주택소개 방식은 도시한옥이 지 어지기 이전시대부터 흔히 사용되던 표현법이었 다.<Fig.3>13) 다만, 평(平)이 아닌 칸(間)을 주택의 매매 단위로 함으로 인해 당시 도시한옥을 공급하던 주택경영 회사들은 이를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을 보이 기도 했는데, 즉 경제적 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주어진 대지에 칸의 크기를 줄여 최대한 많은 칸을 넣기도 했 다.14)

    1929년 10월 27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건양사의 분양 광고에는 체부동 163번지, 익선동 33번지의 개발규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15). 광고상에 ‘신축와가(新築瓦家)’라 명시하고 있는 점으로 볼 때, 1929년에 익선동 33번지의 개발이 완료되었음을 알 수 있다.16). 한편, 같은 광고에 등장하고 있는 봉익동 11-13번지에 대한 매매광고17)는 이미 개발이 완료된 봉익동 11번지의 일부 한옥에 대한 언급으로 당시 11번지에 조성된 한옥주거지가 어떠한 규 모의 도시한옥들로 이루어졌었는지를 추정할 수 있는 근 거가 된다.

    3.도시한옥주거지의 형성과정

    3.1.1912년 이후 도성 안 대형필지의 변화

    1912년 지적원도와 1936년 [대경성정도], 2000년 지적 도를 겹쳐보면, 1912년 이전부터 같은 형태로 지속되어 온 필지와 1912년 이후에 변화된 필지의 구분이 가능하 다

    <Tab.2>의 그림은 시기별로 대형필지가 분필되는 상황 을 표현한 것이다. 1912년에서 1936년, 그리고 다시 1912년에서 2000년 사이에 분필된 필지를 표현하여 1936년 전후에 어떠한 필지가 분필되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1912년 하나의 필지였던 것이 1936년을 전후로 분할된 경우를 살펴보면 그 수는 모두 671건에 이른다. 이처럼 분필이 일어난 대형필지의 상당수가 도심보다는 성곽 주변부와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1936년 이후에 성곽 주변부의 대형필지들에 서 이러한 변화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Fig.4>는 시기별 필지의 분할을 나타낸 지도에 한옥 의 분포지도를 겹쳐놓은 것이다. 여기서 사용된 분포지 도는 2006년 조사된 자료를18) 바탕으로 하였다.

    이를 기준으로 분필된 필지 중에서 한옥이 존재하고 있는 필지들을 골라내면, 그 수는 1912년 지적도 기준으 로 240필지이다. 즉 1936년을 전후로 하여 240개의 필지 가 2개 이상의 필지로 분할, 그 위에 한옥이 놓이게 된 것이다.19) 한옥의 분포가 확인되는 240개의 필지의 대부 분은 종로 이북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이는 종로를 기 준으로 남쪽 지역의 필지들이 대부분 한옥이 아닌 다른 양식의 건물들, 예컨대 1920년대 이후 들어서기 시작한 일인 거주지 등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전 술했듯이, 필지의 분할은 도성주변과 구릉지를 중심으로 방위를 가리지 않고 고르게 나타나고 있으나, 일제강점 기 종로와 청계천을 중심으로 조선인 주거지와 일인주거 지가 북촌과 남촌으로 갈린 것이 한옥 분포지도를 겹쳐 보면 그대로 확인되는 양상이다.

    3.2.도시한옥주거지의 구분

    1912년 이후 도성 안 대형필지 중 한옥의 분포가 확 인되는 지역은 주로 청계천을 기준으로 북쪽 지역이다. 본 연구에서는 연구의 대상을 북촌, 서촌, 종로 1,2,3,4가 동, 혜화동20) 4개 지역으로 구분 하여 지역별로 한옥주 거지 구조의 물리적 특징을 조사하였다.

    서촌 지역은 북쪽으로는 북악산, 서쪽에는 인왕산이 있어 대체로, 북서쪽이 높은 경사지에 놓여 있다. 한성부 시대부터 주로 서리 등 하급 관리 등이 살던 전통적인 도심부 주거지로 대부분 소형필지들로 구성되어있다. 21) 경복궁의 서쪽에 위치한 서촌 지역에는 인왕산 기슭에 1917년까지는 밭이었던 미개발지와 궁에 인접하여 여러 궁가들과 관청, 세도가의 집터와 같은 중 대형 필지들이 분할되어 새로운 도시한옥 주거지로 개발되었다.

    <Fig.5>은 광화문로와 종묘 사이에 위치한 종로 1,2,3,4가 지역 모습을 촬영한 항공사진이다. 1928년 당시 의 모습에서도 확연하게 나타나듯이 도심부는 이미 기존 주택으로 대부분 채워져 있던 상태였다. 따라서 기존 주 거지를 유지하는 한편으로, 대형 한옥이 위치하고 있던 필지 혹은 공유지(이왕가 소유지) 중, 소규모 필지에 새 로운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도심부 한옥 주거지의 개발 규모가 크지 않은 이유는 이런 연유이다.

    도심부에 조성된 한옥주거지들은 대부분 불규칙한 패 턴으로 필지가 분할되면서 가지형의 골목과 T자형의 교 차로를 형성하는 특징을 보인다.

    반면 북촌지역과 혜화 지역과 같이 대형 필지에 조성 된 도시한옥 주거지의 경우 임야(山)나 밭(田)으로 분류 되던 도성 내 구릉지나 성곽 주변부의 대형필지들이 지 목을 대지(垈)로 변경하면서 개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삼 청동 35번지가 대표적인 예인데, 원래 13,000평 규모의 임야(山)였던 것을 토목공사를 통해 대지(垈)로 지목을 바꾸고 축대를 쌓아 도시한옥주거지로 만들었다.22) 이처 럼 새로 조성된 택지 위에 격자형 가구를 기본으로 건설 됨에 따라 주거지 내의 가로체계는 기존 도시조직에서 볼 수 없었던 교차로를 형성하고 있다.

    4.도시한옥 성립 조건에 따른 도시조직의 특성

    4.1.도시한옥주거지의 길과 필지의 물리적 특징

    앞서 살펴본 한옥주거지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각 지 역의 주거지 단위의 면적 분포와 가로 폭을 조사하였다.

    필지의 분할 시기는 서울의 경계가 확장되고 새로운 시가지 조성사업이 시행되는 1936년을 전후로 구분하였 다. 1936년 이전 분필된 필지의 경우 1917년과 1929년에 발행된 [경성부 토지명세서]를 통해 좀 더 세밀하게 필 지 분할년도의 범위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였으며, 그 외에도 당시 신문에 실린 한옥분양광고를 통해 한옥주거 지의 형성시기를 유추하였다. 그리고 각 지역 한옥의 건 립 년대는 서울시 한옥의 분포 현황23)을 참고 하였다.

    한옥 주거의 필지 면적 분포는 현재 한옥이 남아 있 는 필지를 대상으로 하였다. 가로의 위계에 따라 폭원이 달라지는 경우는 각각의 도로 폭원을 따로 정리 하였으 며, 직선형의 가로에서 폭원이 일정치 않은 경우는 평균 값을 도로의 폭원으로 정하였다.

    서촌 지역의 비슷한 규모의 두 필지 옥인동 2번지와 통의동 91번지를 비교해 보면 개발 시기에 따른 주거지 의의 특징을 잘 알 수 있다.<Fig.6> 통의동 91번지는 필지의 평균면적은 48m2이며 골목의 폭도 1.5~2.8m전후 로 매우 좁다. 서촌지역의 1936년 이전에 개발된 한옥주 거지는 대부분 통의동 91번지와 비슷한 상황이다.

    반면. 1936년 이후 개발된 옥인동 2번지는 내부 골목 길의 폭은 3.5m 이며 분할된 필지의 평균은 115.03m2이 다. 두 필지만을 놓고 비교한다면 2배 이상 한옥주거지 의 필지 면적이 증가한 샘이다. 또한 옥인동 2번지는 서 촌지역의 다른 필지들과는 달리, 골목의 폭원이 넓고 일 정할 뿐만 아니라, 서촌지역에서 보기 힘든 가각전제가 되어있다.

    혜화동 지역에서도 가각전제, 분할 필지의 크기, 가로 의 체계와 폭을 통해서 대략적인 형성 시기를 짐작 할 수 있다.

    1936년 이전에 형성된 숭1(명륜동1가)25번지에서는 평균 75.4m2의 소규모 필지가 주를 이룬다. 반면, 혜화지 역의 1936년 이후부터 1963년 사이에 형성된 숭1(명륜동 1가)34번지 일대의 필지는 183.1m2로 숭1(명륜동1가)25번 지의 한옥주거지 보다 2배 이상 넓으며, 필지의 모서리 는 모두 가각전제가 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은 종로 1,2,3,4가 지역에서도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다만, 북촌 지역에서는 골목의 폭원이 일정해 지고 증가하는 현상은 볼 수 있었으나, 예외적으로 1936 년 전후로 필지의 면적 변화가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되 었다. 24)7

    북촌 서촌 및 종로 1,2,3,4가 지 역에서는 한 필 지 내에서도 1936년 이전과 이후 건축된 한 옥이 동시에 분 포한 필지도 확 인할 수 있는데 이는 도심부 한 옥 주거지가 어 느 한 시기에 일시에 개발된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개발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각 지역 마다 입지 조건과 필지의 개발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면적 분포만으로 정확한 필지의 증가폭을 가름하기는 어렵지만 전체 지역 면적 분포를 분석한 결 과 1936년 이전시기에 분할 필지의 면적은 75m2~100m2 에 가장 많은 필지가 분포하는 반면 1936년 이후는 100 m2~125m2에 가장 많은 필지가 분포함을 확인하였 다.<Tab.3,4> 또한 1936년 이전과 이후의 필지의 평균 분할 면적은 1936년 이전이 104.40m2, 이후는 131.54m2로 약 30%가량 증가했다.26)

    1936년 이전에 개발된 필지의 가로 폭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m~3m범위에서 분포한다. 1936년 이후 분할 필지의 가로 폭은 3m~7m 폭으로 계획되었으며 1936년 이전보다 2배 가까이 넓어 졌다. 또 1936년 이후 분할 필지의 가로에는 대부분 자동차의 통행을 위한 조 치인 가각전제가 되어 있다.27) .

    4.2.필지와 길의 관계에 따른 유형 구분

    도시한옥 주거지는 틀로서의 가로(진입로)의 형태에 의해 가지형과 격자형으로 크게 구분된다. 그리고 통로 로서의 가로(접근로)에 의해 주거지 구조의 구체적인 형 태가 완성된다. 본 논문에서는 대형필지 도시한옥 주거 지에서 통로로서의 가로를 주거지의 구조(가지형, 격자 형), 길과 필지의 관계, 물리적 조건(가로의 폭)28)을 기 준으로 트인 골목, 뚫린 골목으로 분류하였다. <Tab.5> 막힌 골목과 뚫린 골목은 가로의 연속과 단절이라는 가 로의 공간적 성격, 자동차의 출입 가능여부, 골목의 깊이 등을 고려한 구분이다.

    주거지구조는 이 틀로서의 가로와 통로로서의 가로의 조합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도시한옥주거 지구조는 가로의 형태와 공간에 대한 두 가지의 상대 개 념에 의해 해석되게 된다.29)

    본 논문에서는 하나의 필지를 소규모 한옥들이 집합할 수 있는 필지단위로 분할하여 조성하는 도시한옥주거지 의 개발방식을 두 쌍의 상대개념의 관계와 필지의 개발 방식에 따라 다음의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하였다.30)

    (1)제1유형

    제1유형은 가장 최소단위를 이루는 한옥 주거지유형으 로 막힌 골목을 중심으로 양편에 필지들이 배치되는 형 식이다. 제1 유형의 총 11개 사례 중에서 옥인동 2번지 와 충신동 187번지는 1936년 이후 개발된 한옥 주거지이 며 나머지 9필지들은 1936년 이전부터 개발이 이루어진 한옥주거지이다. 옥인동 2번지를 제외한 나머지 사례들 의 골목 폭은 2m 이하로 매우 좁으며, 평균 분할된 필 지 면적은 104.9m2의 소규모 주거지로로 개발되었다. 제1 유형은 보통 500m2이상 1000m2이하의 소규모 개발 필지 에서 주로 나타나며. 필지의 깊이 방향으로는 3열~4열의 한옥주거지가 배치된다. 막힌 골목의 방향은 필지의 장 변 방향을 따라 형성되며 남북방향과 동서방향이 고르게 나타난다. 이 유형은 개발의 규모가 커지면서 약간씩 변 형이 되기도 하는데 3열~4열 깊이의 필지 열이 5~6열로 깊어지거나 (인사동 154번지) 막힌 골목과 양편의 필지 열이 중첩되어 배치되는(충신동 187번지) 모습을 볼 수 있다.<Fig.11>

    (2)제2유형

    제2유형은 진입로인 필지 중앙의 골목길을 중심으로31) 필지의 조건에 따라 한쪽 면에 혹은 양면에 막힌 골목길 을 가지처럼 덧붙이는 형태이다. 제 2유형과 유사한 주 거지 구조는 1912년 당시의 도심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데 이는 전근대적 개념하의 도시에 이미 하나의 선험적 인 유형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주거지 구조를 당시의 주 택 개발에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Fig.8>32) 제2유형의 필지 내부의 중심 골목길은 대게 물길과 나란히 난 접근 로와 연결되며 다른 곳에서 외부 가로와 만나지 않는 경 향이 있다. 막힌 골목길은 보통 2~3열의 한옥 주거지의 진입로로 쓰인다. 막힌 골목에 면한 주거지는 보통 그렇 지 않은 쪽의 주거 열보다 작은 규모의 주거지들로 구성 되며. 막힌 골목의 폭도 1.5m 전후로 매우 좁다. <Fig.11> 총20개 의 필지에서 제 2유형을 확인 할 수 있다. 이중 관훈동 27번지, 통동 31번지, 안국동 17번지, 계동 101번지 등은 남아 있는 한옥의 건축 년대와 한옥 분양 광고 등을 통해 1920년대 후반부터 1936년 이전에 개발된 한옥 주거지로 추정된다. 이 필지들을 제외한 나 머지 필지들은 대부분 1936년을 전후로 개발된 한옥주거 지이다. 제 2유형에서 1936년 이전에 분할된 평균 필지 면적은 101.7m2, 1936년 이후 형성된 한옥 주거지의 평 균 면적은 129.6m2로 분할 필지의 면적이 증가 한 것을 알 수 있다. 골목길의 폭도 1936년 이전 시기에 개발된 한옥 주거지는 2.8~1.5m인 반면 1936년 이후 개발된 골 목길의 폭은 4.3~2.4m 분포로 1936년을 경계로 한옥주거 지의 물리적 조건의 변화를 확인 할 수 있다. 이 유형 은 주로 서촌지역의 한옥주거지에 나타나며, 북촌, 종로 1,2,3,4가동 지역에 서도 볼 수 있다.33) 필지 면적은 최소 762m2(효자동 57번지)에서 최대 4,234m2(가회동 33-1번 지)까지 매우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제2유형이 다양한 필지의 규모와 크기에 적응 할 수 있었던 것은 한 필지 내에서도 주거지 단위의 크기를 조절함으로써 가능했다. 주거 단위 필지의 크기가 다양하다는 것은 근대적인 생 산방식이 성립되기 이전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또한 제 2유형은 골목의 폭과 주거지 단위 필지가 소규모이며 골 목의 폭이 좁고 폭원 또한 일정치 않아 한옥주거지의 초 기 개발 방식임을 드러낸다.

    (3)제3유형

    세 번째 유형은 직선 일자의 골목길을 중심으로 양쪽 에 필지 열이 배치되는 형태를 기본으로 하며 필지열-가 로-필지열이 반복 배치되어 막다른 골목이 생기지 않는 방식으로 주거지가 형성된다. 북촌, 혜화지역, 종로 1,2,3,4가 지역에서 볼 수 있다. 직선의 골목길은 주로 남 북 방향으로 형성되지만, 필지의 형태와 규모에 따라 여 러 개의 골목이 동시에 계획되기도 하며 이 길들은 격자 형이나 T자형의 교차로를 형성하게 된다. 필지 내부에서 는 정형한 격자형태의 가로를 형성하고 있지만, 가로의 체계가 인접필지로 연장되지는 못하는데 이것은 기존 주 택으로 대부분 채워져 있는 곳에 입지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진입로가 필지 외부가로와 만나지 않는 제2유형과는 달리 제3유형의 진입로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필지 주변 가로와 관계를 맺으며 통과하는 가로를 형성한다. 도시 한옥주거지의 필지면적 분포는 앞선 유형보다 정형화 되 며, 골목의 폭원 또한 2m 전후의 크기로 조금 넓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제3유형은 2,000m2이상의 대형필지에서 확인되며 가장 면적이 큰 사례는 삼청동 35번지로 59,437m2에 이른다. <Fig.12> 제 3유형은 1936년 전후로 집중적으로 형성된 한옥 주거지이며 대부분 한 필지 내에 1930년대 초반부 터 1940년대에 지어진 한옥이 동시에 존재 한다. 제 3유 형에서도 1936년을 경계로 필지면적의 평균을 구해보면, 1936년 이전은 111.74m2, 이후는 128.35m2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면적이 증가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골목 의 폭이 3m 전후인 익선동 166번지, 안국동 175번지, 가 회동 26번지의 경우 골목을 따라 5열~11열 깊이의 주거 가 배치되면서 좁고 긴 골목을 형성34)한다. 반면 삼청동 35번지에서는 4열~5열 깊이이며 골목의 폭도 3.5~7m로 넓어 배치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4)제4유형

    네 번째 유형은 격자형의 정리된 가로패턴이 생기는 유형으로 필지의 개발규모가 크며 도성 내 구릉지나 성 곽과 인접한 주변부 대형필지들의 개발에 주로 나타난다.

    이 유형은 주로 혜화동과 충신, 효제동에서 볼 수 있 으며, 개발 시기는 1936년 후반부터 1960년대 까지 이른 다. 골목의 폭은 4m~7m로 매우 넓으며 자동차의 통행을 위한 가각전제가 되어 있다. 그러나 혜화동 지역 한옥 주거지의 평균 면적은 183.17m2로 매우 넓은 고급 주택 단지로 개발 되었지만, 효제, 충신동 지역은 분할 필지의 평균 면적이 79.4m2로 소규모 한옥 주거지로 개발되었다.

    1912년 지적상의 필지 형태를 유지하면서 주변의 가지 형 가로 체계를 연장한 도심부 한옥주거지들과는 달리 혜화동과 효제동 지역의 격자형 가로는 기존필지 경계와 는 관계없이 형성되었다.

    한편 비슷한 시기 토지구획 정리사업으로 조성된 돈암 지구35)는 기존의 물길과 지형보다 격자형의 가로체계를 우선시하여 주거지를 계획하였다. 그러나 혜화동 지역의 격자형 가로체계는 1912년 당시의 자연 지형인 물길과 주요 가로를 따라 형성되었다. 때문에 혜화동 지역의 가 구 블록은 형태가 일정하지 않으며, T자형으로 도로가 만나는 곳도 생겨나게 되었다. <Fig.12>

    이러한 혜화동 한옥 주거지구조 특징은 이 지역의 입 지와 개발 방식에서 연유한다. 도심부와 달리 뚜렷한 가 로 체계가 없는 지역에서의 개발이기 때문에 격자형의 주거지 구조가 선택되었지만, 각 필지의 소유주가 달랐 기 때문에 물길이나 자연 지형을 크게 변형해야 하는 대 규모 토목 공사가 이루 어지기는 어려웠다. 혜 화지역에서 개발이 필지 단위로 소유주가 달랐다 는 것은 일부 필지에서 (숭1田31 번지, 숭1田 34 번지 등) 2008년 지 적도의 가구내부의 주거 지의 필지 분할선이 1912년대지 경계를 따라 서 나 있는 모습을 통해 서도 알 수 있다.36) <Fig9>

    5.결론

    본 연구는 20세기 서울 도심부 도시조직의 변동 속에 서 새로운 주택 유형으로서의 도시한옥주거지 형성과정 과 그것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1912년 이후 도성 안에서 일어난 대형필지의 분필과정 속에서 형성된 한옥주거지를 대상으로 주거지의 형성과정과 대 응방식에 대해 고찰하였다. 도시한옥주거지의 형성과정에 서 나타난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20세기 도시한옥주거지의 형성은 1920년대 이 후 급격하게 늘어난 인구의 증가와 이에 따른 서울 경계 의 확장으로 촉발되었다. 도성 밖에 새로운 주거지가 형 성되는 한편으로 도성 안에 형성되어 있던 기존의 주거 지 안에서도 도시조직의 변화가 일어나 공유지나 세도가 들의 주택지, 성곽 주변의 구릉지 등 남아있던 대형 필 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주거지가 조성되었고, 여기에 새로운 주거유형인 도시한옥이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도 시한옥주거지는 규격화된 자재사용, 표준화된 평면, 주택 경영회사에 의해 집단적으로 개발되어 불특정 다수에게 분양되는 방식 등 기존의 전통한옥 주거지의 조성방식과 는 다른 근대적 주거생산양식을 도입하여 형성되었다.

    둘째, 1912년 이후 도성 안 대형필지의 변화는 도심 부 보다 성곽 주변부와 구릉지에서 활발하게 일어났다.101112

    그 중에서도 한옥주거지의 분포를 살펴보면, 종로 이북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다.

    셋째, 1936년 이전에 분할된 필지의 평균 면적은 104.04m2정도로 규모가 작으며 골목길의 폭원도 1.5m 내 외로 매우 좁다. 그러나 늦은 시기에 분화된 필지일수록 분할된 필지의 규모가 크며(평균 면적 131.54m2) 골목길 도 3m~7m로 넓고 곧다.

    마지막으로 도시한옥 주거지의 구조를 가로의 형태 (가지형, 격자형), 가로의 공간적 성격이라는 상대개념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각 유형의 입지, 개발 방식, 물리적 특징을 분석하였다. 4개의 유형중 제1,2,3 유형은 주로 도심부 한옥주거지를 형성하며, 이중 제1, 제2 유형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20년대 후반부터 1940 년대에 조성된 한옥 주거지에서 확인된다. 제3유형은 1936년을 전후로 개발된 필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며, 도심부 특히 북촌지역의 한옥주거지를 형성하는 유형이 다. 마지막 제 4유형은 193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이르는 시기의 한옥주거지에 나타나며, 주로 성곽과 인 접한 낮은 구릉지에서 볼 수 있다. 각 유형의 물리적 특 징은 아래와 같다. 제1유형은 가장 최소단위를 이루는 한옥 주거지유형으로 막힌 골목을 중심으로 양편에 필지 들이 배치되는 형식이다. 제2유형은 진입로인 중앙의 막 힌 골목길을 중심으로 필지의 조건에 따라 한쪽 면에 혹 은 양면에 막힌 골목길을 가지처럼 덧붙이는 형태이다. 제3유형은 직선 일자의 골목길을 중심으로 양쪽에 필지 열이 배치되는 형태이며 막다른 골목을 두지 않는 방식 으로 주거지 구조를 형성한다. 제4유형은 격자형주거지 구조로 보이지만, 토지구획 정리 사업으로 조성된 필지 와 달리 소유관계에 따라 필지단위로 개발이 진행되었으 며, 개발 이전의 도시 조직맥락을 존중하면서 형성된 도 시한옥 주거지 유형이다.6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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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nges of lots due to land readjustment project 區劃整理前後ノ圖(928, 京城都市計劃調査書,)

    JAH-23-65_F2.gif

    Urban-Hanok advertisement (1929. 10. 27, Chosun 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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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using sales advertisement (1902. 4. 25, Hwangsung Shin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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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stribution of Urban-Hanok and Subdivision of L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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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ngno 1,2,3,4-ga (1928, 京城都市計劃調査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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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Ogin-dong and 91, Tongui-dong (The Comparison of cadasters in 1912 and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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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Myeongnyun-dong and 34, Myeongnyun-dong (The Comparison of cadasters in 1912 and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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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type of alleys and lot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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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chon (Cadastral map of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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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type of alleys and lot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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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relationship between lots and owners in Hyehwa-dong (The Comparison of cadasters in 1912 and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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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building year by regional groups

    Table

    The areas where Korean household have increased more than 100 during 1927-1938 (1927,1938, 京城商業會議 所, [統計年報])

    subdivision of lots (1912~1936~2000)

    The areal distribution of urban hanok,, 1915~1936

    The areal distribution of urban hanok,, 1937~1963

    Street pattern on urban hanok residence

    The areal distribution by regional groups

    Footnote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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