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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598-1142(Print)
ISSN : 2383-9066(Online)
Journal of architectural history Vol.23 No.2 pp.39-52
DOI : https://doi.org/10.7738/JAH.2014.23.2.039

Study on the Installation process and Spatial characteristics of Modern Meteorological Observatory Construction, Centering on the Busan Meteorological Observatory

Young-boon Kim, Ki-soo Kim*
Corresponding Author : kiss2000@dau.ac.kr
December 14, 2013 February 28, 2014 March 11, 2014

Abstract

This study researched changes over time regarding the location and spatial characteristics of modern meteorological stations, and examined the characteristics of modern meteorological station construction using the location and spatial characteristics of the Busan Meteorological Station. First, meteorological stations were located in port areas, and then moved to high altitude areas for stable meteorological observation beginning in the transition phase. Here, office buildings and residences were joined, but were separated due to the increase in functions from the stabilization phase. Second, as for spatial composition, in the establishment phase, existing buildings were used, and the scale of newly constructed buildings differed according to time and area. However, after the Japan-Korea Annexation, with increased funds and increased observation equipment, floor plans subdivided by function started to appear. In the stabilization phase, space was subdivided with redundancy due to the increase in functions. In the wartime transition phase, ‘—’ shaped floor plans with redundancy became the norm. Meanwhile, the location of the maritime customs where the first meteorological observations took place after the opening of the ports, and the location and construction of the Busan Temporary Observatory built in the meteorological observation transition phase (1905) were investigated. Also, through the investigation of the Busan Meteorological Observatory, newly constructed before 1934, the location and spatial characteristics of modern era meteorological observatories were studied.


釜山測候所를 중심으로 본 근대기 측후소 건축의 설치과정과 공간적 특성에 관한 고찰

김 영분, 김 기수*
동아대학교 건축학과 박사과정
동아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초록


    Dong-A University

    1.서 론

    근대기 조선에는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 서양의 근대 문물들이 급속히 유입되었고 이를 위한 많은 시설들이 새롭게 건축되었다. 조선초기의 기상관측은 전통적 재이 (災異)로 이상기상 현상의 기록 하는 것에 그쳤으나, 조 선후기에는 측우기 및 풍기를 제작하여 서운관과 객사의 뜰에서 강우량 및 풍향의 관측을 시작하였다.1) 한편 근 대기에 본격적으로 정량적, 과학적 자료를 측정 할 수 있는 측기의 등장으로 기상예보가 가능하게 되었고 이에 한반도 주변의 경쟁이 치열하였던 20세기 초 일본을 비 롯한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한반도 각지에 관 측기관으로 관측소 및 측후소를 설치하고 기상 관측망을 확보하였다. 따라서 근대기 측후소 건축을 통해 새로운 관측기의 도입에 따라 나타나는 공간적 특성에 대한 이 해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본 연구에 선행하여 부산측후소의 건축적 특성과 근대 기 측후소 건축의 변천 과정에 관하여 연구를 진행한바 있었으나 근대기 측후소 건축의 입지 및 공간적 특성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2) 따라서 본 연 구에서는 근대기 한반도에 건립되었던 관측소 및 측후소 건축의 성립과 변천 과정을 토대로 각 시기별 측후소 건 축의 설치과정과 건축공간의 특성을 밝히고자 한다. 또 한 현존하고 있는 부산임시관측소(1905년) 및 부산측후 소(1934년) 건축을 통하여 이러한 근대기 측후소건축의 설치과정과 공간적 특성이 갖는 변천과정을 고찰하는 것 에 본 연구의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먼저 근대기 측후소 관련 주요 문헌 자료는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일제시기도면컬렉션」을 분석하 였으며 부산측후소 관련 문헌 자료는 부산지방기상청에 서 소장한 1904~1934년「부산측후소의 이전관계자료」, 1934~1948년의「도면자료」, 1922~1944년의『朝鮮と建 築』, 1934년의 『新釜山大觀』, 1894~1945년의 『朝鮮 總督府官報』등을 수집, 정리하고 분석을 실시하였다.

    2.근대기 測候所건축의 성립과 변화3)

    2.1.기상관측 업무 성립기( ~1910)

    1876년 병자수호조약 체결 결과 부산, 인천, 원산 등 3 개의 항구를 개항한 이후 1884년 러시아는 해관과 자국 의 공관에서, 일본은 우편국에서 첫 기상관측을 시행하 였다. 이는 주변국의 이익을 위해 간이기상관측 장비를 통해서 일부지역에서 한시적으로 시행한 것으로 근대적 인 관측은 아니었다.4)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의 발발로 한반도의 기상관 측은 군사 작전상 대단히 중요한 자료로 활용됨에 따라 일본은 중앙기상대 임시관측소(●)를 1904년 3월 5일(일 본국 칙령 제60호) 인천, 부산, 목포, 용암포, 원산, 1905 년 5월 11일 성진에 설치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우리나라에서 외교적, 군사적 우위를 점하게 된 일본은 1906년 1월 1일부터 기상관측의 범위를 넓혀 일본군 소속 육군병원과 분원에서도 실시하였으며, 1906 년 2월 1일에는 진남포에도 임시관측소를 설치하여 전국 적인 관측망을 구축하였다.

    1906년 2월 통감부 설치를 계기로 1907년 2월 1일(칙 령 제7호)에 농상공부 소관의 측후소관제가 제정 공포되 어 기존 임시관측소의 일반기상관측업무를 흡수, 통합하 고 평양, 대구, 경성에 측후지소를 설치하였다. 같은 해 3월 28일(일본국 칙령 제70호)에는 임시관측소 관제를 폐지하고 통감부관측소 체제로 개편하였다가 1908년 4월 1일(칙령 제18호) 농상공부 농무국의 관측소 관제 공포 에 따라 인천관측소 산하 8개소 부산, 목포, 용암포, 원 산, 성진, 경성, 대구, 평양에 측후소를 설립하였다. 측후 소는 1908년 7월 11일(농상공부고시 제9호) 일반기상관 측과 함께 일기예보 및 폭풍경보의 업무를 시행하여 근 대적 관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5) 이후, 조선에서 통치의 틀을 잡으며 측후소 관제를 정리하였던 일본은 1910년 한일병합직전까지 위탁관측소 24개를 증설하여 기상관측 시설규모를 전국적으로 확대하였다. <Tab.1-①>

    2.2.기상관측 업무 변환기(1910~1920)

    1910년 8월 일본의 국권침탈로 10월 1일(조선총독부 고시 제4호)부터 대한제국의 기상업무는 조선총독부관측 소에 귀속되어 전시 군사업무로부터 평상업무인 산업, 교통, 경제로 업무가 전환되었다. 이후 1911년 10월 강 릉, 1914년 5월에는 웅기, 중강진, 1918년 5월 15일 전 주, 초산측후소를 신설하였으며, 1915년과 1926년 2년간 간이기상관측, 해양관측 등 보조 기상관측을 확장하여 182개소에 위탁 관측장을 설치하였다.6) 이처럼 전시기 재정형편으로 중지하고 있었던 측후소는 신설업무를 시 행하는 동시에 설비를 쇄신하였으며 관측된 기상자료는 한반도 통치수단으로 사용하였다.7) <Tab.1-②>

    2.3.기상관측 업무 안정기(1920~1939)

    제2대 관측소장이었던 히라다(平田)는 기상업무의 안 정화가 이루어졌다고 판단하여 1920년부터 중앙집중체제 에서 지방분산체제로 전환하여 측후소를 지방예산으로 운영하도록 주도 하였다. 이에 따라 측후소는 제주에만 신설(1923년)되었으며 위탁관측장은 1918년부터 1920년 까지 25소가 설치되었으나 1921년부터 1925년까지는 증 감이 없었다. 특히 1925년 4월에는 지방측후소가 각 도 로 이관되어 지방분산기로 전환되었고 이에 따라 1931년 항공기 운항에 필요한 상층기류 관측을 위해 울산측후소 가 설치된 것 외 1926년부터 1931년까지 6년간 위탁관 측장만 40개소가 증설되었다. <Tab.1-③>1

    한편, 1931년 9월 18일 만주사변 발발을 기점으로 1932년부터 1936년까지 연간 약 40개소, 총 112개소의 위탁 관측장을 신설하는 등 높은 증가치를 보였다. 또한, 1937년에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11월 1일(조선총독부령 제169호) 이를 보조하기 위하여 서해안 부근에 신막지소 와 8개 출장소(★)를 신설하는 등 1936년부터 1937년까 지 1년간 67개소의 위탁관측장(우량관측66, 등대1)을 설 치하였다.

    2.4.기상관측업무의 전시체제 변환기(1939~1945)

    제2차 세계대전을 대비하여 일본은 기상업무를 다시 전시체제로 전환하여 전국의 측후소의 기상관측업무를 중앙정부로 이관하게 된다. 이에 따라 1939년 6월 27일 (칙령 제418호), 30일(조선총독부령 제93호) 조선총독부 기상대로 개칭하고 관제를 제정하여 산하에 부속측후소 16개소, 출장소 9개소, 측후소 부속출장소 12개소를 두었 다.8) <Tab.1-④>

    이후 전시업무를 보조하기 위하여 1940년 9월 30일(조 선총독부령 제208호) 진주, 웅기, 장전 1942년 2월 9일 (부령 제31호) 여수, 세포, 1943년 3월 2일(조선총독부령 제36호) 포항, 1944년 혜산측후소가 동해안 일대에 설치 되었다. 이처럼 1945년 해방 당시까지 조선총독부기상대 산하에는 측후소 24소, 항공기출장소 19소, 우량관측소 590여소로 항공기 운항을 위한 시설이 운영되었다. <Tab.1-⑤>

    2.5.관측기 도입에 따른 測候所의 공간변화9)

    개항이후 간이관측기를 사용하여 해관, 공관, 우편국에 서 일시적으로 기압, 기온, 바람, 강수량의 관측을 실시 하였으나 임시관측소 설치이후 각 지역의 관측기 및 관 측공간을 통일하여 정량적, 과학적 기상자료를 축적하였 다.

    기온, 습도, 강수량, 온도, 증발, 일사, 적설은 실외 청 사의 남쪽에 최소 장애물 높이 2배 이상 떨어져 독립공 간으로 구성된 노장에서 관측하였다.10) 관측기는 1904년 에 간이기, 1912년부터 소형자기기를 사용하다가, 1918년 을 전후로 대형자기기를 도입하면서 노장 및 측기점검, 보관, 수리를 위한 기기실의 면적이 증가하였다.

    바람은 바람에 노출되도록 지상 10m 높이의 옥상(풍 력대)에, 일조는 그늘지지 않도록 노장 1~1.5m 높이 또 는 옥상에서 관측을 실시하였다.11) 바람 관측기는 1904 년 임시관측소에서만 간이기를 사용하다가 1915년, 1916 년에 걸쳐 자기풍신기를 도입하면서 모든 측후소에 풍력 대를 설치하였다. 이후 1925년 도입된 일조계를 옥상(풍 력대)에 설치하는 경우 하중증가로 구조변화가 필요하였 다. 또한 1933년 새로운 측기의 도입으로 실내에서 바람 관측이 가능해졌으며 풍력계실이 설치되었다.

    기압의 경우는 온도, 방위, 풍향(진동)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실내에서 관측하였다.12) 1912년에 소형자기기를 사용하여 기기실에서 관측하다가, 1918년 대형자기기를 도입하면서 청우계실이 설치되었다. 지진은 온도, 습도, 인위적인 진동, 지반 및 지질의 경질에 영향을 받지 않 도록 실내에서 관측하였으며, 1906년 부산측후소에서의 관측을 시작으로 1928년부터 전국적인 망을 구성하여 내 진내화를 가진 지진계실을 설치하였다. 한편 시정, 구름, 적설, 상층기류 관측으로 측기보관실 및 가스실이 설치 되었으며, 풍력대상이 증가함에 따라 관측실을 별도로 구성하였다.

    3.근대기 측후소의 설치과정과 공간적 특성

    3.1.기상관측 업무 성립기의 觀測所․測候所건축

    근대기 한반도에 진출하였던 서구열강들은 임시 기상 관측시설을 설치하였다. 특히 1904년 3월 5일(칙령 제60 호) 일본은 러·일 전쟁을 위해 전략적 요충지에 임시관 측소를 설치하였지만 이후 정밀한 관측을 위해 임시관측 소 및 측후소를 이전하였다. 최초로 개항장 인근에 있었 던 임시관측소 중 인천은 중정(中町) 21번지(番地) 2호, 부산은 서정(西町) 3정목(丁目) 311번지(番地), 원산은 운산동정 2정목(丁目)의 일본인거류지 내에 민가를 차용 하였으며 목포는 민가를 차용하였다.13) 이후 1905년 인 천관측소는 응봉현으로, 부산은 1905년 보수정 2정목(丁 目) 40번지(番地), 목포는 1906년 고지대로 건물을 이전 신축하여 사무설비를 쇄신하였다.14)

    1905년 신축된 인천관측소는 고지대에 등고선을 따라 정비된 대지 북측에 청사와 관사가 입지하였으며 청사 전면에 풍력대를 두었다. 관측소는 목조 2층의 청사를 우측에 단층 관사를 좌측에 두고 남동향으로 배치하였다. 청사는 전면의 현관 입구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이다가 1910년 지하에 지진계실을 신설하면서 서측 부분을 증축 하였다. 증축 이후 도면에 의하면 청사는 1층 전면 중앙 에 현관을 두고 안쪽에 계단실과 ㅓ자 형의 복도를 배치 하여 기계실, 사무실, 관측실, 숙직실, 암실을 두고, 2층 에는 소장실, 비서실 연구실, 창고가 있으며, 중앙현관 포치상부에 풍력계실 및 풍력대를 설치하였으며 별동의 관사는 식당, 방 2로 구성되어 사무영역과 숙직영역을 분리하였다. 한편, 러·일 전쟁 이후인 1906년 신축된 목 포관측소는 양식목조 1층으로 설치되었다.23

    1907년 설치된 평양측후소의 입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청사는 한옥 건물을 개조하여 사용하였다. 청사의 평면 구성은 현관 가까이에 사무실을 두고 안쪽으로 변소, 욕 실, 다다미실, 온돌실, 취사장, 기계실, 창고 2실을 두었 으며 이후 기계실을 증축하고 공간을 변경하여 숙직실, 소사실을 추가하여 사무와 숙직영역을 혼재하였다.4

    이와 같이 초기 임시관측소 및 측후소는 개항장 인근 에 입지하고 민가 등의 건물을 차용하여 일부 내부를 개 조하여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신축 임시관측소 및 측후소의 경우 입지 및 위치의 중요성 및 설치시기에 따라 규모 및 평면구성을 달리한 것으로 사료된다. <Tab.3-①>

    3.2.기상관측 업무 변환기의 測候所건축

    1910년 대한제국의 기상관측 업무가 총독부관측소로 귀속되면서 기상자료를 통치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재 정을 확보하여 1916년 1월 1일부터 풍력계 및 풍신기기 를 측후소 6개소(대구, 중강진, 웅기, 성진, 평양, 강릉)에 보급하였다. 기상관측기기의 증가에 따라 대구, 중강진, 웅기, 성진측후소는 이전 신축되었으며 전주, 초산측후소 가 신설되었다.

    이전 신축된 측후소는 안정된 기상관측을 위해 도심지 와 떨어진 고지대에 입지하고 등고선과 도로의 형상에 맞추어 대지를 정비하였다. 한편 청사의 경우 웅기측후 소는 필지의 남서측에 대구, 성진, 전주는 동측, 중강진 은 북서측에 위치하였으며 향도 대지형상에 맞추어 각기 달리 배치되었지만 가급적 도로에 면하여 건물의 전면 (현관) 및 풍력대를 배치하여 측후소 건물이 눈에 띄도 록 하였다.18)5

    1919년 이전 신축된 5개의 측후소는 목조 청사에 좌 측에 관사를 우측에 두고 한 건물로 계획하였다. 1층 전 면에는 현관, 사무실, 기기실 2실, 숙직실, 내부계단을 두 고 후면에 소사실 및 탕비소를 두었으며, 웅기측후소 (1915)를 제외하고 모두 상층부에 목조 풍력대를 설치하 였다.19) 관사 건물은 전면에 독립현관과 취사장을 두고 후면에 다다미실 2실과 온돌1실(또는 다다미실 1실 온돌 2실)을 설치하였으며 정원을 따라 형성된 마루 측면에 욕실과 변소를 두었다. 한편, 성진측후소(1919)는 청사와 관사가 분리되어 설치되었으며 3층에 목조 풍력대를 설 치한 것이 특징이다.20)6<Tab.3-②>

    즉, 이시기 측후소 건축은 안정된 기상관측을 위하여 시가지에서 벗어나 비교적 고지대에 입지하였으며 등고 선을 따라 정비된 대지의 도로에 면해 위치해 청사가 위 치하였다. 평면계획은 각각의 현관을 둔 단층 목조 청사 와 관사가 'ㅏ‘형 편복도로 연결된 표준화된 형식이 나타 났다. 청사는 1912년 소형자기기의 도입으로 기록지 분 석을 위한 사무실, 측기검정, 수리, 보관을 위한 기기실 과 기압측정을 위한 기기실을 마련하는 등 내부기능이 세분화 되었으며, 자기풍신기기의 설치로 외부에 목조 풍력대를 설치하였다. <Tab.2-②>

    3.3.기상관측 업무 안정기의 測候所건축

    1918년을 전후로 측후소에 대형자기기가 도입되었으며 1923년 자기기 6종(기압, 기온, 습도, 풍신, 풍력, 일조)을 사용하여 기상관측을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웅기와 경 성측후소에는 자기기실을 증축하였으며 제주측후소가 신 설되었다.21) 또한, 1925년 5월에는 측후소를 조선총독부 소관에서 각 도(道)로 이관하여 도지방비 등의 예산으로 운영하도록 관제를 변화하였으며 경성, 대구, 부산측후소 가 이전 신축되었다.

    당시 신축된 제주측후소는 대지의 고저차에 따라 2개 의 대지로 구분하여 높은 쪽에 청사, 낮은 쪽에 관사가 위치하였으며 모두 정남향으로 입지하였다.22)7

    1922년, 1923년 증축된 웅기와 경성측후소의 도면을 살펴보면 단층 장방형과 2층 원형건물이 조합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평면계획은 장방형건물 지하에는 지진계 실(地震計室), 1층에는 사무실(관측실)을 두었으며 원형 건물의 지하는 계단실 1-2층에는 각각 자기실(自記室)을 옥상에는 관측장비를 설치하였다. 한편 2층 원형건물은 조적조로 바닥은 목조였지만 옥상의 바닥판은 철근콘크 리트를 사용하여 자기기의 무게를 감수하도록 하였다.23) 1923년 신축된 제주측후소 역시 원형건물은 조적조로 1 층 자기관측실, 2층 풍력계중후실, 옥상 관측장을 두었다. 청사로 사용된 장방형 건물은 원형건물과 연결되고 지진 계실 및 작업실이 추가되어 ‘ㄴ’형 중복도 형식으로 양측 에 배치하고 있다.24)8

    기상관측업무가 중앙관제에서 지방으로 이관된 이후인 1932년 신축된 경성측후소 청사는 일부가 2층 벽돌·철근 콘크리트조로 건립되었다. 원형 자기실과 장방형 청사가 결합한 형태로 원형건물 1층에는 무선전시실, 2층에는 자기실 옥상에는 관측장을 두었다. 단층의 청사는 ‘ㄱ’형 의 중복도 형식으로 남측에는 사무실, 현관, 숙직실, 동 측에 응접실, 북측에는 지진계실, 작업실, 가스저장실, 자 기기보존실, 도서실·기계실을 두었다. 한편, 별도의 현관 이 없는 목조 부속가가 연결되어 있으며 변소, 취사실, 소사실, 온돌을 두었다.25) 같은 해 신축된 신의주측후소 청사는 4층 규모의 철근콘크리트조로 건설되었다26). 특 히, 1934년 신축된 부산측후소 청사는 4층 규모의 벽돌· 철근콘크리트조로 선박의 조형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1936년 신축된 대구측후소 청사는 5층 규모의 철근콘크 리트조로 비행기의 쌍엽기를 모방한 사각형과 원형이 결 합한 형태로 독특한 조형을 갖고 있다. 특히 대구측후소 는 1, 2층은 ‘l'형 중복도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의 평면형 식을 갖고 있으며 내부에 지진계실을 두었다.27) <Tab.3-③>9

    기상관측 안정기 측후소 건축은 기존 시설의 노후화와 측후소 기능의 다양화로 인해 도심에서 떨어진 고지대로 이전 신축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따라서 신축된 측후소 는 대지의 높은 쪽에 부속가와 결합된 청사를 낮은 쪽에 는 관사를 배치하여 사무와 숙직영역을 분리하였으며 청 사는 남향으로 관사는 등고선의 형상에 따라 입지하였다. 한편, 측후소 기능의 다양화에 따라 평면계획이 더욱 세 분화되었다. 1918년 대형 자기기압계의 도입으로 청우계 실이 설치되었으며, 전국인 지진관측의 확대로 지진계실 설치가 일반화되었고, 관측 대상의 증가에 따른 측기 증 가로 기계실의 면적이 증가하고, 가스실이 설치되어 ‘ㅡ’형 복도를 사이에 두고 각 실을 배치하였다. 또한 1918년 대형자기기의 도입 및 1925년 일조계 설치에 따 른 기계실과 풍력대의 하중증가, 주변 영향을 최소화해 야 하는 지진계실의 특성에 따라 구조를 벽돌·철근콘크 리조로 변경하였다. 특히 서양근대 건축양식이 유행하였 던 이 시기 건립된 측후소는 철근콘크리트구조로, 배, 비 행기 등 다양한 조형적 표현들이 나타났다. <Tab.2-③>

    3.4기상관측업무 전시체제 변환기의 測候所건축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인한 전시체제기 돌입으로 1939년 6월 27일과 30일 측후소관제가 다시 중앙으로 이관되었으며 이에 따라 평양, 강릉, 청진 측후소가 이전 신축되었고, 세포, 여수, 혜산 측후소는 신설되었다. 좁은 대지에 입지하였던 청진측후소를 제외하고 신축된 측후 소는 정남향으로 입지하였다. 특히 강릉과 혜산측후소는 남북장방형, 정방형의 대지 북쪽에 청사를 남쪽에 노장 을 두었으나 이외의 측후소는 동서장방형의 대지에 동쪽 에 청사를 서쪽에 노장을 배치하였다.28)10

    1939년에서 1945년 사이에 이전 신축된 것으로 추정 되는 강릉, 평양측후소는 벽돌·철근콘크리조 평지붕의 중 층건물과 벽돌조 박공지붕의 단층건물이 결합된 청사와 목조 박공지붕의 부속사가 연결되어 있다. 청사 1층은 동서방향의 ‘ㅡ’형 중복도를 기준으로 남측에는 사무실, 관측실, 소장실, 북측에는 기계실, 암실, 청우계실, 지진계 준비실, 지진계실, 계단, 2층은 도서실, 창고, 옥상에는 관측기기를 두었다. 한편 부속사에는 변소, 취사실, 욕실, 소사실, 숙직실2가 있었다. 특히 1941년 신축된 청진측후 소에는 계단아래 암실을 두었으나 2층에는 창고가 없었 으며, 1942년 신축된 여수측후소에는 1층 지진계 준비실, 지진계실, 소장실이 없으나 ‘ㅡ’형 중복도를 기준으로 작 은 가시실을 배치하였다. 한편, 1942년 신설된 세포측후 소는 지진계실 및 준비실이 없었고, 풍력대는 옥상에 철 근콘크리트구조로 설치하였다. 평면계획은 ‘┢’형 복도를 중심으로 청사와 부속가가 결합된 형태였다. 특히 1944 년 신설된 혜산측후소는 다른 측후소와 달리 비교적 큰 규모로 ‘ㅡ’형 복도를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하였다. 목조 풍력대가 설치된 목조 박공지붕의 청사와 목조 부속사를 복도로 연결하고 있는데 이는 전시기 시급성과 물자운반 의 어려움의 영향으로 파악된다.29) <Tab.3-④>

    이상과 같이 전시체제기 측후소 건축의 입지는 체제 안정기와 같이 도심에서 떨어진 고지대에 건립되었으나, 평면은 ‘ㅡ’형 복도를 사이에 두고 각 실을 배치하는 등 표준화된 계획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하지 만 전시체제의 물자부족으로 단층은 목구조로 풍력대가 있는 중층은 벽돌·철근콘크리조로 계획하였다.11

    4.釜山測候所建築의 설치과정과 공간적 특성

    4-1.기상관측 업무 성립기․변환기의 釜山測候所 설치과정과 공간적 특성

    1883년 러시아에 의해 근대화 개혁의 하나로 부산을 비롯한 3개항에 해관이 설치되었다. 부산해관은 과거 개 시무역을 위한 창고와 항만시설인 해변 감시소, 선원숙 소, 감찰관 숙소가 있던 부산항의 중심에 자리 잡았던 곳이었다.30) 1884년 1월 1일부터 부산해관에서는 최초로 기상관측 업무를 시작하였으며 기상관측의 주목적은 원 활한 해관업무를 위해서였다고 한다.12

    한편, 일본과 러시아가 우리나라에서 대립하고 있던 19세기 말 경 일본의 내무성지이국이 동해방면의 기상을 예측하기 위해 1884년 6월부터 우편전신국 구내에 간이 기상관측소를 설치하고 관측업무를 개시하였다. 부산우편 국은 1883년에 신축되어 부산해관 및 관공서가 밀집한 본정해안의 반대편인 주거 밀집지역인 서정에 입지하였 다.33) 한편 러일전쟁이 시작되자 일본은 육해군의 위탁 을 받아 1904년 3월 7일 부산 서정(西町) 3정목(丁目) 311번지(番地)의 민가를 차용하여 최초의 임시기상관측 소를 설치하였다.34)13

    이후, 러일전쟁 중이었던 1905년 4월 28일 임시관측소 는 민가지역에서 벗어나 보수정 3정목(丁目) 61번지(番 地)에 사무설비를 쇄신하여 이전 신축하였다.36) 1912년 에 작성된 지적원도를 살펴보면 [垈(國)274-가지번] 국 유지 646.03평의 대지로 경위도원점(經緯度原點)과 함께 관측소의 위도와 경도를 기록하고 있다. 당시 임시관측 소가 위치하였던 곳은 평지에 동서장방형의 대지였으며 북동측에 출입구를 두고 동측에 청사를 서측에 노장을 두었으며 1921년에는 북측에 지진계실을 별도로 신축하 였다.14

    당시 부산 임시측후소에는 청사건물을 비롯하여 욕실, 창고, 지진계실 총 4동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되 었다. 관사동이 별도로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청사 일체형 또는 외부에 관사가 설치된 것으로 추측된다. 청 사는 목조구조로 1층은 44.5평에 일부 슬레이트 박공지 붕, 2층은 21평에 기와 우진각지붕이었으며 3층에는 1평 규모의 풍력대를 설치하였으며 1921년에는 측후소 중 첫 번째로 단층 10.02평 규모의 지진계실을 건립하였다.39) 보수정의 부산임시측후소는 1935년 4월 8일 일본인(六保 周次郞)에게 매매하고 인근 고지대인 복병산으로 이전하 게 된다.15

    이와 같이 1905년 건립된 부산 임시측후소는 주거 밀 집 지역에서 벗어난 평지에 입지하고 있는데 이후 대부 분의 측후소 건물이 인근고지대에 입지하는 것과는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부산 임시측후소의 건립이 러· 일 전쟁기와 겹쳐있다는 사실과 당시는 주거지역에서 다 소 벗어나 있었다는 지역적 특성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 다. 또한 1910년 이후 신축 측후소 건축에서 나타나는 표준화된 공간과 평면계획과는 달리 부산 임시측후소는 각각의 기능에 의해 별동으로 건물을 건립하였으며, 1921년에는 전국 최초로 지진계실을 신축하는 등 과도기 적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4-2.기상관측 업무 안정기의 釜山測候所설치과 정과 공간적 특성

    1905년 보수정 3정목 61번지에 있던 부산 임시관측소 (이후 부산측후소)는 공간이 협소하고 시설이 노후화하 여 정확한 기상관측이 힘들고 주변지역의 발달로 인하여 기상관측 업무에 장애가 많아 측후소 이전 주장하게 되 었다.41)42)43)

    당시 이전개축에 관한 「부산측후소이전개축비용」3건 의 문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이전계획 1차 문건에서는 1,500평의 대지에 청사는 216 평방미(㎡)의 콘크리트 2층 규모로 건립하고, 풍력대는 4 층에 설치하고, 부속가는 118평방미(㎡)의 벽돌조 1층 규 모로 건립을 검토하였다.45) 관사는 목조 1층 규모로 소 장관사 1호, 직원관사 2호, 2동, 총 공사비 75,000원을 예상하고 있었다. 2차 문건을 살펴보면 청사 등 타 건물 의 규모는 동일하나 소원관사 2동를 1동(2호)으로 축소 하고 공사비를 65,0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3차 문건을 살펴보면 청사규모를 120연평으로 확대하였지만 부속사 를 30평으로 축소하고 청사 내에 소사실, 변소, 창고, 온 돌을 두는 것으로 변경되어 건축 공사비는 37,000원으로 대폭 축소하였으며 조선총독부, 경상남도의 지방비에서 일부 공사비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였다.46)

    이처럼 부산측후소는 건축비 37,000원을 들여 대지 1,500평에 콘크리트조 2층으로 연면적 120평의 청사건물, 청사 4층에는 36평방미(㎡)의 풍력대, 청사 내에 30평의 부속사, 소장관사 1호, 직원관사 2호, 직원관사 1동으로 최종 계획한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실제 1934년 준공된 부산측후소의 건축현황을 살펴보 면 먼저 기존의 도심지에서 벗어나 고지대인 복병산의 9 번지 19 및 16번지 2 일대로 이전하였다.47) 대지는 지형 에 따라 도로를 정비하여 고저차에 따라 2개의 대지로 구분하여 높은 쪽에는 청사 및 관측기기를 낮은 쪽에는 관사를 배치하였다. 동서 장방형의 청사대지에 동측 정 남향으로 ①청사를 배치하였으며 서측에는 ⑦창고 ⑧관 측노장을 두었다. 관사대지에는 남동향으로 ②소장관사 ③④직원관사 ⑤⑥직원관사가 입지하였다.48)16

    청사의 1층 77.73평 중 동측 청사는 52.23평의 규모로 ‘ㅡ’형 중복도를 기준으로 동측에는 현관, 남측에는 관측 실, 사무실, 무선전신실, 북측에는 청우계실, 지진계실, 계 단을 두었다. 서측의 부속사는 25.5평의 규모로 남측에 보조 출입구, 보일러실, 취사실, 온돌 북측에 변소, 욕실, 창고를 두었다. 2층은 48.98평의 규모로 남측에는 도서 실, 지부장실, 북측에는 회의실을, 3층에는 남측에 관측 실, 예보실, 4층은 풍력계실을 두었다. 이와는 별도로 외 부에 일조계대를 설치하고 옥상에 관측기기를 설치하여 기상관측 업무를 시작하였다.17

    특히, 부산측후소는 기상관측 업무 안정기의 건축적 특징인 청우계실, 지진계실, 풍력계실이 모두 나타나는 유일한 건축물이다. 또한 벽돌철근콘크리트조로 만든 르 네상스 양식의 외관은 옥탑 층과 지붕을 별도로 구성하 고 전체적으로 모서리 벽을 반원형태로 둥글게 처리한 배 모양의 형태를 갖고 있어 당시의 독특한 조형적 표현 을 확인할 수 있다.18

    1934년 이전 신축하였던 부산측후소 건물은 1989년, 1991년 2003년 그리고 최근인 2012년 증개축 공사와 보 수공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증축 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건립당시의 평면형식과 외관을 그 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한 인접대지에 위치한 관사는 현재 민간에게 매각되 었지만 그 원형 및 도면을 확인할 수 있다.49) 이와 같이 부산 측후소 건축의 경우 기상관측 업무 안정기에 나타 난 입지적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평면구성 역 시 안정된 기상관측을 위한 형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 는 등 측후소 건축의 변화과정을 확인하는데 중요한 가 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다.

    5.결 론

    본 연구는 먼저 근대기 측후소 건축의 입지 및 공간적 특성에 관하여 시기에 따른 변화를 고찰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부산측후소의 입지 및 공간적 특성을 통해 근 대기 측후소 건축이 갖는 특성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 에 대한 연구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관측소 및 측후소의 입지변화에 관하여 살펴보면 최초 개항지의 측후소는 기존의 건물을 차용하여 사용하 였지만, 업무 변환기 측후소 건축은 안정적 기상관측을 위해 인근 지역으로부터 영향을 적게 받는 고지대에 입 지하게 된다. 이는 기상관측 업무 안정기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정비된 필지에 따라 측후소 건물의 입지 및 향을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전시체제기 에도 이어지고 있지만, 전쟁으로 인하여 전략적 요충지 에 입지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기존 건물을 차용하여 사용하였던 초기 측후소건 축을 제외하고 업무 변환기의 측후소건축은 규모가 작아 청사·관사를 일체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기상관측 업 무 안정기에는 기능의 세분화로 청사·관사를 분리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대지의 높은 곳에는 청사를 낮은 쪽에 관사를 배치하였으며, 대지 동측에 청사, 서측에 노장을 설치하는 등 표준적 형태의 측후소 건축이 등장하게 된 다. 이는 전시체제 변환기에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음 을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평면구성에 관하여 살펴보면 기상관측 업무 성립기의 측후소 건물은 기상관측 기기의 중요도 및 설치시기에 따라 입지 및 규모를 달리하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한일병합 이후 기상관측 업무가 군사 분야에서 산업, 교통. 경제로 전환되고 재정이 확보됨에 따라 관측기기가 증가하면서 목조 풍력대가 등장하는 등 기능의 세분화가 엿보이고 있다. 이후, 업무안정기 기상 정밀관측을 위해 건물의 공간이 보다 세분되어 1923년에 는 지진계실 설치, 자기기의 증설, 벽돌·철근콘크리트조 의 풍력대 설치 등에 따라 중복도형 평면이 나타났으며 이는 전시체제 변환기에 ‘ㅡ’형 중복도를 가진 평면으로 표준화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부산측후소 건축에서는 개항 이후 최초로 기상관 측이 이루어진 해관의 위치를 확인하였으며, 기상관측 변환기에 건립되었던 부산 임시관측소(1905년)의 입지 및 건축현황을 새로이 발굴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 가 1934년 이전 신축된 부산측후소 건축의 건립과정과 현황조사를 통해 근대기 측후소건축의 입지 및 공간적 특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논문의 연구대상인 대부분의 측 후소 건축들은 이미 사라지고 훼손되어 체계적인 연구 성과를 확인하기에는 미흡함이 있었으며, 동시에 북한 지역에 산재해 있는 측후소 건축에 대한 현황파악과 이 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부산측후소의 경우 지역 역사문화자산 활 용을 위한 주변정비 및 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근 대기 측후소 건축의 원형과 변화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 는 본 건물의 가치와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고 이를 체계 적으로 유지관리 될 수 있도록 학계와 지역의 관심이 필 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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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distribution of observatory and weather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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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patial composition on Established based of meteorological service - Incheon Temporary observatory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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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observatory and the weather station on Established based of meteorological serv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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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patial composition of the observatory and the weather station on Established based of meteorological serv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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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ocation of the weather station in the transformation period of meteorological serv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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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patial composition of the weather station in the transformation period of meteorological serv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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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ocation of the weather station on a plateau of meteorological serv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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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patial composition the weather station on a plateau of meteorological services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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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patial composition the weather station on aplateau of meteorological services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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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ocation of the weather station on the wartime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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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patial composition the weather station on the wartime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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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maritime customs and temporary meteorolog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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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ocation change of Pusan weather station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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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Cadastral map and block plan of new built weather station in 1905

    A picture of new built weather in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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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compare with block plan of Pusan weather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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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patial composition of the Pusan weather station in 1934

    JAH-23-39_F18.gif

    The elevation change of the Pusan weather station

    Table

    The observation facilities present condition and control change

    The spatial variation of the weather station introducing Observed machinery

    The location and the spatial analysis of weather station in modern age

    The cost of relocation and reconstruction of the weather station44)

    The plane change of the Pusan weather station

    Footnote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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