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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598-1142(Print)
ISSN : 2383-9066(Online)
Journal of architectural history Vol.23 No.6 pp.47-54
DOI : https://doi.org/10.7738/JAH.2014.23.6.047

Research of Geumdongnanganpyeon excavated from Hwangyongsa temple site

Dong-Yeol Kim*
Corresponding Author : nuch01l@korea.kr
September 21, 2014 December 17, 2014 December 31, 2014

Abstract

Hwangrong Temple was the center of the Buddhist culture of Silla dynasty. It was built in the 14th year of King Jinheung in Silla dynasty, and completely burnt out when the Mongol Army invaded the Korean peninsula during the reign of King Gojong of Koryeo dynasty. 8-year excavation of the site from 1976 as part of the Gyeongju Tourism Comprehensive Plan revealed many things about the Hwangrongsaji. Recently, a book introduced 'Geumdongnanganpyeon' among relics found in the site, but omitted in the Excavation Report published at that time. Though 'Palgak Geumdongnanganpyeon' has numerical signs 六, 七(six, seven), there was no clear explanation of the signs. Thus, this paper examines it. We can guess, through the remaining iron fragment, that the side of Geumdongnanganpyeon is octagonal, and the width of the side S13 fragment belongs to is about 400mm. The overall form of the face is similar to the Geumdong Palgaktop stored in the Museum of Dongguk University, but, in detail, it is similar to the Zhuanlunzang Pavilion of Longxing Temple and the Sakyamuni Pagoda of Fogong Temple in China. And, numerical signs can be understand to designate the numbers of story and face. The reason why the number might indicate the number of story is that fragments which are presumed to be used for the same purpose contain different measurement values, and the basis of the concept of face can be found in efficiency of manufacturing and manufacturing techniques of artifacts of the time. The two aspects mentioned above cannot be confirmed because of not sufficient relics and related researches. But, the overall form may have been multi-story tower of at least two stories. If more studies in various fields are done in the future, it is expected that the original form will be recovered more accurately.


황룡사지 출토 금동난간편 검토

김 동열*
(전남대학교 건축공학과 박사수료)

초록


    1.서 론

    황룡사는 신라 불교문화 속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 는 성지이며, 신라호국정신의 구심으로 진흥왕 14년(553 년)에 초창 이후 고려 고종 25년(1238년) 몽고의 병난으 로 소실되었다.

    1976년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황룡사지 발 굴조사가 1983년까지 8년에 걸쳐 담장내부 약 25,000평 의 면적가운데 약1,500여평의 가설물 자리를 제외한 구 역에 대해서 진행되었으며, 1984년 발굴조사결과를 보고 서로 발간하였다. 최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과거 발굴조사보고서에서 미보고된 유물을 중심으로 소개형 책자인『황룡사 출토 유물자료집-유물로 본 신라 황룡 사』1)보고서를 발간하였으며, 위 보고서에 수록된 여러 유물들 중에서 ‘팔각 금동난간편’ 유물에 숫자명문, 의장, 편년 등에 대해서 검토하고자 한다.

    2.금동난간편 편년 및 원형 검토

    팔각 금동난간편은 1984년 발간된 발굴조사보고서에서 는 언급이 없는 금속유물로 출토위치, 성격 등 기초자료 가 전무하다. 이에 기록물로 보관중인 과거 기록 사진을 통해 추론해보면, 유물의 출토위치는 강당지 북서쪽으로 추정되며, 유물 출토 시기는 금동난간편으로 추정되는 기록사진에 1978년으로 기명되어 있고, 발굴조사보고서 를 보면 1978년에 강당지 북편 조사가 진행되었을 명시 하고 있어 제3차년도 발굴조사(1978년)때 확인된 것으로 추정된다.2)123

    2-1.추정 제작연대(편년)

    황룡사지 북서쪽 강당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난간편의 추정연대(편년)는 유사한 유물과 비교검토 를 통해 거시적으로 통일신라 6~9C와 고려시대 전기로 추정할 수 있다..3)

    먼저 제작연대(편년)을 통일신라 6~9C로 추론을 위한 비교유물은 안압지 출토 난간, 감은사지 출토 빗완자무 늬석재, 송림사 오층전탐 사리장엄구(금제사리기), 실상 사 백장암 삼층석탑, 아미타 금동불과 권속들(수나라)4) 등이 있다. 각각의 유물의 제작연대를 보면, 1. 안압지 출토 난간은 안압지가 문무왕 14년(675년)에 건립된 것 으로 볼 때, 이 유물의 제작연대는 675년 전후로 추측할 수 있다. 2. 감은사지 출토 빗완자무늬 석재는 감은사지 의 창건이 신문왕 2년(682년)으로 유물의 제작연대는 682년 전후로 추정된다. 3.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장 엄구-금제사리기는 송림사의 창건연대가 진흥왕 5년(544 년)이지만, 탑이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 정되는 점과 이후 고려시대까지 보수가 진행되었다는 점 을 통해 유물의 제작연대는 6~10C로 추정할 수 있다. 4.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은 실상사가 흥덕왕 3년(828년) 에 창건된 점과 탑의 양식상 통일신라 후기로 추정되는 바 제작연대는 9C로 추정할 수 있다. 5. 수나라시대 유 물인 아미타 금동불과 권속들은 추정연대가 584년으로 보고되고 있어 이에 따른다. 이외에 황룡사지 출토 유물 난간과 유사한 현존하는 유구로는 일본 법륭사 금당 및 목탑의 난간이 있다.5)

    위의 유물들의 제작연대를 통해서 황룡사지 출토 금동 난간편의 추정연대는 6~9C로 추정된다.6) 다만, 수나라시 대 제작된 ‘아미타 금동불과 권속들’ 금속유물을 보면, 난간 및 난간하부의 제작 문양이 황룡사지 출토 유물과 거의 동일한 형태인 점에서 미루어 볼 때, 제작연대가 미시적으로 6C에 근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7)145다음으로 제작연대(편년)을 고려시대 전기로 추정하기 위한 비교 유물은 금동팔각탑과 부여 금성산 건물터 출토 금속탑편이 있다.8) [fig.6]금동난간편 S11 붉은 원으 로 표시된 부분을 보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녹아 굳어서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위치상으로 고려시 대 금속탑에서 볼 수 있는 용두장식(가칭)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항룡사지가 몽고군에 의해서 전소된 시기가 고려시대였다는 점에서 간과하고 넘어가 기는 그 의미가 크다. 다만, S11의 장식 흔적이 확실하 게 고려시대 금속탑에서 보이는 용두장식(가칭)의 형태 로 단정할 수 없다는 점과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금속탑편에 대해서 일부 학자들은 제작시기를 백제 시대로 올려보는 경향이 있어 용두장식이 삼국시대에 제 작된 금속탑에도 착용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필자는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금동탑편은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현재까지는 이를 증명할 객 관적인 자료가 부족하고, 과학적 분석이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서는 거시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78

    2-3.추정 평면 및 입면

    황룡사지 출토 금동난간편의 남아있는 편(片)들의 형 태를 통해 원형은 목조건축물을 모방하여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난간편이 부족하여 완벽한 원형은 알 수 없지 만, 부분적으로 평면과 입면을 추정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평면형태는 잔존상태가 다소 양호한 난간편 S13 을 3D 스캔을 통해 내각이 약 137°로 측정되었다. 이는 팔각형 내각 135°와 근사한 값으로 유물의 잔존상태의 파손 및 뒤틀림을 감안하였을 때 S13편의 원형은 팔각 형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음으로 평면크기는 위에서 추 정한 평면을 근거로 난간편 S13의 꺽임점과 중간소로 중심점과의 거리 130mm를 원형 난간 한변의 길이 절반 값으로 가정하였을 때, CAD프로그램을 통해 약 400mm 가 도출되었다. 즉, 금속탑편 중 난간편 S13가 속한 부 분의 폭은 오차범위 내에서 약 400mm이고, 평면형태는 팔각형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다음으로 금동난간편의 입면형태는 현재 잔존 편(片) 수가 적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난간편 S7과 S9 를 보면 연결을 위한 구멍이 있어 연결부가 없는 S1은 S7, S9와 바로 결합될 수 없어 최소한 두 편(片)사이에 는 다른 형태의 금속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9) 이 를 현존하는 건축물을 통해 유추해 보면, 중국 하북성 서가장지 정정현의 융흥사 전륜장전(북송 중기 이전)에 서 그 원형을 유추할 수 있다. 전륜장전 2층 난간과 난 간 하부 기둥(벽체) 사이에는 공포를 통해 상하부를 연 결하고 있다. 이는 금속편에 적용하면, 전륜장전의 2층 난간을 난간편 S1, 난간 하부 기둥(벽체)을 S7, S9로 가 정하였을 때, 두 난간편 사이에는 전륜장전에서 보이는 공포와 유사한 형태의 금속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조금 더 확장하면 중국 산서성 응현 불궁 사 석가탑에도 적용할 수 있어 금속편의 원형이 다층형 으로 추정할 수 있다.91011121314

    3.금동난간편 숫자명문 검토

    황룡사지 출토 금동난간편 중 난간편 S1에서 ‘六’과 S2에서 ‘七’ 숫자명문이 확인되었다. ‘六, 七’ 명문에 대 해서 기본적으로 출토위치가 ‘황룡사지’라는 상징성 때문 에 숫자가 층(層)수를 의미하는 명문으로 생각할 수 있 을 것이다. 하지만 유물의 형태, 난간살대의 별주 제작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보면, 숫자명문 ‘六, 七’은 어쩌 면 제작단계에서 편의를 위한 면(面)수의 개념으로도 고 려해 볼 수 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각각의 개념에 대 해서 논의하고자한다.1516

    3-1.층(層)수 개념 검토

    황룡사지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금동난간편은 완전 한 형태는 아니지만, 목조건축물을 모방하여 제작된 공 예품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러 한 난간편이 층(層)수의 개념으로 해석되기 위해서는 다 층형(목탑) 목조건축 특성상 상층부재가 하층부재보다 작은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S1과 S2의 부재의 크기 또한 상이한 값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S2의 부재 의 잔존상태가 불량하여 정확한 값을 측정하기 불가능함 으로 대체적으로 S3과 S1을 비교하여 추정할 수밖에 없 다.10)

    난간편 S3의 경우 난간기둥으로 보이는“凸”형 흔적이 S1의 난간대 하부에 면한 기둥의 흔적으로 볼 때, S3의 난간기둥과 난간기둥 간격은 약 87mm인 반면에 S1는 약 112mm로 25mm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즉, S3은 S1 보다 상부에 위치한 금속편으로 생각되며, 황룡사지 목 탑 복원안을 참고하였을 때 적어도 3층 이상의 차이를 보일 것으로 추측된다.11) 다만, S1과 S3의 크기 차이의 결과를 S1과 S2의 관계에 적용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현존하는 금속공예품에서 3층이상의 금속공예품 은 대부분 탑의 형태라는 점에서 위 황룡사지 출토 금동 난간편도 원형이 탑의 형태라고 가정할 수 있다는 점에 서 숫자명문은 각층을 조립의 편의성을 위한 명문으로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S2의 정확한 실측값이 없는 상 태에서는 객관성이 담보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17

    3-2.면(面)수 개념 검토

    황룡사지 출토 난간편을 보면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시 대 금속탑과는 달리 문양, 제작기법, 조립방법에 있어 한 층 세련됨을 알 수 있다. 이는 제작단계에서 장인의 공 력이 상당히 투입되었을 것이며, 이러한 공력에 필요한 정신적, 물질적 지원이 가능한 시대에 제작되었을 것으 로 생각된다. 또한 난간편에서는 각부분이 현존하는 금 속탑에서는 볼 수 없는 섬세함을 보여 이에 합당한 주조 기법인 납형주조법12)이 적용되었을 것이다.

    앞서 난간편 S1을 통해 난간 폭은 400mm 내외로 유 추하였다. 이는 주조제작 단계 중 주물형틀 제작에서 있 어 상당한 밀납이 필요했을 것을 반증한다. 하지만 난간 편 S1을 보면, 난간살대와 이외의 부분이 별개로 제작된 점, 조립부가 섬세하게 조각된 점, 난간편의 얇은 부분의 두께가 5mm내외인 점, 전체적인 모양이‘ㄱ’자형인 점으 로 볼 때 주물형틀 제작에 있어 주형을 통밀납으로 조각 하였을 경우 불필요한 부분이 많이 발생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당시의 밀납의 희소성에 비추어 볼 때, 밀납 한덩어리는 통으로 조각하였기보다는 별편으로 나누어 조각하였을 가능성이 더 컸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시말해서 난간편 S1의 원형을 제작하기 위해서 는 400mm보다 큰 밀납덩어리 내부는 상당부분 제거하 고, 5mm내외의 난간대 등을 조각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좀 더 효율적인 제작방법이 적용되었을 것이다. 이는 도판을 작성하고, 난간을 8편으로 나누어 밀납을 조각한 후 각 별편을 하나의 편으로 붙여 주형을 제작하 여13) 적은양의 재료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러한 기법은 고대 불상의 제작시 광배, 손, 옷자락 등 섬 세한 조각이 필요한 부분은 별편으로 조각한 후 붙여서 제작한 경우14)가 있으므로 실제로도 적용할 수 있는 방 법이다. 이외에 명문의 위치가 한쪽에 치우쳐 있는 점은 별편으로 도판의 존재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고, 명 문 새김상태가 깊고, 잔존상태가 끊어짐이 없는 매끄러 운 점은 난간편의 완성 후 새긴 숫자가 아닌 밀납 조각 단계에서 새긴 명문임을 추정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숫 자명문은 별편으로 조각된 밀납을 순서대로 붙이기 위한 표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18

    4.맺음말

    황룡사지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금동난간편은 목조 건축물 난간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 는 공예품으로 유물의 편년, 의장, 숫자명문에 대해서 앞 에서 검토하였다.

    금동난간편의 제작편년은 ‘卍’자형 문양을 통해 6~9C 로 추정된다. 다만, 필자는 수라나 유물에 보여지는 난간 하부의 문양의 유사성을 통해 제작편년이 6C에 근접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의장은 팔각형으로 난간편 S13이 속한 층은 폭이 약400mm이며, 입면 형태는 동국 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시대 금동팔각탑 과 유사하지만, 세부적인 형태는 중국 융흥사 전륜장전 과 불궁사 석가탑과 유사한 형태로 추정된다. 이는 지금 까지 삼국시대 건축물의 복원도를 작성함에 있어 부계 (副階)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점에서 본 유물에 추정 되는 부계부분이 향후 복원연구에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숫자명문에 대해서는 층(層)과 면(面)의 개념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명확하게 어느 한쪽의 개념이 맞다고 완벽하게 증명할 수는 없다. 다만, 명문을 층(層)의 용도로 추정하기는 잔 존 금속편이 부족하고, 난간편 S2의 잔존상태가 불량하 여 층의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기에는 어려움이 있 다. 이에 현재로서는 여러 가지 정황상 층(層)보다는 면 (面)을 표식하기 위한 용도로 새겨진 것을 것으로 생각 되며, 이는 현재 한식목수들이 목조건축을 축조할 때 사 용하는 방식과 유사한 방식이다.

    황룡사지는 1980년에 발굴조사가 완료되었고, 사지에 대한 각 분야별 학술연구가 다수 진행되었다. 또한 황룡 사지에 대한 복원연구가 지난 몇 년에 걸쳐 진행되었으 며, 최근에는 그 복원계획안도 나왔다. 하지만 황룡사지 에 대해서 그동안 복원연구가 모든 근거자료에 대해서 진행된 연구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본 논문은 그동 안 복원연구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황룡사지에 출토된 금 속난간편에 대해서 1차 연구결과를 수록하였으며, 향후 고대 건축물의 의장 복원연구에 있어 다양한 각도에 접 근하기를 바란다.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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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cture of Geumdongnanganp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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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cture of excavated Geumdongnanganpyeon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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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cture of excavated Geumdongnanganpyeon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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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drail of Geumdongnanganpyeon 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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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arison table of estimation of production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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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parison table of estimation of production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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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gment of metal pagoda excavated in Buyeo Geumseongsan building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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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ngduzhangsik of bronze octagonal pago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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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asure value of nanganpyeon S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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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timated measure value based on nanganpyeon 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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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ape of hole for connection of nanganpyeon S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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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cade shape base on nanganpyeon S1 and S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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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ryunjangjeon of yungheung-templ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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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okga-pagoda of bulgung-templ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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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ten character('六') of Nnanganpyeon 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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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ten character('七') of Nanganpyeon 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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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asure value of Nanganpyeon S1 & 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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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efabricated handrail

    Table

    Geumdongnanganpyeon produced in the Unified Silla

    Footnote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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