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 론
1.1.영향에 대한 불안과 창조의지
예술의 생명은 그 사유와 작업의 새로움에 있다. 이 예술적 새로움을 창조하는 사람을 우리는 작가(作家)라 부른다. 새로움, 즉 예술적 독창성의 화두는 특히 혁신의 예술로서 모더니즘이 추구한 강박적 이데올로기 중의 하 나이며, 근대예술을 이전의 것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 이기도 하다.1)
하지만 이 예술적 ‘창조의지(will-to-creation)’는 항상 이미 만들어진 것들의 진부함과 그 굳건한 영향력 앞에 가로놓인다. 해럴드 블룸(Harold Bloom, 1930〜)은 이 미묘한 갈등심리를 ‘영향에 대한 불안(the Anxiety of Influence)’이라 칭하는데, 그의 영향이론이 제안하는 ‘오 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의 비평구도는 낭 만주의 이후 시문학사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갈등적 심리구도에 바탕하고 있다.2) 그는 데리다(J.
Derrida, 1930〜2004)의 해체론의 관점에 바탕 한 드 만 (P. de Man, 1919〜1983)3) 등의 해체비평론의 관점을 신비평(New Criticism)류의 객관주의적 비평의 공시성 (synchrony)의 관점을 넘지 못한 편협한 것이라 강력히 비판하며, 그의 영향이론이 가진 통시성(diachrony)의 관 점에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 한다. 이로써 그는 모더 니즘에서 해체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시간 과 전통의 회복, 그리고 그 속에서 투쟁하는 휴머니즘적 주체의 복귀를 대담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적 사승의 관계에 대한, 작가로서 근현대 의 건축가들의 입지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작가적 기질 이 강한 건축가의 경우 이러한 갈등심리는 더욱 구체적 인 모습으로 그의 건축에 표출된다.
1.2.사승관계와 수정주의 변증법
‘사승(師承)’이란 말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아 그 맥 을 이음’이란 의미이다.4) 스승과 제자 간에 맺어지는 이 최초의 계약으로 말미암아 제자는 스승의 거대한 예술세 계로 수렴된다. 그 언어로서, 그 이름으로서 스스로의 시 작을 가늠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승의 이름’은 끊임없이 제자의 ‘독창성’을 제한한다. 억눌린 ‘표현의지(will-torepresentation)’ 는 즉각 ‘욕망(desire)’으로 대체된다. 사 승관계는 이렇게 ‘나/타자’, 혹은 ‘나/세계’의 이분법적인 관계를 전제하는데, 진정한 작가가 되기 위해선 이를 넘 어서야 한다.
블룸의 ‘오독의 지도(Map of Misreading)’는 이러한 사승관계의 대립구도와 그 극복과정, 즉 후배작가의 작 가적 ‘정체화(identification)’의 과정을 요약하고 있는데, ‘선정-유아주의-정체화’라는 뚜렷한 세 번의 변증법적 대 체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이를 ‘수정주의 변증법 (Dialectic of Revisionism)’이라 부른다.5) 블룸의 수정 주의 변증법은 텍스트의 이미지(Images in the Poem), 수사적 문채(Rhetorical Trope), 심리적 방어기제 (Psychic Defense)라는 세 측면에서 선정(Election)과 유아주의(Solipsism)의를 거쳐, 정체화(Identification)에 이르는 변증법적 과정을 요약하고 있다. 선배작가에 대 한 후배작가의 오이디푸스적 갈등상황은 작가의 내면에 심리적 방어기제를 형성하고, 이는 다양한 수사적 문채 를 통해 시적 이미지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세 과정은 ‘제한(Limitation)과 표현(Representation)이라는 대체과 정(Substitution)’으로 각각 구성되어 있는데, 선배작가와 의 영향관계에서 제한받은 후배작가의 시적 시도가 표현 욕망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나타낸 것이다.1
시적 언어의 새로움은 곧 기존의 언어관습에 담긴 텍 스트의 의미를 비틀어 작가만의 고유한 용법으로 전환하 려는 욕망이다. 관습에 이해 작동하는 언어의 특성상 이 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시도이다. 반응-형성(Reaction- Formation)으로 표현된 후배작가의 최초의 시적 시도는 곧바로 선배작가로 대칭되는 기존 언어의 제한 상황에 봉착하고, 이 욕망의 결핍상황은 또 다른 표현욕망으로 전이된다. 초기에 충분히 해소되지 못한 대상관계는 반 복충동(Repetition Compulsion)의 퇴행과 시적 억압 (Repression)의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선배작가의 영 향관계에 스스로를 열어 놓는 정체화의 단계로 승화 (Sublime)하게 진행된다. 비평가는 이 과정을 역추적함 으로써 작가의 시적 내면에 더욱 가깝게 접근할 수 있 고, 이러한 수정주의 비평의 과정은 텍스트에 담겨져 있 는 시적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강한(strong)6) 작가는 기존의 의미를 끊임없이 교란하며, 자신의 의미 는 더없이 완고하기를 욕망한다. 블룸은 이를 ‘시적 기만 행위(poetic misprision)’라 칭한다. 그는 프로이트 (Sigmund Freud, 1856〜1939)의 정신분석학이 최면 등 을 통한 대화의 방법으로 히스테리환자의 무의식을 거슬 러 ‘원장면(the primal scene)’에 이르는 과정을 원용하 고 있다. 비평가는 작가의 통시적인 작업에서 이 극적인 대체의 순간, 그 연속과 단절의 수정주의적 ‘급변점(急變 点, catastrophic point)’을 찾아냄으로써 사승관계와 독 창성에 대한 비평적 성찰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본 논문은 헤럴드 블룸이 주장하는 예술적 수정주의 논의를 한국 현대건축사의 주요한 사승적 계보중 하나인 김수근과 승효상의 통시적 건축양상에 적용해보아, 김수 근이라는 걸출한 선배작가, 혹은 스승의 긴 그림자 속에 서 후배작가, 혹은 제자로서 승효상의 건축이 지향하고 있는 건축적 수정주의의 변증법적 과정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강한’ 건축가로서 승효상은 어떻게 스스로를 정체 화해 나가고 있는가?
2.본 론
2.1.승효상 건축의 '원장면(the Primal Scene)‘
건축가 승효상(承孝相, 1952~). 김중업(金重業, 1922 ~1988)과 김수근(金壽根, 1931~1986) 이후의 한국 현 대건축의 사승계보를 논할 때 이 보다 더 적절한 사람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김수근의 「공간(SPACE Institute Inc.)」7)에서 함께 한 시간과 기여도, 그가 행 한 그동안의 각종 기록들, 나아가 이제껏 그의 건축이 보여준 일련의 행보에서 더없이 뚜렷하게 그 사승관계의 갈등적 양상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 나의 건축을 이야기할 때 에 나는 김수근 선생의 건축을 꺼냄으로써 이야기를 시 작하곤 했다. … 이제는 우리도 어떤 문화적 계보를 이 룰 때가 됐다는 생각에서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보 다는 김수근 선생이 세상을 떠나신 지가 오래됨에도 내 가 아직 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하 는 게 보다 솔직한 표현이다.8)
승효상이 김수근의 「공간」에 첫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74년. 대학교 4학년 때였다. 그가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만들어 독립한 것이 1989년이니, 중간에 잠깐씩의 이탈 을 포함하여 근 15년의 세월을 김수근과 함께 보낸 것이 다. 이런 그가 김수근을 처음 만나 가진 인상은 바로 강 한 ‘카리스마’였다. 스스로의 표현대로 그가 김수근 문하 에서 보낸 시절이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까지인지라 그의 건축관은 물론 인생관까지 영향 받아 이루어졌음이 자명하다. 인생관까지 좌우하는 거대한 스승의 그림자 밑에서, 그 끝없는 ‘열등의식’9) 속에서 이후 그는 끊임없 이 이탈을 욕망하였고 그 시도는 줄곧 벽에 부딪혀 번번 이 제자리로 향한다.1
그가 「공간」시절 수행한 프로젝트는 많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마산성당>(1977), <청주박물 관>(1979), <경동교회>(1980), <구미문화예술회 관>(1983) 등이다. 이들은 모두 김수근 건축의 후기 를 대표하는 프로젝트들이자 그가 실무에 주도적으 로 참여한 것들이다. 이후 그의 건축이 보여주는 다 양한 행보에 비추어 이들은 그의 건축적 사승관계 에 대한 일종의 ‘원장면(the Primal Scene)’으로 자 리한다.
김수근 사후 승효상은 장세양(張世洋, 1947~1996) 등 과 잠시 스승의 「공간」을 이어간다. <성북동 P주 택>(1986)과 <눌원빌딩>(1987) 등이 그의 이름으로 진 행된 이 시기 대표작들이다. 특히 고향 부산에 세워진 <눌원빌딩>은 바람처럼 유연한 표피의 움직임과, 이와 대조적인 시원한 투명성 등으로서 이후 부산의 지역성 논의를 통해 중요하게 부각된다.10) 하지만, 이 시기 그의 2건축을 스스로의 진정한 독창성의 차원에서 보기는 힘들 어 보인다. 「공간」이라는 오래된 관성의 끝자락에서 이루어진, 그의 말대로 어찌 보면 김수근 사후 공간의 현실적 문제들로 인해 건축을 잠시 뒤편으로 밀어두었던 시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2.2.김수근에 대한 승효상 건축의 수정주의 행보
승효상 건축의 본격적인 시작은 1989년 자기 명의의 「승효상건축연구소(TSC)」를 개소하면서부터다. 이즈 음 부산의 <초량 오피스빌딩>(1990), <수양빌딩>(1991) 등 초기의 몇몇 프로젝트들이 수행되었는데, 아직 그만 의 독창적 이미지보다는 모서리 눈썹창과 세로로 긴 돌 출창 등 김수근의 「공간」과의 연속선상에서 논의될 수 있는, 잘 다듬어진 몇 가지의 수사(修辭)들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물론 뒤 이은 <영동제일병원>(1992), <이문 291>(1992), <학동 수졸당>(1992) 또한 이전 행보들과 의 연장선상에 자리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동시에 전자 들과는 좀 더 차별화된 건축적 특징들을 드러내기 시작 하는데, 이후 승효상의 건축을 규정하는 몇 가지 특징적 인 제스추어들이 본격 실험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중 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마당’ 혹은 ‘중정’이라는 새로운 건축적 장치의 등장이다.3
<영동제일병원>의 경우 지상 1층의 접수/수납공간 과 맞은편의 카페테리아, 이를 연결하는 복도로 3면 이 둘러싸인 중정은 우측의 가벽으로 인해 더욱 한 정적인 영역성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 중정 혹은 마 당의 기원은 물론 김수근의 <공간사옥>(1971)이다. 하지만 스승의 그것은 외부동선과의 연계선상에서 바로 연결되는 것인 반면, 여기서는 내부에서 별도 의 출입문을 통해서만 연계된다. 특히 바닥이 <공 간사옥>과는 달리 상시 출입이 어려운 잔디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내부공간에서의 관조(觀照)를 위한 오브제적 성격이 더 커 보인다. <영동제일병원>과 <이문 291> 프로젝트는 도심의 중규모 병원건축이 라는 주제를 공유하고 있는데, 공히 잘 짜여 진 프 로그램과 함께 잘 다듬어진 미학적 완결성 등으로 서 도심 가로변의 새로운 문맥성을 지향하고 있다. 상층부 조형과 푸른색 계통의 전면 색체이미지들이 흰 벽체와 만들어내는 시각적 이미지는 일견 르 꼬 르뷔제 건축의 주요한 시각적 특징으로서 기하학과 색채의 조합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이문291>은 특이하게 강조되는 외부계단, 즉 건물의 내부로 깊 숙이 끌어들인 동선체계를 통한 도시가로의 연속성 의 추구11)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비슷한 설계시기와 기능, 그리고 도시가로에 면한 좁고 긴 비례의 대지 라는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상기의 두 프로젝 트는 도시 가로벽(urban wall)으로서 파사드 (facade)에 대한 부정적 관심으로부터 시작하는데, 그 탈출구로서 ‘얼굴이 아닌 길, 벽, 마당’이 집중적 으로 거론된다.12) 이렇게 건축의 영역 속으로 끌어 들여진 도시 가로는 자연히 건축과 도시의 공간을 섞어 그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건축은 도시가 되 고, 도시는 곧 건축이 된다. 그리고 이는 김수근의 공간사옥이 추구하는 도시맥락의 가장 중심적 주제 이기도 하다. 도시와 건축을 이어주는 이 길은 동시 에 현재의 그를 과거의 스승과 이어주기도 한다.
<이문 291>에서 주요한 시각적 특징으로서 외부의 동 선을 지지하는 거대한 가벽과 격자의 보이드(void) 체계, 그것에 의해 한정되는 마당의 영역성이라는 주제는 <학 동 수졸당>(1992)에 이르러 좀 더 명확한 위요공간(圍繞 空間)으로 반복된다. 이 건축은 여러 측면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현대건축의 행보에 많은 이슈를 던져준 작업이 다. 특히 ‘별로 크지도 않은, 크게 비싸지도 않은’ 이 도 4시주택은 중정 혹은 마당, 나지막한 크기로 삽입된 내외 벽(內外壁), 그리고 그것이 규정하는 문방(文房) 혹은 사 랑채 등 한국의 전통적인 주거공간으로부터 빌려온 듯 한 몇 가지 건축적 장치들로써, 당시 기로에 서있던 한 국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전통 논의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 여하는 것이었다. 플로링(flooring)이 깔린 중정의 4면 중 한 면은 네 개의 정방형 보이드를 가진 높고 깨끗한 벽체로 위요되는데, 이를 배경으로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 혹은 샤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를 연상시키는 한 그루 나무와 두 어 개의 오브제들이 갖춰졌다. 하여 이곳은 한국 전통의 ‘마당’임과 동시에, 잘 정동된 거실을 객석으로 삼은 완 벽한 조율의 ‘무대장치’이기도 하다. 마당은 그렇게 비워 져 관조된다.5
대학로의 <문화공간종합예술관>(1993)은 <이문 291> 등에서의 ‘도시맥락으로서의 건축’ 개념을 더욱 완결하여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이 건축물은 몇 가지 점에서 이 전의 작품들과 구분되는데 그 중심에 ‘노출콘크리트 (exposed concrete)’라고 하는 재료의 새로운(?) 물성(物 性)이 자리한다. 무엇보다 ‘색채’가 사라져버린 무심한 파 사드는 <영동제일병원> 등 초기건축에서 그가 즐겨 사 용하던 몇 가지 건축적 수사법들을 비껴간다. 이 건축적 절제와 생략의 정신을 그는 ‘빈자의 미학(Beauty of Poverty)’이라 칭한다. 이 키워드는 이후 한동안 그의 건 축을 규정하는 핵심어로 작용한다. <당진 돌마루공 소>(1994)는 이러한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흐름을 더욱 철저히 이행한다. <천주교 풍납동성당>(1994), <경 주율동법당계획안>(1995) 등으로 이어지는 그 철저한 건 축적 환원주의(reductionism)는 오래지 않아 승효상의 아이덴티티를 위한 일종의 아이콘으로 정련된다. 하지만 이 일련의 건축행보들은 동시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 1941∼) 건축과의 긴밀한 관계성을 지속적으로 의심받고 있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 한국 건축가들이 보여준 유사 한 움직임들도 그의 이 ‘비움’의 논지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고, 공히 상기의 딜레마에서 그렇게 자유롭지 못 했다.
1990년대 중반을 지나는 동안, 승효상의 건축은 이전 시기의 미 니멀리즘적 행보를 여전히 지속하 는 가운데서도 조금씩 새로운 변 화의 움직임들을 보여준다. 변화의 시작은 <중곡동성당>(1996), <신 동방사옥>(1996), <미즈메디병원> (1996) 등의 작품을 보면 금방 알 수가 있다. 사라졌던 ‘색채(色彩, color)’가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신동방사옥>은 ‘적벽돌치장쌓기 공법’을 고층건물의 외장으로 과감 히 적용하였으며, 뚜렷이 분절된 강력한 수직선들이 다발을 만들며 육중한 사면(斜面)의 기단부와 그 대로 병치(juxtaposition)된다. 이 는 김수근 건축의 후반부를 특징 짓는 <경동교회>(1980)의 그것과 충분히 비교되는 것이다. <미즈메 디병원>에는 전자의 적벽돌 대신 인도사암(砂巖)이라고 하는 붉은색 계통의 또 다른 재료가 사용되는데, 반투명 유리면과 금 속패널의 현대적 이미지와 대조되면서 노출콘크리트에 기반 한 이전의 이미지들과 겹쳐진다.67
<수백당>(1998)은 1990년대 승효상식 환원주의의 대 미를 장식한다. 말 그대로, 온통 흰 빛깔과 그림자의 대 비로써만 존재하는 극도의 ‘검박성(儉薄性)’을 강조한다. 이 건물에서 그는 일종의 ‘탈중심적’ 공간을 지향하고자 하는데, 배후의 풍부한 녹음을 바탕으로 유별나게 정돈 된 이 백색의 상자들은 한 점 흐트러짐이 없는 견고한 ‘자의식(自意識)’의 세계13)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를 마지막으로 그의 건축은 또 다시 변화한다.8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승효상은 플로리안 베이겔 (Florian Beigel, 1941~)이 교수로 있던 북런던대학의 객원교수로 초빙되어 1년여의 시간을 영국에서 보낸다. 독립한지 10년만의 일이다. 물론 그동안 국내의 프로젝 트는 예정대로 진행되는 것이었지만, 이 짧은 외유의 시 간은 그의 건축에 대한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 인다. 특히 베이겔의 ‘불확정적 공간(indeterminate space)’은 근대건축의 ‘균질공간(universal space)’에 대 한 ‘미정성(indeterminacy)’이라는 탈구조주의의 개념으 로 보완하고 있는, 「파주출판단지건축지침」(1999)의 가 장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이다.14) <포천 중문의대도서 관>(1999), <대전대학교 복지문화관>, <웰콤시티>, 파 9주출판단지 내의 <박영사사옥>(이상 2000) 등은 이러한 새로운 변화의 행보를 잘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광고회사 「웰콤」의 사옥인 <웰콤시티 (Welcomm City)>는 이러한 변화의 가장 중심에 서있 다. 이 프로젝트는 1995년도부터 몇 년 동안 디자인과 프로그램, 대지상황의 수정과 변화를 거치며 지속되어 오던 것인데, 현실화된 디자인은 그가 북런던대학에 체 류할 당시 재조정된 것이다. 그는 이 새로운 변화의 중 심에 ‘지우기’라는 방법론이 개입하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것은 영국에서 플로리안 베이겔과 행한 새로운 협력 작업을 통해 구체화된 것이다.
그러나 2, 3년의 시간적 차이일 뿐이면서도 설계변경 작업을 시작했을 때 이 계획들은 낡은 생각이 되고 말 았다. 이미 도시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기 시작했을 때이며 더구나 런던에서 접하는 건축들은 거의 모두가 나에게 새로운 사고의 원천을 제공하여 주었다.15)10
그들은 기 완성된 지하골조와 새로 구입한 대지를 포 함하여 하나의 기단부를 만드는 것에 쉽게 의견일치를 보았다. 도시의 포디엄(podium)이라 불렀던 하층부의 굳 건한 덩어리가 경사진 대지에 수평면을 제공하면서 굽게 경사진 전면도로의 불안정한 움직임을 안정시키며, 건너 편 대학의 높은 옹벽에도 대응하는 역할을 기대한 것이 다. 하지만 상부박스에 대해선 이견을 보이는데, 베이겔 이 하나의 중정을 만들고 세 개의 박스가 이를 에워싸며 이 중정을 후면의 길과 연결시키자는 안을 주장한 반면, 승효상은 지금처럼 네 개의 박스가 병치되어 있는 안을 지지한 것이다. 실제 건축주는 전자를 선호했지만, 도시 건축에 대한 새로운 믿음을 키워가던 그에게 베이겔의 제안은 무리였다. 그는 후자의 개념을 설득한 후 건축주 의 동의를 ‘반강제로’ 받아낸다. ‘어번 보이드(Urban Void)’16)와 ‘랜드스케이프’라는 그의 새로운 건축사유는 이렇게 구체화되고 있었다. 이 건축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일명 ‘코르텐(corten)’이라 불리는, 일정하게 진행된 표면의 부식층이 ‘신기하게도’ 이후의 부식진행을 막아주 는 코팅재의 역할을 하는, 따라서 그 붉은색 녹의 텍스 추어 속으로 시간성을 함축해 나간다는 ‘내후성강판’이다.
이 재료는 세심하게 연구된 디테일을 가진 불규칙한 배 열의 창호와 더불어 특유의 양감과 형상적 특징을 드러 내고 있다. 구축을 통한 채움보다는 지우기를 통한 비움 을, 종래의 언어로 보아 기능적이라는 말 대신 오히려 반기능적인 요소가 너무도 많은,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한히 궁리하며 그들의 무한한 지혜를 짜내어야 하는 사람들은, 그리하여 불편한 것이 얼마나 삶을 풍요 롭게 하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의 이 새로운 전환은 이후 한동안 계속된다.
<최가철물쇳대박물 관> (2002)은 <웰콤 시티> 이후 코르텐의 질감에 대한 미니멀리 즘의 실천, 그 완결된 환원주의를 잘 드러낸 다. 이 건축물의 외관 은 거의 틈이 없으리 만큼 개구부가 배제되 어 있는데, 저층부의 필로티 개방공간과 몸체에 들러붙 은 작은 유리 매스가 오히려 제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 히 주(主) 매스로서의 붉은색 덩어리는 주택으로 사용되 는 상부의 유리상자가 주는 매끈하고 반짝이는 표피성과 함께 매우 강력한 병치의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 만 외부의 이러한 폐쇄성과는 대조적으로 박물관의 내부 는 독특한 개방감으로 다가온다.11
이후 승효상의 건축은 대부 분이 <웰콤시티>와 <쇳대박 물관>이 보여주는 특정한 이 미지들을 반복하고 있다. 그 중에서 분당의 <휴멕스 빌리 지>(2002)는 코어와 거실부분 을 명확히 구분하면서 그 평 면의 활용성과 구조적 합리성 을 극대화하고 있는데, 루이스 칸(Louis Kahn, 1901~1974) 건축이 강조하는 ‘지원하는 공간(Servant Space)’과 ‘지 원받는 공간(Served Space)’의 건축적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나아가 그는 건축물의 내부에 슬라브의 적층과 보 이드의 비율을 조율하면서 녹음의 랜드스케이프를 도입 하는 등 ‘도시로서의 건축 혹은 건축으로서의 도시’라는 생각을 확장 적용하고 있다.12
<보아오주거단지>(2001), <북경 만리장성 프로젝트 클럽하우스>(2001), <북경 M시티 마스터플랜>(2003), <Chaowai SOHO 상업업무시설>(2004) 등 2000년대 이 후 중국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진행된 대규모 프로젝트 들과 더불어 <광주아시아문화의전당계획안>(2005), <동 대문디자인파크계획안>(2007) <전주대학교 스타센터계 획안>(2007) <대전대학교 30주년 기념관>(2008), <아주 작은 비석>(2009) 등 일련의 계획안들은 그의 건축이 지향하는 도시-건축에 대한 새로운 행보를 잘 보여주고 있다..13
그의 건축은 이렇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그의 건축에 대한 정체화의 궁극 양상을 말하기에는 아 직 이르다. 다만, 김수근이라는 오랜 사승관계의 차원에 서 그의 건축은 지난 20여 년간 변증법적 수정주의 과정 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2.3.승효상 건축의 정체화 논의
해럴드 블룸의「오독의 지도」는 ‘선정-유아주의-정체 화(Election-Solipsism-Identification)’라는 세 번의 뚜렷 한 변증법적 수정주의과정을 전제하는데, 이는 다시 여 섯 개의 세부적인 단계(Revisionary Ratio)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궤도이탈-자기비하-고행(Clinamen-Kenosis -Askesis)’은 에토스(ethos)적 제한작용에 의한 의미의 응축과 결핍을, ‘깨진조각-악령화-환생(Tessera-Daem onization-Apophrades)’은 파토스(pathos)적 표현욕망의 분출에 의한 의미의 확장과 잉여의 상태를 지칭한다. 이 ‘응축↔확장’의 구도 혹은 ‘제한과 표현, 결핍과 욕망의 변증법적 대체관계(substitution)’라는 말은 다름 아닌 특 정한 상황이 그것과는 다른 상황으로 변하는 지점으로서 의 ‘전환점(turning point)’을 의미한다. 새로운 ‘의미 (meaning)’는 언제나 앞선 것의 ‘위기(crisis)’로부터 비 롯되는 것이다.17) 선배작가의 막강한 영향력 앞에 가로 놓인 후배작가에 닥친 표현의지(will to representation) 의 위기상황이 바로 새로운 의미 창출에 대한 과도한 혹 은 풍성한 욕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위기’가 곧 ‘식별 가능한’ 것이고 ‘비평’의 바탕이 되는 것이라면, 전환점으 로서의 위기상황은 동시에 또 다른 의미의 생성, 즉 창 조의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오독(misreading)은 새로운 창조의 또 다른 이름(creative misreading)이 된다.
「오독의 지도」가 제안하는 ‘제한(limitation)↔표현 (representation)’의 대체구도는 새로운 예술적 혹은 건 축적 의미의 생성구도이자, 동시에 그 위기점의 해석을 통한 유용한 비평의 방법론을 제안하고 있다. 비평가는 주어진 텍스트에서 이 명백한 ‘위기점(crucial point)’들 을 찾아 재배치함으로써 숨어있는 새로운 의미를 포획할 수 있는 것이다. 건축의 사승관계에서 깨진조각과 악령 화, 그리고 환생이라는 수정단계는 바로 이 ‘위기(crisis)’ 혹은 ‘급변(catastrophe)’의 결과이며, 하나 같이 풍성한 건축적 이미지의 성취로 드러난다. 김중업의 <주한프랑 스대사관>과 <뉴욕박람회한국관>, <민족대성전계획안> 이 그러하며, 김수근의 <부여박물관>, <공간사옥>, 그 리고 <경동교회> 등이 그러하다.18) 따라서 우리는 승효 상 건축의 수정주의적 행보와 그 정체화의 논지를 그 건 축적 ‘전환점 찾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김수근 사후 그의 독자적 사무실을 시작한 1989년 이후 승효상 건축의 통시적 행보를 눈여겨 살펴보면, 두세 번 의 커다란 전환의 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2.3.1.선정(Election)의 징후들
김수근 사후의 「공간」에서 승효상이 주도적으로 행 한 프로젝트로서 <눌원빌딩> 등과 「TSC」초기에 수 행한 <수양빌딩>, <영동제일병원> 등은 세심하게 적용 된 그 특유의 다양한 건축적 기법들에도 불구하고 공히 김수근의 건축에서 빚진 바가 크다. 가늘게 돌출한 세로 창이라든지, 혹은 모서리의 유난히 돌출된 눈썹지붕의 창호 등은 그 대표적 문채들이다. 따라서 이들 초기작들 을 블룸의 오독의 지도가 제안하는 선정 단계의 궤도이 탈(Clinamen)의 과정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 다. 이들 작품에서 승효상의 건축은 스승의 자취를 덮고 서 현존(presence)하기도 하고, 그 그림자에 묻혀 부재 (absence)하기도 한다. 반응-형성(Reaction-Formation) 이란 심리적 방어기제와 아이러니(Irony)의 문채의 수사 적 이미지가 이에 해당한다.
이후 <이문 291>와 <학동 수졸당> 등의 건축은 유 난히 절제된 색채와 간소화한 디테일의 적용, 드라이비 트 등 새로운 재료의 시험 등 이전에 비해 좀 더 다른 행보를 보여준다. 특히 <이문291>에 적용된 도시가로의 끌어들임이라든지 <학동 수졸당>에서 강조하는 ‘전통성’ 의 해석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은 깨진조각(Tessera)에서 의 최초의 성취로서 모자람이 없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김중업의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김수근의 <부여 박물관> 등에서와 같이 승효상의 <학동 수졸당> 건축 에서도 ‘전통’에 대한 입장은 그 논의의 가장 핵심을 차 지한다는 것이다. 이들 건축에서의 풍성한 건축적 성취 들은 이즈음에서 스승의 거대한 건축적 영향력에 대한 성취의 증표로서 대조된다. 선배작가의 큰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독자적인 한 조각으로서, 혹은 그 작은 한 부분이 성장하여 선배작가가 미처 성취하지 못한 것을 대조적으로 보충함으로써 더 큰 전체를 완성하는, 부분 과 전체의 관계(Part for Whole or Whole for Part)로서 블룸이 제안하는 제유(Synecdoche)의 수사학적 이미지 이다.19)
2.3.2.유아주의(Solipsism)와 역-승화
이후 승효상의 건축은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 나간다. 바로 <문화공간종합예술관> 등 노출콘크리트의 미니멀 리즘에 탐닉하던 그 즈음이다. ‘빈자의 미학’으로 상징되 는, 그가 스스로의 이름으로 건축을 시작한지 5~6년이 지난 시점에 수행된 이들 프로젝트들은 공히 ‘형태’보다 는 무형의 ‘공간’을 지향한다는 차원에서 스승의 ‘네가티 비즘(Negativism)’적 사고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 다. 동시에 그 환원주의적 미학의 이미지는 그가 「공 간」시절 경험한 김수근의 후기 작품들로부터 상당한 거 리를 유지하는 것들이다. <마산성당>과 <경동교회>가 포함된 김수근의 후기 건축들이 만들어지는 시점이 승효 상의 ‘도제살이’와 겹치는 것이라면, 이것이 바로 후배작 가로서 승효상이 지향하는 가장 큰 이탈의 대상일 것이 다. 이제 스승의 그림자는 무의식 속에서 깊숙이 억압 (Repression)되기 시작하고, 동시에 그 풍성한 낙원을 벗어난 후배작가의 언어는 차갑게 식어간다. 그의 ‘빈자 (貧者)’는 건축적 ‘자기비하(Kenosis)’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마음 비우기(Undoing)를 통한 고립(Isolation)의 시도 는 퇴행(Regression)이라는 좀 더 곤란한 상황으로 진행 된다. 1989년 이래 1990년대 초중반의 승효상의 건축적 경향을 특징짓는 기하학과 노출콘크리트, 그리고 ‘빈자’라 는 미니멀리즘의 상징들은 그가 1970년대 초반 김수근의 「공간」에서 얻은 건축적 ‘원장면’으로서의 <마산성 당>, <경동교회> 등의 다분히 ‘형상적인(figurative)’, 혹 은 스테레오토믹(stereotomic)의 특성들이 아닌, 그의 스 승이 행한 1960년대 중후반의 작품들, 즉 <KIST본 관>(1966), <문화방송사옥>(1966) 등에서 보이는 일종 의 ‘구축적(tectonic)’ 이미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당시 승효상 건축의 마음비우기는 정확히 스승의 1960년 대 건축을 지향하고 있다. 즉, 그가 김수근의 공간에서 행한 스승의 정체화 과정에 나타난 건축적 특징에 대한 노골적인 이탈의 징후로 능히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노출콘크리트 등에서 오는 무채색과 정제된 질감은 김수 근의 <공간사옥> 이후 1970년대 「공간」건축의 대표적 이미지인 ‘벽돌 등의 거침과 붉음’에 대한 이탈의 한 측 면이며, 자로 잰 듯 반듯한 규범의 미학은 <마산성당> 과 <경동교회> 등에서의 불균질한 조소성의 형상적 이 미지에 대한 퇴행적 반응인 것이다.
실제 승효상 건축의 초기를 규정하는 이러한 건축적 ‘검박성’은 1980년대 초반 그의 비엔나공과대학 유학시절 에 이미 시작된 화두이기도 하다. 유학시절 그는 한 교 수를 통해 아돌프 로스(Adolf Loos, 1870~1933)의 건축 을 ‘우연히’ 알게 되고, 점점 그의 건축적 사고의 ‘혁명성’ 과 그 실천에 매료되기 시작한다.20) 그의 로스는 루이스 칸과 바라간(Luis Barragan, 1902~1988), 혹은 테라니 (Giuseppe Terragni, 1904~1943)의 건축이 표방하는 ‘합목적성(rationality)’21) 등으로 반복된다. 더불어 그의 건축은 스승의 긴 그림자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이 곤란 한 상황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로스 건축의 합목적성 이자 안도 건축의 노출콘크리트이며, 자코메티의 예술이 상징하는 미니멀리즘의 정신이다. <대학로문화공간>이 취한 풍성한 건축적 기교(trope)들은 정확히 선배작가 김 수근의 <경동교회>와 <마산성당> 등에 대한 건축적 역 -승화(Counter-Sublimation)의 징후들(symtoms)이다.
2.3.3.정체화(Identification)의 건축적 이미지
블룸의 「오독의 지도」가 제안하는 정체화의 단계는 승화(Sublimation)라는 심리적 방어기제로부터 시작한다. 이 승화의 기제는 ‘감당하기 벅찬 외부의 상황을 내면화 하여, 그 공격성 혹은 욕망을 사회적으로 용인된 보다 온건한 방식으로 표출함’을 뜻하며, 이 승화의 방어기제 는 텍스트상에서 ‘은유(Metaphor)’의 수사학적 문채로 드러나게 된다. 무기력한 이탈에 대한 좌절과 강박적 솔 립시즘의 긴 여정을 지나온 후배작가는 비로소 외부의 거대한 영향관계를 내면으로 겸허히 받아들이며, 스스로 의 자아에 응축, 내면화(Internalization)시킨다. ‘타자의 방식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생존의 법칙’을 터득하는 것 이다. 그렇다면, 승효상의 건축에서 이러한 정체화의 구 도가 드러나는 시점은 어디일까?
<신동방사옥>과 <미즈메디병원>을 거쳐, <웰콤시 티>와 <쇳대박물관> 등의 작업을 고비로 승효상 건축 은 또 다른 분수령을 맞는다. 그 전환의 징후로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코르텐’이라는 새로운 재료의 등장 이다. 쇠의 부식으로서 붉은 녹이 오히려 본체의 영원성 을 보장하는 코팅으로 작용한다는 이 신비한 재료가 주 는 독특한 재질감(texture)과 물성(materiality)은 우선 그의 유아주의가 억압했던 풍성한 색감을 되돌려주었고,흘러내려 중첩되는 녹물은 잊었던 시간성을 일깨운다. 두 번째는 매스생성기법(massing)의 변화이다. 이는 <대학로문화공간>과 <웰콤시티>를 비교해 보면 명확하 다. 엇각과 사선, 그리고 사라졌던 스테레오토믹의 매스 가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웰콤시티>에 적용된 붉은색 코르텐의 부정형 매스는 여기서 <공간사옥> 이 후 스승이 택한 벽돌의 질감과 함께 경동교회의 그 형태 적 이미지를 인유(引喩, Metalepsis or Transumption) 하고 있다. 당연히 이는 그의 유아주의가 강박적으로 거 부하던 바로 그것이다.
메타렙시스(Metalepsis)의 문채는 일종의 통시적 정체 화의 이미지로 드러난다. 강한 작가는 창조적 공간에 못 지않게 상상력의 시점 또한 선점해야 하는데, 이러한 시 간적 우선권(priority)에 대한 후배작가의 욕망이 궁극적 으로 메타렙시스의 수사적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이다. ‘meta-’라는 접두어는 ‘초월 혹은 거슬러 뛰어 넘음’을 의미하는데, 메타렙시스의 문채는 ‘어떤 대상이 그것과 별로 관련이 없는 다른 것으로 인용’됨을 뜻한다. 종종 이 결합작용은 다른 수사법이나 ‘(시간적 선후로서) 인과 (因果)의 연쇄’를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한 단어 속에서 의미의 연속을 통한 문채의 연쇄, 혹은 하나의 문채 에 내재한 여러 문채의 합’으로도 취급되고, ‘스스로 비유적 인 말이 다른 말로 환유적으로 대체됨’을 의미하기도 한 다. 블룸이 ‘하나의 자아 속에 내재한 무수한 타자의 이 미지’로 이 메타렙시스의 문채를 거론하는 이유이다.
반면, 트랜섬션(transumption)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 는 ‘(무엇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져오는 (인용하 는) 행위(Act of taking from one place to another.)’이 다. ‘trans-’라는 접두어가 ‘교차 혹은 공간적 가로지르기 (crossing)’를 의미한다면, 트랜섬션으로서의 정체화는 독자적 상상력의 공간에 대한 작가적 욕망을 반영한, 정 체화에 대한 일종의 ‘공시적’ 차원이 할 수 있다. 시문학 에서 트랜선셤의 문채는 ‘시어 자체의 그것과는 다른 의 미로의 전용(serves as a figure for poetic language itself)’을 일컫는다. 어떤 단어나 구절, 문채 혹은 텍스트 는 (장소가) 옮겨짐과 동시에 그 의미맥락이 전용 혹은 왜곡되면서 이전의 그것에 중첩된다. 즉, 이전의 의미맥 락에 새로운 맥락이 중첩, 혼재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 서 트랜섬션의 문채는 여타의 단편적 문채를 넘어 선, 중첩과 혼재를 내재하는 복합적인 문채이다. 문채를 뜻 하는 ‘trope’라는 단어의 어원이 ‘turn’과 같은 것이라면, 그것의 의의는 의미의 전용(transfer)에 있다. 이런 관점 에서 메타렙시스와 트랜섬션은 소위 ‘문채의 문채(trope of prope)’에 해당한다.22) 언어의 이러한 맥락적 전용을 통해 작가는 선배작가 혹은 타자와의 ‘공시적 차이 (difference)’를 만들어 낸다. 모방(imitation)으로서의 인 용이 오독으로서의 의미전용(transfer of meaning)을 거 쳐 의미창조(re-creation)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재탄생하 는 것이다.
메타렙시스와 트랜섬션으로서의 정체화가 드러내는 수 사학적 이미지는 한 마디로 ‘복합과 변형, 그리고 중첩’ 에 있다. 문채의 문채로서 메타렙시스와 트랜섬션은 시 공간을 가로질러 의미를 수렴하고 중첩하고, 동시에 의 미의 연쇄와 혼재를 통한 의미의 불확정성을 극대화한다 는 측면에서 은유와 환유라는 개별적 문채의 수사학적 효과를 넘어선다. 이는 은유적 응축의 극단도 아니며, 환 유적 파열의 극단도 아니다. 응축과 파열의 ‘사이’를 가 로지르는 부단한 ‘생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가 복귀시키고자 하는 ‘주체(subject)’는 더 이상 근대 적 휴머니즘의 절대적이고 고정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 의 주체는 탈근대의 치열한 해체적 과정을 통해 다시 태 어난, 새롭고 역동적인 차원의 주체, 무한한 생성의 바탕 으로서의 ‘탈주체로서의 주체’라는 역설적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승효상의 <웰콤시티>가 보여주는 건축 적 이미지의 변화양상은 이러한 메타렙시스와 트랜섬셤 으로서의 정체화 구도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 승효상의 건축은 그 창조적 기원(origin)을 투사하고 수용하는 정 체화의 단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형상적 (figurative)이지는 않다. 다시 말해서, <웰콤시티>의 소 위 ‘지워진’ 매스들이 김수근의 <마산성당>이나 <경동 교회>처럼 어떠한 은유적(metaphoric) 성질을 강하게 지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후 2000년을 전후한 승효상의 건축이 보여주는 일련 의 행보들은 공히 ‘비움’을 통한 미니멀리즘의 실천이라 는 기존 사유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코르텐 과 벽돌 등의 새로운 재료를 중심으로 한 색채와 질감의 회복, 그리고 이전의 과도한 기하학적 규범성을 벗어나 는 형상의 변화 조짐 등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변화는 일견 이전의 미학적 완결성에 대한 반작용임과 동시에, 1970년대 김수근의 공간에서 그가 행한 일련의 프로젝트 로의 회귀로도 보인다.
집착이다. 김수근 선생에게서 건축의 근본을 훈련받고 많은 방법들을 터득하고 배웠지만, 김수근 선생의 사후, 내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다 시 건축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었으며 나의 원점에 관 해서 혹은 또 다른 근본에 관해서 생각해야 했다. ‘빈자 의 미학’을 가지고 건축을 하면서 만든 건축 형태가 직 선이나 경직된 도형을 나타낸 것도 자칫 방만하기 쉬운 나의 사고를 그 틀 속에 선을 그어놓고 가두어 놓으려 는 강박관념이었을 수 있다. 그 점에서만 보면 요즘은 좀 자유로워진 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가능하다. 즉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겨 있을 수도 있다.23)
<웰콤시티> 이후 승효상의 ‘빈자의 미학’은 ‘어번 보 이드(Urban Void)’와 ‘문화적 풍경(Culture-Scape)’ 등 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도시-건축적 관심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렇게 승효상 건축이 보여주고 있는 최근의 모습들은 이 또한 그의 건축이 지향하는 새로운 행보를 예견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건축이 보여주는 이러한 수정주의적 급변점(catastrophic point)들이 최종의 정체화 과정에서 실제 어떠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는지 지금으로선 속단할 수 없다. 그 건축이 지향할 최후양상(final phase)은 아 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건축가의 그림은 그의 사유 에 대한 그림이 되어야 하며 그 그림이 보편적 언어로 나타나는 것이 건축가의 도면’이라고 말한다.24)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건축은 분명히 그의 사유에 대한 기록, 즉 ‘사유의 기호’가 된다. 시인의 시가 스스로의 자존을 향한 자각을 노래하듯이 ‘철저히 자기를 부정하고 새로 운 정신을 만들 수 있는 태도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시’가 되는 것이다.
3.결 론
본 논문은 해럴드 블룸이 주장하는 예술적 수정주의 논의를 한국 현대건축사의 주요한 사승적 계보중 하나인 김수근과 승효상의 통시적 건축양상에 적용하여 현대건 축비평의 한 방법으로 재해석해 보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김수근이라는 걸출한 선배작가, 혹은 스승의 긴 그림자 속에서 후배작가, 혹은 도제로서 승효상의 건축 이 지향하고 있는 건축적 수정주의의 변증법적 과정을 되짚어보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김수근의 사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승효상 건축의 통시적 행보 또한 스승의 건축적 영향관계에 대 해 나름대로 특징 있는 수정주의의 행보를 보여주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그는 각종의 매체를 통해 끊임 없이 선배건축가 김수근과의 사승적 관계구도를 암시하 고 있으며, 또 이에 대한 건축적 반응으로 지속해오고 있음을 상기해 볼 때, 블룸이 제안하는 ‘강한’ 건축가의 길을 지향하고 있음이 명확하다.
하지만 김중업과 김수근 이후세대들의 건축적 행보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그들의 궁극적 정체화 구 도를 섣불리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본 연구는 대조비평론이라는 통시적 비평방법론을 건 축이론화하기 위한 것이지만, 현실상 많은 한계점도 함 께 가진다. 블룸의 시적 정체화 구도가 구체적인 건축비 평방법론으로 재정립되기 위해서 가능성 못지않게 한계 에 대한 성찰 또한 필요하다. 따라서 그의 비평론을 보 다 실질적인 건축비평방법론으로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고 구체적인 이론적 재성찰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해럴드 불룸의 ‘영향에 대한 불안’을 바탕으로 한 ‘영 향이론’은 다분히 작가의 내면적 심리상황과 그 표현이 라는 제한적 범위를 전제로 하는 것임 만큼, 이를 건축 이론화하기 위해서는 현실 건축과의 긴밀한 연계관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대조비평의 구도는 ‘한 작가의 독창성에 대한 지속적인 추구’와 그 ‘현실적 한계’에 관 한 것이며, 이는 기존의 대사회적 작가론적 평가와 상반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김수근이라는 걸출한 선 조의 영향에 지속적으로 투쟁하고 있는 승효상은 ‘강한 건축가인가’ 하는 물음에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 하 더라도 그것이 곧 ‘건축적으로 성공한 것인가’와는 별개 의 물음이다. 개인의 심리적 의지와 현실적 구현의 결과 에 대한 판단은 다분히 대사회적인 관점 역시 중요하다.
또한 대조비평론에서의 갈등적 영향관계가 단지 ‘모방’ 의 필연성만을 말한다면 우리가 하는 건축 혹은 제 예술 의 의미는 사라진다. 모방은 ‘창조(creation)’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모방 혹 은 오독이 얼마나 ‘주체적이고 창조적’인가 하는 데 있다. 즉, 독창성에의 추구가 강한 작가일수록 이 ‘창조적 오독 (creative misreading)’의 가능성과 범위가 넓어진다. 그 리고 그것이 또 하나의 전통과 역사가 되고, 강한 작가 는 동시에 강한 선조의 위치에 올라서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전통’과 ‘창조성’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 사고방식을 마땅히 재고해 보아야 하는데, 하나는 반드 시 따라야 할 ‘고전(canon)으로서의 전통’이라는 억압적, 재현적 사고이며, 다른 하나는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근 대 계몽주의적 관점에서의 창조성, 즉 역사와 전통 혹은 선조들의 성취에 대한 단절이라는 ‘완전한 새로움’으로서 의 창조성이란 개념이다. 전통과 창조성이라는 두 모순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역동적인 ‘대조(anti-thesis)’ 혹은 ‘변증법적 의미화’의 과정 속에서 참다운 전통의 역동적 인 모습이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건축 비평이 라는 실천적 행위가 개별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객관적, 공시적 분석만으로 이루어 질 수는 없으며, 작가와 그 작품에 얽힌 역사성의 맥락에서 상호 텍스트적 혹은 변 증법적인 통시적 관점에서 그 진정한 의미가 확보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관점은 건축비평에 대한 기존의 분별 적 장르개념을 해체하는 것은 물론, 건축이라는 근대적 가치체계의 한계를 넘어 역사 전반에 걸친 보편적 삶의 학문으로 거듭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말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추상적 이론과 구체적 현실이 직접적인 대 응관계로 정의될 수는 없으며, 건축이 가진 기호적 속성 혹은 수사학적 특성에 관한 보다 엄밀한 연구과정이 뒷 받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럼에도 대조비평론의 이론적 구도는 한국 현대건축 의 비평적 논의에서 여전히 유용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것은 바로 서구의 근대건축, 혹은 서구의 건축적 근대성(architectural modernity)의 개념 이 한국의 현대건축과 어떠한 영향관계를 형성하였는가 에 대한 물음과 관련한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 땅에 자주적, 주체적으로 수용되지 못한 서구의 근대 건축이, 김중업과 김수근이라는 걸출한 양대 산맥을 거 치면서 어떻게 도입, 변용, 정착되어갔는지, 그리고 그들 의 이전의 작가들과 어떻게 다른지, 또한 그 이후의 세 대들이 다시 그들의 영향관계를 수용해 나갔는지를 통합 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을 대조비평론 의 관점에서 논구해보고자 하는 것이 본 연구의 거시적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